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전문가들은 그린벨트 해제 등 호재에도 불구하고 토지 시장의 전반적인 침체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 대치동에 사는 회사원 A(44) 씨는 2004년 강원도 홍천에 땅을 잘못 샀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는 신문에 자주 등장하는 부동산 전문가의 추천을 받아 3억 원에 땅을 매입했다. 도로와 접하지 않은 맹지(盲地)였지만 길을 내준다는 전문가 말을 믿었다.

그러나 7년이 다 돼가도록 길은 뚫리지 않았다. 항의해봤지만 “노력하고 있다”는 뻔뻔한 대답만 돌아왔다. 언론 등에 알리겠다고 하자 “마음대로 해보라”며 배짱으로 나왔다.

현지 중개업소를 탐문해보니 땅 매입 가격도 시세보다 두 배 이상 비쌌다. 전문가가 매물로 나온 땅을 잡은 뒤 두 배 이상 얹어 자신에게 판 것으로 드러났다. 억울해서 잠을 못 이룰 지경이지만 대응할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토지 시장에서 개미 투자자들을 구경하기 어렵다. 2000년대 중반 묻지마 토지 투자로 제대로 타격을 받은 결과다. 그러다 보니 지가(地價)도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작년 11월부터 상승세로 돌아서기는 했지만 상승 폭은 미미하다.

하반기에도 이런 분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부동산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그린벨트 해제 등 호재가 있긴 하지만 전체 시장 분위기를 반전시키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다.
[Asset Special] 묻지마 투자 후유증 지속 도심지 땅 상대적 인기
토지 열풍 후유증 심각

토지 투자 열풍의 후유증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당시 토지 투자 열풍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세종시, 혁신도시, 기업도시 등 전국적인 개발 계획 발표가 촉매제가 됐다. 수도권 신도시에서 한해 수십조 원씩 풀리는 토지 보상비도 땅값 상승에 기름을 부었다.

묻지마 투자도 유행했다. 토지 투자 경험이 전무한 이들이 컨설팅업체의 말만 믿고 개발 가능성이 없는 땅을 마구잡이로 사들였다. 기획부동산이 쪼개서 파는 개발 불가능한 땅도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

묻지마 투자의 대가는 엄청났다. 퇴직금을 땅에 몽땅 쏟아 부은 은퇴자, 밤잠 안자고 모은 돈을 토지에 투자한 자영업자 등 수많은 사람들이 토지에 발목이 잡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매입 가격의 절반 이하로 떨어진 땅이 수두룩하고 손해를 보고 팔고 싶어도 살 사람이 없다.

토지 전문가들에 따르면 통상 토지는 가장 나중에 움직인다. 아파트 시장에서 흘러넘친 자금이 상가, 오피스텔 등을 거쳐 최종적으로 토지 시장으로 흘러든다. 그러나 수도권 아파트 시장 침체가 심각해 이런 흐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시장 침체는 땅값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현재 전국 땅값은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전 고점(2008년 10월)에 비해 1.82%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토지 전용 강좌 활발

과거 토지 투자 강좌에선 좋은 땅을 고르는 요령, 투자 유망지역 등이 단골 교육 메뉴였다. 그러나 요즘 그런 강좌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 대신 토지 전용 강좌가 인기를 얻고 있다.

과거 토지 투자는 시세차익을 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시세차익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진 게 현실이다. 주택 산업단지 등의 공급 부족 문제가 해소됨에 따라 더 이상 대규모 개발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탓이다.

이 때문에 산이나 농지를 대지로 전용해 수익을 얻는 강좌가 인기를 얻고 있다. 요즘 활발하게 토지 투자 강의를 하는 이들도 전용 업무를 담당했던 전직 공무원 등 인허가 전문가들이다.

전종철 지목114 대표는 “지목 변경을 통해 땅의 이용 가치를 높이면 시황에 관계없이 짭짤한 수익을 거둘 수 있다”며 “도로 개설, 배수로 설치 전용 등이 가능한 땅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경쟁력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Asset Special] 묻지마 투자 후유증 지속 도심지 땅 상대적 인기
도심지 땅 강세

비도시 지역 땅보다 도시 지역 땅이 더 대접받는 현상도 새로운 흐름이다. 과거 토지 투자라고 하면 비도시 지역의 임야나 농지를 매입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요즘은 도시 지역 토지가 상대적으로 인기다.

수익성 부동산 열풍과 도시형 생활주택 건축 붐이 일어난 결과다. 소형 주택 전문업체인 서용식 수목건축 사장은 “전국 대도시의 단독주택 가격이 최근 2년 동안 20% 이상 올랐다”며 “시세차익을 얻는 시대에서 임대수익을 얻는 시대로 바뀌면서 다세대주택, 도시형 생활주택 등을 신축할 수 있는 도심지 단독주택이 인기”라고 설명했다.

비도시 지역의 경우 토지 투자자들의 발길이 미치는 곳은 아주 제한적이다. 용인, 화성, 평택, 당진 등 개발 수요가 많은 수도권과 충청권의 일부 지역에만 토지 전문 투자자들의 입질이 조금씩 이어지고 있다.

전원주택 부지도 실속형으로

전원주택 시장에서도 침체 국면이 계속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전원주택지로 인기가 높은 양평, 가평, 남양주, 광주, 용인 등에선 매수세를 찾기 어렵다.

다만 충주, 홍천 등이 새롭게 전원주택지로 부상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원주택 시장은 강과 계곡을 따라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최근 서울∼춘천 간 고속도로 등 새롭게 개통하는 고속도로가 늘면서 신설 나들목(IC) 주변의 강과 계곡에 새롭게 전원주택촌이 형성되고 있다.

전원주택 컨설팅업체인 OK시골의 김경래 사장은 “우리나라 전원주택 시장의 삼요소는 강, 계곡, 도로”라며 “서울에서 1시간 30분 안에 닿을 수 있는 곳으로 새롭게 변모하는 곳들이 그마나 활기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경매 고수들 활약 꾸준

토지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경매 고수들은 시황에 관계없이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저렴하게 사기 위해 법원 경매 시장을 이용하는 게 아니다. 법정지상권 성립 가능성이 있는 물건, 지분 물건 등을 사들여 고수익을 추구하고 있다.

토지 위에 건물이 있지만 법정지상권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단기간에 고수익을 낼 수 있다. 이런 건물은 남의 땅에 들어선 건물이어서 철거될 운명이다. 땅을 싸게 낙찰받은 뒤 건물주와 건물 철거를 무기로 협상을 벌여 땅을 시세대로 사가게 하거나 건물을 싼값에 사들이면 짭짤한 수익을 볼 수 있다. 이런 전략을 구사하려면 법정지상권에 대한 전문 지식과 협상 기술이 필수적이다.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아 건물을 철거하는 사례도 가끔 나오고 있다.

공유자가 있는 지분 물건도 경매 고수에겐 매력적인 물건이다. 지분 물건을 싸게 낙찰받은 뒤 공유물 분할 소송을 통해 땅을 분할하면 온전히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다. 싸게 받아서 공유자에게 비싸게 넘기는 것도 수익 모델 중 하나다.

나머지 공유자도 빚이 많아 땅을 경매로 날릴 형편이라면 경매에 부치길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다. 공유자 우선 매수권을 행사해 땅값이 충분히 떨어지길 기다렸다가 저렴하게 낙찰받을 수 있다.

조성근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