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프랑어로 직역하면 ‘귀족의 의무’다. 서구에서는 로마시대부터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지배층은 그 존경과 명예의 대가로 대중이나 사회단체에 대해 도덕적 의무를 가진다고 믿어왔다. 지배층으로서 이러한 도덕적 의무를 지니지 않으면 비록 법적으로 처벌할 대상은 아니지만, 권위와 존경을 잃어버리고 천박한 권력자로 추락해 비난의 대상이 된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제국이 2000년 동안 버텨온 힘을 바로 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철학이라고 말하고 있다.
로댕은 자신의 작품 <칼레의 시민들>을 통해 너무나 인간적인 보통 사람이 두려움과 싸우며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로댕은 자신의 작품 <칼레의 시민들>을 통해 너무나 인간적인 보통 사람이 두려움과 싸우며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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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대표하는 사례로 흔히 ‘칼레의 시민들’을 든다. 이것은 프랑스의 천재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의 조각 작품명이기도 하고, 독일의 유명한 희곡작가 게오르크 카이저(Georg Kaiser)의 희곡 제목이기도 하다.

‘칼레의 시민들’에 얽힌 이야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일어난 백년전쟁(1337~1453) 중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와 프랑스의 왕 필립 6세 사이에 벌어진 전투에서 프랑스 북쪽 대서양 쪽에 위치한 항구도시 칼레의 시민들은 영국군의 포위망 속에서 약 1년 동안 끈질기게 저항하고 버텨왔으나 1347년 결국에는 항복하게 됐다. 이 저항과 항복 과정을 같은 시대 사람인 장 프루아사르(Jean Froissart)가 상세히 기록한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극적인 사실이었기에 위대한 조각 작품으로, 또 위대한 연극으로 남게 됐다.


누가 칼레시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 것인가?

프루아사르의 기록에 따르면, 칼레시의 시장은 영국군에 포위돼 식량이 고갈되자 시민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영국 왕에게 칼레시를 넘겨주고자 했다. 그때 영국 왕 에드워드는 잔인하게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춘 항복을 요구했다.

“칼레 시민 가운데 가장 명망 있는 여섯 명이 벌거벗은 채 속옷만 걸치고, 모자도 쓰지 않은 채 목에 오랏줄을 감고, 칼레시와 요새의 열쇠를 들고 성 밖으로 나와 항복하면 시민의 목숨을 살려주겠다.”

시장은 시민을 공회당으로 불러 모아 영국 왕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결정짓는다. 이때 자원한 여섯 사람의 이름은 위스탓슈 드 생피에르, 쥐앙 대르, 쟈켐므 드 위상, 피에르 드 위상, 쥐앙 드 피엔느, 그리고 앙드리유 당드르였다.

시장은 칼레 시민의 통곡소리를 들으며 여섯 인질을 성문 밖으로 인도했다. 그러나 당시 임신 중이었던 영국 왕비가 왕에게 장차 태어날 아기를 생각해 그들을 사면해 달라고 간청하자 왕이 이들을 극적으로 살려주었다는 그야말로 감동적인 이야기다.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500년이 지난 1884년 칼레시는 조각가 로댕을 위촉해 기념 동상을 제작하도록 했다. 로댕은 11년 뒤인 1895년 드디어 작품을 완성해 칼레시에 전달했다. 그런데 조각 <칼레의 시민들>은 자랑스러운 영웅의 모습이라기보다는 극심한 공포에 떨고 있는 초라한 군상으로 표현돼 주문자인 칼레 시민을 경악과 실망 속에 빠지게 했다.

