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 작가 최영욱

작가 최영욱은 달항아리를 그리는 작가다. 대학원 졸업 후 한동안 미국에서 전업 작가로 작품 활동을 해온 그는 빌게이츠재단이 그의 작품을 구입하며 유명세를 탔다. 달항아리를 그리며 ‘비움과 느림의 미학’을 완성하고 있는 작가 최영욱을 만났다.
[Artist] 달항아리에 담은 비움과 느림의 미학
달항아리는 배가 불룩하니 둥근 모습이 꼭 달을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마치 정월 대보름날 어두운 밤하늘에 둥글게 떠오른 보름달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 둥글던 보름달도 시간이 지나면 한 귀퉁이가 조금씩 이지러지면서 비대칭적인 형태를 띠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좌우의 비례가 같지 않은 달의 통통한 몸에 대한 연상 작용이 항아리에 유감(有感)돼 달항아리란 이름이 붙게 된 것이 아닐까.

한쪽이 약간 이지러진 조선 달항아리의 품새는 완벽하게 둥근 모양새인 일본이나 중국 도자기와는 사뭇 다른 형태미를 보여준다. 또한 중국이나 일본의 도자기가 채색 도자기인 반면, 조선의 도자기는 백자가 주류를 이룬다. 그 어수룩하면서도 후덕한 품이 꼭 흰옷 입은 조선의 여인네를 닮았다.

- 윤진섭 미술평론가·호남대 교수의 ‘인생의 한축도로서의 달항아리 그림’ 중에서
1. Karma, 100×100㎝, mixed media on canvas, 2012년
1. Karma, 100×100㎝, mixed media on canvas, 2012년
새로운 소재 찾던 중 미술관에서 들린 속삭임

미술평론가 윤진섭이 최영욱 작가의 개인전에 부쳐 쓴 달항아리에 대한 단상이다. 최 작가는 몇 년째 조선의 달항아리를 그리고 있다. 캔버스에 꽉 차게 그린 달항아리의 모습은 얼핏 보면 극사실 기법으로 재현해 놓은 듯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극사실의 범주에 집어넣는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그의 작품은 객관적 묘사를 통한 극사실 계열이 아니라 오히려 주관적인 편에 속한다. 다만 형식만 구상적 양식을 빌리고 있을 뿐이다. 그의 작품을 극사실 회화의 범주에 편입시키는 데 동원되는 유일한 ‘비평적 기준(critical criteria)’이 바로 빙렬(氷裂)인데, 이는 도자기 표면에 잘디잘게 갈라진 유약의 균열에 대한 묘사가 마치 실제의 빙렬을 묘사한 것으로 오해한 데서 오는 비평적 오류다.

“달항아리를 시작한 건 6년 전쯤입니다. 새로운 소재에 목말라있던 있던 차였는데 미술관에서 달항아리를 보게 됐어요. 그 달항아리가 제게 ‘비워라. 그리고 여유 있게 가고, 느리게 가라’고 말하는 듯 했어요.”
3. Karma, 160×180㎝, mixed media on canvas, 2012년
3. Karma, 160×180㎝, mixed media on canvas, 2012년
최 작가는 오래전부터 달항아리를 좋아했다고 고백한다. 달항아리의 그 넉넉함과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절제미와 세련미, 당당함, 그 기품이 좋았다. 그런데 미술관에서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당시 그는 어느 때보다 새로운 소재에 목말라 있었다. 홍익대 서양학과를 졸업한 후 그는 10여 년간 생계를 위해 미술학원을 운영했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틈틈이 작품을 하고 대학원도 다녔지만 작품에는 한계가 있었다. 모든 시간을 오롯이 작품에 쏟고 싶은 열망에 2004년 학원을 정리했다.

잘 되던 학원을 정리하고 전업 작가로 나섰지만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이 잡히지 않았다. 이왕 전업 작가로 뛰어든 바에는 현대미술의 본고장인 뉴욕에서 그림을 그리자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쫓겨 살던 저에게 달항아리는 ‘비워라. 그리고 느리고 여유있게 가라’고 속삭였습니다. 그 뒤로 작업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항상 쫓겨 살던 저에게 달항아리는 ‘비워라. 그리고 느리고 여유있게 가라’고 속삭였습니다. 그 뒤로 작업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빌게이츠재단 건물에 걸린 달항아리 그림

호기롭게 시작한 미국 생활은 역시나 만만치 않았다. 현지 갤러리에서 제프 쿤스 등 유명 작가들의 대작을 보며 기도 많이 죽었고, 그럴 때면 작업실로 돌아와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렸다.

