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수 대성창업투자 대표

대성창업투자는 지금까지 12개 펀드를 청산하며 모두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한, 잘나가는 벤처캐피털이다. 벤처 투자뿐 아니라 콘텐츠 투자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대성창투의 서학수 대표를 만나 성공의 법칙을 찾아본다.
대성창투 서학수 대표(왼쪽)와 콘텐츠 본부를 책임지고 있는 박근진 상무
대성창투 서학수 대표(왼쪽)와 콘텐츠 본부를 책임지고 있는 박근진 상무
서학수 대성창업투자(이하 대성창투) 대표는 대한증권(현 교보증권) 경제연구실을 거쳐 산은캐피탈의 전신인 한국기술금융에서 10년 동안 벤처 투자 업무를 담당한 벤처캐피털리스트다. 2000년부터 3년간 마일스톤벤처투자의 대표를 맡으면서 20여 개 업체에 투자해 그중 우주일렉트로닉스, 엘앤에프, 액토즈소프트 등 11개 업체가 상장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벤처캐피털리스트를 천직이라고 생각하는 서 대표가 대성창투에 합류한 것은 지난 2004년.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의 요청에 의해 최고투자책임자(CIO)로 벤처캐피털업계로 돌아왔다.

“제가 취임했을 때 이미 콘텐츠 펀드가 하나 결성돼 있었습니다. 대성은 에너지 기업이잖아요. 몸을 데우는 에너지회사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콘텐츠에 투자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죠.”

취임 당시 콘텐츠 펀드는 영화 <올드 보이>에 투자해 적잖은 수익을 올린 상태였다. 콘텐츠에 문외한이던 그는 그때부터 콘텐츠를 연구했다. 주말이면 혼자서 극장을 찾았다. 개봉하는 한국 영화는 거의 섭렵했다. 제대로 영화를 연구하려면 시나리오를 읽고, 영화를 봐야 하는데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영화를 봤다.

1년을 그렇게 보내고 났더니 어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지 감이 왔다. 개봉 초에 ‘얼마쯤 관객이 들겠다’ 예상하면 얼추 맞아떨어졌다. 영화를 보면 투자 규모가 어느 정도겠다는 감도 생겼다.



100% 이상의 수익 안겨준
<말아톤>, <미녀는 괴로워>


그런 과정을 거쳐 투자한 영화가 <괴물>, <말아톤>, <웰컴 투 동막골>, <작업의 정석>, <타짜>, <화려한 휴가>, <미녀는 괴로워> 등이다. 이들 영화는 대부분 50% 이상의 수익률을 안겨줬다. <말아톤>과 <미녀는 괴로워> 같은 영화는 100% 이상의 수익을 안겼다. <가문의 위기>는 수익률이 300% 이상이었다.

“<가문의 위기> 같은 영화는 내용은 별 것 없습니다. 그런데 추석이라는 시기와 딱 맞는 영화거든요. 추석 때는 아무 고민 없이 편하게 웃으며 볼 수 있는 영화가 결과가 좋습니다. 반면 <올드 보이> 같은 영화는 성격이 전혀 다르거든요. 영화는 시대를 타는 경향이 있는데, 그 트렌드를 잘 읽어야 하는 거죠.”

시기적으로 인기를 끄는 장르 또한 다르다. 날씨가 춥고 방학을 맞는 12월은 대작과 멜로 영화가, 무더운 여름에는 공포 영화가 제격이다. 추석에는 <가문의 위기> 같은 코미디물이 인기다.

영화 자체는 지나치게 심각하거나 코믹해도 흥행하기 어렵다. 한국인 특유의 한과 정을 담아내되, 적절한 유머가 섞여 있어야 흥행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인 게 <말아톤>과 <웰컴 투 동막골> 같은 영화다. 최근 대성창투는 영화와 함께 TV 드라마 투자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 영화가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대성창투의 경우 영화 투자로 재미를 봤지만 실제 영화 투자는 빛 좋은 개살구인 경우가 흔하다. 일반인들이 영화 투자 펀드를 만든 적도 있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한국 영화산업이 어려운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한국 영화를 소화할 시장 자체가 작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일본과 동남아 일부를 시장으로 해서는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1000억 원 이상 제작비를 들인 할리우드 영화와의 경쟁에서 이기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드라마로 눈을 돌렸습니다. <시크릿 가든>이 좋은 사례가 되겠네요. 우리가 메인 투자자로 25억 원을 투자했으니까요. <시크릿 가든>은 국내에서도 성공적이었고, 해외 판권도 꾸준히 나가는 중이라 아직도 자금을 회수하고 있습니다. 콘텐츠 투자는 <시크릿 가든>처럼 투자 시기와 방법에 따라 수익이 다양합니다. 영화 <화려한 휴가>는 2003년에 투자한 건데, 얼마 전 터키에 판권이 팔려서 지금도 자금을 회수하고 있거든요.”
‘No Risk, No Gain’의 법칙이 지배하는 벤처캐피털의 세계
현장 확인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사례

