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장세론과 거품붕괴론간 논쟁


지난해 말 수준에 대비해 주가가 크게 올라가지 않을 것이라는 연초의 신중론과 달리 글로벌 증시와 한국 증시 모두 후끈 달아올랐다. 올 1분기 글로벌 주가는 국가별 평균으로는 12%, 우리가 속한 신흥국 주가는 13% 올라 연율로 따진다면 신흥국 주가는 50%가 넘게 오른 셈이다.

이처럼 글로벌 주가와 한국 주가가 동반 상승한 가장 큰 요인은 돈의 힘으로 이른바 ‘유동성 장세(liquidity market)’가 연출됐기 때문이다. 대부분 제로(0) 금리인 선진국들은 돈을 풀었고, 브릭스(BRICs)를 비롯한 신흥국들은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서너 단계씩 내리는‘빅 스텝(bip step)’금리정책을 추진했다.

유동성 장세가 나타날 때 가장 흔한 질문은 과연 이 장세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최근 들어 신흥국 증시 참여자를 중심으로 이런 의문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돈의 힘만으로는 주가가 계속 상승할 수 없고 어느 단계에서 기대심리가 꺾이면 거품은 반드시 붕괴된다는 정형화된 사실을 여러 차례 경험했기 때문이다.

초기에 돈의 힘에 오른 주가가 추가적으로 상승하기 위해서는 ‘부의 효과(wealth effect)’에 의해 경기와 같은 기초 여건이 개선돼야 가능하다. 이것이 뒤따르지 않으면 거품으로 조만간 주가는 하락한다. 따라서 월가와 국내 증시를 중심으로 올 2분기 이후 증시 앞날과 관련해 ‘거품붕괴론’과 ‘실적장세론’ 간의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자산 소득은 임금 소득보다 소비 성향이 높은 불로소득 성격이 짙다. 일반적으로 부의 효과가 크게 나타나려면 가계의 자금 사정(cash flow)이 중요하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디레버리지(deleverage·부채 축소, 저축 증대)에 우선 순위를 둔다면 부의 효과가 적게 나타나 경기를 끌어올리는 힘이 약해지는 것이 종전의 경험이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 가계들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디레버리지에 치중해 왔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 가계들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디레버리지에 치중해 왔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 가계들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디레버리지에 치중해 왔다. 이것이 금융과 실물 간의 연계성이 떨어지는 금리 인하, 양적완화(QE)를 통한 유동성 공급 정책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최근에는 디레버리지가 마무리되면서 한때 8%에 육박하던 저축률이 위기 이전 수준인 4%대로 복귀하고 있다.

월가와 예측기관을 중심으로 미국 경기의 앞날을 보는 시각이 변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해 9월 이후 경기 논쟁은 회복(소프트 패치 혹은 라지 패치)이냐, 침체(더블 딥 혹은 트리플 딥)냐에 초점이 맞춰졌었다. 하지만 올 4월 이후 벌어지고 있는 경기 논쟁은 회복을 기정사실화하고 그 속도에 있어 빠른 ‘V’ 자형과 늦은 ‘U’ 자형, 그 중간 수준의 ‘나이키 커브론’ 간의 입장차다.

유럽 경제는 위기발생국 국민을 중심으로 디레버리지가 당분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 위기가 최악의 상황은 지나간다 하더라도 실물경기 침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올 2월 디플레이션 대책 이후 빨라진 엔화 약세가 언제든지 강세로 돌아설 수 있어 일본 국민은 디레버리지 함정에 빠져 쉽게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신흥국 자금 사정은 여전히 괜찮은 편이다. 지난 2년간 추진했던 금리 인상을 빅 스텝 금리 인하로 정상 수준으로만 돌려놓는다면 자산 가격이 오르고 부의 효과로 경기는 최소한 연착륙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이미 가계부채가 900조 원을 넘어선 우리는 자산 가격이 오르더라도 부의 효과는 종전보다 적게 나타날 수 있어 예외적이다.

국가별로 편차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번 유동성 장세가 부의 효과로 연결돼 경기 회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하지만 유럽, 일본 등의 변수가 있는 만큼 그 정도는 약해 유동성 장세에 대해 거품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럴 때 투자자들이 갖춰야 할 덕목 중 하나가 좋은 참고 지표를 갖는 일이다.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경기진단지표와 예측 방법이 많이 개발됐다. 이미 오래전부터 개발, 발표돼 왔으나 뒤늦게 각광을 받는 지표와 방법도 많다. 특히 국제협력개발기구(OE CD)가 매월 발표하는 복합선행지수(CLI·Composite Leading Indi-cators)는 이번 위기에서도 경기 저점이 2009년 2분기였던 점을 정확히 예고했다. CLI는 성장 순환에서 전환점에 대한 조기 신호를 제공토록 설계됐다.

