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안철수의 빛과 그림자

‘국민 멘토’ 안철수. 그가 유지하던 정치와의 평행선이 무너졌다. 정치라는 물에 아주 잠깐 발을 담갔을 뿐인데도 파장은 쓰나미가 됐고, 대한민국 정치는

그를 중심으로 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나설지는 아직 미지수. 선거의 해 2012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안철수’라는 인물을 파헤쳐본다.
‘정치인’ 안철수의 미래는?
역대 교과서에 두 명의 철수가 있다. 하나는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 첫머리에 등장하던 영희 친구 철수. 성은 알 수 없다. 또 다른 철수에게는 성이 있다. 안철수. 초·중·고 교과서에 주로 ‘멘토’,‘컴퓨터 전문 주치의’ 등으로 소개된다.

지금 대한민국은 두 번째 철수가 일으킨 바람으로 요동치고 있다. 그의 입김이 ‘그들만의 리그’라고 생각됐던 여의도 정가(政街)에 미치면서부터다.‘이쪽’,‘저쪽’상관없이 ‘윗분들’이 마뜩잖던 대중은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열광한다.

이제 시선을 끄는 것은 그의 다음 행보다. 과연 교과서 속 두 번째 철수가 ‘멘토’나 ‘컴퓨터 전문 주치의’가 아닌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으로 교과서에 등장할지를 두고 대한민국 정치가 들썩이고 있다.



지난해를 흔든 남자, 올해를 흔들 남자

2011년 10월 서울시장 재보선 선거 이후 정계의 관심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로 쏠려 있다. 그동안 정치와는 인연이 전무(全無)하던 그가 대중에게 새로운 정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안 원장은 지금까지 서울시장 출마를 시사했던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정계 진출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 오히려 ‘정치판과 거리두기’ 식의 행보다. 2011년 12월 1일신당창당설과 총선출마설을 모두 부인하며 스스로 선을 긋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직도 대한민국 정치의 핫 키워드는 ‘안철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2011년 11월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 결과, 안 원장은 30.9%를 기록, 전 한나라당 대표를 4.9%포인트 격차로 앞서면서 1위로 올라섰다. 안철수 신드롬이 난공불락 같던 박근혜 대세론의 벽을 일거에 무너뜨린 것이다. 사태가 이쯤 되니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안풍(安風)의 파괴력에 정가의 이목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안 원장의 정치 행보와 함께 증권가에서는 안철수주(株)가 요동쳤다. 2011년 10월 초 주당 3만 원대였던 안철수연구소 주식은 서울시장 출마설이 나온 이후 고공행진을 거듭해 10월 24일엔 주당 10만 원을 처음 찍었다. 이후 11월 14일 보유주식의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히면서 주가는 또다시 상승세를 탔다.

안 원장이 기부할 주식의 가치는 기부 발표 당시 1500억 원 정도로 평가됐으나 한 달도 되지 않아 2500억 대로 불어났다. 이에 12월 9일 안철수연구소는 “기업의 실적과 가치 이외의 기준으로 투자하는 것은 주주들의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며 투자를 자제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하기까지 했다.



‘탈정치’ 환경과 ‘성공 모델’ 캐릭터가 안철수의 비결
‘정치인’ 안철수의 미래는?
전문가들은 안철수 신드롬의 배경을 크게 두 가지로 분석한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대중의 염증과 안 원장이 갖고 있는 롤모델로서의 인기 측면이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학과 교수는 “제도정치에 대한 혐오가 워낙 크기 때문에 제도정치와 거리가 있는 사람 중에서 인지도가 있는 사람, 그러면서도 현대인의 감성코드를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으로 안 원장이 부각됐다”면서도 “성공한 경영인으로서 세속적인 측면에서도 대중의 롤모델로 적합한 점 역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앤리서치의 배종찬 본부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은 ‘셀프스탠딩(self-standing)’의 이미지를 유권자에게 심어줬느냐가 중요합니다. 안 원장은 박근혜 전 대표나 정몽준 전 대표에게 없는 셀프스탠딩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여기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청춘콘서트>를 통해서 모든 대권주자가 바라마지 않을 정치적 모멘텀까지 획득했죠. 이런 면에서 안 원장은 모든 것을 갖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유권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무당파(無黨派)를 흡수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안 원장 지지층의 프로파일은 20~40대 초반까지의 화이트컬러 직장인 또는 학생이다. 무당파로 여겨지던 이들이다. 여기에 “현 집권세력이 그 어떤 정치적 확장성을 가지는 것에 반대한다”고 발언하면서 반(反) MB, 반한나라당을 기치로 한 진보층도 아울렀다.



