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살메르


인도 서부 라자스탄 지방에는 사막 특유의 강렬한 색감을 자랑하는 도시가 세 곳 있다. 브라만 계급임을 나타내는 푸른색이 도시의 상징이 된 ‘블루 시티’ 조드푸르, 18세기 도시를 건설하면서 거리를 온통 분홍빛으로 칠해버린 ‘핑크 시티’ 자이푸르, 그리고 오후 햇살에 황금으로 빛나는 성이 눈길을 끄는 ‘골든 시티’ 자이살메르가 그곳이다.
[The Explorer] 사막 황금 도시의 밀리언 스타 호텔 Jaisalmer
모래바람이 먼저 반겼다. 인도의 사막 도시 자이살메르로 가는 기차 안. 도착은 아직 2시간이나 남았는데 딱딱한 의자에는 벌써 모래가 수북하다. 에어컨도 안 나오는 싸구려 2등칸의 승객들은 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 창 밖 풍경만 노려보고 있었다.

창문을 닫고 사막의 열기에 쪄 죽느니 모두들 모래바람을 견디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그까짓(?) 6시간쯤, 사람들 틈에 끼어 서서 갈 수도 있는 시간인데’ 하는 생각에 에어컨 좌석을 사라는 다른 여행자의 충고를 무시한 것이 이렇게 톡톡히 대가를 치를 줄이야. 수십 시간이 넘는 기차며 버스 여행에 이골이 났다고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다.
1 노란 사암으로 켜켜이 쌓아 햇빛을 받으면 황금색으로 빛나는 자이살메르 성. 근처에 지금도 사암을 캐내고 있는 채석장이 있다.
1 노란 사암으로 켜켜이 쌓아 햇빛을 받으면 황금색으로 빛나는 자이살메르 성. 근처에 지금도 사암을 캐내고 있는 채석장이 있다.
모래바람에 숨을 헐떡이며 도착한 자이살메르 역. 조그만 간이역 너머로 사막의 황량한 풍경이 펼쳐졌다. ‘음, 그래도 고생한 보람이 있군’ 하며 막 감동하면서 역사(驛舍)를 나서려는데 앞서 나갔던 친구가 기겁을 하며 돌아왔다. 좁은 역 마당에 사막의 모래만큼이나 많은 호객꾼들이 몰려 있단다. 파키스탄과의 전쟁으로 국경이 막히면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하던 자이살메르는 오로지 군인과 관광객으로 먹고 사는 도시가 된 탓이었다.

그나마 역사 안으로는 못 들어오게 경찰이 막고 있어 다행이었다. 다른 여행자들도 전전긍긍, 저마다 자기 나라 말로 뭔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뭐, 기다려 봐야 무슨 대책이 있나. 하나 둘 여행자들은 호객꾼을 따라, 혹은 뿌리치며 역사를 떠났다. 우리는 새로 만난 한국 여행자 둘이 열차표 예매하는 것을 기다리기로 했다. 이럴 때일수록 뭉쳐야 사는 법이다.
2 성 안의 건물들도 모두 사암으로 지었다. 금빛 색깔도 눈길을 끌지만, 무른 사암을 떡 주무르듯 빚어 만든 다양한 문양과 조각들이 여행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2 성 안의 건물들도 모두 사암으로 지었다. 금빛 색깔도 눈길을 끌지만, 무른 사암을 떡 주무르듯 빚어 만든 다양한 문양과 조각들이 여행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때였다. 멋진 인도 아저씨 한 분이 들어와 내 옆에 앉더니 다짜고짜 “아이고, 더워 죽겠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억양까지 완벽한 한국말이었다. 그러더니 소매를 걷어 팔목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한글로 ‘폴루’라고 새겨져 있었다. 이 아저씨가 바로 타이타닉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장이었다. 여행길에 만난 한국 친구한테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자이살메르에 ‘폴루’란 사람이 있는데, 자기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한국인들한테 인기를 얻자 가짜 폴루들이 너무 많이 생겨 아예 팔뚝에 한글로 문신을 새겼다고. 그래도 눈으로 직접 보니 약간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아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해서 먹고 살겠다고 하는데, 우리가 다른 곳에 갈 수야 있나. 더구나 많은 한국인 여행자들이 추천하는데. 그렇게 해서 우리 둘, 그리고 다른 한국 여행자 둘이 폴루 아저씨를 따라 타이타닉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방은 좁고 지저분했지만 ‘인도 평균’보다는 조금 나았다. 더구나 이 동네 숙소들은 낙타 사파리를 하는 조건으로 방값을 따로 받지 않는다. 대부분 비어 있는 객실을 지나 옥상의 레스토랑으로 올라가니 여러 해 단골이라는 독일 의사 아저씨 한 분이 늦은 점심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도착한 날은 하루 쉬고, 다음 날 ‘엉덩이에 물집 잡힌다’는 낙타 사파리에 나섰다.
3 골목에서 만난 사막의 아이들. 암만 봐도 부유한 형편으로 보이진 않지만 미소 하나만큼은 세계 어느 나라 애들과 비겨도 뒤지지 않는다.
3 골목에서 만난 사막의 아이들. 암만 봐도 부유한 형편으로 보이진 않지만 미소 하나만큼은 세계 어느 나라 애들과 비겨도 뒤지지 않는다.
4 일몰 후 성에는 노란 조명이 켜진다. 햇빛 아래서와는 다른 색깔의 황금성 거리에는 개와 소들이 어슬렁거린다.
4 일몰 후 성에는 노란 조명이 켜진다. 햇빛 아래서와는 다른 색깔의 황금성 거리에는 개와 소들이 어슬렁거린다.
‘사막의 콜라 판매원’을 만나다

