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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용병 투수 스콧 프록터(Scott Proctor). 시속 150km 이상의 폭발적인 강속구를 뿌려대는 그에게는 잔잔한 물결 같은 나눔의 스토리도 있었다. 6년 전 선천성 심장병을 안고 태어난 딸 덕분에 세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되면서 그는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함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의 손을 잡기 시작했다. 딸 이름을 딴 비영리단체 ‘미스 팀(M.E.’s Team)’을 통해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나눔 활동을 벌이고 있는 프록터를 서울 잠실구장에서 어렵게 만났다.
스콧 프록터 두산 베어스 투수 “아이들, 그들이 꿈을 꿀 수 있어 행복합니다”
두산 베어스의 마무리 투수 스콧 프록터는 지난해까지는 미국 뉴욕 양키스에서 뛴 선수다. 1998년 프로 선수로 활동을 시작, 마이너리그를 거쳐 2004년 메이저리그에 입성했고 2012년 시즌부터 한국의 마운드에 올랐다. 뉴욕 양키스 시절에는 조 토레(Jo Torre) 감독의 무지막지한 편애(?)로 불펜 투수로는 드물게 한 시즌(2006년)에 무려 83게임 101이닝을 소화하는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 덕분에 그는 ‘조 토레의 남자’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한국 무대 데뷔 첫해인 올 시즌에도 7월 12일 현재 세이브 1위를 달리며 특급 소방수 역할을 해내고 있는 그에게 잔잔한 나눔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최근. 그는 지난 1월 시즌을 앞두고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진행된 전지훈련에 빠지고 플로리다행 비행기에 올랐던 적이 있다. 마무리 투수의 7일간의 훈련 불참은 어지간해선 용인되기 어려운 일이다.

김진욱 두산 베어스 감독마저 “잘 다녀오라”는 격려의 말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그의 ‘결석 사유’는 플로리다주에서 열린 ‘미스 팀’ 연례 자선행사. 그는 2007년부터 딸 메리의 이름을 딴 비영리 자선단체인 미스 팀을 이끌며 플로리다주 트레저 코스트(Treasure Coast) 지역에서 의료적, 교육적 지원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나눔 활동을 벌여왔다.
스콧 프록터 두산 베어스 투수 “아이들, 그들이 꿈을 꿀 수 있어 행복합니다”
지난 5여 년간 미스 팀의 지원 영역은 어린이 야구단 활동 지원에서부터 장학금 지원까지 다양화됐고, 기부금 모금을 목적으로 벌어지는 행사에는 미스 팀의 ‘얼굴’인 프록터 선수 자신을 비롯해 기라성 같은 현역 메이저리그 선수, 골프 선수 등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프록터는 아내 캐리(Carrie)와의 사이에 4남매를 두고 있는데, 그가 유독 둘째인 메리의 이름을 딴 자선단체를 만든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2006년생인 메리는 생후 3일 만에 선천성 심장질환이 발견돼 응급실 헬리콥터에 실려 심장수술을 받았던 것. ‘조 토레의 남자’로 맹활약 중이던 프록터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행복의 절정(cloud nine)이 패닉으로 돌변한 순간”이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다행히 메리의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딸로 인해 천국과 지옥을 경험한 뒤 그는 다음 해 바로 딸이 수술 받았던 병원과 함께 의료적, 교육적, 금전적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비영리기관을 출범시키면서 팔을 걷고 나섰다. 미스 팀은 금전적 지원에서 그치지 않고 야구를 통해 극기를 경험하고 나아가 삶의 지혜를 배워 꿈을 갖게 한다는 뜻에서 어린이 야구단 활동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현재는 야구단에 이어 소프트볼 팀도 활동 중이다.

장맛비가 내린 다음 날 오후. 서울 잠실구장에서는 두산 베어스 선수들이 후텁지근한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야간 경기를 앞둔 연습에 한창이었다. 턱턱 차는 숨을 미지근한 미네랄워터 한 병으로 겨우 달래고 있을 때 프록터 선수가 기자를 찾으며 덕아웃으로 다가왔다.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건네 오는 그의 손은 예상대로 단단했다.
스콧 프록터 선수와 네 명의 자녀들. 둘째인 메리는 심장병에서 완치돼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그의 가족은 현재 아내의 다섯째 출산을 위해 미국에 머물고 있다.
스콧 프록터 선수와 네 명의 자녀들. 둘째인 메리는 심장병에서 완치돼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그의 가족은 현재 아내의 다섯째 출산을 위해 미국에 머물고 있다.
어젯밤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4 대 3으로 승리했는데 축하한다.