“원칙 지키고 책임감 강한 성격”

안 원장은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데 비해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휴대전화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이메일로 대부분의 업무를 처리한다. 기자들의 질문에 ‘미소’만으로 대응해 ‘신비주의’라는 말도 나온다. 안철수는 어떤 사람일까.

취재 중에 만난 안 원장 지인들의 평가는 대체로 일치했다. ‘합리적이고 책임감이 강하며, 원칙주의자면서 내성적인 성격’이라는 것. 안 원장의 서울대 동창인 한 의사는 “대학 시절 안철수는 모범생이었고 머리가 매우 좋았다. 흠 잡을 곳이 거의 없는 사람이지만, 사람을 많이 사귀지는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안 원장의 부친인 안영모 원장은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내성적이고 온순하다. 그런데 원칙에서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절대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

안철수연구소 창립 시절부터 안 원장과 함께해온 조시행 안철수연구소 상무는 이렇게 회상했다.

“대중매체에 비춰진 이미지와 거의 같아요. 실제로 모든 사람들한테 존대를 하죠. 누구한테든 반말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또 논리적이고 굉장히 원칙주의자예요. 사업을 하다 보면 돌아가는 길도 있게 마련이고 주위에서 그렇게 권유할 때도 있는데 원칙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하지 않아요.”

안 원장은 특히 약속에 대해 강한 의무감을 느끼는 편이라고 한다. 안 원장의 관악초청강연 내용을 엮은 책 <안철수 경영의 원칙>에서 비인간적 스케줄을 소화하는 비법을 묻는 질문에 “제가 책임감은 강한데, 그냥 풀어 놓으면 한없이 게을러질 수 있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이용해서 대외적인 약속을 해요”라고 대답했다. 모르는 분야에 무리한 약속을 하고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하든지 그것을 공부하는 식으로 자기관리를 한다는 것.
2011년 9월 국회 국정감사 중 한 의원이 노트북에 안 원장의 사진을 띄어놓고 있다
2011년 9월 국회 국정감사 중 한 의원이 노트북에 안 원장의 사진을 띄어놓고 있다
“사회적 발언 잦아졌다”

또 다른 안철수연구소 관계자는 그를 이렇게 표현했다. “자기 절제력이 굉장히 강하신 분이에요. 한 방송에 나가셨을 때 패널로 있던 정신과 선생님은 안 원장에 대해 ‘자기 절제 때문에 스트레스가 크다’고 하시더군요. 하고 싶은 얘기도 열 번 참았다가 한 번 얘기하는 스타일이죠. 화내는 일도 없이 늘 똑같이 조곤조곤 말하고,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은 ‘이 방향이 어떠냐’고 넌지시 말하는 편이세요. 그리고 즉흥적인 것이 거의 없어요. 고민을 많이 하고 본인이 모르면 깊은 곳까지 공부하고 얘기하세요. 술도 안 드시는데 와인이나 술에 대한 것은 공부를 해서 많이 아시더라고요.”

알려진 바에 의하면 안 원장은 술을 거의 하지 않는다. 16년 전부터 알고 지낸 조 상무도 안 원장과 ‘건배’를 해본 기억은 오래전 독일 출장 중 반주로 먹던 맥주 300cc 잔을 한 번 부딪쳤던 것이 전부라고 할 정도다. 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그가 원래 술을 못 마시진 않는데 회사를 창업한 이후로는 건강 때문인지 시간이 없어서인지 잘 마시지 않는다고 한다.

주변인이 보는 안 원장의 가장 큰 변화는 그의 사회적 발언이 과거보다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조 상무는 “‘벤처기업 95%는 망한다’ 등 사회적인 발언 자체를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최근 발언의 빈도가 잦아진 것만은 사실이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원장이 본격적으로 정치를 할지에 대한 질문에는 가까운 지인들도 하나같이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워낙 스스로의 확신이 없으면 표현하지 않는 성격이고, 이미 두 차례 파격적인 변신(의사에서 CEO로, CEO에서 학자로)을 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만 그가 정계 진출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그의 말대로 ‘잘할 수 있는 일인지, 의미 있는 일인지’를 두고 엄청난 자기 싸움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주변인들의 반응이었다.

