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지 않으면 퇴직 후의 자산관리에 성공하기 어렵다. 퇴직 후의 자산관리를 생각할 때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퇴직 후 인생은 상상 이상으로 길고 여유 자금은 상상 이상으로 적다는 점이다. 퇴직할 때까지 모아놓은 자금과 퇴직금을 합한 금액의 전부를 운용 가능한 여유 자금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현역 시절에 모아 놓은 금액에 따라 다르겠지만 운용 가능한 것은 그 금액의 일부라고 생각해야 한다.
퇴직 후의 손익계산서·대차대조표를 만들어 보자
그렇다면 운용 가능한 금액을 어떻게 계산하면 좋은가. 먼저 퇴직 후의 수입과 지출 내역을 알아볼 수 있도록 자신의 ‘손익계산서’를 만들어 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퇴직 후에 얻을 수 있는 수입으로는 공적 연금이나 개인연금 등의 연금, 재취업을 했을 경우에는 근로소득, 부동산·금융 자산에서 발생하는 자산소득 등을 생각할 수 있다. 이들 수입의 합계가 매달 지출해야 할 생활비보다 적을 경우에는 모자라는 금액은 보유 자산을 헐어서 충당해야 한다.
따라서 다음 단계에서는 헐어 쓸 수 있는 자산을 파악해 보아야 한다.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과 부채를 하나의 표에 나타내는 ‘대차대조표’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이때 기본은 시가평가다. 주식, 펀드 등의 금융 자산은 물론 부동산 가격도 그 시점에서의 시가로 평가해야 한다.
시가평가가 된 대차대조표를 작성한 후에는 정리할 필요가 있는 자산과 부채가 없는지를 찾아본다. 예를 들어, 1년에 한두 번 사용할까 말까 하는 골프회원권, 거래 관계 때문에 할 수 없이 사들인 미술품, 거의 수익을 낳지 않는 금융 자산 등은 처분해 부채를 갚는 편이 유리할 수도 있다. 자산과 부채를 같이 줄이는 것이다. 주택 구입 융자금이 남아 있을 때는 조기 상환을 검토한다. 차입금리 이상으로 수익을 낸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이 자산과 부채를 동시에 줄인 후 남는 자금은 생활 자금, 목적 자금, 투자 자금 세 가지로 나누어 관리한다.‘생활 자금’이란 1년 이내에 써야 할 매달 생활비와 비상금 등을 말한다. 이 자금은 종합자산관리계좌(CMA)나 예금에 넣어둔다.
‘목적 자금’이란 자녀 결혼 자금, 주택 수리 자금, 해외 여행 자금 등을 말하는데, 이런 자금은 일이 닥쳤을 때 마련하는 것보다 미리미리 계획을 세워 준비해 두어야 한다. 이 자금은 기간이 짧은 우량 채권이나 공사채 펀드와 같이 원금 손실 리스크가 낮은 상품에 넣어두는 것이 좋다.
이상의 생활 자금과 목적 자금을 제하고 남는 것이 ‘여유 자금’즉 ‘투자 자금’이다. 리스크가 따르더라도 고수익이 기대되는 투자 상품으로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인 것이다. 이 자금은 자신의 기대여명 등을 고려해 합리적인 목표를 세우고 주식형이나 채권형 펀드와 같은 투자 상품에 나누어서 운용해야 한다.
투자 상품을 고를 때 유의할 점
투자 자금을 운용할 때 명심해야 할 것은 투자에는 원금 손실을 볼지도 모르는 리스크가 따른다는 점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금융 관련 규제가 완화되면서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진 투자 상품들이 많이 출시되고 있다. 그런 상품들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 투자했다가는 크게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젊은 세대와는 달리 퇴직을 했거나 퇴직을 앞두고 있는 직장인들은 투자 상품을 고를 때 다음 몇 가지 내용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
첫째는 상품 구조의 단순성이다.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상품에는 절대 투자해서는 안 된다. 특히 고수익을 보장하는 듯한 표현을 쓰면서 복잡한 구조로 돼 있는 금융상품에는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런 금융상품은 판매 담당 직원조차 상품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상품이 갖는 리스크 요소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또 그런 상품일수록 수수료가 비싼 경우가 많다.‘리스크가 크지 않으면서 고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이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상품에만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는 유동성, 즉 환금성이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자금이 필요할 때는 투자한 상품을 언제든지 현금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할 때 환금을 할 수 없다면 자산 형성을 하는 의미가 없다. 또한 환금성이 나쁜 상품은 시가를 파악하기도 어렵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특히 해외 투자를 할 때 환금성에 각별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신흥국 시장의 주식이나 채권은 개별 종목도 그렇지만 펀드의 경우에도 상품을 매각한 후 매각 대금을 찾을 때까지의 결제 기간이 지나치게 긴 경우가 많다. 심한 경우에는 매각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물론 유동성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각오하고 전략적으로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상품에 투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투자 전략도 자신의 눈으로 상품을 고를 수 있는 안목이 생겼을 때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는 투자자가 지불하는 비용이다. 불필요한 비용은 지불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투자 전략의 기본이다. 펀드에 투자할 경우에는 펀드 자체의 판매수수료나 운용수수료율이 지나치게 높지는 않은지, 펀드가 투자하고 있는 주식을 너무 자주 매매해 불필요한 매매수수료를 지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해외 투자인 경우에는 외환 관련 수수료가 너무 비싸지는 않은지 등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
투자보다 중요한 지출 관리
그런데 금융시장의 오랜 경험으로 볼 때 퇴직 후에 투자 상품 운용으로 돈을 번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또한 현역 시절에는 투자를 해서 다소 실패하더라도 만회할 수 있는 시간이 있지만 퇴직 후에는 그럴 시간도 많지 않다. 따라서 투자해서 수입을 늘리는 방법을 생각하기 전에 가계 지출을 줄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노후 자산관리 관련 강의를 하면서 이런 내용을 설명하면 실망하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많다.‘재테크로 자산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배우러 왔는데 지출을 줄이는 방법부터 생각하라니, 그런 당연한 이야기를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들어야 하는가’ 하는 표정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지출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다면 그런 표정을 짓지 못할 것이다.
지출 금액은 자신의 의지로 관리할 수 있다. 반면에 금리나 주가는 그 누구도 관리할 수 없다. 수입 또한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좀처럼 관리가 불가능하다. 결국 자신의 힘으로 관리할 수 있는 것은 가계 지출 정도다.
‘절약’이라고 하는 전략은 중요한 투자 방법이기도 하다. 절약하지 않는 것은 가장 투자 성과가 높은 투자 상품을 내다 버리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1만 원을 써야 할 일이 있을 때 9000원으로 그 일을 끝냈다면 그 순간 그렇게 하지 못한 사람에 비해 10%의 수익률을 올린 셈이다. 리스크 없이 이런 고수익을 낼 수 있는 금융상품은 어디에도 없다. 금리나 주가가 어떻게 움직이든 상관없다. 절약은 가장 확실한 자산 운용 방법이다.
강창희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장
은퇴 후에는 투자보다 지출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절약’이라고 하는 전략은 중요한 투자 방법이기도 하다. 절약하지 않는 것은 가장 성과가 높은 투자 상품을 내다 버리는 것과 같다.
일러스트·추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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