“원래는 아크릴과 수성 재료로 들판과 대지 등을 그렸어요. 그렇다고 구상을 한 건 아니고 이름 붙이자면 ‘추상적 풍경화’라고 해야 할까요. 미국에 가서도 초기에는 그런 그림을 그렸어요. 그러다 달항아리를 만난 거죠.”
2. Karma, 180×160㎝, mixed media on canvas, 2012년
2. Karma, 180×160㎝, mixed media on canvas, 2012년
미술관에서 달항아리의 속삭임을 들은 후 최 작가는 달항아리에 매달렸다. 무턱대고 달항아리를 그리다 어느 날 달항아리의 깨진 선(빙렬)에 눈이 갔다. 우연히 그 선을 연결해보았다. 사색하듯이 가늘고 촘촘한 선을 하나하나 이어가다 보면 어느새 다른 선과 맞닿았다. 그게 신기하고 재밌었다. 그 선은 얼핏 헤어졌다 만나고, 만났다 다시 헤어짐을 반복하는 우리네 인생과 닮았다.

이상하게 달항아리를 그리면서 그는 마음가짐이 조금씩 달라졌다. 미국 생활 초기만 해도 ‘열심히 해서 유명한 작가’가 되겠다는 욕심이 앞섰다. 그런 욕심 때문에 더 조바심을 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달항아리를 그리면서 성급한 마음이 가라앉았고, ‘작업을 즐기자’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을 즐기게 되면서 컬렉터들의 반응도 조금씩 나타났다. 작업 틈틈이 한국계 갤러리에서 전시도 하고, 아트 페어에도 참가했는데 달항아리를 찾는 이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현지 관람객들은 달항아리와 낯선 풍경에 호기심을 보였다. 그런 이들에게 달항아리 선에 깃든 인생의 의미와 동양적 풍경에 대해 설명하자 호기심이 관심으로 이어졌다. 관람객들의 관심이 응원이 돼 그는 작품에 더 매진했다.

빌게이츠재단 건물에 달항아리 그림을 걸게 된 것도 그 연장선이다. 2010년 11월, 30호짜리 작품 6개를 들고 마이애미 아트 페어에 참가했을 때다. 빌게이츠재단 신축 건물의 완공을 앞두고 그림을 보러 다니던 큐레이터의 눈에 달항아리 작품이 띈 것이다.

유심히 달항아리를 보던 큐레이터는 그에게 “큰 그림도 있느냐”고 묻더니 그 자리에서 80호짜리 작품 3개를 주문했다. 주문대로 작품을 건네고 이듬해인 2011년 6월, 그는 재단 건물 오픈식에 초대를 받았다. 가서 봤더니 20여 명의 컬렉션 작가 중 한국 작가는 김수자 외에 그가 유일했다.
4. Karma, 180×150㎝, mixed media on canvas, 2012년
4. Karma, 180×150㎝, mixed media on canvas, 2012년
건물 오픈식에 작가들을 초대하는 걸 보며 참 부러웠다. 1000여 명의 초청객들을 데리고 함께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그랬다. 그 자리에서 그는 큐레이터한테 자신의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큐레이터는 “고요하고 편안한 느낌이 빌게이츠재단의 이미지와 잘 어울릴 듯했다”고 대답했다.

그런 관심과 성원이 최 작가에게는 큰 힘이 된다. 2011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여전히 작품에 매진하고 있다. 미국에서 달항아리를 그릴 때는 왠지 어색했는데, 한국에 돌아온 후에는 훨씬 편해졌다고 그는 말했다. 작품의 완성도도 더 높아졌다. 작가 최영욱과 달항아리가 결국 그의 전시회 제목처럼 한국에 연(karma)이 닿아있기 때문은 아닐까.


글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