경제 성장과 고령화 추세가 맞물려 중국 의료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01년 세계보건기구(WHO) 가입 이후 의료 개방이 가속화되고 2009년 이후 의료 개혁을 추진, 의료보험 혜택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성장세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 의료기기 시장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중국 의료 시장은 200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5.3%인 738억 달러이던 것이 2010년 8.2%인 1820억 달러로 급성장했다. 의료 개방과 개혁의 영향으로 이 같은 성장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어서 2025년에는 12%인 9300억 달러(약 930조 원)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의료 시장 중에서도 의료기기 시장의 성장이 도드라진다. 지식집약·자본집약형의 하이테크산업인 의료기기 시장은 세계적으로 지난 10여 년간 가장 빠르게 성장했다. 만성 질환의 조기 진단 및 예방 수요의 증가, 고령화 및 핵가족화로 인한 노인 의료 서비스 증가, 인터넷 의료 정보 확대 등이 의료기기 시장 확대의 주된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세계 의료기기 시장 중에서도 중국의 성장이 돋보인다. 1990년대 초만 해도 중국 의료기기산업은 전무한 상태였으나 2000년대 들어 급성장하기 시작해 지난 10년간 연평균 21.1%의 빠른 성장을 보였다. 2010년 중국 의료기기 매출액은 597억 위안(약 10조 원)으로 2000년 대비 7배 증가했는데, 이는 중국 의료산업 총매출액의 8.5%를 차지한다. 아직은 의료산업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으나, 세계 의료 시장 전체로 볼 때 의료기기 비중이 42%로 높은 점, 향후 중국에서의 빠른 고령화로 예방 진단의 중요성이 커질 것 등을 고려할 때 향후 의료기기산업은 성장이 가장 빠른 분야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정부 지원하에 글로벌 업체 추격 중인 중국 의료 기업들

현재 중국에서 매출을 가장 많이 올리고 있는 의료기기는 영상진단과 삽입형 치료 장비로 의료기기 총매출액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아직까지 일회성 소모품은 11.6%로 낮고 치과용품 등도 아직은 수입이 많지 않으나 앞으로는 이들 품목도 빠른 수입 증가가 예상된다.

우선 중국 의료기기의 산업구조를 살펴보자. 중국의 의료기기 생산업체수는 개인 기업까지 포함해서 1만4000개에 달할 정도로 많으나, 약 90%가 중소영세업체로 초음파진단 장비, 심전도 장비, X선 및 컴퓨터단층촬영(CT) 장비 등을 생산하는 기술이 뛰어난 업체는 100여 개를 넘지 못한다. 이에 따라 이 분야에서 중국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12%로 낮다. 그만큼 글로벌 의료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첨단 의료기기 예컨대 X선, 초음파 등 영상진단 설비와 인체 삽입형기기 등 첨단 의료기기는 글로벌 의료 기업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업체별로는 제너럴일렉트릭(GE), 필립스, 지멘스, 히타치, 도시바 등 다국적기업들이 첨단 의료기기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나라별로는 미국 35%, 유럽 25%, 일본 18%의 순이다. 의료기기의 핵심 설비인 데다 2010년부터 본격화되고 있는 중국의 신의료개혁 방안 때문에 행정단위 병원의 설비 업그레이드 및 정비 수요가 늘어난 것이 주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웨이가오(威高) 그룹, 민드레이(萬瑞·Mindray), 완둥(萬東), 네오소프트, 신화의료(新華醫療) 등 중국 로컬 기업들도 중국 정부가 의료산업 육성을 천명한 2007년부터 정부 지원과 함께 발 빠른 추격에 나서고 있다.

외과 의료기기, 가정용 의료기기 및 치과 의료기기는 선진국 기준으로 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외과 의료기기는 존슨앤존슨, 스트라이커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활약하고 있으나, 의료 시장에서의 비중이 2010년 기준 13%로 낮은 편이다. 소모용품 등 가정용 의료기기 시장도 수많은 중국 기업 중심으로 비교적 빨리 성장했으나 아직도 비중은 선진국의 3분의 2 수준인 20%에 불과하다. 게다가 치과 의료기기는 의료기기 시장에서의 비중이 고작 2%라고 한다. 중국인들 치아가 좋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성장잠재력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가정용 의료기기 시장 확대도 대단히 빠를 것 같다. 중국인들이 가정용 의료기기 중 가장 많이 사는 혈압계의 예를 보자. 2010년 기준 고혈압 환자가 1억6000만 명이지만 혈압계 매출은 환자의 3%인 500만 개에 불과하다. 5000만 명 고혈압 환자에 혈압계 매출 20%, 1000만 개에 달하는 미국과 대비된다. 앞으로 1인당 소득 증가, 노령화 추세와 함께 가장 빠른 성장과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시장이다. 노령층은 여러 만성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아 집 안에서의 자가진단 수요가 높다. 2020년이 되면 중국의 60세 이상 노인 비중은 15% 이상이라고 한다. 자가진단 핵심 수요층이 무려 2억 명까지 불어난다는 얘기다.

