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000년 전 말기 동로마 제국의 또 다른 이름인 비잔틴 제국은 몰락의 직전에 국채를 신기한 방법으로 발행했다. 당시는 국가가 발행하는 유가증권 형태의 채권이 없었다. 이때 비잔틴 제국이 국채를 대신해 팔았던 것이 공직이다.


11세기의 비잔틴 제국은 진퇴양난에 빠져 있었다. 주변국의 위협은 계속되는데 병력 자원인 농민들은 도망간 상태라 결국 용병을 구해서 전쟁을 치러야 했다. 용병을 고용하는 대가로 지급한 것이 금화다. 당시 보통의 금화는 순금으로 만들었고, 황제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재정이 부족해 비용 압박이 심했던 11세기 비잔틴 제국은 금화의 순금 함량을 줄이기 시작한다. 당연히 금화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졌고, 이에 정부에서는 고민하게 된다. 일종의 통화 위기가 온 것이다.
비잔틴 제국과 유럽 재정위기
재정위기 극복을 위해 관직을 판 비잔틴 제국

화폐가치의 하락은 비잔틴 제국의 무역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비잔틴 제국은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실크로드선상에서 중개무역을 통해 이익을 취하는 상황이었는데, 화폐가치의 하락은 결국 수출입에 불리한 환경을 만들었다.

재정 확보라는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관직을 팔기 시작한다. 그런데 관직을 판 구조가 무척 흥미롭다. 관직을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일정 금액을 정부에 지불하면 명예관직을 얻게 되고 일정 기간 동안 공무원 연금을 받게 되는 것이다.

지불 금액은 현재 연금의 20배에 해당했는데 결국에는 일시불로 내고 죽을 때까지 연금을 받아가는 형태였다. 일종의 국채 매입에 가까운 효과를 얻을 수 있는데, 금리는 연 5% 정도 됐던 것 같다. 금전적인 이득과 함께 황제 휘하의 관직에 오르면서 신분 상승의 효과도 얻을 수 있었다.

높은 신분과 함께 연금을 받으면서 수익도 누리니 일석이조인 셈이었다. 따라서 돈 좀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매력적이고 안전한 투자처로 각광을 받았다. 문제는 금화의 순금 함량이 갈수록 줄어들면서 더 많은 연금을 요구하게 됐고, 그 해결 방법으로 승진과 동시에 연금을 올려 주었다는 점이다. 자연 나라에 고위 공직자가 넘쳐 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게 됐다. 나중에는 관직의 수를 늘리는 데 한계에 봉착하고, 승진도 한계에 부딪혔다. 금화의 순금 함량을 줄이는 것도 한계에 이르러 결국 비잔틴 제국은 국가 부도 상태에 직면하게 됐다.

이후 비잔틴 제국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고 그 오스만 제국은 그리스 지역을 400년 가까이 지배하게 된다. 그리스 로마 문명의 발상지 그리스가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하게 된 것은 1800년대 초에 이르러서다. 400여 년 만에 독립한 그리스는 최근 유럽연합(EU) 국가로 가입됐다. 그런 그리스가 지금 엄청난 재정위기에 봉착해 전 유럽을 위협하고 있다. 현재 그리스를 보면 마치 재정위기에 처한 비잔틴 제국을 떠올리게 한다. 현재 그리스가 처한 위기를 제대로 파악을 하기 위해 필자는 최근 일주일에 걸쳐 런던과 아테네를 다녀왔다.


유럽 금융위기의 본질

우선, 런던에서 8개 정도의 투자기관과 미팅을 했다. 대부분 금융투자자로 부동산 펀드, 채권 펀드, 메자닌대출(mezzanine financing) 펀드, 투자은행(IB) 등 다양한 성격의 기관들이었다. 그들과 미팅을 하면서 현재 유럽 금융위기의 원인과 현실에 대해 간단히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유럽 국가들의 총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미국의 GDP 규모와 유사하다. 그런데 유럽계 은행들의 총자산 규모는 36조 유로로 미국 은행들의 자산 규모인 12조 달러에 비해 3배가 넘는다.

이는 유럽의 은행들이 과도한 레버리지를 사용했으며 과도한 대출 및 투자를 했다는 반증이다. 유럽 은행들은 그 엄청난 자산을 줄여나가야 하는 상황이고 동시에 자본을 충족해야 하는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따라서 신규 대출은 고사하고 기존의 대출 회수와 부실자산의 조기 매각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유럽계 은행들은 미국계 은행들과 달리 자산의 매각 속도와 절차가 그다지 명쾌하지 못한 단점이 있다. 아무래도 여러 국가들의 연합이다 보니 관계 당사자국들 간의 이해 조율이 사전에 해결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십수 년 전 아시아의 금융위기 때 외국의 투자자들이 한국에서 많은 수익을 거두었던 것처럼 상황이 바뀌어 지금의 우리에게는 어떤 투자 기회가 있을까 고민해 보았다. 여러 기회가 손에 잡히는 듯 했지만 크게 두 가지로 접근, 정리해 보았다.

