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 와인 컬렉터 공정곤


공정곤 전 효성 부회장은 오디오 마니아에 와인 컬렉터다. 1960년대 시작된 오디오와 와인 컬렉션은 마니아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다. 교과서에서나 만날 수 있는 최상의 오디오와 와인을 소개한다.
[The Collector] 삶을 풍부하게 해준 와인과 음악 세계로의 초대
공정곤 전 효성 부회장의 자택은 찻길에서 안쪽으로 들어간, 조금은 한적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거실과 침실, 부엌이 있는 1층은 일반 가정집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경사가 급한 계단을 타고 지하로 내려가면 새로운 세상이 사람들을 맞는다.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1층 거실에서 차 한 잔을 마시고 지하에 내려서자, 둘을 합쳐 1톤이 넘을 듯한 육중한 스피커가 시야를 압도했다. 좌우 스피커 사이로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돼 있었고, 그 앞으로 또 다른 두 쌍의 스피커가 나란히 진열돼 있었다. 스크린 건너편으로는 턴테이블 등 오디오 세트와 CD, LP, DVD 등이 가지런히 정리된 채 진열장을 채우고 있었다.


무게만 1톤, 1억 원을 호가하는 한정판 스피커
[The Collector] 삶을 풍부하게 해준 와인과 음악 세계로의 초대
나무가 주요 재질인 스피커는 1987년 스위스 골드문트사 제품이다. 이탈리아의 유명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것으로,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전시돼 있을 정도로 디자인사에서도 주요한 작품이다. 300개 한정으로 제작된 이 제품은 고음에서 저음까지 모든 소리의 재현이 가능하다는 게 공 전 부회장의 설명이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55년에 오디오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앰프도 사고 레코드도 본격적으로 사기 시작했고요. 지금은 여기저기 선물하느라 몇 장 안 되지만, 많을 때는 1000장이 넘었습니다.”

음악 마니아답게 그는 다양한 스피커를 경험했다. 고등학교 시절 축음기를 시작으로 진공관에서 트랜지스터로 바꾸었다. 지금의 시스템을 갖춘 것은 미국 골드문트사의 파워 앰프를 들여온 2006년에 이르러서다. 2003년 음악 듣기 좋게 지하를 개보수한 후 여러 방법을 찾다가 골드문트사의 파워 앰프 두 쌍을 샀고 미국 기술자를 불러 손을 본 후에야 지금의 시스템을 갖출 수 있었다.

“음향 기술의 발전은 사실 1955년 진공관이 나오면서 끝이 났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이후 많이 발전한 듯하지만 발전이라기보다는 디지털화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겁니다. 디지털화한 소리는 다이내믹하기는 하지만 인간적인 맛이 없어요. 요즘 와서 사람들이 다시 아날로그를 찾는 게 그런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The Collector] 삶을 풍부하게 해준 와인과 음악 세계로의 초대
아내와 인연을 맺어준 추억의 음악감상실

LP판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삼촌이 미국을 다녀오면서 그때 막 세상에 선보이기 시작한 LP판 스무 장을 선물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 LP판이 귀하던 시절이라 외국에 나가는 지인에게 부탁하거나 미군 PX를 통해 음반을 구했다.

LP판 컬렉션에 얼마나 빠져있었던지 부친이 양복을 해 입으라고 준 돈으로 군용 점퍼를 사고 나머지로 LP판을 사기도 했다. 음반에 들이는 공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음반이 귀하기도 했지만 제대로 된 커버가 없어 보관이 어려웠다. 결국 비닐 커버를 직접 주문해 음반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보관하기도 했다.

그렇게 모은 음반의 대부분은 고전음악이다. 초기에는 베토벤과 모차르트가 좋더니 나중에는 낭만파 음악가들의 선율에 매료됐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모차르트가 좋다. 그런 걸 보면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보면 음악이 생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항상 그의 곁에 있었다. 아내를 만난 것도 음악이 오작교 역할을 했다.

당시서울 인사동 입구 허름한 창고 건물에 음악감상실 ‘르네상스’가 있었다. 그곳을 제집처럼 드나들던 중 아내를 만났다. 그때가 1962년. 아내를 만났을 때 흘러나오던 음악이 예후디 메뉴인(Yehudi Menuhin)과 빌헬름 푸르트벵글러(Wilhelm Furtwangler)가 협연한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

“그런데 결혼하고는 집사람이 나더러 ‘베짱이’래. 음악이나 듣고 와인이나 마시니까. 음반을 사면 아내 눈치가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집 밖에 뒀다 들어와서 아내가 없으면 들여오곤 했어요. 월급쟁이 시절이었으니까 그럴 만도 했죠. 돈도 없는데 철없이 만날 기계나 바꾸고 했으니까.”
외국 생활을 하며 맛을 들인 와인. 그의 와인 저장고에는 보르드 1등급 와인들이 빈티지별로 보관돼 있다.
외국 생활을 하며 맛을 들인 와인. 그의 와인 저장고에는 보르드 1등급 와인들이 빈티지별로 보관돼 있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와인 컬렉션

부인이 그를 ‘베짱이’이라고 부른 이유에서 눈치를 챘을 법도 한데, 와인은 그의 또 다른 취미다. 오디오실 뒤편에 마련된 와인 저장고에는 와인 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한 와인들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어 보는 이의 눈을 황홀하게 한다. 오디오와 음반 수집처럼 와인에 관심을 가진 것도 오래된 일이다.

