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기문명의 도입과 중앙집권적 국가사회의 시작
철기문명의 도입은 여러 모로 인류사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일단 무기가 철기로 만들어짐에 따라 군사력의 증강을 이룰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유목민은 주변 민족을 침범하고 지배함에 있어서 훨씬 강력하고 효율적인 군사력을 가지게 됐다. 농경민은 군사력의 강화뿐만 아니라 농경기술의 발전을 가져온다.
그래서 씨족 단위의 농경문화에서 가족 단위로도 충분히 농경이 가능해지면서 사회가 급변한다. 씨족 단위의 힘은 약해지면서 가족 단위의 힘이 강해지고 그것이 잉여 농산물의 증가와 더불어 계급이 분화되면서 지배계급이 국가권력화 되기 시작한 것이다. 즉, 철기문명의 도입은 평등한 씨족사회가 계급을 가진 중앙집권적 국가사회로 바뀌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중앙집권적 국가사회의 모습은 중국에서 춘추전국 이후 진나라와 한나라로의 통일이 이루어지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중앙집권적 국가의 등장 이전 춘추전국은 제자백가(諸子百家)들의 논쟁에 의한 사상적 무장을 통해서 집권 세력의 등장과 지배를 정당화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들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러한 기초가 다져진 후 진나라라는 통일국가가 진시황제에 의해 이루어졌다.
진시황제는 통일과 더불어 북방의 흉노족을 자극하면서 북방 유목민족의 국가들도 통합을 시도한다. 하지만 유목민족의 통합은 생각대로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 한나라 때에 가서야 한고조 유방이 흉노에 포로로 잡혀갔다 탈출하는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후, 한무제 때 흉노족과 한나라의 세력 균형을 맞추게 된다. 그 후 전한 이후 후한 때 이르러서야 흉노족을 분열시키는 데 성공해 북흉노족을 서쪽으로 밀어내고 동쪽으로도 밀어내게 된다.
농경민족을 대표하는 중국과 유목민족을 대표하는 흉노족의 충돌로 인해 동아시아는 여러 민족의 이동이 발생하게 되면서 북방민족의 남하현상은 가속화되기에 이른다. 북방민족의 남하현상은 한반도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특히 한반도의 남쪽에 위치한 고대국가 가야에서 변화가 발생하게 되는데 김수로왕의 등장이 그것이다.
가야의 역사를 담은 ‘가락국기(駕洛國記)’에 의하면 김수로왕은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쓰여 있다. 하지만 ‘삼국사기(三國史記)’ 김유신열전을 보면 김수로는 흉노족 김일제의 후손임을 알 수 있다. 김유신은 그 김수로의 후손이기도 하다. 그러니 가야와 신라의 지배세력 중 일부는 북방 흉노족의 후손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북방·남방민족과 토착세력이 결합해 형성된 가야
김수로의 등장 이후 가야는 9촌의 조직구조에서 6국으로 바뀌면서 6가야가 형성됐다. ‘가락국기’에 의하면 김수로를 포함해 6개의 알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6가야의 군주가 됐다고 한다. 그러니, 북방 외래세력이 9촌장으로 구성된 가야의 토착세력을 몰아내고 지배세력으로 등극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런 김수로가 기존의 토착세력과 정략결혼을 하지 않고 인도에서 배를 타고 김해 앞바다에 나타난 허황옥과 결혼한다. 토착세력이 결혼 동맹을 제안했으나 김수로는 냉정하게 거절하고 인도에서 온 신부를 맞이한다. 결혼 첫날밤 허황옥은 본인을 아유타국의 공주이며 성은 허씨이고 이름은 황옥이며 나이는 16세라고 말한다. 아유타국이 어디인가에 대해서는 인도반도에 있는 아유디야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태국에도 아유타야라는 지방이 있지만 그 지방은 1000년 이후에 만들어진 곳이기에 적절치 않아 보인다. 인도의 아유디야 지방과 김해의 김수로왕 무덤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문양인 쌍어문(두 마리 물고기 문양)을 보면 인도 지방임에 무게를 더 둘 수 있을 것 같다.
구한말 프랑스 선교사 달레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 말과 인도의 드라비다어 사이에는 공통된 어휘가 상당히 발견된다고 하니 흥미롭다. 더욱 흥미를 끄는 것은 중국의 보주(普州)라는 지역에 가면 허황옥의 기록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를 분석해 보면 아유디야의 세력이 권력 경쟁에서 밀려나면서 동쪽으로 피난을 가서 지금 중국의 보주 지역으로 망명하고 그곳에서 중국 성인 허씨를 사용했을 거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허황옥 일행이 양쯔강(揚子江)을 타고 흘러 상하이(上海)를 지나 우리나라 김해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게 역사가들의 추측이다.
