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예상과 달리 연초부터 국내 금융시장에 외국인 자금이 몰려들고 있다.

이에 따라 주가가 상승하고 원·달러 환율은 급락했다.

최근 각국의 중앙은행이 일대 변신을 꾀하고 있다. 갈수록 각종 현안을 풀기 위해 중앙은행의 역할이 커지는 만큼 이 변화는 경기와 주가 향방을 결정할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가장 큰 변화가 통화정책 관할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 점이다. 이른바 ‘그린스펀 독트린’과‘버냉키 독트린’ 간의 논쟁이다. 금리 변경과 같은 통화정책은 원칙적으로 부동산, 주식 등과 같은 자산 시장 여건을 포함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의 신념이다. 이 독트린은 한때 큰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였지만 자산 시장에 거품을 일으켜 2008년 하반기 이후 금융위기를 낳게 한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따라서 현재 위기를 풀어가는 벤 버냉키 Fed 의장은 통화정책 대상에 부동산 등 자산 시장을 함께 고려해야 하고 실제로 그렇게 추진하고 있다. 특히 최근처럼 실물경기와 자산 가격이 따로 노는 여건에서는 통화정책은 반드시 자산 시장을 고려해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갈수록 각국의 통화정책은‘그린스펀 독트린’보다‘버냉키 독트린’ 쪽으로 기울고 있다.

통화정책 관할 범위가 확대되면 적정금리 산출 방식도 변경될 수밖에 없다. 특정국의 금리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경제성장률을 더한 수치와 비교해서 적정성을 따지는 피셔 공식이 주로 활용돼 왔다. 하지만 테일러 준칙은 중앙은행이 물가와 성장 등 여타 거시경제 목표 가운데 어느 쪽에 더 중점을 두었는지 알 수 있다.

테일러 준칙은 실질 균형금리에 평가 기간 중 인플레이션율을 더한다. 여기에 평가 기간 중 인플레이션율에서 목표 인플레이션율을 뺀 수치에 정책반응계수(물가 이외의 성장 등 통화당국의 정책 의지를 나타내는 계량 수치)를 더한다. 그리고 평가 기간 중 경제성장률에 잠재성장률을 뺀 값에 정책반응계수를 곱한 후 모두 더해 산출한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방식도 변경돼야 한다. 통화론자들은 특정국이 기준금리를 변경할 때 준칙(monetary rule)에 의할 것을 주장해 왔다. 이를 테면 한국은행의 목표 상한선이 4%일 때 이보다 물가가 올라가면 자동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려 안정시켜야 한다는 것이 통화준칙의 핵심이다.

하지만 물가 이외의 다른 목표가 더 우선시될 경우 기준금리 변경을 안 할 수 있다는 것이 사람(한국의 경우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에 의한 기준금리 결정 방식이다. 갈수록 ‘법치(法治)’보다는 ‘인치(人治)’에 의한 기준금리 결정 방식이 힘을 얻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선인 2%를 1%포인트 웃도는 상황에서 유럽중앙은행(ECB)이 위기 극복을 위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린 것이 최근의 예다.

같은 맥락에서 올해 초에 버냉키 의장이 언급했던 두 가지 내용이 주목된다. 하나는 경제 전망 시기를 종전의 ‘반기’ 기준에서 ‘분기’로 늘린다는 것이다. 최근처럼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예측 여건에서 각종 라이프사이클이 짧아지는 추세를 반영하고자 하는 불가피한 선택으로 금융위기 이후 고질적으로 문제가 돼 왔던 Fed의 예측력을 끌어올리겠다는 의도다.
경기나 증시 입장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각국 중앙 은행의 통화정책 목표가 수정되고 있는 점이다.
경기나 증시 입장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각국 중앙 은행의 통화정책 목표가 수정되고 있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기준금리 사전예고제’다. 매 분기 경제 전망이 발표될 때마다 3분기 후의 기준금리 수준과 필요할 경우 2∼3년간의 기준금리 결정 방향까지 내놓겠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버냉키의 만용’이라 불릴 만큼 비판을 받고 있으나 이 조치를 자세히 뜯어보면 깊고 많은 내용이 함축돼 있다.

무엇보다 시장과의 소통을 강조하겠다는 숨은 의도가 있다. <맨큐 경제학>의 저자로 잘 알려진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를 중심으로 Fed가 통화정책의 효과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시장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강조해 왔다. 이번 조치는 이런 요구를 전격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이해된다.

비슷한 맥락에서 기준금리 결정에 따른 정책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의도도 강하게 비쳐진다. 초저금리로 부채가 많은 시대에는 기준금리만큼 국민 경제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변수는 없다. 짧게는 3분기 후, 길게는 2∼3년 후의 기준금리를 알 수 있다면 경제주체들은 보다 안정적으로 경제활동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앞으로‘기준금리 사전예고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미국 경제 회복세가 더 견실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Fed의 정책 여지는 크게 제한돼 있다. 기준금리는 더 이상 내릴 수 없고, 유동성 조절 정책도 잠복된 인플레이션 우려로 3차 양적완화(QE3) 추진이 쉽지 않다.

