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노 공식 수입업체 덕화스포츠 김창범 사장

김창범 덕화스포츠 사장은 부친 김성호 회장에 이어 2대째 덕화스포츠를 이끌고 있다. 그가 사장으로 취임한 2002년 이후 직원과 매출은 10배 이상 늘었다. 김 사장은 이 같은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인화와 소통’이라고 말한다. 골프·리조트 기업 에머슨퍼시픽의 아난티클럽서울(아난티CC)에서 김 사장과 라운딩을 하며 그의 경영관을 들었다.
[Play with CEO] “인화와 소통에 관한 한 우리가 제일 잘나가”
라운딩을 약속한 3월 중순은 생각보다 바람이 찼다. 지난 겨울 두 달 반 동안 휴식을 가진 아난티CC는 숲속에 자리한 만큼 가끔씩 부는 바람이 매서웠다. 하지만 적지 않은 골퍼들이 라운딩을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클럽하우스에 들어서자 먼저 도착한 그가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실외 수영장 옆에서 사진 촬영을 하던 그는 클럽하우스 직원에게 “수영장은 실제 운용하는 거냐”며 호기심을 표했다. “그렇다”고 답한 담당자는 “가족 단위 골퍼들에게 인기가 좋다”고 부연했다. 사진 촬영을 끝내고 점심을 먹기 위해 레스토랑에 들어서면서 그는 “지난해 지인의 초대로 라운딩을 한 적이 있다”며 “그때도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골프용품에서 축구·야구 등 총 12종목 제품 수입·판매

점심을 먹으며 근황을 묻자 3월에는 늘 바쁘다고 했다. 덕화스포츠는 골프를 비롯해 축구, 야구 등 총 12종목의 미즈노 스포츠용품을 수입, 판매한다. 그러다 보니 축구나 야구 경기 정규 시즌이 시작되는 3월이면 개막전 등 다양한 행사로 눈코 뜰 새가 없다. 얼마 전에는 강원FC 개막 경기 시축을 위해 강원도에 다녀왔고, 이번 주에는 프로야구 시범 경기에서 시구를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3월 한 달이 후딱 지나가버린다. 적지 않은 세월을 그렇게 보냈다. 스포츠업계에 몸담다 보니 운동도 안 해본 종목이 없다. 골프 구력도 꽤 됐다.

“친구 사귈 때 깊게 사귀는 사람이 있고, 넓게 사귀는 사람이 있잖아요. 저는 깊게 사귀는 편에 가까운 것 같아요. 골프처럼요. 아버지가 1987년 미즈노 골프를 시작했으니까 벌써 25년을 해왔네요. 그때는 골프용품만 했는데, 제가 사장이 된 후에는 12종목의 제품을 취급하고 있으니까 미즈노의 거의 전 품목을 취급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태권도복까지 있습니다.”

미즈노표 태권도복? 이상한 조합 같지만 미즈노는 오래전부터 유도복으로 유명했다. 유도복을 만들던 그 기술로 태권도복 시장에 진출한 것. 대부분의 미즈노 제품이 그렇듯, 태권도복 또한 최상의 제품을 만든다. 흠이라면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다. 그러다 보니 일반인보다 선수들 중심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꽤 좋다.

화제가 다시 회사 경영으로 옮겨질 즈음, 직원이 티오프 시간이 됐다고 전했다. 자작나무 1번 홀, 티그라운드에 올라서자 아난티CC가 자랑하는 풍광이 시원스럽게 들어왔다. 티샷을 끝낸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경영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산전, 수전, 공중전을 다 겪으며 지금까지 왔다는 김창범 사장. 김 사장은 앞으로도 배우고 일하면서 직원들과 즐겁게 사는 게 목표라고 했다.
산전, 수전, 공중전을 다 겪으며 지금까지 왔다는 김창범 사장. 김 사장은 앞으로도 배우고 일하면서 직원들과 즐겁게 사는 게 목표라고 했다.
한 지붕 12가족의 특별한 이야기

덕화스포츠라는 사명은 누가 지었습니까.

“아버지께서 지으셨습니다. 우리 회사 덕목이 창의, 책임, 화목인데, 그런 뜻을 담아서 빛날 덕(德)에 화목할 화(和) 자를 쓰셨습니다. 요즘 소통이 사회적 화두잖아요. 저는 아래서부터 소통이 잘 되면 회사가 잘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직원들은 제 생각을 잘 아는 듯해요.”

회사 건물에 같이 사는 직원이 있다고 하던데요.

“네, 12가구가 같이 삽니다. 가구에 따라 방이 2개인 곳도 있고, 3개인 곳도 있어요. 단, 자기 집을 사면 나가야 합니다.”

사장과 같은 건물에 살면 불편할 듯도 한데요. 꺼리지는 않던가요.

