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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봉에게 디자인은 세상과 소통하고 호흡하는 일이다. 31년째 그 힘겨운 일을 해내며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서 성장했다. 세계를 향해 질주하는 디자이너 이상봉이 그의 이미지와 닮은 이탈리아 자동차 브랜드 마세라티와 마주했다. 디자이너 이상봉과의 만남을 앞둔 전날, 저녁을 먹기 위해 들른 식당에서 방송을 통해 이상봉을 만날 수 있었다. 그가 남미를 여행한 기록이 전파를 타고 나온 것. 방송사 파업으로 재방영된 프로그램을 보며, 약 1년 전 그와의 만남이 떠올랐다.1년 여 전 작가 임옥상의 작업실에서 취재를 핑계로 그를 만났다. 당시 첫 만남을 떠올리면 절제된 단아함, 겸손, 젊음 같은 단어들이 연상된다. 한글 작업을 하는 등 작가 임옥상과 친분이 두터운 그는 당시 남미 여행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1년이라는 시간을 사이에 두고 그 프로그램을 통해 그와 이어진 듯한 묘한 느낌이 들었다.
서울 역삼동 스튜디오를 찾았을 때 그에게 남미 여행이 어땠는지부터 묻고 싶었다. 인사를 건네고 차를 한 잔 마시는 사이, 문화재청 사람들이 들어와 합석하게 됐다. 그들의 방문 요지는 문화재청에서 하는 전통공예 디자인 강좌에 그를 강사로 모시고 싶다는 것이었다. 일정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고 양해를 구한 그는 그들에게 ‘전통을 현대와 접목시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현재 전통을 보전하는 작업이 기대에 못 미치는 원인’ 등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친절하게 전했다. 이어 그는 장인과 디자이너, 장인과 예술가를 접목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전통을 현대와 접목시키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는 조언도 남겼다. 긴 여운을 남긴 남미 여행
20여 분간의 미팅을 마친 후 방문객을 배웅하고 돌아온 그에게 남미 여행에 대한 소회를 청하자, “남미는 천국”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가 여행한 브라질 상파울루는 기후 조건이 좋고 국민이 대부분 낙천적인 데다, 문화적 이질감이 덜해 전 세계 많은 여행객들의 기착지가 됐다.
그는 남미의 가장 큰 매력을 사람에게서 찾는다. 그가 경험한 남미는 “편안한 사람들의 웃음이 떠나지 않는 곳”이다. 남미인들은 특유의 낙천성이 있다. 그 덕에 그들에게는 몸에서 우러나오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남미, 그중에서도 다문화가 공존하는 브라질 상파울루는 유럽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곳이 됐다. 상파울루에 정착한 사람들 중에는 패션계 인사들도 적지 않은데, 지난 여행에서 만난 친구도 그중 한 사람이다.
“여행을 앞두고 페이스북으로 친구 신청이 왔어요. 이전 프랑스에서 쇼를 할 때 홍보회사 사장이었어요. 그 사이 프랑스 생활을 정리하고 상파울루에 정착을 했더군요.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사실 여행과 레저는 인간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책을 통해 느끼는 것과 현장에서 몸으로 체험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지난 번 남미 여행은 여행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줬다. 그 때문일까. 그는 다음 달에는 페루를 방문한다고 했다. 패션과 관련된 출장이지만 여행도 할 생각이다.
그에게 여행은 휴식이자 다른 나라 문화를 보고 느끼는 디자인 작업의 연속이다. 그가 다른 나라 문화에 유달리 관심이 많은 이유는 ‘남의 문화를 알아야 우리 문화를 외국에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패션쇼를 하면 ‘한글과 한자’, 러시아에서는 ‘한글과 러시아 문자’를 결합하면 현지인들이 받아들이기에 훨씬 수월하다. 그런 의도로 최근 디자인한 코이카 유니폼은 한글 기본에 각국 국기의 색깔을 사용했다. 디자인은 동시대인들과의 소통
그에게 디자인은 결국은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들과의 소통이다. 얼마 전 프랑스 패션쇼에서 선보인 돌담도 시작은 소통이었다. 사람들은 돌담을 통해 길로 나서고, 그 길은 다시 세상으로 이어진다. 그는 제주 올레길에서 만난 돌담을 통해 소통을 생각했다. 그 길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통로이자 그의 디자인의 주요한 주제다.