1박 2일.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낙타를 타고 사막의 타는 햇볕 속을 가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가까이에서 본 낙타는 생각보다 더 온순한 동물이었다. 커다랗고 맑은 눈망울에 사람 손가락 길이만한 속눈썹, 앉기 위해서는 세 번이나 접어야 하는 가늘고 긴 다리.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막의 모래 바닥에도 거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부드럽고 두툼한 발굽이었다. 한 조각 떼어서 입에 넣는다면 치즈케이크처럼 부드럽게 녹아 내릴 것만 같았다.

낙타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여행 중에 여러 번 타본 말과는 그 높이부터가 달랐다. 하지만 신기하고 색다른 느낌도 잠시, 뱃멀미보다 더 심하다는 낙타 멀미에 앞서 찾아온 것은 사타구니의 뻐근한 느낌이었다. 마치 예전 체육시간에 다리 벌리기를 하는 중에 선생님이 위에서 내 어깨를 지그시 내리누르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런 은근한 고통이 여러 시간 계속 되니 점점 통증이 심해진다. 쉬는 시간에 낙타에서 내려도 누군가 다리 양쪽을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은 계속됐다.
5 손마다 작은 보따리를 들고 사막의 모래언덕을 넘어가는 아버지와 딸. 그들이 새겨놓은 발자국이 모래 위에 선명하다.
5 손마다 작은 보따리를 들고 사막의 모래언덕을 넘어가는 아버지와 딸. 그들이 새겨놓은 발자국이 모래 위에 선명하다.
다음으로 찾아온 것은 찌는 듯한 더위였다. 잠시 선선했던 아침 바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사막의 태양은 머리 꼭대기에서 이글거리고 있었다. 마을에서 시작한 풍경은 광야를 지나 사막으로 변하고 있었고, 수건으로 꽁꽁 싸매 두었던 얼음물도 어느새 미지근한 물이 돼버렸다. 쉬는 시간에 낙타에서 내려도 햇볕을 피할 그늘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멀리 모래언덕에서 낯선 아저씨가 젖은 거적으로 싼 보따리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그는 익숙한 듯 낙타 사파리 가이드와 인사를 한 후 우리에게 다가와 아는 척을 하고는 거적 보따리를 풀었다. 거기에는 놀랍게도 시원한 콜라가 하나 가득 들어 있었다. 사막의 콜라 판매원이라. 마을에서 사막까지 걸어서 1시간도 안 걸리는 자이살메르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6 한 동네 소년이 노을을 배경으로 우리네 해금과 비슷한 인도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 악기가 실크로드를 타고 중국으로 가서 ‘얼후’가, 마침내 한반도로 와서 해금이 됐을 거다.
6 한 동네 소년이 노을을 배경으로 우리네 해금과 비슷한 인도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 악기가 실크로드를 타고 중국으로 가서 ‘얼후’가, 마침내 한반도로 와서 해금이 됐을 거다.