“어제 경기는 역전승이라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경기에서 처음 이기는 것도 아니고, 지고이기는 것도 내가 하는 일(직업)의 일부다. 내가 잘해서 이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가 함께 잘했기 때문이다.”

경기하기 전에 징크스가 있는지.

“없다. 미신 같은 건 잘 믿지 않는 편이다. 그저 같은 티셔츠와 바지를 고수하는 편이다.”

한국 프로야구 원년에 두산 베어스의 ‘불사조’로 불리던 전설의 투수 박철순이 22연승 기록을 거뒀다. 박 선수의 전설에 대해 알고 있나.

“정말 미안한데 잘 모른다. 아직까지도 한국 야구와 한국 문화에 대해 배우고 적응해 가는 중이다. 간간히 동료들이 두산 베어스 역사에 대해 얘기해 줄 때마다 귀담아 듣고 있다.(웃음)”

지난 1월 플로리다에서 열린 미스 팀 연례행사에는 전 뉴욕 양키스 감독인 조 토레도 자선행사에 참여했다고 들었다. 기부금이 많이 모였나.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 동안 열렸다. 올 행사에는 특별히 컨트리 가수 콘서트 프로그램도 추가했는데 콘서트에는 거의 1만4000여 명이 모였다. 토요일 아침에 열린 셀레브리티 슈팅 클레이(Celebrity Shooting Clays)에는 조니 데이먼(Johnny Damon), 카일 판스워스(Kyle Farnsworth), 론 빌론(Ron Villone), 릭 앤키엘(Rick Ankiel) 등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골프 선수, 가수 등 유명인들이 참여해 반응이 좋았는데, 해마다 참여하는 선수들을 바꾼다. 보통은 자선행사에 골프 토너먼트를 많이 하지만 나는 사격과 사냥을 좋아했던 터라 클레이 사격 스타일로 바꿨다. 유명인들이 사인도 해주니까 준비한 상품들이 모두 매진될 정도였다. 기부금은 이사회가 관리해서 정확히 모르겠지만 4만 달러 가까이 모인 것으로 짐작된다.”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선수들이다. 섭외에 어려움은 없나.

“사실 프로야구 선수들은 스토브 리그 시즌에도 매우 바쁘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자선·기부행사도 많이 하기 때문이다. 미스 팀 행사에는 뉴욕 양키스 선수들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개인 스케줄이 아무리 바빠도 기꺼이 미스 팀 행사에 와주는 그런 친구들을 가진 나는 매우 운이 좋은 사람이다.”

미스 팀이란 이름은 딸 메리(Mary Eliza beth. 프록터는 메리를 ‘에이미’라는 애칭으로 부른다)의 이름에서 땄다고 들었는데, 꼭 야구팀 이름 같다. 아빠의 센스가 발동한 것인가.

“하하하…. 야구팀 이름같이 들리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사실 비영리단체인 미스 팀은 메리가 선천성 심장병 수술을 받았던 병원(마이애미주 소재 잭슨 메모리얼 병원)에서 만든 이름이다. 메리가 수술을 받고 난 뒤 병원에서 기부금 마련 활동을 하고 싶어 한다는 얘기를 내 에이전트를 통해 듣게 됐고, 내가 적극적으로 기금 마련에 나섰다. 야구팀 이름 같다고 했는데, 사실 야구가 아이들한테 주는 것은 운동 그 자체에 머무르지 않는다. 야구라는 운동은 아이들이 힘든 상황을 스스로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삶에 대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야구는 아이들에게 꿈을 갖도록 해준다. 또 아이들이 야구를 잘하면 미래의 야구 수준도 올라가지 않겠나.(웃음)”
미스 팀은 금전적 지원에서 그치지 않고 야구를 통해 극기를 경험하고 나아가 삶의 지혜를 배워 꿈을 갖게 한다는 뜻에서 어린이 야구단 활동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미스 팀은 금전적 지원에서 그치지 않고 야구를 통해 극기를 경험하고 나아가 삶의 지혜를 배워 꿈을 갖게 한다는 뜻에서 어린이 야구단 활동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그렇다면 미스 팀에서도 야구는 빼놓을 수 없는 프로그램이겠다.

