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뉴욕의 한식당‘단지(Danji)’가 한식당으로서는 최초로 뉴욕판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원 스타를 획득해 화제를 모았다. 매우 기뻐할 일이지만 미슐랭 스리 스타를 받은 마사(MASA)를 비롯, 9개 식당을 미슐랭 가이드에 올린 일본과 비교했을 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하겠다.
미슐랭 가이드는 맛뿐만 아니라 분위기, 서비스 수준까지 반영해 레스토랑을 평가한다. 이는 서구인들의 식사문화를 잘 보여주는 평가 방식이다. 서구인들에게 있어 식사란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닌 ‘천천히 식사를 즐기며 와인을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 일종의 문화’다. 많은 유럽인들은 와인을‘알코올음료’가 아닌 식사 속의 일부로 여긴다. 특히 파인 다이닝 정찬에는 와인이 빠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제대로 된 와인과 함께 음식을 즐길 때 그 맛이 극대화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와인 수입사의 최고경영자(CEO)로서 필자는 한식과 와인의 접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와인메이커가 방한하면 한식당에 함께 가 음식을 먹으며 와인과의 매칭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눈다. 소비자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한식당에서 와인메이커스 디너를 개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한식과 와인을 함께 맛본 이들의 반응은 어떨까. 결론은‘매우 훌륭하다’는 것이다.
외국인들이 특히 좋아하는 갈비구이나 떡갈비 요리는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의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과 훌륭한 궁합을 보여준다.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태양을 받고 자라난 포도로 양조하기 때문에 과일 풍미가 좋고 살짝 달콤한 맛이 있어 역시 달콤한 양념을 가미한 한국의 갈비 요리와 잘 어울리는 것이다. 게다가 와인에서 느껴지는 타닌(떫은맛)이 고기의 식감을 더욱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한국을 대표하는 비빔밥 요리에는 소비뇽 블랑 품종이 아주 잘 어울린다. 소비뇽 블랑의 청량한 맛이 비빔밥의 매콤한 고추장 맛을 상쇄시켜 주기 때문에 매운맛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들에게 권할 만하다.
한식이 와인과 훌륭한 조화를 보여준다는 점은 와인을 늘 접하는 서양인들에게 크게 어필할 만한 부분이나 한식과 와인에 대한 연구나 홍보는 아직까지 미비한 수준이다. 정부가 수억 원을 들여 한식재단을 설립하고 한식 세계화에 힘쓰고 있지만, 와인과 한식의 매칭에 대한 연구는 간과돼 있어 안타깝다. 한식과 와인의 매칭에 대해 연구한 논문이나 책도 찾아보기 어렵다. 수천 년 역사 속에서 다양한 시도와 경험을 통해 음식과 와인의 매칭이 정교화된 유럽과 달리 우리는 갈 길이 멀다. 정부 차원에서 본격적인 연구와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식당들도 와인의 중요성을 간파해야 한다. 한식 메뉴별로 어울리는 와인을 찾아내고 와인과 궁합이 맞도록 음식 맛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실례로 한국계 셰프 데이비드 장이 운영하는 뉴욕 소재 유명 레스토랑 ‘모모푸쿠(Momofuku)’에서는 가래떡의 겉면을 바삭하게 구운 뒤 떡볶이를 만들어 내놓았는데, 서구인들이 싫어하는 질긴 식감을 잡아주면서도 리슬링 와인과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린다는 것이 알려져 뉴욕 소믈리에들 사이에서는 이 음식과 리슬링 와인을 즐기러 모모푸쿠에 가는 것이 유행이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다. 외국인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메뉴를 내놓고 그와 잘 어울리는 와인을 함께 홍보한다면 얼마든지 그들을 한식당으로 이끌 수 있다는 얘기다. 한식 세계화는 수 년째 거듭되고 있는 국가적 화두다. 그리고 우리는 한식당으로서는 최초로 뉴욕의 미슐랭 스타 획득이라는 성과를 얻었다. 한식당도 세계적 명성의 레스토랑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많은 연구와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 한식과 와인의 매칭에 대한 연구 또한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다. 와인과 한식의 매칭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홍보를 통해 한식의 세계화와 고급화에 한 걸음 더 다가가길 기대해본다.
윤영규_나라셀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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