뜨거운 사막의 태양 아래에서 톡 쏘는 콜라를 시원하게 마시니 앞으로도 3박 4일쯤은 더 낙타를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만 우리만 먹을 수 있나, 가이드 아저씨도 한 병. 고마워하며 단숨에 콜라를 비운 가이드는 사막의 모래바람을 맞으며 점심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돌을 쌓아 만든 화덕에 차파티(크고 넓적한 인도식 밀가루 전병)를 굽고, 가지고 온 재료로 커리를 만들었다. 입에서 음식물뿐 아니라 모래도 버적버적 씹혔지만, 이게 바로 사막의 양념이려니 생각하고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잠시 쉬었다 다시 출발. 본격적인 사막의 모래언덕으로 접어드는데 사방이 어둑어둑 흐려진다. ‘아직 해가 지려면 멀었는데, 사막도 날씨가 흐릴 수 있구나.’ 조금 있으니 한두 방울 비가 떨어진다. 사막에 웬 비냐고 가이드에게 물으니 자이살메르의 사막에도 1년에 서너 차례 이상 비가 온단다. 그 덕분에 사막의 태양이 얼굴을 감춰버려 자못 시원한 낙타 사파리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더니 나중에는 아주 퍼붓듯이 비가 쏟아졌다. ‘허, 사막에서 소나기를 만나다니.’ 다행히 저녁에는 비가 그쳐 모래언덕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울도 담도 천장도 없는 사막의 ‘밀리언 스타 호텔’에는 수백만 개의 별빛만이 찬란했다.
7 새로운 눈높이에서 세상을 보는 즐거움도 잠시, 사막의 낙타 사파리는 멀미보다 뻐근한 사타구니의 통증이 먼저 찾아온다.
7 새로운 눈높이에서 세상을 보는 즐거움도 잠시, 사막의 낙타 사파리는 멀미보다 뻐근한 사타구니의 통증이 먼저 찾아온다.
8 호수 위에 떠 있는 정자 모양의 ‘가트’. 인도인들은 가트를 통해 강이나 호수에 들어가 목욕을 하며, 몸뿐만 아니라 영혼의 때까지도 깨끗이 씻는다.
8 호수 위에 떠 있는 정자 모양의 ‘가트’. 인도인들은 가트를 통해 강이나 호수에 들어가 목욕을 하며, 몸뿐만 아니라 영혼의 때까지도 깨끗이 씻는다.
9 광야의 까마귀가 일몰을 바라보고 있다. 하루가 저물면 까마귀들은 광야의 덤불 속으로 찾아들 것이다.
9 광야의 까마귀가 일몰을 바라보고 있다. 하루가 저물면 까마귀들은 광야의 덤불 속으로 찾아들 것이다.
10 인도의 성 안에는 마라하자(영주)가 산다.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이들을 둘러싼 이야기도 많다.
10 인도의 성 안에는 마라하자(영주)가 산다.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이들을 둘러싼 이야기도 많다.
처럼 이들을 둘러싼 이야기도 많다.">


Jaisalmer info
How to Get There

물론 인천국제공항에서 자이살메르까지 가는 직항은 없다. 인도의 수도 뉴델리까지 비행기로 간 후, 그곳에서 다시 자이살메르로 이동해야 한다. 아시아나항공이 직항을 운행하며 7시간 정도 걸린다. 뉴델리에서 자이살메르까지는 기차로 20시간 가까이 걸린다. 보통은 그 중간에 있는 아그라와 조드푸르, 자이푸르를 거쳐 자이살메르로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Where to Stay

작은 도시지만 관광지답게 수백 개의 호텔이 있다. 자이살메르의 호텔은 크게 성 안과 밖으로 구별되는데, 성 안에는 중급과 고급 호텔들이, 밖에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들이 많다. 각종 호텔 예약 사이트를 이용하면 한국에서도 쉽게 예약이 가능하다.



Another Site

뉴델리에서 자이살메르로 가는 중에 꼭 보아야 할 곳이 몇 군데 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세계문화유산 타지마할로 유명한 아그라, 인디고 블루로 색칠한 집들이 도시 전체를 파랗게 채우고 있는 조드푸르, 건물뿐 아니라 거리 전체가 핑크 빛으로 물든 자이푸르가 그곳들이다.
[The Explorer] 사막 황금 도시의 밀리언 스타 호텔 Jaisalmer
글·사진 구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