그러나 주위의 강권(强勸)이 안 원장의 결심에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지인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조 상무는 “고민을 하고는 있겠지만 주위의 권유에는 흔들리지 않고 결국 자신의 결심대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한 지인은 “사회에 빚을 갚는다는 부채의식이 있는 사람이라 주위에서 ‘네가 나서야 한다’는 식으로 사명감을 자극하면 외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전했다.
서울시장 보선을 계기로 정가의 이목이 안철수 원장에게 쏠려 있다.
서울시장 보선을 계기로 정가의 이목이 안철수 원장에게 쏠려 있다.
정치인 안철수, 성공할까?

만약 안 원장이 정계 전면에 등장한다면 정치인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안철수 경영의 원칙>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차가운 머리’라고 하면 현실에 대해서 정말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고, ‘뜨거운 가슴’이라면 자신과 미래에 대해서 열정과 믿음을 가지는 마음가짐인 것 같아요. 차가운 머리가 아니라 뜨거운 머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뜨거운 머리란 현실에 근거하지 않은 막연한 낙관인데, 그것만큼 사람을 충동하고 힘을 주는 것은 없지요. …(중략)… 항상 어려운 시기는 긴 법인데, 뜨거운 머리는 순간적으로는 힘을 주긴 하지만 기나긴 어려운 시기를 버텨나가게 하지는 못해요.”

‘정치인 안철수’의 성공에 대해 비관적으로 보는 의견의 핵심은 대중의 안 원장에 대한 지지가 그 자신이 말한 ‘뜨거운 머리’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심대평 자유선진당 대표는 “안 원장이 대중의 소리에 귀 기울여 아픔을 달래줄 수는 있지만, 국민의 욕구를 현실 정치에 반영해서 정책을 실현하게 될지는 미지수”라고 얘기했다.

또한 윤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다. “안철수 신드롬은 안 원장이 비(非) 기성 정치권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만약 지금 상황에서 정계에 진출하려 한다면 제3세력을 규합해야 하는데, 기성 정치권과 거리를 두면서도 사회적 영향력과 정치적 동원력을 갖춘 세력을 만들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배 본부장은 “신당 창당과 총선 출마를 부인하면서 총선이 마무리되는 2012년 7월까지는 자신의 정치 움직임에 족쇄를 채운 것과 마찬가지”라며 “총선에 참여하지 않은 안 원장이, 총선을 끝낸 정당들이 대권주자를 추리는 과정에 참여하기 힘들고, 지지층을 유지·관리할 액션이 없다면 유권자는 대안을 찾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 원장의 내성적 성격상 정치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사자와 여우’의 속성을 가질 수도 있어야 하는 정치판에서 안 원장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다. “제 아무리 용빼는 재주가 있어도 저 진창에서 어쩔 수 있겠냐”는 식이다.

실제로 여론조사에 의하면 절반을 넘는 응답자가 ‘안 원장이 대선에 출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혹자는 경영인으로서 성공한 경험이 행정수장 역할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하지만, 그 같은 생각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현 정권에서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많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기존 정치인 중 대안이 없다는 사실은 여전하다. 취재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일화를 들을 수 있었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안철수 신드롬에 대한 토론수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이 토론에서 대부분 안 원장을 지지할 것 같던 대학생들이 오히려 “안철수가 진정한 의미에서 정견이나 이슈에 대한 의사표현을 한 적이 없지 않느냐”며 그의 행보를 곱게만 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 여론조사 지지는 왜 그렇게 높은가”라는 질문에 이들은 “그래도 막상 투표소에서 ‘이 중’고르라고 하면 안철수를 찍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안 원장이 직접 나서지 않고 정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특히 총선 시즌이 되면 이른바 ‘자칭 안철수 아바타’가 우후죽순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저는 안철수 원장과 생각이 다르지 않습니다’라고 주장하는 후보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때까지 안 원장이 정계 진출을 고민하고 있다면, 또 ‘안철수 아바타’가 성공한다면, 그것을 보는 안 원장이 어떤 생각을 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12월 1일 안철수 연구소에서 안 원장은 “신당 창당이나 강남 출마에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12월 1일 안철수 연구소에서 안 원장은 “신당 창당이나 강남 출마에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서울대 의학 박사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학 석사
1995~2005년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
2008~2011년 KAIST 기술경영대학원 정문술 석좌교수

글 함승민 기자 hamquixote@hankyung.com 사진 제공 한국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