의료기기 시장은 성장잠재력이 워낙 크고 중국인 생활에 미치는 영향력도 직접적인 만큼 중국 정부도 적극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앞서 언급했지만 중국은 2001년 WHO에 가입하기 전 이미 무료 의료복지제도를 없애고 자신과 소속기관이 보험료를 분납하게 하는 의료 개혁을 시행했으며, 향후 10년 뒤에는 중국 의료 시장을 아시아 최고의 의료 메카로 만들기 위해 로컬 기업에 대한 지원 혜택, 기술 이전을 위한 합작사 추진, 외국 기업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 등 발 빠른 계획을 시행하고 있다.

금년 초 발표한 ‘의료기기산업 125계획’은 소위 2012~2015년간 의료기기산업의 육성 및 수요 확대 방안으로, 시장에서는 같은 기간 중 의료기기산업이 연간 25% 이상 급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신화의료, 완둥 등을 대표로 하는 영상설비와 의료정보업체들이 1차적으로 수혜를 받고, 이어 정형외과, 소모품 등 중저가 의료기기를 대상으로 하는 일반 중국 업체들의 매출 증가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상하이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의료기기업체들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은 6월 말 기준 26배로 다른 산업 대비 2배 가까이 높은 편으로 그만큼 성장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의료기기 시장은 성장잠재력이 워낙 크고 중국인 생활에 미치는 영향력도 직접적인 만큼 중국 정부도 적극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제약·바이오보다 성장잠재력 큰 의료기기 시장에 관심 가질 때

그럼 중국 진출에 대한 관심이 높은 우리나라 의료기기 상황은 어떤가. 국내 의료기기 시장규모는 2010년 기준 2조9644억 원, 의료산업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8%로 높지 않고 세계 의료기기 시장규모 대비로 봐도 1.2%에 불과하다. 의료기기 제조업체수는 2168개사로 많지만 대부분이 매출 100억 원 미만의 영세업체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연평균 12.2%의 높은 성장을 지속해왔다. 시장규모가 작아 잘 눈에 띄진 않았지만 세계 성장률 평균 7~8%와 비교하면 상당히 빠른 성장이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노령화 추세와 예방의학 발달 가능성을 고려할 때 성장잠재력은 대단하다. 작년 수출증가율은 22%로 수입증가율 1.7% 대비 빠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수출효자산업의 가능성도 보여주고 있다.

2010년 기준 상위 10개사의 생산액은 1조926억 원으로 의료기기 총매출액의 36.9%를 차지한다. 특히 초음파 등 영상진단업체인 삼성메디슨, 지멘스, GE코리아와 치과 관련 업체인 바텍, 신흥, 오스템임플란트 등이 선두그룹이다. 따라서 이들 기업의 주력 제품이 우리나라 의료기기의 경쟁력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그중 영상진단기기의 비중이 25%, 임플란트 등 치과용품 14%, 콘택트 등 안경·렌즈 8.2%로 경쟁력도 높고 실제 중국 등으로의 수출도 늘고 있다. 현재 상장사 평균 PER는 13~14배, 자기자본이익률(ROE)은 17~18%로 다른 산업보다 높은 편이며, 향후 중국 등으로 수출이 본격적으로 늘면 빠른 실적 향상도 기대할 만하다.

향후 의료기기산업에 대해서는 신산업 육성과 수출을 고민해야 하는 정부나 높은 투자 수익에 목말라하는 투자자나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본다. 그 이유는 첫째, 우리나라,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노령화, 의료 복지가 갈수록 중요해질 것이니 의료산업 성장 속도가 빨라질 것은 틀림없다. 둘째, 의료산업 중에서도 의료기기가 빠른 성장을 보일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의료기기가 제약, 바이오 대비 아직 성장 초기라 잠재력이 크고, 이전에는 제약, 바이오 등 치료가 중심이었지만 앞으로 고령화시대에는 예방, 따라서 예방을 위한 진단 등 의료기기가 중요해질 것이다.

우리나라가 정보기술(IT)로 성공해 온 과정을 곱씹어보면 하드웨어에서 성공한 후 소프트웨어로 이동했었다. 최근 우리나라 의사들의 뛰어난 의료 기술을 의료 수출로 연결하자는 목소리가 높지만, 개인적으로는 의료기기와 같은 의료 하드웨어에서 경쟁력을 갖추면서 의사들의 기술 소프트웨어를 접목시켜야 더욱 강한 산업적 경쟁력이 확보된다고 본다.

갈수록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의료 정보와의 결합(IT·BT의 연결)도 의료기기산업이 강할 때 시너지가 커진다. 정부도 의료기기산업에 대해 보다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육성 정책을 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는 중국 의료기기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업체들을 육성해야 하며, 이를 위해 의료기기와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갖고 있는 의사들의 기술, IT를 결합한 의료 정보를 전부 연결하는 통합 의료 시스템 구축도 서둘러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정유신 한국벤처투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