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ccess Story 2_정필수 한국종합물류연구원장

경제력이 뒷받침 되더라도 준비되지 않은 은퇴 이후의 삶은 자칫 무미건조해질 수 있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게 인간의 마음이다. 뚜렷한 목표나 계획 없이 직장을 나와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삶의 의미를 잃기 쉽다.

최근 많은 은퇴자들이 이런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준비를 한다. 잊었던 젊은 날의 꿈을 좇아 다시 공부를 시작하거나 새로운 일을 찾는 이들도 있다. 현역시절의 전문성을 살려 강단에 서거나 틈새시장에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이들도 있다.
정필수 원장은 국책연구기관 부원장을 지낸 국내 1세대 연구원이다. 현재 그는 그간의 경험을 기반으로 개인 연구원을 차려 본 궤도에 올려놨다.
정필수 원장은 국책연구기관 부원장을 지낸 국내 1세대 연구원이다. 현재 그는 그간의 경험을 기반으로 개인 연구원을 차려 본 궤도에 올려놨다.
퇴직 후 시작한 미국 생활이 가르쳐준 교훈

정필수 한국종합물류연구원장이 그런 부류에 속하는 이다. 미국 텍사스대 경제학 박사 출신인 정 원장은 산업연구원과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등에서 30년 넘게 연구 활동을 한 한국연구소 1세대다. 연세대와 한양대, 경희대 등의 강단에 서기도 한 정 원장은 57세가 되던 2003년 3월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부원장직을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났다.

“정년까지 시간도 남아있었고, 원장까지 해볼 욕심에 퇴직은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후배가 원장이 되고 보니 연구원에 남아있기가 어렵더군요. 젊은 후배들에게 길을 터줘야겠다는 생각에 퇴직을 했습니다. 그러고는 망설이지 않고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미국 유학파인 그에게 미국은 낯선 땅이 아니라 기회의 땅으로 보였다. 마침 미국에서 부동산 개발과 관리, 레스토랑 체인점을 경영하던 친지가 그에게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했다. 평생 연구만 해온 그에게 비즈니스는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비즈니스라는 영역이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열심히만 하면 어느 정도 성과가 나왔다. 문제는 성공에 따른 인센티브가 없었다는 점. 몇 개월을 고생해 야구경기장을 재개발했지만 그에 상응하는 인센티브가 없었다. 한 번에 1000만 달러 이상의 이익을 남긴 프로젝트도 있었지만 그때도 그에게 돌아오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일에 흥이 날 리가 없었다.

“전혀 모르는 분야에서, 그것도 미국에서 생고생을 하느니 차라리 평생 해온 일에 승부를 걸자고 마음먹었죠. 이전 연구원에 있으면서 해운, 항만 쪽 프로젝트를 많이 했습니다. 국책 연구기관들이 하는 큰 프로젝트 외에 규모는 작지만 중요한 프로젝트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 연구과제는 작은 연구원에 용역을 주는데, 해오는 게 전부 엉터리였어요. 그 틈새시장을 개척해보기로 한 거죠.”

연구원 설립 이전에는 고민도 많았다. 가장 큰 고민은 늦은 나이에 시작한 일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그와 가족이 겪어야 할 위험이었다. 그때 힘을 보탠 게 미국 워싱턴대 교환교수 시절 인연을 맺은 미국인 교수였다.

18개월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며 정 원장은 시애틀에 있는 그를 방문해 향후 계획에 대해 상의를 했다. 정 원장의 계획을 들은 그는 “당신 같은 인재가 한국에 가서 한국을 위한 일을 하는 게 맞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잘못 됐을 경우를 걱정하는 정 원장에게 “정 박사 성격상 반드시 성공한다”고 응원하며, 그래도 어려우면 자기가 3년 먹고 살 프로젝트를 주겠다고 힘을 보탰다.

창립 이후 6년간 5번 사무실 옮기며 고군분투

한국에 돌아온 그는 곧바로 개원을 준비했고, 2005년 5월 한국종합물류연구원의 문을 열었다. 연구원을 시작하며 오히려 연구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작은 연구원이었지만 처음 하는 경영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임대료가 싼 곳을 찾느라 지난 6년간 5번의 이사를 했다.

첫 둥지였던 성남 창업보육센터는 계약이 만료돼 어쩔 수 없이 나왔고, 주 고객인 국토해양부를 쫓아 서울로 이사를 했다가 국토해양부가 과천으로 내려가면서 다시 성남으로 내려갔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현재 터인 경기도 용인 수지에 뿌리를 내리게 됐다.

현재 연구원이 자리 잡은 곳은 용인시 수지구에 있지만 주변 풍광이 좋아 주변에 전원주택이 많이 들어섰다. 고속도로에서도 가까워 과천까지는 15분, 서울까지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있을 때 세계적인 연구기관인 영국의 OSC(Ocean Shipping Consulting Co.)에서 공동연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일주일 정도 그곳에서 생활을 했는데, 가서 보니까 연구원이 런던 시내가 아닌 한적한 시골에 있었어요.

직원도 3명 정도였는데 필요에 따라 다양한 전문가를 그때그때 아웃소싱을 한다고 하더군요. 그때 받은 인상이 강렬했어요. OSC를 떠올리며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된 거죠.”

