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연의 그림읽기

‘부부가 아닌 남녀가 정을 통할 수 있도록 소개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은 무엇일까. 정답은 ‘뚜쟁이’다. 국어사전에 수록된 어휘처럼, 뚜쟁이는 주로 불륜관계를 이어주는 중간매개인 역할을 한다. 현실적으로는 매우 지탄받아 마땅한 부류의 사람들이지만, 원래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가 되는 관점에서 본다면 아주 친근한 인물이다. 보통 영화나 TV 드라마, 문학작품 안에서도 뚜쟁이는 주인공과 매우 밀접한 관계선상에 있게 마련이다. 중세 네덜란드의 풍속화가들 사이에 유행하던 소재 중 하나가 바로 뚜쟁이였다. 남녀의 은밀하고도 어두운 관계를 이어주는 뚜쟁이는 주로 나이가 많은 노파로 묘사됐다.

프란스 반 미에리스(Frans van Mieris the Elder), <가게 안의 기사>(Cavalier in the shop), 1660년,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박물관 소장
그들이 이어지기까지, 반드시 필요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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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가게 안에서 옷감을 고르고 있는 한 남자와 그를 상대하고 있는 한 여자가 이 그림의 주인공이다. 여자는 천 가게의 주인으로, 그녀의 뒤에는 가지런히 개켜진 천들이 선반 위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겉보기엔 단정한 그녀처럼. 그러나 손님으로 들어온 한 기사 앞에 놓인 천은 흐트러져 있다. 그들의 묘한 눈빛은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기사 복장을 한 남자는 한 손으로는 천을 만져보며 또 다른 손으로는 여자의 턱을 건드리고 있다. 그의 눈빛은 자신이 고른 물건에 매우 만족스러움을 말해주고 있는데, 그가 고른 물건은 과연 무엇일까. 옷감 아니면 여자?

화가인 프란스 반 미에리스는 이러한 대조를 나타내는 메시지를 그림 안에 숨겨두었다. 그림 오른편 아래쪽에 있는 탁자에는 화려한 붉은색 카펫이 올려 있는데, 그 카펫에는 ‘comparare’라는 단어가 보인다. 이 단어는 라틴어로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사다’ 혹은 ‘비교하다’. 두 가지 의미는 모두 기사의 행동을 말해주고 있다. 귀한 천을 살 것인가, 여인의 사랑을 살 것인가.

그런데 이 그림이 더욱 재미있는 이유는, 바로 주인공 뒤편 어두운 곳에 앉아있는 조연 때문이다.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앉아 심드렁한 표정으로 남녀를 바라보는 노인의 모습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부도덕한 남녀를 나무라는 얼굴 같기도 하고, 둘의 만남이 언제 끝날지 기다리는 얼굴 같기도 하다. 이쯤에서 그가 하는 일을 짐작할 수 있다. 노인은 이른바 뚜쟁이로 이러한 만남을 알선하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는 필시 사전에 기사와 흥정해 여자의 천 가게로 그를 데려왔을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이지만 노인의 표정으로 보아 이 일이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화가인 미에리스는 여러 장치를 통해 그림 속 상황을 암시,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여인의 발치에 있는 강아지는 고개를 돌려 관객을 바라본다. 강아지는 예로부터 부부간의 정절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고개를 돌려 두 남녀를 외면하며 그들의 불륜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화가의 놀랍도록 세밀한 묘사들은 모두 사실감이 넘치며 이 그림의 사이즈가 사실은 굉장히 작다는 것을 알게 되면 놀라움은 배가된다. 미에리스는 이러한 장르의 그림들을 선보이며 살아있을 당시 많은 인기를 누렸고, 그에 따른 막대한 부를 축적하기도 했다.


요하네스 얀 베르메르(Johannes Jan Vermeer), <뚜쟁이>(The Procuress), 1656년, 독일 드레스덴 고전 거장 미술관 소장
그들이 이어지기까지, 반드시 필요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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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잔을 들고 자리에 앉아 미소를 흘리는 노란 옷의 여인. 그녀의 손은 자신을 껴안고 있는 붉은 옷의 남자가 주는 돈을 막 받으려는 참이다. 둘의 관계는 너무나도 명확해 보인다. 매춘부와 손님. 그리고 그들을 이어주는 뚜쟁이가 있다. 남녀의 바로 옆에 서서 흐뭇한 얼굴로 둘을 지켜보고 있는 검은 옷의 노파가 바로 뚜쟁이다.

뚜쟁이 노파의 얼굴에는 음흉함과 교활함이 함께 깃들어 있다. 젊고 아름다운 노란 옷의 여인과 대비돼 더욱 사악한 느낌이 살아난다. 이런 일을 한두 해 해 온 것이 아니라 아마도 오랜 세월을 매춘굴에서 살다시피 했을 법한 느낌이다. 젊은 남녀와 뚜쟁이 노파,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술잔과 악기를 들고 관객을 응시하는 악사가 이 연극무대와도 같은 그림 속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요하네스 얀 베르메르의 초기 작품인 이 그림은 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다소 산만해 보이는 구성에도 불구하고, 베르메르의 작품들이 가진 흡인력은 그대로 보여준다. ‘매춘굴에 들락거리다가는 인생을 망친다’는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도 하다.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약방의 감초 노릇을 하는 조연 배우들처럼, 당시 유행하던 풍속화 안에서 뚜쟁이는 그림의 극적 구성을 위한 조연 노릇을 톡톡히 했다. 주인공들이 이어지기까지 꼭 필요하지만 도덕적 지탄을 피할 수 없는 자리였던 뚜쟁이를 소재로 한 이 그림들은 아기자기한 디테일과 함께 그림 속 인물들의 풍부한 개성과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강지연 _ 교사. <명화 속 비밀이야기>, <명화 읽어주는 엄마> 저자 ‘귀차니스트의 삶(http://blog.naver.com/oilfree07)’ 운영. oilfree0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