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지도를 보자. 태평양이 가운데 떡하니 자리 잡고 왼쪽에는 넓은 아시아 대륙, 오른쪽에는 남북으로 기다란 아메리카 대륙이 있다. 유럽은 왼쪽 구석에 처박혀 있고 그 아래로 지중해와 아프리카가 보인다. 이 세계지도의 한복판에는 바로 한반도가 있다. 이렇게 보면 대한민국은 영락없는 세계의 중심이다.
[Thoughts on] 서쪽으로 세계를 일주한 서양 문명
하지만 우리에게는 안타깝게도 전 세계에 존재하는 세계지도의 대부분이 이렇게 그려져 있지 않다. 세계지도의 80% 이상은 대서양을 중심으로 한다. 이 세계지도에서는 유럽과 아프리카가 중앙에 있고 왼쪽에는 대서양 너머 아메리카, 오른쪽에는 동서로 길게 유라시아 대륙이 뻗어 있다.

한반도와 일본은 오른쪽 맨 끝자락이다. 이 지도를 보면 유럽인들이 왜 동북아시아를 먼 동쪽, 즉 극동(far east)이라고 불렀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그려진 세계지도를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유럽, 아프리카, 남북아메리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필경 한국과 일본은 ‘아주 먼 나라’라는 생각이 무의식 깊숙이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세계지도가 대부분 대서양을 중심으로 하는 것은 당연하다. 태평양 주변보다는 대서양 주변에 훨씬 나라도 많고 인구도 많을 뿐 아니라 경제도 활발하고 문화권도 다양하다. 심지어 지리와 문명이 남북으로 포진해 있어 나라마다 사용하는 시간대도 큰 차이가 없다(그래서 이 지역에서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열리면 우리에게는 불편하지만 많은 인구가 편한 시간에 TV 시청이 가능하다). 그러나 태평양 중심의 세계지도에 익숙한 우리는 대서양 문명권 자체를 ‘외딴 곳’으로 여긴다.

이렇게 중심과 변방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내가 있는 곳이 중심이라면 내게서 먼 곳은 변방이 된다. 인류 문명의 초기, 지구상의 많은 지역이 알려지지 않았던 때는 더욱 그랬다.

스타크래프트 같은 전략 시뮬레이션 컴퓨터 게임은 어둠의 상태에서 시작한다. 게임을 시작할 때 내 기지가 있는 곳 이외에는 전부가 암흑이다. 기지에서 유닛을 만들어 어둠 속으로 보내면 유닛이 가는 길만 밝아진다. 내 유닛이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새 기지를 지으면 밝은 영역을 하나 더 건설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어딘가에서 처음부터 존재해왔던 적의 기지가 발견되고, 적도 역시 처음부터 나처럼 행동해왔음을 알게 된다. 이때부터 치열한 전쟁이 벌어진다. 승패가 가려져 게임이 끝날 때쯤이면 화면 전체에 어둠이 걷히고 밝은 상태로 바뀌어 있다.

서로 독립적으로 탄생한 동서양 문명도 스타크래프트 게임처럼 시작됐다. 두 문명은 이 세상에 자신의 기지만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했고 눈에 보이는 국지적으로 밝은 곳이 세계의 전부인 줄 알았다.

최초의 역사가로 알려진 고대 그리스의 헤로도토스는 세계가 네 개의 대륙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그 네 대륙이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리비아였다(그는 나일강 서편의 리비아를 이집트가 있는 나일강 동편의 ‘아프리카’와 다른 대륙으로 규정했다). 그가 말하는 아시아란 소아시아와 서남아시아를 가리킨다.

150년 뒤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거기서 세계를 조금 더 넓혀 세상의 동쪽 끝이 인도이고 서쪽 끝이 대서양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인도를 정복하러 동방원정을 떠났고 그 뒤 세상의 서쪽 끝인 이베리아 원정을 준비하다가 예기치 않은 병사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수백 년이 지날 때까지도 세계관은 조금씩 넓어졌을 뿐 자기중심적인 관점은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7세기에 일본의 지배자인 쇼토쿠(正德) 태자는 당시 중국 대륙을 수백 년 만에 통일한 수나라 황제인 문제(文帝)에게 이런 서신을 보냈다.

“해가 뜨는 곳의 천자가 해가 지는 곳의 천자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알렉산드로스가 해는 인도에서 떠서 대서양으로 진다고 여겼듯이 쇼토쿠도 해는 일본에서 떠서 중국에서 진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렇듯 인식의 틀에서는 서로 같았고 범위에서는 서로 달랐던 동서양의 두 세계관은 이후 스타크래프트 게임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크게 달라졌다. 단적으로 말해 동양의 기지는 각종 시설을 만들고 보완하고 업그레이드하는 데 치중한 반면 서양의 기지는 내부 시설이 미완인 채로 유닛을 밖으로 내보내 암흑 지대를 탐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동양은 처음에 기지를 설립했던 그곳에서 규모가 커지고 밝아진 데 비해 서양은 내보낸 유닛이 정보를 가지고 돌아오면 기지 자체를 옮기는 식으로 발전했다.