보통 경기 순환(business cycle)에서는 국내총생산(GDP) 통계를 활용하나 CLI는 GDP를 선행하는 산업생산지수(IIP)를 활용하는 것이 다르다. 따라서 CLI는 경기 순환을 선행하는 성장 순환에 관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유동성 장세 이후 증시 앞날과 관련해 경기가 받쳐 주느냐 아니냐에 따라 실적장세론과 거품붕괴론 간의 논쟁이 최대 관심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럴 때 투자자들이 경기를 판단하는 방법으로 예의 주시해야 할 지수가 CLI의 흐름이다. 종전보다 빠르지는 않지만 이 지수는 이미 지난해 12월 이후 고개를 들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월가와 국내 증시를 중심으로 올 2분기 이후 증시 앞날과 관련해 ‘거품붕괴론’과 ‘실적장세론’ 간의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월가와 국내 증시를 중심으로 올 2분기 이후 증시 앞날과 관련해 ‘거품붕괴론’과 ‘실적장세론’ 간의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우리 경제는 올해 성장률은 지난해에 비해 낮아질 것으로 보이나 경기 순환 사이클로는 올 1분기에 저점이 형성될 것이라는 바닥론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예측기관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은 평균 3.7% 내외로 둔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성장률을 놓고 한국은행 등 정책기관들은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3%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점을 감안하면 3.7% 내외의 성장률로 일부에서 경착륙을 우려하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는 시각이다. 최근에는 경기선행지수가 고개를 드는 상황에서 백화점 매출액, 자동차 판매대수 등이 증가세로 돌아서고 있다.

올해 성장률을 놓고 증시를 중심으로 벌여 왔던 낙관론과 비관론 간의 경기 논쟁이 모두 연착륙 달성에 최종 목표를 두고 있다면 모두 일리가 있다. 특정국의 경제 발전 단계와 위기 극복 정도가 높아질수록 거시경제 면에서 보면 경제 성장과 함께 물가와 고용, 대외 수지 등과 같은 다른 정책 목표 간의 균형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당초 예상보다 증시가 좋은 상황에서 1분기가 끝나자 월가에서는 2분기 이후 증시에 복병이 될 수 있는 ‘꼬리 위험(tail risk)’을 찾기에 분주하다. 꼬리 위험이란 정규 분포의 양쪽 끝 부문으로, 경영과 증시 입장에서는 발생 가능성이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경기와 증시를 크게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변수를 말한다.

올 2분기 이후 주가 흐름을 꺾어 놓을 수 있는 꼬리 위험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금리가 인상 국면으로 전환돼 미국 경기가 더블 딥에 빠지는 경우다. 최근 미국 증시가 비교적 견조한 흐름을 보이는 것도 지난해 분기별 성장률이 꾸준히 높아짐에 따라 더블 딥에 대한 우려가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 2월 디플레이션 대책 이후 빨라진 엔화 약세가 언제든지 강세로 돌아설 수 있어 일본 국민은 디레버리지 함정에 빠져 쉽게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비록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은 높게 나왔지만 고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고용 문제를 해결하려면 성장률이 지속적으로 잠재 수준인 3%를 웃돌아야 하고 그 수준이 2분기 이상 지속돼야 하기 때문에 그 이전에 금리를 올릴 경우 1930년대 ‘에클스 실수’처럼 언제든지 더블 딥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둘째, 유럽 위기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정상 간에 합의된 총론을 실무급 협상을 통해 각론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도출되는 경우다. 지원 의사를 밝힌 중국, 러시아 등 브릭스 국가들이 선진국과의 대타협에 실패해 실행에 옮겨지지 않는 경우도 여기에 해당된다.

위기 극복 3단계 이론으로 볼 때 돈이 부족한 유동성 문제를 극복해야 유럽통합이 갖고 있는 내부적인 시스템을 해결할 수 있고 이를 해결하면 유럽 경기가 회복되고 통합도 공고히 될 수 있다. 우선 순위는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하는 일로 각론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회원국 간 이견을 보이거나 브릭스 국가들이 지원에 나서지 않는다면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2010년 이후 중국은 외연적 성장 경로에서 내연적 성장 경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심한 성장통을 겪고 있다.



셋째, 중국이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에 빠지는 경우로, 특히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 커다란 타격이 예상된다. 2010년 이후 중국은 외연적 성장 경로에서 내연적 성장 경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심한 성장통을 겪고 있다. 외형상 선입견과 달리 중국은 정경분리(政經分離)의 원칙이 지켜지고 있고 인민에 대한 통제 시스템이 잘 작동돼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넷째,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글로벌 불균형으로 환율 혹은 무역 분쟁이 심해지는 경우다. 특정국의 평가절하책은 대표적인 근립궁핍화 정책으로, 미국 등 선진국들이 일제히 자국 통화 약세를 추진한다면 중국 등 신흥국들은 맞대응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 밖에 올해 유난히 많이 예정돼 있는 선거와 빈곤층(BOP) 반란, 세계 경제의 무정부 혼란 등도 언제든지 글로벌 증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꼬리 위험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이미 국가 채무가 위험수위를 넘어선 상황에서 선거로 재정 지출이 더해진다면 재정건전화라는 각국의 최우선 목표 달성은 어렵게 된다.