“내가 야구 선수인데 당연하지 않은가. 미스 팀에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야구가 가장 활성화돼 있다. 처음에 부모가 없는 아이들, 조부모가 키우는 아이들을 모아서 리틀 리그(little league·어린이 야구단) 한 팀으로 출발했는데, 지금은 6개 팀으로 늘었다. 팀이 늘어나니까 서로 경기도 할 수 있어서 훨씬 좋다. 소프트볼 팀도 한 팀 있다. 아이들이 경기를 할 때 부모들이 참석해서 관전하는데, 아이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부모 입장에서도 행복한 일이다. 생각해 보라. 사실 24시간 중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나.”

미스 팀 행사 때문에 전지훈련에도 빠졌었는데 김진욱 감독이 별말 안했었나.

“오히려 격려해 줬다. 좋은 일을 하는 선수가 있어 뿌듯하다고 했다.”

김 감독의 적극적 호응이 있었나 본데, 그가 기부도 했나.

“하하하…. 안했다. 하지만 격려를 보내줬다.”

미스 팀은 언제 발족했나. 미국에서 난 언론 기사를 보면 교육적, 의료적,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플로리다주 트레저 코스트 지역 어린이들을 돕는 비영리단체라고 돼 있다.

“둘째인 메리가 태어난 것이 2006년인데, 메리의 선천성 심장병(interrupted aortic arch·대동맥궁 단절)을 알게 되고 수술을 받은 후 미스 팀을 만든 것은 그 다음 해인 2007년이다. 발원지는 플로리다주 트레저 코스트에 있는 스튜어트(Stuart)라는 도시다. 야구단 지원뿐만 아니라 의료 지원, 장학금 지원, 소아암 환자 돕기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보통 휠체어 신세를 지는 아이들 케어에는 돈이 많이 들어간다. 미스 팀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것이다.”

미스 팀의 활동 범위가 점차 확대되는 것을 보면 주변에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사실이다. 미스 팀은 정말 훌륭한 이사회를 확보하고 있다. 아내도 한때 이사회 멤버였고, 아버지, 아버지의 사업 파트너, 재정 전문가 등 7~8명이 현재 이사회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들 덕분에 후원도 활발히 받고 있다. 후원은 자선행사를 통한 기부금 모금과 함께 미스 팀 운영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결국 이 일도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이사회와 후원자들이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고, 나는 그저 미스 팀의 얼굴일 뿐이다.”

메리의 심장병은 완치된 것으로 아는데 지금은 건강한가. 야구 선수 아빠로서 메리의 건강 유지를 위해 특별히 하는 일이 있다면 귀띔해 달라.

“별다른 노하우는 없다.(웃음) 메리는 현재 여섯 살인데 아주 건강하다. 매년 정기검진을 받고 있다. 네 아이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어느 아이들이나 제각각 독특한 생각이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활동적인 아이들이 되도록 돕는 것, 아이들의 생각을 깨지 않고 지켜주는 것이다.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그것이 부모로서 최선이 아닐까 싶다.”

최근까지 네 자녀와 아내가 한국에서 살았다고 들었다.

“한국에 있었는데 지금은 미국에 머물고 있다. 사실은 아내가 현재 다섯째 아이를 임신 중이라 9월 출산 때까지 몸조리도 할 겸 보냈다.”

한국에서는 자녀 4명도 많은 편인데, 정말 능력 있는 남자 같다.

“능력 있는 남자라기보다는 좀 센 아내(strong wife)가 있는 남자다(웃음). 솔직히 6명까지 낳고 싶다. 나는 5형제, 아내는 4형제로 양가 모두 대가족이다. 그래서 친척이 모두 모이면 어마어마하다.”

네 자녀 모두 미스 팀 활동에 적극적인가.

“매우 좋아하고 즐긴다. 행사 때마다 네 아이들이 꼭 참석하는데, 미스 팀 기부금 모금 행사는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아이들을 포함한 모든 아이들을 위한 축제이기도 하다.”

한국에도 어린이 심장병, 소아암 환자를 지원하는 유사한 단체들이 많은데 연결된 적이 있는지.

“없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아직 한국에 적응 중이다. 한국 문화가 많이 궁금한데 어느 나라, 어떤 문화권에서든 아이들을 돕는 일은 어른으로서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한국을 잘 모르지만 일단 야구장에 온 어린이들한테는 잘해주려고 애쓰는 편이다. 사인볼도 되도록 많이 주고 싶다.”
스콧 프록터 두산 베어스 투수 “아이들, 그들이 꿈을 꿀 수 있어 행복합니다”
1998년 마이너리그에서 프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지금껏 야구 선수로서 가장 감격적이거나 영광스러웠던 순간은.

