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통업계에 ‘남성 전문관’이라는 새로운 블루 오션의 영감을 준 요소 가운데 가장 주효했던 것은 일본의 백화점들이다. 그들의 과감한 선택이 결과적으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국내 메이저 백화점들도 라이프스타일이 비슷한 가까운 일본 백화점들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한 것. 우리보다 조금 앞서 남성 소비자의 ‘잠재력’을 꿰뚫었던 일본 현지 한큐백화점에 관한 리포트다.
일본의 한큐백화점은 여성 중심의 백화점 마케팅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2008년 과감하게 ‘한큐 멘즈(Hankyu Men’s) ’를 개업했다. 한큐백화점은 도쿄와 오사카를 기점으로 한 백화점으로, 오사카 우메다(梅田) 소재의 한큐백화점 별관을 리모델링해서 오픈했던 것이 남성관 1호였다.
한큐 멘즈 1호는 개점 1년간 방문 고객이 870만 명, 매출 265억 엔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매출은 종전 한큐백화점 남성 의류와 잡화 판매 금액의 1.6배에 달했다. 서일본을 본거지로 하는 한큐백화점은 도쿄 내 유라쿠초(有樂町) 한큐의 매출이 1992년 216억 엔으로 정점을 찍은 뒤 지속적으로 하락해 90억 엔까지 떨어지는 침체 국면에 놓여 있었다. 우메다에서 얻은 자신감으로 도쿄에 2호점 오픈
일본 백화점들의 매출이 전체적으로 감소하는 와중에도 한큐백화점은 규모가 작은 백화점이라는 단점을 과감하게 장점으로 살려 남성 고객을 위한 전문관으로 패러다임을 바꿨다. 한큐 멘즈는 개점 후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해 ‘남성 전문 백화점’이 한때 유행으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를 잠재웠다.
한큐백화점은 우메다에서의 성공적 론칭에 힘을 받아 서일본을 벗어나 도쿄로 진출하기에 이르렀는데, 지난해 10월 15일 한큐 멘즈 도쿄는 일본 내 한큐 멘즈 마니아들을 밤잠 못 자고 설레게 했다. 도쿄 긴자(銀座)의 최대 상업지구인 유라쿠초에 개점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오픈 전날부터 백화점 앞은 줄을 선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데 이어 개장일인 15일과 16일 10만여 명에 이르는 사람이 다녀간 것으로 알려졌다. 개업 당일 매출이 30억 원에 이르는 신기록을 기록했음은 물론이다.
원래 남성 전문 백화점은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이세탄 멘즈와 서일본 지역을 커버하는 한큐 멘즈로 양분돼 있는 양상이었다. 두 백화점의 차이가 있다면 이세탄 멘즈가 젊은 남성 고객을 중심으로 영업하는 반면, 한큐 멘즈는 30~40대 이상의 중장년 남성을 타깃으로 한다는 점이다.
꽃중년이 지갑 열며 매출에 ‘날개 ’
최근 일본 남성들은 ‘초식남’에서 ‘꽃중년’까지 외모를 가꾸는 데 시간적, 금전적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한국의 ‘초식남’ 바람의 발원지도 따지고 보면 일본이다. 특히 최근에는 40대 이상 중년 남성들이 외모 가꾸기에 열을 올리면서 고가의 기능성 화장품, 모발 관리 제품들이 높은 매출 성장세를 띠고 있다.
한큐 멘즈는 바로 이러한 남성 소비자의 수요에 부응, 남성의 외모를 책임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백화점 내에는 브랜드별 의류와 잡화를 스타일별로 층을 달리해 배치함으로써 고객 각자의 스타일에 맞는 편안한 쇼핑을 돕고 있다. 또한 남성 뷰티 층에는 미용실은 기본이고 네일 관리숍, 에스테틱 등도 입점해 있다. 고급 브랜드를 집적한 공간은 원스톱 쇼핑이 가능하다.
특히 혼자서 옷을 사기가 두려운 남성들을 대상으로 최신 트렌드와 개성에 맞는 옷을 골라주는 스타일 코디네이터 서비스도 반응이 좋다.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도 존재한다. 우메다 지역보다 긴자 지역은 전통적으로 명품 브랜드의 최대 집결지로 질 높은 고객 서비스가 그만큼 중요한 지역이다. 하지만 한큐 멘즈 도쿄는 수익성 제고를 위해 인력을 리뉴얼 전의 70~80% 수준으로 줄여서 운영하고 있는데, 수익성을 중시하는 마케팅과 고품질의 서비스를 요구하는 고객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출 것인가에 귀추가 주목된다.
글 장헌주 기자 도움말·자료 제공 강민정(코트라 오사카 무역관)
사진 제공 일본 한큐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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