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코스닥 시장에서 바이오회사는 괄시를 받아왔다. 바람을 타고 주가가 폭등했다가도 어느새 바닥을 찍는 게 바이오주다. 따라서 대박을 좇다가 낭패를 본 투자자가 부지기수고 작전주 정도로 치부되기도 했다. 바이오회사들에도 언제나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다니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 단단한 색안경에 균열을 일으킨 곳이 바로 서정진(55) 회장의 셀트리온이다. 셀트리온은 현재 아시아에서 가장 큰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Contract Manufacturing Organization) 업체다.

630명이 근무하고 있는 셀트리온은 2008년 코스닥 시장에 우회상장으로 들어온 뒤 6개월 만에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이후 영업이익률을 2008년 37%, 2009년 49%, 2010년에는 59%를 찍으며 고공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2010년 매출액은 1800억 원, 영업이익 1060억 원을 기록했다.

셀트리온의 성장과 함께 서 회장의 자산은 1조 원이 넘었다. 재벌닷컴이 지난해 10월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그의 자산은 1조210억 원. 상속에 의하지 않은 자수성가형 빌리어네어(billionaire)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사실 서 회장만큼 ‘자수성가’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사람은 없다. 경제 한파가 몰아치던 외환위기 시절 ‘실업자’에서 지금의 자리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뉴 밀레니엄 슈퍼리치] 21세기형 창업 기준과 역발상의 사업 모델
창업의 세 가지 기준

서 회장은 1983년 대학을 졸업하고 삼성전기에 입사했다. 이후 기업컨설턴트 일을 하다가 대우자동차의 상임 경영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나이 30대 초반으로 최연소 임원이었다. 그러나 아시아 경제위기가 불어 닥쳤고, 1999년 대우차의 워크아웃과 함께 그의 월급쟁이 생활도 막을 내렸다. 당시 대우차의 경영 전략을 수립하던 임원으로서 경영 위기에 책임을 지기 위해 퇴직금도 받지 않고 사임했다. 퇴직 후 서 회장은 창업을 결심한다. 그러던 중 그의 귀에 들린 것이 “요즘 바이오가 뜬다더라”라는 한 마디였다.

그러나 서 회장은 생명공학에 문외한이었다. 대학에서는 산업공학을 공부했고 사회에서도 전혀 관련이 없는 길을 걸어왔다. ‘바이오’라는 한 마디에서 구체적인 사업 아이템을 끄집어내기 위해 그는 무작정 해외로 건너갔다.

서 회장이 말하는 창업의 기준은 크게 세 가지다. 21세기 패러다임에 맞는 사업이어야 했고, 동시에 진입 장벽이 높아 경쟁이 많지 않은 업종이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분야여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 벤처기업들은 대부분 정보기술(IT)과 이동통신 분야에 진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낮은 진입 장벽은 서 회장의 기준에는 맞지 않았다.

그가 이 기준에 맞춰 세부 아이템을 찾고 공부하는 데는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40여 개국을 돌아다니며 무작정 전문가들을 찾아갔다. 그러던 중 얻은 소득이 ‘바이오시밀러’가 유망할 것이라는 정보였다. 바이오시밀러는 특허가 만료되는 오리지널 의약품의 복제약을 의미한다.

업계에서는 2013년부터 시작되는 의약품의 특허 만료가 큰 관심사였다. 바이오의약품 중 2012년부터 향후 10년 이내 특허가 만료되는 의약품은 10종류, 규모로는 320억 달러(2007년 기준)다. 2015년에는 바이오 시밀러 시장이 25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서 회장은 바이오시밀러 의약품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항체의약품은 그중에서도 기술 진입 장벽이 높아 경쟁이 많지 않았다. 이 점에서 바이오시밀러는 서 회장의 기준에 적합한 아이템이었다.
[뉴 밀레니엄 슈퍼리치] 21세기형 창업 기준과 역발상의 사업 모델
역발상으로 후발주자 한계 극복

서 회장의 전반적인 사업 전략은 밀레니엄 이전에 성장한 기존의 한국 수출기업의 그것과 기본적인 공통점이 있다. 한국의 기업들은 외국의 기술을 들여온 뒤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모델이 대부분이다. 섬유를 시작해 자동차, 철강, 조선, 정보통신, 반도체가 그러했다. 서 회장 역시 외국의 전문 기술을 들여와 국내에서 재생산하고 자체 기술을 도입하는 방식을 갖는다.

하지만 셀트리온이 사업 초기부터 해외 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했다는 점은 기존 한국 기업 모델과의 차이점으로 꼽힌다. 밀레니엄 이전에 성장한 대다수의 한국 기업은 국내 시장에서의 성장이 먼저 이뤄졌다. 폐쇄적 환경에서 정부 지원으로 안정된 국내 시장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다.

