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돼 아이를 키우면서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순간은 언제일까. 내 아이와 함께 한 일상이 항상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내 뜻대로만 자라주지 않는 아이들이 원망스럽고 미워질 때도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부모라면 누구나, 아이들이 더없이 사랑스러운 순간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런 일상의 순간을 담은 그림, 그래서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누구에게나 한번쯤 보여주고 싶은 그림들을 소개해본다.

메리 카셋(Mary Cassatt), <양말>(The Stocking), 1891년, 리스본 굴벵키앙 미술관 소장
[강지연의 그림읽기] 아기를 기다리며
부드러운 파스텔로 슥삭슥삭 그린 사랑스러운 그림 속에 엄마와 아이가 함께 있다. 엄마는 귀여운 여자 아이를 무릎에 앉혀 놓고 양말을 신겨주고 있다. 곱슬곱슬한 머리와 발그레한 볼이 사랑스러운 여자 아이는 무언가를 보고 한쪽 손을 쭉 뻗으며 그쪽을 바라보고 있다. 아이의 포동포동한 발에 하얀 양말을 신겨주며 양말을 신지 않으려 꼼지락대는 아이의 얼굴에 엄마는 살짝 입술을 대어본다. 아이들에게서는 늘 좋은 냄새가 나게 마련이다. 향긋하고 부드러운 머리 냄새, 살 냄새…. 아이를 키우며 수도 없이 맡아보았을 그 냄새가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하다.

영화 <맘마미아>에서 홀로 딸을 키워 시집보내는 주인공 도나가 딸인 소피에게 불러주던 아바(ABBA)의 노래 ‘Slipping through my fingers’가 있었다. 아이가 어릴 때, 책가방을 매주며 학교에 가는 딸을 배웅하던 엄마의 마음, 어쩐지 이제 다 커버린 것처럼 느껴져 문득 슬퍼지던 순간을 표현한 노랫말이다.


Schoolbag in hand, she leaves home early in the morning.
(아침 일찍 딸은 책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네.)

Waving goodbye with an absent-minded smile,
(무심히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하고,)

I watch her go with a surge of that well-known sadness,
(그 애의 떠나는 모습을 보니 왠지 슬픔이 밀려와,)

and I have to sit down for a while.
(그 자리에 한참을 앉아있어야 하네.)

The feeling that I’m loosing her forever,
(왠지 너를 잃은 것만 같은 느낌,)

and without really entering her world,
(너만의 세계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I’m glad whenever I can share her laughter.
(너의 웃음을 나눌 때마다 난 기뻐.)

That funny little girl!
(귀엽고 사랑스러운 내 아가야!)

Slipping through my fingers all the time.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네.)

I try to capture every minute the feeling in it,
(그런 기분이 들면 매 순간을 붙잡으려 하지만,)

Slipping through my fingers all the time.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네.)

Do I really see what’s in her mind,
(난 정말 그 애 마음속에 뭐가 있는지 잘 알고,)

Each time I think I’m close to knowing,
(거의 다 알았다고 생각하지만,)

She keeps on growing,
(그 애는 계속 자라나고,)

Slipping through my fingers all the time.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네.)


아이는 정말 금세 자라버리고 노래 가사대로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우리들의 곁을 떠난다. 고단한 육아에 지쳐있을지라도 그런 행복한 시간은 아이가 자라서 지나고 나면 다시 오지 않는 법이니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을, 왜 그때는 몰랐을까.

화가인 메리 카셋은 미국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여성 화가다. 그녀의 그림은 여성 특유의 섬세하고도 감성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부드러운 일상의 표현이 대부분이다. 그림 속에는 유난히 엄마와 아이가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고 가정에서의 따뜻한 장면들이 주로 배경이 됐다. 카셋은 프랑스 인상주의 운동에 참가한 유일한 미국인이자 여성이었으나 살아 있을 당시에는 화가로서 많은 인정을 받지 못했으며 실명한 상태로 세상을 떠났다.




모리스 드니(Maurice Denis), <왕관>(The crown), 1901년, 뮌헨 노이에 피나코텍 소장
[강지연의 그림읽기] 아기를 기다리며
저녁 해가 질 무렵 창가에 선 엄마와 아이의 모습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이 그림에는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다. 발뒤꿈치를 들고 엄마에게 정원에서 꺾어온 꽃으로 직접 화관을 만들어 자랑스럽게 씌워주는 아이, 그리고 그런 아이를 위해 허리를 굽혀주는 엄마. 세상 어떤 풍경이 이보다 아름다울 수 있으랴.

금으로 된 왕관이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하다지만 그런 왕관도 엄마를 사랑하는 아이의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직접 만든 꽃관에는 비할 수 없다. 아장아장 걷던 아이가 자라나 언젠가는 엄마에게 삐뚤빼뚤한 글씨로 사랑한다고 쓴 편지나, 어버이날에 색종이를 잘라가며 만든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날도 오게 된다. 아이의 그런 작은 선물을 받는 날, 엄마는 더없이 행복하다. 화관을 받고 있는 그림 속 여인의 표정은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화가인 모리스 드니는 프랑스 출신으로 초기에는 세잔이나 고갱 등과 같이 인상파 화가들의 영향을 받아 신선한 색채 감각으로 일상의 풍경들을 담아내었다.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상징주의를 중시하는 나비파(Les Nabis)를 창시하기도 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종교화로 방향을 돌려 말년에는 근대 그리스도교의 종교화가로 구분되기도 했다. 다재다능했던 그였지만 그 역시 초기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빠지지 않고 즐겨 그렸던 주제가 바로 엄마와 아이가 함께 있는 장면이었다. 사실 모성(母性)이야말로 인상주의 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일상적 감성인 동시에 종교적 거룩함과 신성함의 성격도 함께 가지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주제가 어디 있겠는가.

모든 것이 새롭게 소생하는 봄, 유난히 아이들 소리가 반갑다. 아이를 낳고 기르기가 힘든 사회인 탓에 출산율은 점점 낮아진다지만, 그래도 집안에 아이 한 명이 어른 열 몫의 웃음과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가. 아이가 없으면 웃을 일도 없다는 옛말이 맞다. 따뜻한 봄날, 새로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는 부모들이 이 그림들을 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이를 키워나가며 그림 속 아름다운 순간들을 때때로 떠올릴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모성(母性)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즐겨 그렸던 일상적 감성인 동시에 종교적 거룩함과 신성함의 성격도 함께 지닌 주제였다.


강지연 _ 교사. <명화 속 비밀이야기>, <명화 읽어주는 엄마> 저자. ‘귀차니스트의 삶 (http://blog.naver.com/oilfree07)’ 운영. oilfree0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