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쉘 위 댄스(Shall We Dance)’의 주인공을 보면 춤은 이상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 평범한 40대 샐러리맨 쇼헤이는 가정에서는 모범적인 가장이고 안정된 직장을 가진 성실한 사람이다. 매일 통근 전철을 타고 회사와 집을 오가던 그가 어느 날 차창 밖으로 댄스교습소 창문에 기대어 서있던 여인 마이를 발견하고, 그로 인해 그녀가 강사로 있는 사교댄스 교습소에 등록하면서 쇼헤이의 인생은 180도 반전을 맞게 된다. 춤으로 인해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무미건조했던 그의 생활은 생기가 돌면서 꽃처럼 활짝 피어난다.

쇼헤이처럼 ‘춤바람’이 들어 어느 순간에나 발이 들썩거리게 되진 않더라도 춤이란 우리네 인생을 축제처럼 만들어주는 마법 같은 도구다. 그만큼 기쁘고, 더없이 로맨틱하며, 맞잡은 손을 통해 전해지는 따스한 온기와 살아 있는 생명력을 가진 그림을 만나보자.
[강지연의 그림읽기] 그대와 함께 춤을
시골 무도회(Dance in the Country),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 1883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그림 속 두 남녀는 춤을 추며 낭만적인 순간을 만끽하고 있다. 소박하면서도 정겨운 전원 무도회는 따뜻함과 자연스러움이 넘쳐흐른다. 그림 속 행복해 보이는 주인공은 나중에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아내가 되는 알린느와 르누아르의 친구인 폴 로트다.

여인의 행복한 표정은 이 그림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다. 풍만한 신체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그녀의 뺨은 붉게 상기돼 있고 부채를 높게 치켜든 손과 빨간 모자는 사랑스러움을 더해준다. 그녀를 열정적으로 리드하는 신사는 바닥에 모자를 떨어뜨릴 정도로 열심이다. 우아한 살롱에서의 무도회가 아닌 격식을 차리지 않은 서민적인 야외 무도회의 생생한 풍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무르익은 무도회의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 그림을 그린 해에 르누아르는 춤을 소재로 한 작품을 석 점 제작했다. 그만큼 그는 이 시기에 춤이라는 소재가 주는 매력에 빠져 있었다. ‘시골 무도회’는 춤에 대한 그의 열정을 나타내며 또한 연인이었던 알린느의 아름다운 초상화이기도 하다. 친구이자 모델이었던 로트 역시 이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춤추는 장면이 들어간 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다.

야외의 살랑거리는 바람과 흥겨운 오케스트라, 사람들의 유쾌한 웃음소리와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져오는 듯한 그림을 보며 바쁘게 살아가느라 잊고 있었던 삶의 여유와 행복이 떠오른다. ‘행복’을 그린 화가라는 수식어가 붙는 르누아르의 그림답게 보는 이들 역시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그림이다.
[강지연의 그림읽기] 그대와 함께 춤을
여름밤(Summer Night), 윈슬로 호머(Winslow Homer), 1890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춤이 얼마나 로맨틱한 것인지 이 그림만큼 잘 표현할 수도 없을 것이다. 어두운 밤, 달빛을 받은 은빛 파도가 밀려와 바위에 부딪히고 그림의 중앙에는 파도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는 두 여인의 모습이 보인다.

어두운 밤바다를 배경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은 검은 실루엣으로 표현돼 마치 자연과 하나가 된 느낌이다. 여름밤, 달빛, 파도소리 이 세 가지만 해도 더없이 낭만적일 터인데 여기에 꿈꾸듯이 춤을 추는 여인들이라니. 그야말로 ‘한여름밤의 꿈’ 같은 장면이다. 그림 속에서 서로 껴안고 춤추고 있는 두 사람은 친구일 수도, 어머니와 딸일 수도, 혹은 이웃일 수도 있으리라. 다른 음악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그저 멀리서 밀려오는 파도소리가 음악이 되고 춤과 바다가 함께하는 인생은 축제가 되는 것을.

화가인 윈슬로 호머는 미국 보스턴 북쪽에 있는 작은 어촌마을에서 바다와 사람들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에게 있어 바다는 신비로우면서도 강렬한 존재였다. 약 2년간 바닷가에 머물렀던 그는 메인 주의 프라우츠넥으로 돌아와 은둔하며 생애 가장 위대한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처음 이 그림이 발표됐을 때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춤추는 두 여인에 대해서 혹평을 쏟아놓았다. 대중은 그림을 좋아했지만 결국 아무도 이 그림을 구입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호머는 1990년 이 그림을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했으며 결국 이 그림은 평생 동안 그의 곁에 소중히 간직됐다. 이 신비롭고 매혹적인 그림은 그가 죽은후에 프랑스 정부에서 매입해 뤽상부르 박물관에 소장함으로써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강지연의 그림읽기] 그대와 함께 춤을
춤(Dance),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909~10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소장

보다 원시적이고 강렬한 앙리 마티스의 그림은 춤이 가진 본능적인 아름다움을 일깨워준다. 벌거벗은 다섯 명의 인물이 동산 위에서 손을 맞잡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이 그림은 보는 이들에게 잊히지 않을 깊은 인상을 준다. 본디 인류에게 있어 춤과 음악은 본능적이고 순수한 것이었으며 이를 나타내기 위해 마티스는 어떠한 군더더기도 없이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표현을 사용했다.

피카소는 마티스를 일컬어 “마티스의 뱃속에는 태양이 들어 있다”라고 평한 바 있다. 그만큼 그의 색채 감각은 대담하고 강렬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오직 빨강, 파랑, 초록 세 가지 색만을 사용했으나 전혀 부족함이 없다. 한껏 역동적인 신체의 곡선은 다섯 명의 인물 모두에게 조금씩 변화를 주며 누구 하나 같은 자세가 없으면서도 그림 전체가 조화로움을 유지한다.

마티스 역시 춤과 음악을 소재로 한 그림들을 같은 해에 제작했다.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그의 색채 감각은 원근감이 전혀 없는 평면적인 화면에서 더욱 빛을 발하며 그의 작품 속 춤은 무한한 생명력을 가진 듯 힘차게 팔딱인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원시적인 춤은 인간의 본능 속에 춤에 대한 갈망이 내재돼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늘 바쁘게 돌아가는 우리네 인생이 어느 날 무료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 춤을 추자. 몸치, 박치, 음치 그런 것 따지지 말고 내 곁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껴안고 토닥이며 엉망진창 스텝이라도 밟아보자. 젊고 예쁜 아이돌이나 카바레의 음침한 불륜남녀만 춤을 추란 법이 있나.



강지연 _ 교사. <명화 속 비밀이야기>, <명화 읽어주는 엄마> 저자. ‘귀차니스트의 삶 (http://blog.naver.com/oilfree07)’ 운영. oilfree0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