“좀 전에 오신 분들처럼 전통을 디자인화하려는 움직임이 많아요. 그게 최근 일이에요. 경제가 발전하면서 디자인의 가치에 눈을 뜬 거죠. 사실 먹고 마시고 살아가는 일 자체가 디자인의 영역이거든요. 디자인은 삶의 수준을 높이는 일이거든요.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킬지는 디자이너의 몫인 거죠.”
디자이너 이상봉에게는 세상 모든 것이 디자인의 영역이다. 31년을 디자이너라는 이름으로 살아왔으니 그럴 법도 하다. 오랫동안 한 길을 걸어온 데 대한 보상일까. 많은 사람들이 그를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꼽는다. 일각에서는 ‘포스트 앙드레 김’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 표현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하지만 앙드레 김과 이상봉 사이에는 시대적인 차이가 있다. 앙드레 김은 대중에게 디자이너라는 이름을 알리고 자신의 디자인 세계에 대한 꿈을 꾸었던 사람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동화 속의 왕자로 사신 분’이다.
이에 비해 지금 세대는 굉장히 복잡해졌다. 과거와 현대, 미래가 공존하고 전 세계가 하나의 지구로 묶인 글로벌화된 세상이 됐다. 그는 이런 현대생활을 디자인으로 표현하고 우리 것을 세계화하는 게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대중이 그에게 주는 관심은 이런 일련의 과정에 대한 격려와 사랑이 아닐까 한다.
매 시즌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하는 디자이너의 숙명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물론 쉬운 길은 아니었다. 디자이너로서 살아오며 강박과 의무감에 힘들 때도 많았다. 가장 그를 괴롭힌 건 새로움에 대한 끝없는 추구였다. 한글이든 단청이든, 시즌마다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고, 그걸 다시 상품화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디자이너로서 긍지도 느끼지만 쇼를 준비하며 겪는 어려움은 만만치 않다.
패션 디자이너들은 시간적인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계절이 있고, 시즌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1년에 두 번씩은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하는 게 디자이너의 숙명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발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계절의 변화가 없는 곳은 패션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는 디자인 작업이 중노동이라고 했다. 해마다 수백, 수천 벌의 옷을 그것도 새로운 디자인으로 만든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터. 중노동 탓일까. 정작 본인은 새 옷을 입을 일이 거의 없다.
그날 입은 바지만 해도 10년도 더 된 것이라고 했다. 원단 또한 가죽 의상을 만들고 남은 것을 덧대서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바지 외에도 30년도 더 된 옷을 지금도 입는다.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성격 탓도 있지만 디자인 철학 때문이기도 하다.
“저는 트렌드를 만들기는 하지만 유행에 휩쓸리지는 않습니다. 디자이너를 크리에이터라고 부르는 이유가 이런 데 있습니다. 디자이너는 단순히 옷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디자인하는 사람입니다. 1년에 2번만 해도 지금까지 최소 60번, 새로운 것을 보여줬잖아요. 파리 패션쇼만 해도 올해로 11년째고, 횟수로 21번째거든요. 시즌마다 몇백 개는 보여줘야 하니까 보통 중노동이 아니에요. 체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거죠. 그래서인지 10년 전만 해도 디자이너 하면 최고 인기 직업이었는데 지금은 힘든 직업으로 낙인이 찍혔어요.” 10년 넘게 이어온 이상봉식 스트레스 해소법
디자인을 하면서 받는 중압감과 스트레스 해소책으로 그는 여행을 단연 으뜸으로 친다. 자신이 있는 공간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휴식이 된다. 그에게 여행은 기존의 것을 버리는 것뿐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2박 3일이 됐듯 일주일이 됐든 기간은 중요하지 않다.
일반적인 여행 외에 그만의 독특한 여행도 떠난다. 대부분의 여행은 일상을 벗어나긴 하지만, 유적지가 됐든 맛집이 됐든 또 다른 무언가를 찾게 마련이다. 정말 지치고 힘이 들 때 떠나는 여행에서 그는 2~3일 동안 가끔 수영을 할 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를 내려놓는 것이다. 여행을 위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을 때는 2~3시간 옥상에 올라가 수영복을 입은 채 태닝을 하기도 한다. 이를 두고 그는 “나를 말리고 태양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라고 표현한다. 10년 넘게 그는 이런 방식으로 자신을 관리해왔다.
그도 때론 술을 위안 삼기도 하고, 영화를 보며 위로받기도 한다. 음악을 들으며 고민을 내려놓을 때도 있다. 여유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 영화는 주로 심야 영화를 보고, 주말을 이용해 전시를 본다.