콘텐츠 투자에 비해 벤처 투자는 투자와 자금 회수가 한결 투명하다. 대성창투는 8개 펀드 중 벤처기업에 700억 원, 콘텐츠에 650억 원을 투자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벤처와 콘텐츠의 비율을 6 대 4로 가져갈 계획이다. 벤처 투자 성과도 콘텐츠 투자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취임 직후 투자를 결정한 터치패널 전문 업체 디지텍시스템스는 3년 만에 2708%라는 수익률을 기록했다. 서 대표는 그 직후 같은 업종의 모린스에도 15억 원을 투자해 2년 만에 52억 원을 벌어들였다.

서 대표는 투자를 검토할 때 현장 확인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30대 초반 한 회사에 20억 원을 투자했다 기업공개(IPO) 직후 부도를 당한 뼈아픈 경험 이후 투자에 앞서 현장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에게 현장 확인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 사례가 있다. 2006년 경영진의 추천으로 투자를 검토하게 된 한 업체였다. 여러 기관에서 투자를 검토하던 꽤 유명한 회사였다. 평소처럼 그는 공장에 갔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했다. 현장 경험이 워낙 많아서인지 감이란 게 있다. 생산라인이 2개인데, 이상하게 한 라인은 그에게 보이기 위해 돌린다는 느낌이 강했다.

“직원한테 ‘제품은 어디에 있냐’고 물었더니 창고에 있다고 하더군요. 공장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창고 문을 열어보라고 했더니 머뭇거리더라고요. 문을 안 열면 투자를 않겠다고 했더니 그제야 문을 열더군요. 창고를 보니까 그 제품이 없어요. 나중에 보니까 연구소장이며 최고재무책임자(CFO)도 자주 바뀌었더라고요. 퇴직한 사람들을 만나서 물어보니까 제품이 가짜라고 하더군요.”

이런 과정을 통해 손실을 피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일이 있고 1, 2년 후 태양광으로 뜨는 업체가 있다고 해서 봤더니 그 회사의 자회사였다. 그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투자를 보류했다. 얼마 후 태양광회사는 모회사와 합병해 IPO에 성공했다. 그런데 몇 개월 후 감사의견 거절로 많은 투자자들이 손해를 봤다.



투자 결정의 최종 키는 사람(CEO)

반대인 경우도 있다. 2004년에 투자한 디지텍시스템스가 대표적인 곳이다. 투자를 심사하던 직원이 6개월을 혼자 고민하다 내놓은 회사였다. 당시만 해도 3년 연속 누적적자가 40억 원에 이르렀고, 약속한 신제품도 나오지 않았다.

서 대표는 의외로 시제품으로 장난치는 회사가 많다고 했다. 실제 디지텍시스템스 공장을 둘러본 소감은 실망스러웠다. 제품은 있는데 막 회사를 옮겨서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그의 곁에 선 담당자는 미국의 I사가 제품 양산을 검증하러 오기로 했다는 말을 전했다. I사는 납품업체에 마진을 많이 준다고 알려진 기업이었다. 마침 예전 투자한 곳 중에 I사와 거래하는 곳이 있었다.

“자금을 회수한 후에는 거의 연락을 안 했는데, 유독 그분하고는 꾸준히 연락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확인했더니 자기가 I사 담당자를 에스코트했다면서 결과가 좋았다고 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고 투자했죠. 당시 4억1000만 원을 투자했는데, 2년 만에 IPO에 성공하면서 110억 원을 벌었습니다.”

벤처캐피털에서 투자한 기업이 디지텍시스템스처럼 IPO에 성공하는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성창투에서 투자한 회사가 IPO에 성공한 확률은 30%가 넘는다. 금액 기준으로는 50%에 육박한다.

“벤처캐피털은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으면 수익도 없다(No Risk, No Gain)’의 법칙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제 경우에는 투자 결정이 어려울 때, 최종적으로 사람을 봅니다. CEO 중에는 자기 재산을 처분하면서까지 직원들 월급을 챙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투자를 받으면 자동차부터 바꾸는 사람이 있거든요. 투자자 입장에서 어떤 곳에 투자를 하겠습니까?”

“벤처캐피털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제 경우에는 투자 결정이

어려울 때 최종적으로 사람을 봅니다.”



글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