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봄, 피크닉 장면을 그린 두 그림을 함께 만나보자. 아름답지만 어딘지 수상쩍은 피크닉 풍경이다.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 <전원 음악회>(the Pastoral Concert), 1509년경, 프랑스 파리 루브르미술관 소장
한가로운 교외 풍경, 자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나와 모여 앉은 사람들이 있다. 남자 둘에 여자 둘. 언뜻 보면 짝을 맞춰 나온 것 같다. 이 즐거운 시간에 음악이 빠질 수 없는 법. 붉은 옷을 입은 남자는 류트를 연주하고 있고 그 앞에 앉은 여자는 피리를 들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뭔가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남자 둘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여자는 남자를 바라보고 있으나 시선을 받지 못한다. 그림 왼편에 있는 또 다른 여자는 대리석으로 만든 석관에 물을 붓고 있다. 의미심장한 이 여인들의 행동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단박에 이 그림의 분위기가 특이하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아차린다. 옷을 입은 두 명의 남자는 현실의 존재들이다. 즉 살아있는 그 당시의 사람들로 붉은 옷을 입은 남자의 옷차림이나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으로 미루어보아 꽤 신분이 높고 부유한 귀족일 것이다.
그들과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는 두 명의 여자는 현실의 존재가 아닌 이상의, 그리고 상징적인 존재다. 정상적인 남자들이라면 아름다운 여인 둘이 자신들 앞에 벌거벗고 있는데 저리 무심할 리 없다.
여인들의 누드는 그림 속에서 빛을 받아 부드럽게 빛나며, 작품 전체에 하이라이트를 주고 있다. 남자들 앞에 피리를 들고 등을 보이고 있는 여인은 ‘사랑’을 상징한다. 그것은 그녀가 들고 있는 악기로 알 수 있다.
그림 왼쪽에서 물을 붓고 있는 여인은 ‘절제’를 의미한다. 그녀가 물병에 든 물을 붓는 행위는‘다른 이의 와인에 물 붓기(To put water in one’s wine)’라는 프랑스 속담처럼 흥청망청할 법한 이 자리에 절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여인이 물을 붓고 있는 사각의 물체는 석관으로 추측되는데, 이는 당시에 고대미술품으로서 귀족들 사이에 인기 수집품목 중 하나였다.
이 그림의 매력은 화면 전체에 스며있는 우아하면서도 약간은 기묘한 분위기에 있다. 제목인 <전원 음악회>와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그림 속 남녀들 저편에는 한 목동이 양떼를 몰고 한가롭게 걷고 있다.
사실 이 장면은 16세기의 시 ‘아르카디아(Arcadia)’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시에서는 사랑에 빠진 젊은 귀족이 자신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노래한 연가를 목동에게 들려주는 장면이 나온다.
목동의 등장으로 인해 그림은 한층 더 전원적인 느낌을 갖게 됐으며, 그림 속 노을이 질 무렵의 피크닉 장면은 당시 상류층의 취향에 걸맞은 지성미와 은근한 관능미를 동시에 담고 있어 많은 인기를 얻었다. 마네 에두아르(Manet Edouard), <풀밭 위의 점심식사>(Lunchon on the Grass), 1863년,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 소장
티치아노의 <전원 음악회>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는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다. 교과서를 비롯해 여기저기 굉장히 많이 등장하는 유명한 그림이라 대부분 어디선가 한번쯤 본 기억이 날 것이다.
풀밭 위의 남녀들 구도를 보면 자연스럽게 티치아노의 그림이 연상되는데, 푸른 풀밭 위에 편하게 앉거나 누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두 남자는 토론에 열중해 있는 전형적인 당시 파리의 부르주아들의 모습이다.
그들 역시 서로에게만 시선을 둘 뿐, 바로 곁에 나체로 앉은 여인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혹은 모른 척하고 있다. 남자들 곁에 앉은 여인은 파격적인 누드를 선보이며 유일하게 관객을 응시하고 있다. 그들 곁에 약간 떨어져있는 여인은 강물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 있으며 역시 다른 세 사람과 시선을 교환하지 않는다.
티치아노의 영향을 받았지만, 마네는 같은 테마를 온전히 자기 스타일로 재해석해서 내놓았다. 똑같이 여인들의 누드를 그렸지만 티치아노가 우아한 여신의 이미지로 그것을 형상화했다면, 마네는 현실 속 그대로의 너무나 생생한 여인의 누드를 그려놓았다.
그가 살롱전에 출품한 이 작품은 너무나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당시 시민들과 평론가들에게 엄청난 악평을 받아야 했다. 사람들은 이 그림이 외설적이라고 생각했으며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그림이라고 몰아세웠다.
고전 누드화에서처럼 여신의 모습을 빌린 누드가 아닌 알몸의 여인이 동시대의 파리 시민(이 그림 속 여인의 모델은 빅토린 루이즈 뫼랑이라는 실존 인물이었다)이라는 사실에 마치 매춘부를 데리고 나온 위선적인 부르주아 남성들을 비판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또한 이 그림은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미술기법과 달리 사실적인 명암 표현 없이 너무 평면적으로 그려졌다는 비판도 받았다.
마네는 이 그림으로 파리에서 순식간에 유명인사가 됐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런 악평을 받으며 상당히 괴로워했다고 전해진다. 시인 보들레르에게 보낸 편지에 마네는 엄청난 비판을 견뎌야 하는 자신의 괴로운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어쨌든 마네의 이 그림은 고전회화에서 현대회화로 넘어가는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되며 인상파 화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같은 구도와 내용인데도 누구의 그림은 걸작으로 칭송받고 누구의 그림은 외설로 낙인찍혀야 했지만 그림을 보는 시선이란 참으로 주관적이면서도 비슷한 데가 있게 마련이다. 이 그림들을 보며 혹시 티치아노의 그림보다 마네의 그림이 조금 더 불편하지 않았는지.
우리가 그 시대를 살았다면 마네의 그림을 보고 어떻게 반응했을지 문득 궁금하다. 은근하고 우아한, 혹은 파격적이고 대담한, 조금 수상한 봄날의 피크닉 풍경은 그렇게 오늘날에도 우리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강지연 _ 교사. <명화 속 비밀이야기>, <명화 읽어주는 엄마> 저자.
네이버 블로그 ‘귀차니스트의 삶(http://blog.naver.com/oilfree07)’ 운영. oilfree07@naver.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