거기에 또 하나의 세력이 가야에 도착한다. ‘가락국기’에 의하면 완하국 출신의 석탈해라는 해상집단이 김수로왕이 집권하고 가야를 막 건설할 무렵에 나타났다. 석탈해는 ‘삼국사기’ 등에 의하면 “일본열도 동북 일천리 떨어진 곳에 있는 나라에서 왔다”고 하는데 역사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지금의 러시아 캄차카 반도가 그곳일 것으로 보고 있다.
석탈해 집단은 어부집단으로 생각되기도 하고 대장장이의 후손이라는 고사를 들어 철기집단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여하튼 이렇게 갑자기 등장한 석탈해 집단은 김수로왕과 한판 승부를 겨루게 되는데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 선출을 위한 대선이라고 보아야 할 듯하다. 그러나 석탈해 일행은 김수로왕과의 힘겨루기에서 완패하고 배를 타고 도주하면서 신라 지역으로 가서 기반을 잡는다. 고사에는 김수로와 석탈해의 대결을 둔갑술 대결로 묘사하고 있는데 본질은 국민 앞에서의 공약을 내건 선거유세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결국 가야의 기존 토착세력은 김수로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렇게 가야는 북방의 김수로 세력과 남방의 허황옥 세력이 가야의 토착세력과 연합해 성장한 국가다. 여기에 캄차카 반도에서 온 해상세력이 동거를 원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못해 신라 지역에 자리를 잡게 되면서 향후 가야와 신라의 대결구도로 연결된다.
그렇다면 북방과 남방 세력이 가야를 목적지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가야의 풍부한 철 매장량이 아니었을까 싶다. 철 매장량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철기문명이 꽃피지 않은 상황에서 외부 세력 입장에서는 매우 매력적인 지역으로 보였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외부 선진세력과 토착세력은 서로 융합해 당시 동아시아의 문명국가 가야를 이끌어 내게 된다. 후에 일본이나 신라 모두 가야로부터 문명과 문물을 전수받으면서 성장한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외부 용병에 의한 1·2·3 차 산업에의 전폭적인 지원에 의해서 계속 성장해 갈 수 있다.
외국인 노동력과 결합해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 제품
필자는 2000년 전 가야의 상황을 지금의 우리나라 상황과 비교해 보고 싶어졌다. 우리는 지금 생활 속에서 많은 외국인을 접하며 산다. 길을 가다 보면 조깅하는 외국인을 적지 않게 볼 수 있고 안산과 인천 등의 도시에 가보면 미국의 코리아타운 같은 외국인 타운이 적지 않게 눈에 띈다. 차이라면 2000년 전에는 외부 세력이 선진 문명을 가야에 전달하면서 동아시아 문명국으로의 발전의 견인차가 됐다면 지금은 우리 대한민국이 필요한 1차·2차·3차 산업에서의 모듈을 외래세력에게 의존하면서 성장, 발전하는 데 효율성을 가미하고 있다고 보인다.
농촌에서는 많은 총각들이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등의 여성들과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들 여성들은 농촌의 한 일꾼으로서 1차 농업에의 상당한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모두 떠나버린 농촌에서 새로운 노동력의 공급자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눈을 돌려 경기도 안산이나 화성 등지의 중소기업에 가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등의 국가에서 온 청년 노동자들이 24시간 2차 산업의 생산 활동에 종사하고 있다. 3D 산업이라 해서 많은 우리 청년들이 기피하는 현장은 타국 청년들에 의한 노동력으로 대체되고 있다.
3차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다른 인종은 아니지만 국적은 다른 조선족 동포들이 없다면 식당에서 밥 한 공기 먹기도 편치 않을 듯하다. 식당에서 외국인 노동력이 3차 산업 종사의 전부는 아니다. 범위를 넓혀 본다면 원어민 영어교사도 예외는 아니다. 영어 유치원에서 초·중·고 외국어 교육의 한 역할을 미국과 캐나다 등지의 원어민 교사들이 담당하고 있다. 3차 교육사업도 외부 세력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우리나라의 제품은 세계 시장에서 톱 10 리스트에 오를 수 있는 경쟁력을 가지고 선전할 수 있다. 가야가 외부 선진세력에 의해 성장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외부 용병에 의한 1·2·3 차 산업에의 전폭적인 지원에 의해서 계속 성장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조직이나 개체든 폐쇄적이었을 때 효율성을 잃고 경쟁력을 잃고 도태되고 만다. 지금 우리나라는 외부 여러 기능의 모듈을 잘 활용하면서 개방적인 체제를 계속 효율적으로 운영할 때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 믿는다.
이동훈 삼정투자자문 전무
일러스트 추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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