첫째는 은행들의 신규 여신이 동결됐거나 녹록지 않고 또한 기존 대출의 리파이낸싱의 수요가 많은 상황이기도 하기에 그쪽의 시장 자금 수요·공급 불일치(capital market dislocation)를 활용한 채권 투자의 기회가 보인다. 예를 들어 메자닌 트렌치(mezzanine trenche) 투자는 과거에 비해 에퀴티(equity)의 후순위 비중은 늘어나서 신용 보강이 충실해진 반면 표면금리를 포함한 토털 일드(total yield)는 많이 올라가서 상대적 수익성은 더 좋아진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은행을 포함한 금융기관들이 건전성 규제안인 바젤3와 같은 이슈와 디레버리지를 해야 하는 절박함 때문에 부동산과 같은 비핵심자산과 부실채권(NPL) 등의 자산을 매각하는 절차를 시작하고 있다. 그러한 부실자산을 풀(pool)로 인수하거나 부실자산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유동화 증권에 투자하는 것이다.



재정위기에 직면한 그리스가 시사하는 점

런던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그리스 아테네로 넘어갔다. 아테네신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고속도로는 토요일 저녁이라서 그런지 매우 한산해 보였다. 운전기사에게 물었더니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위해서 새로 건설한 고속도로이고 공항과 아테네 시내를 직접 연결했기에 교통량이 많지 않으며 또한 11월부터 2월은 관광비수기라서 도로가 붐비지 않는다고 답했다.

다음 날 일정을 시작하면서 느낀 아테네 시내는 왠지 유럽 국가의 도시 같지 않고 중동의 어느 도시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낡은 건물과 도로 상태도 열악했으며 차량들도 오래된 모델이 더 많아서 현대적인 느낌은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20년 전 뉴욕 브루클린에서나 볼 수 있는 신호등에 정차한 차량의 유리창을 닦아주며 돈을 요구하는 광경을 보면서 과거의 영화(榮華)에 젖어 현실에 충실치 못한 국민처럼 보이는 것은 과도한 오해일까라고 자문해 봤다.

그리스의 이슈는 명약관화(明若觀火)했다. 어쩌면 비잔틴 제국의 상황처럼 보이기도 했다. 거대한 재정을 퍼부으며 올림픽을 치르는 과정에 재정이 악화됐고 퇴직 후 지급하는 연금이 퇴직 전 급여의 95%에 달하는 지급률을 보이는 과도한 사회보장책도 재정위기의 원인이었다. 이에 비해 재정 지출을 감당할 만한 변변한 제조 기반이나 국가 기반 산업 없이 관광과 농업 수입에 의존하는 취약한 산업구조를 가진 것이 그리스의 현실이다.

EU 가입을 통해 재정 적자를 회복하면서 속된 말로 EU에 묻어가려는 전략을 폈으나 경쟁력을 이미 잃은 상황에서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가장 먼저 맞을 수밖에 없어 보였다. EU의 맹주이자 선진국인 독일과 프랑스만 바라보고 있는 입장에서 국가적 차원의 구조조정 압박을 받고 있고 지금까지 지원받은 500억 유로를 갚아야 하기에 있는 것 없는 것 다 팔아야 할 상황이 된 듯하다.

우선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시행할 예정인데 2012년 초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몇 개 대상 기업의 경영진을 만날 기회가 있어서 면담을 해 보았는데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섞여 있어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었다. 부정적인 면 중 하나로는 공공부문의 비효율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모 대기업 지사장 말에 의하면 공무원은 오후 2시가 지나면 퇴근한다고 한다.

향후 구조조정과 사업 재편을 제대로 수행할 역량이 될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하는 대목이다. 반면 긍정적인 면이라면 민영화 대상 기업 중 알짜 기업의 성격을 지닌 것도 꽤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잘 사면 돈 좀 되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십수 년 전 한국의 금융위기를 생각해 보면 유추가 가능할 것이다.

아무튼 유럽의 위기는 아시아에도 전도효과가 있기에 빨리 마무리되고 전 세계가 견조한 성장세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 동시에 나름 우리는 눈을 부릅뜨고 유럽에서 몇 개 건져 돈 좀 벌어도 좋을 듯하다.

그리스의 신전에 올빼미가 부조로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왜 그런지 물었더니 올빼미가 조류 중에서 유일하게 두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사물을 관찰한다고 한다. 다른 조류는 눈이 옆으로 퍼져서 한 눈으로만 정면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현명하고 이성적인 판단의 상징으로 올빼미를 좋아하는데, 그 명칭이 ‘미네르바’라고 했다. 미네르바…. 많이 들은 이름인데 우리가 미네르바가 되면 좋은 투자를 할 수도 있겠다 싶다.


부실자산 투자는 복잡한

법적문제 및 채권자와의 이해관계

조율 등이 화두이기에 현지

시장을 잘 아는 전문가와

파트너십을 맺는 게 관건이다.



일러스트·추덕영

이동훈 삼정투자자문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