앞줄 중앙에 있는 생피에르는 고개를 약간 숙이고 죽음의 운명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고, 그 곁의 대르는 법률가답게 의연히 고개를 들고 있으나 얼굴엔 긴장감이 완연하고, 다른 네 명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면서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듯 처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죽음은 두려웠지만 그들은 끝내 이겨냈다

로댕의 의도는 영웅으로 추앙받는 이들 여섯 사람의 목숨을 건 자원(自願)이 결코 단순한 명예욕에서 비롯된 것으로 미화돼서는 안 됨을 철저히 강조한 것이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너무나 인간적인 보통 사람이지만 두려움과 싸우고 고뇌하며 가까스로 자신을 희생한 고귀한 시민정신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독일 표현주의 극작가인 카이저의 희곡 <칼레의 시민>(게오르크 카이저·성균관대 출판부)은 이 드라마를 더욱 극적으로 증폭시키기 위해 여섯 명의 자원자에 한 사람을 더해서 7명이 자원한 것으로 하고, 그중 한 사람을 제외시키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여섯 명의 희생자가 필요한데 일곱 명의 지원자가 있었으므로 한 사람을 제외시켜야 했다. 그 방법으로 처음에는 제비를 뽑았으나 실패하고 두 번째로 새로운 제안을 한다. 극중에서 생피에르는 이렇게 말한다.

“내일 아침 첫 종이 울리면 각자 모두 집에서 출발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시장 한가운데 도착하는 사람이 희생에서 제외될 것이오.”

이렇게 해 2막은 끝나고 마지막 3막에서 고뇌하는 여섯 명 자원자의 내적 갈등을 잘 표현하고 있다. 생피에르의 이 말이 있자 이제까지 그들이 보여주었던 숭고한 희생정신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고, 서로가 내심 일곱 번째 시민이 돼 제외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리세스 오블리주

여기서 필자는 첫 번째 사람인 생피에르에 주목한다. 그는 여섯 명 중 가장 나이 많고 칼레시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으로서 가장 먼저 희생을 자청한 사람이었다.

카이저의 희곡 3막에서는 생피에르의 고뇌를 극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약속한 대로 첫 종이 울리자 희생될 사람이 한 사람씩 광장에 도착한다. 그러나 처음 자원했고 가장 가까운 곳에 살고 있던 부자 생피에르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자 한 시민이 소리친다.

“생피에르가 가장 몹쓸 사기를 쳤소! 이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공회당에서 외치면서 생피에르가 걱정한 그 거대한 재산을 지적하지 않았소? 항구 옆에 창고를 가진 사람이 누구요? 헛간의 용마루까지 닿을 정도로 재물을 높이 쌓아 놓고 있는 사람이 누구요? 그처럼 많은 화물선에 짐을 실어 나르는 사람이 누구인가?…중략…그는 맨 처음 앞에 나서서, 칼레시를 위해서 희생할 각오가 된 사람으로 보였지요!…”

극의 마지막쯤에 생피에르의 아버지가 관을 끌고 무대로 나타나면서 말한다.

“여섯 사람이 남아 있을 거라고 그 애가 말했소. 그들이 시장터에서 기다린다고. 그들이 출발할 시간이 되면, 나에게 시장에 있는 그들에게 가라고 했소. 그 사람들이 내 뒤를 따르려고 한다면 빨리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소. 나는 먼저 앞서 간다고!

(그가 몸을 돌려 관 위에 천을 찾더니 천을 벗겨 놓는다.)

나의 아들아!

(시민들이 외친다. 생피에르다!)

…중략…

걸어 나가라. 빛 속으로! 이 밤에서 나와. 고귀한 빛이 비추고 있다!…”

생피에르는 미리 죽으면서 자신의 아버지에게 관을 끌고 먼저 갈 것을 부탁한 것이다.

<차이의 존중>(조나선 색스·말글빛냄)에서 색스는 유태인들의 <탈무드> 속에 있는 사상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세상 만물의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이며, 우리는 소유한 것이 아니고 잠시 점유하고 있을 뿐이며, 하나님이 맡긴 것을 보관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부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므로 거기에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의무가 수반됐다는 것이다. 이것이 ‘리세스 오블리주(richess oblige)’라는 것이다.

생피에르와 같은 부자를 어느 시민이 존경하지 않을 것인가.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부자가 생피에르가 될 수 있을까.

전진문 영남대 경영학부 겸임교수
일러스트·추덕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