궁여지책 속에 지난해 9월에 내놓았던 ‘오퍼레이션 트위스트 정책’도 장단기간의 금리체계를 흐트러뜨리는 부작용이 노출돼 보완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기준금리 사전예고제’가 실시되면 금융과 실물 간의 연계성이 강화돼 금융권에서만 맴도는 돈이 실물로 흘러 들어갈 수 있다. Fed가 가장 고민해 왔던 아킬레스건이 풀리는 셈이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심리적인 요인과 네트워킹 효과가 큰 시대에 있어서는 이 효과는 의외로 크게 나타날 수 있다.

경기나 증시 입장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목표가 수정되고 있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중앙은행의 목표는 물가를 안정시키는 데 있는 만큼 밀턴 프리드먼과 같은 통화론자들은 경기 부양 등과 같은 다른 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악마와의 키스’라 할 정도로 금기로 여겨 왔다.

하지만 세계 경제의 글로벌화가 진전되고 시장경제가 활성화됨에 따라 물가는 안정되는 추세다. 이런 시대에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만 고집하기보다 위기 극복, 경기 회복 등과 같은 다른 목표를 추진해야 한다. ‘악마와의 키스’가 ‘천사와의 키스’로 대접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의미다.

전반적으로 물가가 안정된 시대에는 중앙은행은 물가안정만 고집하기보다는 성장과 고용, 위기 극복 등과 같은 다른 목표를 추진해야 한다. 버냉키 Fed 의장이 앞으로 중앙은행은 물가목표제(inflation targeting)뿐 아니라 성장목표제(growth targeting), 고용목표제(employment tar-geting)를 함께 설정해야 한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앞으로 ‘기준금리 사전 예고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미국 경제 회복세가 더 견실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각국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보다는 경기 부양 쪽으로 적극 나서고 있다. 버냉키 의장은 올해 들어서도 첫 Fed 회의와 의회 연설에서 기준금리를 2014년 말까지 유지하고 필요할 경우 QE3를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그만큼 경기 부양 의지가 강한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물가 안정을 중시해 왔던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취임한 이후 경기 부양에 나서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물가가 여전히 불안한 상황에서 ECB는 이미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유동성 조절 정책도 미국처럼 국채 매입을 통해 양적완화를 추진하고 그 규모를 늘려가는 중이다.

신흥국 중앙은행도 물가 부담이 있는 상황에서 각종 정책금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브라질, 인도, 러시아는 기준금리를 인하했고 중국은 3년 만에 지급준비율을 내렸다. 2010년 상반기 이후 물가를 잡기 위해 추진했던 강력한 긴축정책으로 성장이 훼손당할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유동성이 풍부하다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다. 하나는 중앙은행이 모든 자금의 원천인 본원통화(high-powered money)를 공급하는 것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개념이다. 다른 하나는 중앙은행의 본원통화 공급 여부와 관계없이 이미 시중에 나와 있는 자금 가운데 퇴장(hoarding)됐던 통화가 방출(dishoarding)되는 경우다.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림에 따라 국제 금융시장은 ‘제2의 초저금리 시대’를 맞고 있다. 테일러 준칙을 통해 추정한 주요국의 적정금리를 보면 미국 3.5%, 유로랜드 3.5%, 영국 3.75%로 나온다. 하지만 이들 국가들의 현 기준금리는 제로(0) 수준에 가깝다. 국채, 모기지 증권, 주식, 우량 회사채 등 다양한 형태로 양적완화 정책을 병행하고 있다.

현재 실물경제 규모에 비해 월등히 많은 유동성 때문에 금융시장에서는 종전의 경제이론이나 인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현상이 발생해 혼란스럽다. 증시가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역설(paradox)이니 수수께끼(conundrum)니 하는 용어와 함께 자주 등장한다. 학계에서는 경제학이 혼돈시대(chaos of economics)에 접어들었다고 우려한다.
외국인 자금의 추가 유입 여부는 정치권을 포함한 우리 정책당국과 국민의 손에 달려 있다.
외국인 자금의 추가 유입 여부는 정치권을 포함한 우리 정책당국과 국민의 손에 달려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 국채 시장에서 지속되고 있는‘T-본드의 역설(T-bon d’s paradox)’이다. 미국처럼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재정 적자와 국가 채무 부담이 높은 상황에서는 국채수익률은 상승(국채값 하락)해야 하나 반대로 하락(국채값 상승)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정도 차는 있지만 사정은 다른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유동성의 국제 간 자금흐름을 보면 위기국면에 나타나는‘골든 트라이앵글’현상이 아직까지는 뚜렷하다. 트라이앵글의 한 축은 아시아에 투자된 유럽계 자금이 본국으로 회수되고, 또 다른 축은 유럽에 투자했던 미국계 자금은 경제 여건이 좋은 본국으로 환류되고 있다. 남은 한 축은 미국계와 신흥국 자금이 신흥국으로 유입되는 흐름이다.