“아무래도 2004년 뉴욕 양키스에 입단하면서 처음 메이저리그로 데뷔했을 때다. 그때 부모님이 뉴욕까지 비행기를 타고 오셨는데 아버지랑 외야에서 볼도 주고받고 선수들 라커룸도 보여드렸는데 그 순간이 참 감동적이었다.”

데뷔 이래 뉴욕 양키스, LA 다저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그리고 지금의 두산 베어스까지 굴지의 프로야구 팀들을 거쳤다. 그 가운데 자신을 가장 성장시켜 준 팀을 꼽는다면.

“데뷔 이후 각 팀을 거치면서 힘든 시즌도 있었고 수술을 받아 등판을 못한 적도 있고 반대로 등판을 너무 많이 한 적도 있다. 모든 팀들이 내가 누구인지 알게 해줘서 좋았고, 나는 그 팀 속에서 더 나은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한 것이 전부다.”

두산 베어스의 마무리 투수다. 마무리 투수는 승부사 기질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 한때 당신을 탐냈던 플로리다 말린스의 래리 빈페스트(Larry Beinfest) 구단주는 ‘불독 정신(bulldog mentality)’의 소유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마무리 투수로서 마운드에 섰을 때 어떤 생각을 하나.

“최대한 단순해지려고 애쓴다. 시합 전에 ‘스카우트 미팅’을 갖는데 그때 상대편 주요 선수들의 장단점에 대한 브리핑을 받는다. 스카우트 미팅 후에 우리 팀 투수인 니퍼트, 김선우 선수한테 물어보면서 미리 학습을 해둔다. 마무리 투수는 경기를 마무리해야 하는 책임감을 느끼는 포지션이라 더욱 중심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는 별 것 없다.‘굿 럭(good luck)!’을 비는 것밖에는.”

2012년 두산 베어스와 계약하면서 한국에 왔다. 한국 야구 환경을 어떻게 생각하나.

“경기장만 봐도 매우 훌륭하다. 전반적으로 시설 관리가 잘 된 것 같다. 경기 중 분위기도 매우 좋다. 한국 야구팬들은 매우 열광적이며 열정적이라서 좋다.”

위키 백과사전에 당신의 무기가 포심 패스트볼, 커브볼, 슬라이더라고 설명돼 있다. 한국 팬들이 열광하는 당신의 기술은.

“글쎄. 하나만 꼽으라면 어렵다. 한국 팬들은 전반적으로 패스트볼을 좋아하는 것 같다. 한국으로 온 후 정명원 코치한테 스플리터 기술을 배웠는데 그것도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

메리의 선천성 심장병이 아니었다면 자신만을 위해 살았을 것 같나.

“아마도 그랬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메리가 선천성 심장병을 안고 태어난 것도 신께서 우리가 겪어야 할 과정으로 주신 것이라 생각된다. 재단을 통해 많은 아이들이 도움을 받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 자신에게 매우 감사한 일이다.”

떨어져 있는 가족과는 얼마나 자주 통화하나.

“인터넷 무료 화상통화인 스카이프(skype)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일반 전화로 한다면 얼굴도 못 보지만 요금도 엄청났을 것 같다. 화상통화 덕에 아이들도 자주 보긴 하는데, 넷이나 되다 보니 생일을 깜빡할까 봐 아내가 손목에 아이들 생일 날짜를 문신으로 새기라고 권하더라.(웃음)”

마지막으로 한국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늘 힘찬 응원도 감사하다. 시즌을 거치다 보면 기복이 있기 마련인데 팬들의 응원이 있으니 열심히 임한다. 팬들의 열정에 다시 한 번 감사한다.”


워밍업 훈련으로 짧게 끝낼 수밖에 없었던 인터뷰를 아쉬워하며 그는 급히 경기용 야구공을 구해 사인을 해서 건넸다. 야구 좋아하는 꼬마들이 있으면 언제든 야구장에 데리고 오라고 한다. 야구는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는 운동인 사실을 알고 있느냐며 웃는 그에게서 ‘이웃 아빠’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글 장헌주 기자 chj@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 사진 제공 두산 베어스 홍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