이 중에서 미국의 고용 문제를 둘러싼 정책 변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미국 경제 회복의 지속 가능성과 3차 양적완화 철회, 출구 전략 추진,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 평가, 한국 등 글로벌 증시와 통화 정책 기조 등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다.

미국의 고용 사정을 보면 지난해 성장률은 1.7%에 그쳤으나 실업률은 9.4%에서 8.5%로 크게 떨어졌다. 뉴욕 Fed가 분석한 자료이긴 하지만 2014년까지 성장률은 2%대의 완만한 수준에 그치겠지만 실업률은 내년 중반에는 6%대, 2014년 말까지는 5%대로 개선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만약 이 같은 현상이 일시적이 아니라 추세적이라면 성장률과 실업률 간의 전통적인 두 가지 정형화된 사실이 깨지는 획기적인 변화다. 하나는 실업률을 1%포인트 개선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3% 성장해야 한다는 오쿤의 법칙(okun’s rule)이 흐트러진다. 지난해의 경우 실업률은 거의 1%포인트 개선됐으나 성장률은 1%대 후반에 그쳤다.

다른 하나는 성장이 되더라도 고용이 뒤따르지 않는 ‘고용 창출 없는 경기 회복(jobless recovery)’이라는 선입견이 무너지는 셈이다. 따라서 지난해 이후 위기 극복 과정에서 나타나는 실업률 급락이 일시적이냐 추세적이냐를 놓고 논란이 심하다. 추세적이라면 금융위기 이후 추진해 왔던 통화정책 기조가 전부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업률 급락이 일시적이냐 추세적이냐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먼저 월가를 중심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비이커 모형’을 보자. 고용 사정이 개선돼 물이 비이커에 반이 찾지만 동일한 현상에 대해 벌써 반이 차 앞으로 닥칠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반면 이제 물이 반밖에 차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완만한 경기 회복 속에 실업률 급락 현상이 일시적이냐, 추세적이냐는 Fed의 통화정책 방향과 관련해서도 아주 중요하다. 추세적이라면 일단 3차 양적완화 정책은 물 건너간다. 더 나아가 금리 인상 등을 통해 조기에 출구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일시적이라면 지금까지 추진해 왔던 경기 부양 기조를 계속 추진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우리 경제는 올해 성장률은 지난해에 비해 낮아질 것으로 보이나 경기 순환 사이클로는 올 1분기에 저점이 형성될 것이라는 바닥론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우리 경제는 올해 성장률은 지난해에 비해 낮아질 것으로 보이나 경기 순환 사이클로는 올 1분기에 저점이 형성될 것이라는 바닥론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실업률 급락이 일시적인데 추세적으로 착각해 성급하게 출구 전략을 추진하는 경우다. 일시적이라면 지금의 경기 회복과 고용 시장 개선이‘그린 슛(green shoot)’ 단계라는 의미다. 위기 극복의 궁극적인 목적은 성장률과 실업률을 각각 잠재성장률, 자연실업률로 끌어 올리는 골든 골(golden goal)을 달성하는 일이다.

골든 골을 달성하기 이전에 실업률 급락과 같은 일시적인 현상을 착각해 금리 인상 등과 같은 출구 전략을 성급하게 추진하다간 어렵게 마련한 그린 슛이 노랗게 질려 시든 잡초가 되고 다우존스지수도 일시에 1000포인트 이상 빠질 가능성이 높다. 대공황 실수 혹은 1930년대 당시 Fed 의장의 이름을 딴 에클스 실수(Eccles’s failure)다.

대공황에 관한 한 최다 논문을 갖고 있는 버냉키 의장은 이 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고 주장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비상시에는 금리를 대폭 내리고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유동성을 워낙 많이 공급해 놓아 최근처럼 경기가 완전히 회복되기 이전에 인플레 기대심리, 실업률 급락 등과 같은 착시현상이 언제든지 나타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앞으로 추진될 출구 전략도 그 성격과 범위가 명확해야 한다고 버냉키 의장이 역설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골든 골을 앞당기기 위해 본대가 튼튼하게 잘 자랄 수 있도록 착시현상과 같은 곁가지를 자르는 선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착시현상을 착각해 국민경제에 가장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금리 인상 등과 같은 강력한 긴축정책을 추진하다 본대를 잘라 돌이킬 수 없는 대공황에 빠지게 한 것이 바로 에클스의 실수다.

이미 버냉키 의장은 이런 정책들을 추진해 오고 있다. 지난해 9월에 발표했던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나 최근 들어 강조하고 있는 ‘인플레 없는 양적완화’ 정책이 그것이다. 이 정책들은 전체적인 유동성은 늘리지 않는 상황에서 설비 투자에 직결되는 장기 금리를 낮춰 금융과 실물 간의 연계를 강화해 경기 회복과 고용 창출을 늘려가는 것이 주목적이다. 버냉키 의장에 대한 신뢰가 계속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