흔히 인류 문명의 4대 발상지를 말하지만 엄격히 따지면 두 곳으로 국한시킬 수 있다. 네 곳 중 인더스 문명은 맥이 끊겼고,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두 곳은 나중에 합쳐져 오리엔트 문명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이 오리엔트 문명과 황허 문명이 인류 문명의 양대 발상지가 된다. 이 두 문명이 바로 서양 문명과 동양 문명을 이룬다.

이 두 세계 문명의 발전 양태는 처음에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동양 문명은 그 고향인 중국 대륙, 더 제한하면 중원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문명권은 넓어져도 중심은 이동하지 않았다(이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곳을 터전으로 기원전 221년에 진시황은 최초의 제국을 세웠고, 이후 2000여 년 동안 내내 제국 체제가 유지됐다. 제국의 명패는 여러 차례 바뀌었고, 때로는 통일 제국이 사라진 분열기도 있었지만 이내 새로운 제국 체제가 복원됐다. 이 기본 구도는 1911년 신해혁명으로 제국 체제가 붕괴하기까지 변하지 않았다.

이렇게 같은 장소에서 넓어지고 밝아진 동양 문명과 달리 서양 문명은 오리엔트에서 탄생한 이후 서쪽으로 중심 이동을 시작한다. 한 차례 중심이 이동할 때마다 성격이 달라졌고 업그레이드되는 과정을 겪는다.

서남아시아와 이집트에서 동부 지중해의 크레타를 거쳐 그리스 반도로 이동한 서양 문명은 여기서 한층 형질이 변경해 본격적인 유럽 문명으로 발전했다(19세기에 유럽에서 생겨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는 유럽 문명이 아시아에서 전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그리스를 유럽 문명의 요람으로 간주했다.

그 때문에 그리스 신화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됐고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인 바이런이 그리스 독립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먼 그리스까지 와서 죽었지만, 그렇다고 유럽 문명의 씨앗이 오리엔트에서 싹텄다는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철학과 민주주의, 예술을 남기고 그리스 문명이 힘을 잃자 서양 문명의 중심은 다시 한 번 서쪽으로 이동해 이탈리아 반도에 자리 잡았다. 여기서 발흥한 로마는 남유럽과 북아프리카를 정복해 방대한 지중해 제국을 형성한다. 이것이 서양의 역사에서 사실상 마지막 제국이다.

5세기에 로마제국이 무너지면서 서양 문명은 다시 한 번 중대한 변화를 겪는다. 남유럽의 라틴 문명에 중부 유럽의 게르만 문명이 통합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성립된 라틴-게르만 문명에 수백 년 뒤에는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 문명이 합류하면서 방대한 중세 기독교 문명이 완성된다. 유럽 대륙 전체가 하나의 문명권으로 통합되는 순간이다. 이 시기에 서양 문명의 중심은 남유럽, 지중해권에서 북상해 서유럽 세계로 이동한다.

그릇에 물이 다 차면 흘러넘치게 마련이다. 유럽 대륙을 완전히 통합한 서양 문명은 이윽고 유럽 바깥의 세계로 넘치기 시작한다. 15세기부터는 에스파냐를 창구 삼아 라틴아메리카로 흘러들고, 17세기부터는 영국과 프랑스를 창구 삼아 북아메리카로 확산된다. 이제 서양 문명의 중심은 북아메리카로 이동했다.

문명의 탄생 이래 내내 서쪽으로 행진하던 서양 문명은 여기서 또 한 번 대양을 건넌다. 일본과 한반도 남부에 서양 문명의 결정체인 의회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이식된 것이 바로 그 결과다. 그 서쪽의 중국도 현재 무늬만 사회주의일 뿐(주식시장이 있는 사회주의라니!) 서양 문명의 흐름 속에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동아시아에서 다시 서쪽으로 이동하면 서양 문명은 태어난 고향인 서남아시아에 이른다. 5000년에 걸쳐 지구를 서쪽으로 한 바퀴 도는 문명의 순환이 완료되는 것이다. 그 거대한 호흡으로 보면 현재 이슬람권의 진통은 문명사적 필연일지도 모른다.

언뜻 생각하면 서양 문명의 세계 정복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문명은 정복되거나 사라지는 게 아니다. 세계가 동질적인 문명으로 글로벌화된 이후에는 글로벌 시대가 결국 로컬 시대로 바뀔 것이다.

그때가 되면 본래의 서양 문명도 하나의 로컬 문명이 되고, 동아시아와 이슬람권도 또 다른 로컬 문명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반세계화 운동이 아니라 전 세계가 다원화되는 로컬 시대의 프로그램이다.

남경태 인문학 저술가 및 번역가 dimeol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