“처음에는 관사란 생각이 없잖아 있었어요. 하지만 같이 살아보면 그게 아닌 걸 알게 되죠. 한 건물에 산다고 해도 저와는 1년에 눈 치울 때나 몇 번 볼 정도로 독립적으로 사니까요. 하도 그러니까 직원들이 오히려 ‘같이 살면서 사장이 술 한 잔 안 산다’고 불평을 해요.”

정말 술 한 잔 안 사셨습니까.

“가끔 파티도 하고 그러죠. 명절에는 옥상에서 바비큐 파티를 해요. 술하고 밑반찬은 우리 집에서 준비하고, 각자 집에서 음식 한 가지씩 장만해 와서요.”

언제부터 그런 구상을 하셨습니까.

“어릴 때 꿈 중에 하나가 일터와 집이 같이 있는 건물을 짓는 것이었어요. 그걸 해본 거죠. 다른 곳에 사는 직원들도 아침에 다 모여서 검도를 합니다. 마케팅을 담당하는 이수범 차장이 검도 3단인데, 이 친구 때문에 검도를 시작했어요. 직원들과 함께 운동하면서 땀 흘리고 같이 밥 먹는 것, 저는 그게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축구도 하고 야구도 하시죠.

“저희 회사에 축구팀도 있고 야구팀도 있습니다. 제가 구단주로 돼있는데, 운동할 때 안 불러요. 회식할 때, 스폰서 필요할 때만 불러요.(웃음)”

내부 결속력은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겠습니다.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이후 환율이 크게 올라 힘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직원들 모아놓고 ‘아무리 힘들어도 사람은 안 자른다’고 공언했습니다. 단 이익이 줄면 다 같이 연봉을 조금씩 줄이자고요. 큰 동요 없이 그 시기를 견뎠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Play with CEO] “인화와 소통에 관한 한 우리가 제일 잘나가”
대학원만 3곳을 다닌 배경

이야기가 무르익을 무렵, 코스는 전반 6번째 홀에 이르렀다. 6번 홀에서 그는 공 2개를 잃어버렸다. “자장면 곱빼기 두 그릇 날아갔다”고 말하면서도 그는 6번 홀이 재미있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사업을 시작하던 초기, 해묵은 이야기를 꺼냈다.



대학 졸업 후에 대우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셨죠.

“네. 10년 가까이 중동이나 북아프리카에 대우차에서 만든 르망 등을 팔았습니다. 그러다 김우중 회장님 수행비서로 발탁이 됐어요.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이제 그만 회사로 들어오라고 하시더군요. 당신께서 눈도 침침해지고 기억력도 떨어지신다면서요. 딱 1년만 수행비서로 근무해보면 안 되겠냐고 말씀드렸는데, 그냥 들어오라고 하시더군요.”

덕화스포츠에서 처음 맡은 직책이 무엇이었습니까.

“이사로 입사했습니다. 그때 직원이 4명이었는데, 이사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웃음) 우리 회사에 ‘중역까지 뒷주머니에 빨간 장갑 꽂고 다닌다’는 말이 있어요. 중역이라도 짐 나르고 허드렛일 다 합니다. 저도 그랬고요.”

지금은 직원이 몇 명이나 됩니까.

“한 50명 됩니다. 매출도 그 정도로 늘었고요.”

대우도 그렇고 덕화스포츠도 모두 무역입니다. 환위험은 어떻게 관리하십니까.

“무역을 하는 사람들에게 환위험은 일종의 숙제입니다. 수입업체들은 외환을 쓰는 규모가 크니까요. 은행에서도 찾아와서 다양한 환 헤지 수단을 제시하는데, 쉬운 문제는 아닌 듯해요. ‘여자 마음과 환율은 귀신도 모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그래서 저는 자체적으로 관리를 합니다. 엔화가 쌀 때 여유 자금으로 사두는 거죠. 엔화가 비싸지면 그걸로 결제를 합니다. 그래야 2달 정도 버팁니다. 그것만 버텨도 저희로선 큰 도움이 됩니다.”

미즈노 본사와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왔는데, 그것도 도움이 되지 않나요.

“물론입니다. 본사에서도 여러 모로 배려해 줍니다. 같은 동양계 회사고 30년 가까이 파트너 관계를 이어오다 보니까 도움을 많이 줍니다. 서브프라임 사태 때도 결제 연장 등 적잖은 도움을 줬고요.”

환율 말고도 처음 회사에 와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산전, 수전, 공중전 다 겪으며 여기까지 왔다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대학에서 정치외교를 전공했는데 사업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무역학과, 경제학과, 경영학과 대학원을 다 다녔어요. 덕화에 올 때만 해도 영어밖에 못해서 4년 동안 아침마다 연세어학당에서 일본어를 배웠습니다.”

가방 끈은 참 기신 듯합니다.(웃음)

“그게 다가 아닙니다. 세금계산서가 뭔지, 당좌계좌가 뭔지 모르는 게 너무 많았어요. 은행 직원들 데려다 술 사주면서 배웠습니다. 나중에는 하도 따라다니니까 신입행원 매뉴얼북을 그냥 주더군요.”