반면 셀트리온의 성장 시기인 2000년대는 사업 환경이 다르다. 이미 무역에서의 자유도가 올라가 폐쇄적인 국내 시장을 이용할 수 없었다. 이 상황에서 서 회장은 해외 시장을 먼저 공략했고 그것이 성공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셀트리온의 매출은 전부 수출에서 발생했다. 2010년 수출액도 전체 매출액의 86%를 차지한다.

셀트리온의 사업 모델 역시 기존 바이오회사와는 전혀 다르다. 일반적인 바이오회사의 모델은 신약 개발부터 임상을 거쳐 대량 생산으로 가는 과정을 거친다. 셀트리온은 반대로 생산을 통한 사업 기반을 먼저 갖춘 뒤 기술을 개발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즉 성장 가능성이 높은 CMO 시장에서 입지를 굳히고, 여기서 축적된 기술력과 안정된 이익구조를 만들어낸 뒤 이것을 바탕으로 바이오시밀러와 신약을 개발해 수익을 확대하는 시스템이다. 이 방법은 연구 인력이나 시설 등 제약 인프라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10년 이상이 걸리는 일반적인 신약 개발 과정을 그대로 밟는 데 따르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만든 궁여지책이었던 셈이다.
서정진 회장은 자신만의 기준으로 창업 아이템을 선택했고, 사업 전략의 변화와 사업 모델의 역발상으로 지금의 성공을 만들어냈다.
서정진 회장은 자신만의 기준으로 창업 아이템을 선택했고, 사업 전략의 변화와 사업 모델의 역발상으로 지금의 성공을 만들어냈다.
올해부터 바이오시밀러 출시

지금까지의 결과를 보면 이 역발상은 큰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서 회장은 2003년부터 1조 원 이상을 신약 개발 및 인프라 구축에 쏟아 부었다. 특히 6500억 원 규모를 생산시설과 기술에 투자했다.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 기준에 부합하는 대규모 항체 의약품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9만 리터의 1차 증설이 완료돼 현재 14만 리터의 생산설비를 마련했다. 생산 규모로는 세계 3위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CMO 업체가 됐고 매출의 대부분도 CMO 비즈니스에서 발생한다.

안정적인 성장에서 나온 자본과 경험을 바탕으로 선진국에서도 초기 단계인 바이오시밀러 기술 경쟁에서도 비교적 앞선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이미 제품 출시를 위해 세계 지역별 상위 제약사들과의 협력을 통해 판매망을 구축했고, 빠르게 의약품 허가도 획득하고 있다.

특히 서 회장은 “류마티스성 관절염 치료제인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를 5월에, 유방암 치료제 허셉틴 바이오시밀러를 6월 출시할 것”이라고 전했다. 허셉틴은 제넨텍, 레미케이드는 존슨앤존슨의 제품으로 두 제품 모두 연간 매출액이 50억 달러대다. 셀트리온의 관계자는 “진입 장벽이 높은 항체 치료제 시장에 일부러 뛰어든 만큼 경쟁자가 없어 전망이 더 밝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 회장의 목표는 신약 개발이다. 셀트리온은 현재 신종플루, 조류독감 등 각종 유행성·계절성 인플루엔자의 종합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또한 미국 질병통제센터와 광견병 치료 신약, 미국 생명공학회사와 새로운 유방암 및 폐암 치료용 항체 등 신약 개발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올해부터 결과가 나오기 시작하는 바이오시밀러 시장에서 성공한다면 셀트리온 입장에서는 신약 개발에 더 박차를 가할 수 있다.

한편 서 회장은 지난 1월 16일 셀트리온헬스케어 보유주식(26만8000주·전체 주식의 50%)에 대한 배당금 전부를 내년부터 죽을 때까지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서 회장의 기부는 일회성이 아닌‘종신기부’라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셀트리온은 여태껏 배당을 한 적이 없지만 바이오시밀러가 출시되는 내년에는 서 회장이 기부하는 셀트리온헬스케어 배당금이 200억 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서 회장은 2009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금융위기를 맞닥뜨린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했다. “나도 한때 실직자였고 이는 좋은 경험이 아니었다. 하지만 실직이 하나의 좋은 기회였다. 이제 수많은 사람들이 신선하면서 혁신적인 일들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경제 위기는 변화를 위해 중요한 밑거름으로 작용할 것이다. 붕괴는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큰 도약을 하기 전에는 항상 위기가 찾아오게 마련이다.” 서 회장은 1998년 외환위기 속에 실직하고 2002년 셀트리온을 설립했다. 2008년 금융 위기가 지나간 지 4년이 지나 이제 2012년이 됐다.


함승민 기자 hamquixot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