“제가 쓴 <나는 새가 되고 싶었다>를 보면 제가 얼마나 자유를 갈망하는지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갇혀 있지 않고, 감정에 충실하게 살려고 노력해왔어요. 그게 저를 지킨 힘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쓴 <나는 새가 되고 싶었다>를 보면 제가 얼마나 자유를 갈망하는지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갇혀 있지 않고, 감정에 충실하게 살려고 노력해왔어요. 그게 저를 지킨 힘이 아닐까 싶어요.”
디자이너 이상봉에서 이상봉 회장님으로 추대된 배경
구속을 싫어하는 그가 최근 디자이너들의 모임인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 창립을 주도하고 회장에 추대됐다. 오는 5월 창립 총회를 가질 예정인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는 패션디자이너들의 높아진 위상과 달리 구심점 없이 각 디자이너가 개별적 또는 소규모 단체로 활동하면서 일치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 인식하에 출발했다.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에는 세계패션그룹한국협회(FGI),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KFDA), 서울패션아티스트협의회(SFAA), 뉴웨이브인서울(NWS), 남성복 개별디자이너 모임, 여성복 개별디자이너 모임 등 각 디자이너 단체들이 참여했다.
50년 한국 디자인 역사상 이처럼 많은 디자이너들이 모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단체에 얽매이는 걸 싫어하는 그이지만 한국 디자인의 발전을 위해 선후배 디자이너들의 가교 역할을 자청했다.
“사회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하는 게 디자이너인데, 지금까지 제 목소리를 못 냈어요. 좋은 디자인은 그 시대와 함께 호흡하며 살아야 한다고 봐요. 우리가 하는 일은 누군가가 즐겨야 하는 작업입니다. 디자이너로서 가장 힘든 부분이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시대와 함께 호흡해야 하는 거죠. 그걸 위해 디자이너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겁니다.” 가장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는 디자이너 이상봉은 마세라티 디자인과 웅장한 소리에 큰 관심을 보였다. 특히 그는 범퍼와 라디에이터 그릴 등 강렬한 앞모습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진에 등장하는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스포츠 GT S는 세계 최고의 자동차 디자인 하우스 피닌파리나가 설계했다. 디자이너 이상봉이 감탄한 앞부분은 티타늄으로 마감된 전면 라이트 클러스터와 제논 헤드라이트, 발광다이오드(LED) 방향 지시등으로 강인함을 한층 강조했다. 공기역학적으로 디자인된 차체는 스포티함 그 자체다. 측면에 등장하는 트라이던트(trident)라고 하는 삼지창 로고는 창업주 알피에리 마세라티의 동생 마리오 마세라티가 고안한 것이다. 이탈리아 볼로냐의 마조레 광장에 있는 넵투누스(바다의 신) 조각상에서 넵투누스가 들고 있는 삼지창을 본뜬 것이다. 바다의 신에서 모티브를 얻은 마세라티는 상어가 튀어나가는 듯한 독특한 프런트 룩이 특징이다. 세계의 셀레브리티들이 사랑한 차 마세라티 콰트로포르테
1984년 이탈리아 대통령 의전 차량으로 선정된 콰트로포르테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1세대부터 5세대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모델이다. 세계 3대 테너 고(故) 루치아노 파바로티, 영화 <러브 액추얼리>로 유명한 배우 콜린 퍼스, 슈퍼모델 나오미 캠벨, 이탈리아 최고의 여배우 소피아 로렌과 모니카 벨루치, 미국 팝 가수 머라이어 캐리와 배우 린제이 로한 등을 비롯해 많은 해외 셀레브리티들이 콰트로포르테에 한없는 애정을 표현했다. 국내에서는 마세라티 홍보대사 차승원의 차로도 유명하다.
마세라티는 고객의 주문에 따라 맞춤, 제작하고 모든 작업 공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 세계 6000대만 한정 생산돼 이탈리아 장인정신을 기본으로 한 고객 맞춤형 제작 방식이 가능하다. 내부에 사용되는 가죽은 이탈리안 장인정신을 기본으로 하는 폴트로나 프라우(Poltrona Frau?) 사의 최고급 가죽과 알칸타라를 사용한다. 차량 외부와 내부, 시트 바느질 색, 브레이크 캘리퍼 색에 이르기까지 고객이 선택해 주문할 수 있는 마세라티 주문생산 프로그램인 오피치네 알피에리 마세라티 프로그램을 통해 옵션의 선택에 따라 무려 400만 가지의 조합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같은 모델이더라도 인테리어 디자인 등이 각기 다른 ‘나를 위한, 나만의 차’를 탈 수 있는 특별함을 선사한다.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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