사업은 잘 됐나 봅니다. 골프 인구가 성장한 것도 도움이 됐겠네요.

“제 기억으로는 1995, 96년이 골프 숍들에겐 호시절이었습니다. 이윤도 많이 남았지만, 판매도 상대적으로 쉬웠어요. 숍 사장이 권하면 사던 시절이었거든요. 지금은 골퍼들이 숍에 오기 전에 자기한테 맞는 게 어떤 건지 구체적인 제품까지 정해서 옵니다. 가격도 조사하고요.”

미즈노에는 아무래도 아이언을 찾는 손님이 많겠습니다.(질문을 받은 직후 그는 캐디에게 어떤 아이언이 가장 많으냐고 물었고, 캐디는 미즈노가 가장 많이 보인다고 답했다.)

“이 정도가 되니까 그나마 밥 먹고 사는 거죠. 아이언은 특히 품질에 대한 미즈노의 고집이 보이는 제품입니다. 미즈노 아이언은 비싼 재료를 쓰고 단조로 만들다 보니 골퍼들이 손맛이 좋다고 합니다. 전체가 일체라는 점도 손맛에 일조를 하고요.”

전체 매출에서 골프용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겠습니다.

“아직까지는 그렇습니다. 지난해를 보면 전체의 55% 정도가 골프에서 나왔어요. 올해부터는 골프와 다른 스포츠용품이 50 대 50은 될 겁니다.”



이런저런 질문이 오가는 사이 어느새 라운딩도 끝이 났다. 라운딩 내내 그는 스코어카드에 자신의 기록을 꼼꼼히 적었는데, 젊어서부터의 습관이라고 했다. 그는 메모하지 않으면 그날의 플레이를 기억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국내외 여러 골프장을 경험한 그는 아난티CC가 무척 흥미롭다고 평했다. 치기는 편해 보이는데 드라이버 샷이 떨어지는 곳에 가보면 벙커가 있고, 뭔가 노리고 치면 그곳에 해저드가 있는 곳, 그런 골프장이 묘미가 있다는 것이다.

“페어웨이가 비교적 좁아서 챌린지를 좋아하는 골퍼들이 한 번 도전해볼 만한 곳이네요. 후반 7번 홀인가요, 90도로 꺾어지는 홀도 그렇고. 사업도 결국은 도전이거든요. 골프도 사업도 얼마나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열과 성을 다 하느냐에 성패가 달린 듯합니다.”

그는 가업을 이어받아 모르는 게 있으면 배워가면서 지금까지 왔다. 하지만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 난 사람, 든 사람, 된 사람이 되고 싶지만 날이 갈수록 모르는 게 많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고 일하면서 직원들하고 계속 재밌게 사는 것, 그는 그게 목표라고 했다.
[Play with CEO] “인화와 소통에 관한 한 우리가 제일 잘나가”
His favorite
진일보한 2012년 미즈노 신제품 총 집결된 김창범 사장의 캐디백

김창범 사장은 매년 새 제품이 나오면 시험 삼아 쳐본다. 지금 쓰고 있는 제품 모두가 2012년 새롭게 출시된 제품이다.

최근 출시한 MP-650 드라이버는 450cc의 헤드에 고탄도와 낮은 스핀율을 절묘하게 융합시킨 고성능 클럽이다. 미국 프로골프협회(PGA) 유러피언 투어를 위해 생산되는 제작 라인에서 동일하게 만들어지는 것은 물론 6-4 Ti 단조 페이스 채용으로 투어 프로들이 선호하는 전통적인 디자인과 타구감을 실현했다.

아이언은 미즈노 JPX 800 AD 포지드를 쓴다. JPX 800 AD 포지드는 세계 단조 아이언의 기술개발을 리드해온 미즈노의 기술력이 집결된 연철 단조 아이언이다. 이 제품의 가장 큰 특징은 미즈노 아이언의 가장 큰 자랑인 청량한 타구음이 만들어낸 부드러운 타구감으로 골퍼에게 짜릿한 손맛을 구사해 주고, 더 먼 비거리와 정확한 방향성까지 갖추었다는 점이다.


2012년 하이브리드인 미즈노 MP-650 하이브리드는 스피드는 물론 안정적인 비거리까지 겸비한 제품이다. 이 제품은 1770 머레이징 스틸 페이스를 채택해 강한 볼 스피드를 이뤄낼 수 있고, 안정적인 비거리까지도 가능한 하이브리드 클럽이다. 저중심 설계에 따른 쉬운 런치와 헤드의 중립성으로 중·상급자 골퍼들이 쉽고 편하게 강력하면서도 안정적인 비거리가 가능하다.

우드는 MP 메탈 Ti 우드로 투어 프로들이 선호하는 전통적인 디자인과 타구감을 실현했다. 티탄 합금과 고반발 스테인리스를 페이스부에 채용한 것은 물론 부분 두께 설계로 고반발력을 향상시켜 비거리가 대폭적으로 늘어나도록 한 것이 강점이다.


글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