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트위드 런 퍼레이드

100년 전의 흑백 사진에서 튀어나온 것만 같은 영국 신사와 숙녀 차림을 한 500여 명이 화려한 햇살을 받으며 자전거로 런던의 시내를 가로지르는 ‘트위드 런(Tweed Run)’ 행사가 지난 4월 9일 영국 런던에서 개최됐다. 2011년에 재연된 올드 잉글리시 스타일(old English style)의 행복한 퍼레이드, 그 현장을 전한다.
[Fashion Report] 올드 잉글리시 스타일의 현대적 부활
‘세계에서 가장 멋진 차림의 사이클링 이벤트’라는 명성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트위드 런’ 참가자들은 체크와 트위드 옷차림에 공들여 기른 콧수염을 자랑하는가 하면 빅토리아 시대를 연상시키는 페티코트 치맛자락을 날리면서 자전거 타기를 즐겼다.
1 사이클링과 패션을 믹스한 트위드 런은 전통적인 스타일로 차려 입고 런던을 누비는 행사로 답답한 도심에서 라이크라와 헬멧 없이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1 사이클링과 패션을 믹스한 트위드 런은 전통적인 스타일로 차려 입고 런던을 누비는 행사로 답답한 도심에서 라이크라와 헬멧 없이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행사의 창립자인 테드 영잉(Ted Young-Ing)은 트위드 런이 “바쁘고, 힘들고, 인간미 없는 현대 런던의 일상생활에서 색다른 아이디어의 엔터테인먼트가 된다”고 설명했다. 신나게 하루를 즐기는 ‘fun day out’인 셈이다.

여기에 영국 특유의 유머와 장난스러움이 섞인다. 기타, 더블베이스, 트럼펫을 연주하는 뮤지션들을 싣고 달리는 주최 측의 자전거가 있는가 하면, 가장 멋진 콧수염 뽑기에 일부 여성 참가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가짜 콧수염을 시도해 남성의 오리지널 버전을 위협하기도 한다.

자전거 경주를 너머 정통 패션 퍼레이드로
2 브룩스 씨는 125년 된 앤티크 페니 파딩을 가지고 참가했다.
2 브룩스 씨는 125년 된 앤티크 페니 파딩을 가지고 참가했다.
트위드 런은 스피드에 초점을 맞추는 자전거 경주라기보다는 패션 퍼레이드에 가깝다.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사전에 안내서를 통해 그림과 함께 드레스코드와 헤어스타일, 잡화 사용의 예를 제안하기 때문이다.
3 새로운 포맷의 어번 사이클링 행사를 만들어 낸 트위드 런의 창립자, 테드 영잉
3 새로운 포맷의 어번 사이클링 행사를 만들어 낸 트위드 런의 창립자, 테드 영잉
신사의 경우는 트위드 슈트·플러스 포스(무릎 아래 4인치 길이의 전통적인 사이클링 바지)·페어아일 스웨터(스코틀랜드에서 만드는 잔잔한 무늬의 니트)·보타이·플랫 캡 등이고, 숙녀의 경우는 클래식한 드레스·나풀나풀한 프린트 원피스· 큐롯 바지 등이 제안 아이템이다.

참가자들은 모두 코스튬을 헌신적(?)으로 준비한다. 특별히 맞춰 입었다는 부티(?) 나는 열정파도 있고, 중고 가게를 샅샅이 돌며 찾아낸 ‘보물’로 차려 입는 검소한 부류도 있다.

자전거 역시 125년 된 페니 파딩(1페니짜리와 4분의 1의 가치인 파딩 동전을 나란히 놓은 것 같다는 데서 나온 말)에서부터 다양한 빈티지 자전거는 물론 파슐리(Pashley)처럼 클래식한 자전거까지 장안의 오래된 자전거를 총망라한 전시회를 방불케 한다.
4 트위드 소재의 사이클링 슈트를 차려 입은 참가자들
4 트위드 소재의 사이클링 슈트를 차려 입은 참가자들
참가자들은 매우 사교적이어서 공식 출발 시간보다 1시간 이상 일찍 나와서 서로 인사하고 넘치는 기자들의 사진 요청에 즐거워한다. 사진을 찍자고 하면 자신이 멋지게 보인다고 인정받은 것처럼 모두 반색한다.

트위드 런의 루트는 매년 바뀌는데 대체로 약 16km 거리로 제한하고, 런던의 역사적인 건물과 문화적인 상징들을 감상할 수 있는 구간으로 설정한다.

올해는 런던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건축물로 알려진 17세기에 지어진 세인트 폴스 성당에서 출발했다. 템즈 강을 건너서 런던의 상징인 빅벤 시계탑과 국회의사당을 거쳐 버킹엄 궁전 앞을 지나고 1800년대 나폴레옹도 옷을 맞췄다는 역사적인 신사복의 거리 새빌로를 지났다.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즐비한 쇼핑가인 리젠트 스트리트를 가로질러 동부의 가장 트렌디한 지역인 쇼디치 거리까지 약 600여 명은 자전거 벨과 경적을 울리면서 행복한 마음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행진했다.

파크에서 한가하게 잉글리시 티와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한 것을 포함해 공식 일정은 7시간. 모두들 기다리던 애프터 파티는 펍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끝이 났다.
5 세인트 폴스 성당 계단에 모인 참가자 500여 명. 어린이부터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5 세인트 폴스 성당 계단에 모인 참가자 500여 명. 어린이부터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말쑥하게 차려 입은 트위드 런의 행렬이 지나가는 거리에는 행인들이 환호를 보내면서 박수를 쳐주고 스마트폰을 꺼내든다. 심지어 양보를 잘 안 하는 것으로 평소 악명 높은 런던의 버스와 택시기사들도 이날은 참을성 있게 트위드 런의 자전거 행렬에 길을 내줬다.

트위드 런은 꽤 단순한 동기로 탄생한 성공적인 이벤트다. 안장 제조업체인 브룩스 잉글랜드(Brooks England)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면서 사이클링의 열혈 팬인 테드 영잉이 스코틀랜드 여행에서 구입한 빈티지 사이클링 바지(plus fours)를 입기 위해 기회를 만들고자 한 것이 계기가 됐다.
6 트위드 소재의 사이클링 슈트를 차려 입은 참가자들
6 트위드 소재의 사이클링 슈트를 차려 입은 참가자들
처음에는 그저 친구들과 함께 레트로 스타일로 차려 입고 자전거를 타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한 것이 결국 트위드 런을 만드는 아이디어로 확대된 것이다.

올해로 3주년을 맞는 트위드 런은 티켓 판매 10분 만에 500매가 매진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에 고무된 주최 측은 기존의 연중 행사를 2회로 늘리기 위해 가을에 또 한 번의 트위드 런 행사를 예정하고 있다.

오는 10월에는 랄프 로렌의 후원으로 뉴욕에서, 또한 도쿄(東京)에서도 행사를 계획하는 등 공식 행사가 해외로 번지고 있다.

물론 이미 트위드 런을 모방한 유사한 버전의 행사들이 세계 곳곳에서 생긴 지 오래이기는 하다. 비상업적인 행사로 진행되는 트위드 런의 티켓 비용은 5파운드(9000원).

티켓 수입은 아프리카 아이들이 자전거로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중고 자전거를 제공하고 수선,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선 단체인 ‘바이크스포아프리카(Bikes4Africa)’에 기부된다. 런던과 뉴욕에서 열리는 트위드 런 행사의 자세한 정보는 tweedrun.com에서 뉴스레터를 신청하면 받을 수 있다.

런던=글·사진 정해순 프리랜서 haesoon@styleintelligenc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