1965년 그가 경제기획원에 몸담고 있을 때, 태국 방콕에 있던 유엔경제개발위원회에 약 1년 파견을 나갔다. 그곳에서 만난 프랑스인 교수가 와인을 소개하면서 마시게 됐다. 방콕에서 돌아오며 와인 두 병을 사온 게 컬렉션의 시작이었다. 국내에서는 주로 미군 PX를 통해 와인을 샀다. 그때는 미국인들에게도 와인이 익숙하지 않던 때라 PX를 통해 나오는 와인의 질도 양도 모두 제한적이었다. 1970년대 들어 해외 출장길에 가끔 좋은 와인을 사오는 정도였다.

“1975년 홍콩에 출장을 갔다가 와인 가게에서 무통 로트칠드(Mouton-Rothschild) 1971년 빈티지를 봤어요. 당시만 해도 무통 로트칠드가 1등급 와인이 아니었잖아요. 맛은 1등급 가까이 갔지만. 주인에게 달라고 했더니 ‘비싼 건데 사겠냐’고 묻더라고요. 그때는 한국인들이 와인을 안 마실 때니까 이 사람이 알고 사는 건가 의심스러웠던 거죠. 그때 가격이 200달러 정도였어요.”

그가 본격적으로 와인을 구입한 것은 1980년대 들어서다. 당시에 산 것 중 지금까지 갖고 있는 것이 로마네 콩티(Romanee-Conti) 1982년 빈티지다. 그 해는 부르고뉴 지방의 포도가 그리 좋은 때는 아니지만, 시리얼 넘버가 0번이라는 점에서 컬렉션의 가치가 있었다.
사회 초년병 시절 큰마음 먹고 산 턴테이블은 지금도 제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사회 초년병 시절 큰마음 먹고 산 턴테이블은 지금도 제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처남이 선물한 와인도 기념할 만한 와인이다. 와인 좋아하는 매형을 위해 처남이 특별히 선물한 것으로 1966년산 보르도 와인이다. 와인은 15년이 지나면 코르크가 상하는데 이 와인이 그랬다. 의미 있는 와인이라 프랑스 와이너리에 보냈고, 와이너리에서는 테이스팅한 후 이상이 없자 리코르킹을 하고 레이블도 새로 해서 보내줬다.

코스데스투르넬(Cos-d’Estournel)도 당시 컬렉션한 대표적인 와인이다. 코스데스투르넬은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을 기념해 선물하며 주목받은 와인이다. 그랑크뤼 와인으로 지금은 가격이 많이 올랐지만 그가 컬렉션을 하던 1980년대만 해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다.


성장한 자식들과 함께 나누는 와인의 매력

1990년대 들어서는 좋아하는 와인을 해마다 한 박스씩 컬렉션했다. 무통 로트칠드, 라피트, 라투르 등이 주요 와인 리스트다. 페트뤼스(Petrus) 1988년 빈티지도 와인 리스트에 올랐다. 지금은 무척 고가에 거래되지만 1980년대 말만 해도 50만 원 정도면 페트뤼스 한 병을 샀다. 그도 그 정도 가격에 페트뤼스 1박스를 샀다고 했다.

음반도 그렇지만 와인도 보관이 문제다. 와인 컬렉션을 시작한 1970년대에는 국내에 와인 셀러가 없을 때여서 일반 냉장고에 음식과 함께 보관했다. 그 덕(?)에 아내의 눈치를 적잖이 봤다. 그가 와인 셀러를 이용한 건 1982년의 일이다. 스위스 출장길에 큰마음 먹고 샀다.

스위스 포스터사 제품으로 100병 정도가 들어간다. 온도조절기 외에 다른 장치는 하나도 없는데, 30년째 쓰는 데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는 일반 와인(다른 곳에서는 일반 와인으로 분류하기 아까운 와인)은 지하 저장고에 넣고 좋은 와인은 그 안에 보관한다. 와인 셀러를 들여올 때 에피소드도 있었다. 와인 셀러를 처음 보는 세관원이 “무엇에 쓰는 물건이냐”고 묻더란다. 그래서 “연구소에서 쓰는 냉장고”라고 둘러댔다. 그랬더니 아무 소리 않고 관세 하나 물리지 않고 통과시켜 주었다고 한다.

“이제는 나이도 있고 해서 컬렉션보다는 마시는 게 더 많아요. 어려서부터 와인을 접해서 그런지 아이들도 제법 와인 맛을 알고요. 얼마 전 결혼기념일에는 1982년산 라투르를 가족과 함께 마셨어요. 그게 컬렉션 재미 아니겠어요.”


글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