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처럼 글로벌화가 진전된 온라인 시대에서는 주가를 비롯한 각종 금융변수가 심리적 요인에 의해 좌우되는 정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위기 때일수록 더 그렇다.

주가 결정에 심리 요인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론이 ‘조지 소로스의 자기암시’가설이다. 한 마디로 투자자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주가는 올라가고 반대로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주가는 떨어진다는 것이 이 가설의 골자다. 수많은 주가 예측기법 가운데 최근 월가에서 가장 각광을 받고 있다.

심리적 요인을 더 증폭시키는 것이 네트워킹 효과다. 이제 모든 경제활동은 각종 네트워크에 의해 빈틈이 없을 정도로 촘촘하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사건이 터져 나오면 그 나라 전체뿐만 아니라 온 세계로 퍼져 나가는 이른바 정보 시차가 매우 빠르다. 특히 나쁜 소식일수록 더 빠르게 전파된다.

의학에서 환자의 심리 상태에 따라 완치 여부가 결정된다는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와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라는 용어가 있다. 노시보 효과는 아무리 좋은 약을 먹더라도 환자가 그 효과를 의심한다면 치료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플라시보 효과는 약을 주지 않더라도 환자가 낳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완치될 수 있다는 뜻이다.

두 효과를 우리 경제와 증시에 적용해 보면 노시보 효과는 건실한 한국 경제를 믿지 못함에 따라 주가가 급락하고 환율이 급등하는 경우다. 올 9월 이후 나돌았던 위기설이 대표적인 예다. 3년 전 리먼브러더스 사태 직후 매월마다 위기설이 제기되면서 우리 증시가 대혼란에 빠진 때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외환위기 당시 잘 알려진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위기 진단지표로 보면 올해와 내년에 걸쳐 우리나라에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외환위기와 리먼 사태 때에 비해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각각 10분의 1, 절반 이하로 위기 관련 지표가 크게 개선됐다.

우리가 속한 같은 신흥국 중에서도 가장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도 이런 위기설은 우리 내부에서 먼저 나온다. 리먼 사태 당시에도 우리 내부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흘러 나왔던 위기설이 오히려 국제 금융시장에서 화두가 될 정도였다. 근거 없는 위기설에 따라 주가가 급락하고 환율이 급등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경제를 건실하게 만드는 데 애를 쓴 우리 국민에게 돌아간다.

올 9월 이후 고개를 들었던 위기설만 해도 그렇다. 노무라 증권,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한국이 위기를 겪을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발표했다. 세계 3대 평가기관 중 하나인 미국의 무디스(Moody’s)도 한국의 재정건전도가 매우 건실한 것으로 평가했다.
시스템 위기 극복이 지연될수록 각종 착시현상에 따른 투기 요인이 커지는 대신 위기 불감증이 심화돼 왔다.
시스템 위기 극복이 지연될수록 각종 착시현상에 따른 투기 요인이 커지는 대신 위기 불감증이 심화돼 왔다.
현 시점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우리 경제를 최소한 있는 그대로 믿는 플라시보 효과다. 부존자원과 축적된 자본이 없이 우리 경제가 압축 성장을 한 데에는 우리 국민의 ‘하면 된다’라는 긍정적인 정신 덕분이었다. 고질적인 위기설을 극복할 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와 증시가 다시 한 번 도약하기 위해서는 플라시보 효과가 절실한 때다.

특히 정책당국은 우리 국민이 우리 경제에 대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근본적인 원인 치료에 나서야 한다. 각종 판단지표로 가능성은 낮게 나오는 데도 대외 여건이 악화될 때마다 위기설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을 단순히 ‘우리 경제가 대외 경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란 식으로 돌려서는 최근과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외환위기 경험을 바탕으로 외화유동성을 비교적 빨리 확보해 놓고 위기설에 자유롭지 못한 것은 정경유착에 따른 부정부패, 정권 교체 시마다 반복되는 거시경제 목표와 규범 수정, 정부 혹은 정책에 대한 신뢰 부족 등으로 시스템 위기 극복이 지연됨에 따라 실물경기가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문제는 시스템 위기 극복이 지연될수록 각종 착시현상에 따른 투기 요인이 커지는 대신 위기 불감증이 심화돼 왔다는 점이다. 경제 여건이 뒤따르지 않는 고평가 요인이 유럽 재정위기와 같은 사태를 계기로 외자 이탈로 연결될 경우 그동안 극복했다고 보는 외화유동성 위기에 대한 우려가 다시 높아진다. 이것이 ‘위기 재귀설(crisis reflexibility)’의 실체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