앞으로 국제 간 자금흐름에 주목되는 것은 ‘골든 트라이앵글’현상이 글로벌‘쩐(錢)의 전쟁’으로 진전될 수 있느냐 아니냐다. 위기 이전까지 선진국 자금은 높은 수익을 좇아 잉여자금은 펀드 형태로, 잉여자금이 없을 때는 캐리자금 형태로 신흥국에 유입됐다. 반면 신흥국 자금은 안정성을 중시해 선진국 자산에 투자됐다.

하지만 갈수록 심화되는 글로벌 불균형으로 선진국 자산의 안정성이 떨어지면서 위기 이전까지 유지됐던 국제 간 자금흐름의 메커니즘이 흐트러지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국, 중국과 같은 선진 신흥국들이 선진국의 수익성 추구 자금과 신흥국 안정성 추구 자금의 공동 투자처로 주목받고 있는 점이다.

연초에 ‘위기설’이 나돌았던 국내 금융시장에 이런 우려와 달리 외국인 자금이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다. 올 들어 지금까지 외국인 자금의 순유입 규모는 10조 원에 이른다. 이에 따라 코스피 지수는 2000포인트를 넘어섰고 원·달러 환율도 올 상반기까지는 어려울 것으로 봤던 1100원 붕괴 여부가 초읽기에 몰리고 있다.

최근처럼 외국인 자금이 많이 유입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해외 시각이 개선되고 있다는 의미다. 크레디트 디폴트 스와프(CDS)와 외평채 가산금리는 작년 말에 비해 하락하고 있다. 국가 신용등급도 유럽국을 중심으로 ‘강등 도미노 추세’속에 우리는 그대로 유지되고 오히려 신용평가회사인 피치로부터 전망이‘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상향 조정됐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우리 내부적으로 혼탁한 사정에도 불구, 해외 시각이 개선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요인에 기인한다. 무엇보다 유럽 위기 이후 해외 투자 시 가장 중시하는 재정의 건전성이 높게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소득(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33% 내외로 우리가 속한 신흥국 위험 수위인 70%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갑작스런 외국인 자본 유출에 대한 완충 능력도 충분히 확보돼 있다. 제1선 자금인 외환보유액은 3000억 달러를 웃돈다. 제2선 자금도 미국, 일본, 중국과의 통화스와프 협정,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와 국제통화기금(IMF)의 쿼터를 감안하면 1500억 달러에 달한다. 최광위 캡티윤 모델에 따라 추정된 우리 적정외환보유액보다 많은 수준이다.

‘우리 경제 위기설’도 그렇다. 4년 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나라 안팎으로 어려울 때마다 고질적인 위기설이 나돌았으나 가시화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때마다 위기설에 쉽게 좌우되는 일부 국내 투자자와 달리 외국인은 모리스 골드스타인 위기판단지표 등으로 위기설의 실체를 따져 한국에 투자 여부를 결정했다.

관심은 앞으로 얼마나 더 들어올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일단 여건은 괜찮다. 재정 건전성, 완충자본 확충 능력 등도 단기간에 쉽게 악화될 가능성은 적다. 오히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과 같은 한국의 대표 기업들이 우리의 해외 시각을 개선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 만큼 외국인 자금의 추가 유입 여부는 정치권을 포함한 우리 정책당국과 국민의 손에 달려 있다. 특히 정책당국은 각종 판단지표로 가능성이 낮게 나오는 데도 대외 여건이 악화될 때마다 위기설에서 자유롭지 못한가를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여러 요인 가운데 잦은 정책 변경, 정부에 대한 신뢰 부족, 부정부패 등으로 시스템 위기 극복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실물경기가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는 데 있다는 것이 국제 금융시장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문제는 시스템 위기 극복이 지연될수록 각종 착시현상에 따른 투기요인이 커지는 대신 위기 불감증이 심화돼 왔다는 점이다.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림에 따라 국제 금융시장은 ‘제2의 초저금리 시대’를 맞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내림에 따라 국제 금융시장은 ‘제2의 초저금리 시대’를 맞고 있다.
경제 여건이 뒤따르지 않는 고평가 요인이 유럽 위기와 같은 사태를 계기로 외자 이탈로 연결될 경우 그동안 극복했다고 보는 외화유동성 위기에 대한 우려가 다시 높아진다. 이것이‘위기 재귀설(crisis reflexibility)’의 실체다.

정책당국은 최근처럼 대외 환경이 악화될 때마다 우리 사회 내에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위기설을 근본적으로 불식시켜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정확한 현실 진단을 토대로 갈수록 지연되는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공조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제다.

국민의 자세도 중요하다. 위기설과 같은 근거 없는 정보에 영합하는 ‘인포 데믹’과 각종 위험을 과다하게 평가하는 ‘리스크 데믹’ 현상이 나타난다면 금융시장은 기초 여건과 따로 놀 수밖에 없다. 아무리 기초 여건이 건실하다 하더라도 수익률 변수가 심하게 요동친다면 외국인 자금이 추가적으로 들어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탐욕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