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임에서 만난 회원들은 하루 동안 하는 일은 저마다 달랐지만 이런저런 모임과 활동으로 일정이 빡빡하게 차 있다는 점이 공통적이었다. 모임에서 만난 67세의 선생님 한 분이 교단에서 물러난 뒤에도 자신은 늘 바쁘게 지낸다며 필자에게 하루일과를 들려줬다.
“월요일은 고등학교 동창회관에 나가야 하고, 화요일·목요일은 성당 자원봉사, 수요일은 교장 등산 모임, 금요일은 대학동창 골프 모임까지…. 전 솔직히 퇴직 전보다 지금이 더 바빠요. 한가할 틈이 없죠.”
은퇴한 교장들은 자신들의 활기찬 하루일과를 자랑하며, 집에서 TV만 보거나 경로당에서 화투나 치며 허송세월하는 여느 노인들과 자신은 다르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바쁜 생활에 대한 압력은 은퇴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은퇴란 사회의 생산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나는 사건임에도 은퇴 이후의 일상에서 역시 생산성에 대한 기대심리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은퇴 후는‘의미 있는 삶’을 찾는 주체적인 시기
앞의 사례와 같이 은퇴한 이후에도 시간표를 빡빡하게 채우고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특히 높은 지위에서 바쁜 직장생활을 했던 남성 은퇴자들 중에 많은데, 바로 ‘잠시도 한가해서는 안 된다’는 슈퍼노인 증후군 때문이다.
사실 경쟁이 치열한 한국 사회에서 바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이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과외와 학원 수업으로 바쁘고, 부모들은 이러한 자녀의 교육비를 버느라 바쁘다.
바쁜 생활에 대한 압력은 은퇴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은퇴란 사회의 생산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나는 사건임에도 은퇴 이후의 일상에서 역시 생산성에 대한 기대심리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은퇴자들은 종종 ‘비생산적인 존재’라는 부정적인 사회적 시선을 받기도 하고 그러한 부정적 인식을 스스로 내면화하기도 한다.
더 이상 의미 있는 역할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이들은 무료함을 느끼는 동시에 생산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그러면서 ‘쫓김’을 경험하게 되는데, 어찌 보면 슈퍼노인 증후군은 은퇴자들이 노년에 대한 고정관념에 맞서 스스로 쓸모없는 존재가 아님을 증명해 보이려는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은퇴자들을 괴롭히는‘바쁨의 윤리’
미디어 또한 슈퍼노인 증후군을 부추기는 데 한몫하고 있다. 대중매체들은 생산성과 활동성, 젊음을 유지하는 것을 이상적인 노후 생활의 모습으로 그리는 경향이 있다. 은퇴 후에 새로운 자격증을 취득하고,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노인들은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100세 시대’의 바람직한 은퇴자의 모델이다. 물론 고령의 나이에도 건강하고 활력 있게 살아가는 삶을 누구나 꿈꾸고 희망한다. 하지만 이러한 라이프스타일이 하나의 선택이 아닌, 노후 생활의 유일한 표준으로 정형화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미국의 노년학자 데이비드 에커트(David Ekerdt)는 실제로 대부분의 은퇴자들에게 ‘바쁨의 윤리(busy ethic)’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현대사회에서는 노년의 삶 역시 다양한 활동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기대가 존재한다. 또한 사색적이거나 비활동적인 삶의 방식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 또한 인간은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성장하는 존재라고 했다. 그리고 장·노년기의 성장이란 젊은 시절 일 중심으로 억압됐던 자아를 되찾고 새로운 삶의 목적이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생의 3분의 2를 돈 벌고 자녀 키우느라 바쁘게 보냈다면, 나머지 3분의 1은 ‘의미를 찾는 삶’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것이다. 직업과 같은 젊은 시절의 활동은 주로 타인에 의해 규정되지만, 은퇴 이후에는 자기 자신이 통제력을 발휘하면서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성찰적인 나이 듦을 위한 Tip
1. 나만의 시간을 갖자
2. 내면의 힘을 키우자
3. 느리게 사는 법을 배우자
4. 가족과 이웃을 돌보는 삶을 실천하자
진정한 자아와 인생의 본질을 찾아서
“40이 되면 학력 불문, 50이 되면 재력 불문, 60이 되면 외모 불문, 70이 되면 건강 불문, 80이 되면 생사 불문”이라는 말이 있다. 나이 듦이란 이처럼 외적인 차이들이 점차 줄어들고 평준화돼 가는 과정이다.
‘평생 성장’의 관점에서 볼 때 은퇴 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왕년의 나’를 설명하는 명함보다는 주변 사람에 대한 배려, 지역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헌신, 유머 감각, 진솔함과 부드러움 등과 같은 자질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질은 느림 속에서 자라나는 속성들이다.
따라서 진정한 자아와 인생의 본질적인 가치를 찾고 싶다면 내가 누구이고, 어떤 가치를 위해 사는지, 또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가족과 이웃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바쁘게만 살다 보면 우리는 주변 세계에 차갑고 무뎌진다. 나 자신뿐 아니라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사람들의 필요에 반응할 수 있다. 결국 내가 속한 공동체와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responsibility)은 내 주변의 필요에 ‘반응(response)’할 수 있는 ‘능력(ability)’으로부터 나오는 셈이다.
은퇴한 이후에는 강박적으로 삶의 공백을 메우려고 애쓰기보다는 먼저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그동안 소홀했던 가족, 나아가서는 내 이웃과 지역사회를 돌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은퇴 생활의 적, 슈퍼노인 증후군
슈퍼노인 증후군은 마지막 생애 단계를 준비하는 데에도 방해가 된다. 최근 기대수명이 길어지면서 은퇴 이후의 ‘제3의 연령기(the third age)’를 생산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논의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활동성과 독립성, 젊음의 유지만을 강조하는 노후 생활의 모델은 나이 듦의 과정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는 불완전한 생애 각본이다.
슈퍼노인 증후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우리는 ‘제4의 연령기’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생애 단계에 다다르게 됐을 때 인생의 어떠한 의미도 가치도 찾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생산성과 독립성이 강조되는 문화 속에 사는 건강이 안 좋은 노인들은 자존감이 낮으며, 수치심과 같은 부정적인 정서를 더 많이 경험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딜레마를 풀어가기 위한 단초를 미첼 앨봄(Mitchell Albom)의 저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전신이 마비돼 가는 무기력함 속에서도 모리 교수가 남긴 삶과 죽음, 사랑에 대한 깊은 성찰은 제자인 미치의 인생을 통째로 바꿔 놓는다.
수십 년 만에 만난 제자에게 모리 교수가 꺼낸 첫 질문은 은퇴 후 삶의 방향을 고민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큰 울림을 남긴다. “마음을 나눌 사람을 찾았나”, “지금 마음이 평화로운가”, 또 “최대한 인간답게 살기 위해 애쓰고 있나”.
은퇴한 이후에는 강박적으로 삶의 공백을 메우려고 애쓰기보다는 먼저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그동안 소홀했던 가족, 나아가서는 내 이웃과 지역사회를 돌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생의 의미와 정체성(who)을 먼저 확립하는 것은 앞으로 무엇(what)을 하며 어떻게(how) 살아갈지를 결정하는 방향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성은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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