자주 이사를 다니면서 연구원의 안정을 위해서도 자가 연구원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주 고객이 있는 과천과의 거리도 가깝고 조용하면서 주변 환경도 좋은 곳을 물색하다 용인 수지에 터를 잡았다. 지난해 땅을 매입해 건물을 지었는데 정 원장뿐 아니라 연구원들도 무척 만족한다고 했다.
“ 젊게 살려고 자주 젊은이들과 대화하려고 노력합니다. 중요한 것은 육체의 나이가 아니라 정신연령이니까요.”
“ 젊게 살려고 자주 젊은이들과 대화하려고 노력합니다. 중요한 것은 육체의 나이가 아니라 정신연령이니까요.”
대부분의 은퇴자들이 도전에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

문제는 용역을 수주하고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일이었다. 정 원장은 주변에서 그처럼 연구소를 나와 개인 연구소를 차리는 이들을 많이 봤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오래 가지 못하고 연구소 문을 닫았다.

연구소를 차리면 처음부터 다시 한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이전에 자기가 누렸던 혜택과 사회적 지위를 버려야 한다. 젊은 시절 했던 실무도 다시 해야 한다.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정 원장도 그런 과정을 거쳤다. 한국종합물류연구원의 주 고객은 국토해양부다. 연구용역을 수주하기 위해 국토해양부에 가보면 그 또래는 장관이고, 차관이 보통 10년 후배들이다. 40대 실무담당 과장급도 수두룩하고 사무관은 그보다 더 젊다.

그들과 협의하는 일이 현역에서 물러난 이들에게는 쉽지가 않다. 그런 상황에 직면하면 ‘이 나이에 무얼 하고 있나’ 하는 자괴감에 빠지게 마련이다. 정 원장은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려면 그 고비를 반드시 넘겨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런 때일수록 적극성이 필요하다. 정 원장은 적극성만 있다면 일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오랜 경험과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젊은 사무관들보다 훨씬 다양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

“제 경우에는 미국에서 18개월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힘들긴 했지만 비즈니스도 배우고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도 배웠으니까요. 절박한 상황을 겪으며 스스로 힘을 키운 거죠.”

자신의 경험을 살려 정 원장은 후배들에게 가끔 본업이 아닌 다른 일을 해보라고 권한다. 금융감독원 직원이라면 금융기관 경험도 쌓고, 금융인이라면 거래하는 기업에서 체험을 해도 좋다. 이런 경험이 나중에는 큰 힘이 된다고 정 원장은 믿는다.

평생 현역을 위해 필요한 세 가지, 체력·지력·열정

정 원장은 나이가 들어서 일을 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체력, 지력, 그리고 열정이 그것이다. 그중 기본이 되는 게 체력이다. 그는 원체 체력을 타고난 데다 젊어서부터 꾸준히 관리를 했기 때문에 건강에는 자신이 있다고 했다.

그가 선택한 건강관리법은 등산이다. 서른 살 이후 일주일에 한 번은 빠짐없이 산에 올랐다. 또 특별히 약속이 없는 날은 저녁에 헬스클럽에서 1시간 가까이 운동을 한다. 그 덕에 지금도 늦게까지 일을 해도 체력에 큰 무리가 없다.

“이곳으로 연구원을 옮긴 것도 궁극적으로는 건강하게 오래 일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래 일을 하려면 좋은 환경에서 일을 해야 합니다. 출퇴근에 스트레스 받고 하루 종일 공기 나쁜 곳에서 일을 하면 탈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곳이 최적이죠.”

지력은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유지하기가 어렵다. 정 원장은 체력이 받쳐주기 때문에 여전히 지력에는 문제가 없다. 아침마다 사무실에서 연주하는 아코디언도 정서적인 안정을 줘 지력을 유지하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된다.

그는 열정도 젊은 연구원 못지않다. 정 원장은 평생 현역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열정을 되찾으라고 강조한다. 정 원장처럼 오랜 기간 연구만 한 연구원 출신들은 자칫 안일함에 빠질 수 있다. 연구소의 경쟁력을 자신의 경쟁력이라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안일함에 빠지다 보면 어느 순간 열정이 식을 수 있다.

“젊게 살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의도적으로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함께 지내려고 노력합니다. 나이를 세지 않은 지도 오랩니다. 중요한 건 정신연령이에요. 적어도 제 정신 나이는 육체 나이보다 10년이 젊다고 봅니다. 4~5년 전부터 누가 나이를 물으면 57년 닭띠라고 해요. 그러다 보니 실제로도 열두 살 젊어진 것 같습니다.”

정 원장 주변에서는 은퇴한 이들도 많고, 은퇴를 앞둔 후배도 많다. 그들에게 그는 “한 살이라도 열정이 살아있을 때, 도전을 해보라”고 권한다. 생활의 지혜는 쌓이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한 번씩 깨지면서 얻어진다. 그는 은퇴를 앞둔 많은 이들이 깨지더라도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깨지고, 거기서 얻은 지혜와 새로운 열정으로 제2의 인생을 개척하기를 바란다.

글 신규섭·사진 이승재 기자 wa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