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현 반클리프 아펠 코리아 지사장

[CEO Interview] “한국 여성 CEO, 본사에서 무섭다 말하죠”
매출 상승세를 타고 있는 한국 하이주얼리 시장은 하이엔드 워치 시장에 이어 최근 각광받고 있는 마켓 가운데 하나다.

애초 ‘핸드백’으로 시작된 한국 명품 시장의 붐은 시계로 이어졌고, 최근 몇 년 동안은 하이주얼리 시장도 힘을 받고 있다.

김소현 반클리프 아펠(Van Cleef & Arpels) 코리아 지사장의 석세스 스토리도 한국 하이주얼리 시장의 성장과 궤를 같이 한다. 그는 글로벌 명품 브랜드 그룹인 (주)리치몬트코리아 내 두 명밖에 없는 여성 지사장 가운데 한 명이다.

반클리프 아펠은 100여 년 전인 1906년 프랑스를 모태로 탄생한 하이주얼리 브랜드다. 두 보석 가문의 자제였던 알프레드 반클리프(Alfred Van Cleef)와 에스텔 아펠(Estelle Arpels)의 운명적 사랑과 결혼을 통해 세상에 선보인 보석 브랜드로 반클리프 아펠은 지난 세기 동안 진실한 사랑과 여성의 우아함을 아낌없이 표현해 왔다.

1906년 유럽의 부호와 사교계 명사들이 모여들던 파리 방돔 광장 22번지에 주얼리 하우스로서는 최초로 부티크를 연 후 반클리프 아펠은 전 세계로 부티크를 확장해왔는데, 한국 시장에 첫선을 보인 것은 2002년이다.

애초 한국에서는 에이전트를 통해 면세점을 중심으로 전개됐던 반클리프 아펠은 2002년 반클리프 아펠 코리아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인 영업 근간을 마련했고, 현재는 국내 하이주얼리 시장에서 매출 1, 2위를 다툴 만큼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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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유내강’의 도전과 저력으로 지사장 승진

“반클리프 아펠은 시계 부문으로 본다면 국내 시장에서 4위 정도이지만, 하이주얼리 부문만 본다면 현재 1, 2위가 되지 않나 짐작합니다. 그동안 하이주얼리 분야는 리치몬트그룹 내 까르띠에와 반클리프 아펠의 경쟁구도였는데, 최근에는 샤넬이 부상하고 있어요.”

김소현 반클리프 아펠 코리아 지사장은 2011년 누구보다도 야심 찬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그는 2005년 브랜드 매니저로 반클리프 아펠 코리아에 입사, 2년 만에 ‘지사장’ 타이틀을 달며 3년 만에 매출 400% 증가를 달성하는 등 기록을 세운 실력파다. 반클리프 아펠과 연을 맺은 지 6년째인 올해는 초기 대비 600% 성장을 자신한다.

원석 하나하나에도 고유의 스토리가 담겨 있어 독창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브랜드 반클리프 아펠은 새로운 ‘그 무엇’을 갈망하는 김 지사장의 성향과 많이 닮아있다. 지난 6년간 후퇴 없는 전진을 이어온 그에게 성공비결을 물었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에서는 드물게 한국인 여성 지사장인 그의 대답이 무척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보석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 그의 프로필을 다시 훑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의류직물학과를 졸업하고 당시 한국 에이전트로 영업하던 까르띠에에 입사해 면세점을 담당했어요. 마케팅 코디네이터였죠. 하지만 패션 바이어로서의 꿈을 키웠던 터라 프라다 코리아, 페라가모 코리아를 거치며 머천다이저(MD)로 일했습니다.

일을 하다 보니 리테일 영업을 알아야겠다 싶었고, 그래서 까르띠에에 다시 입사해 영업 쪽 업무를 하다 동일 그룹 내 브랜드인 반클리프 아펠로 자연스럽게 옮기게 됐죠. 반클리프 아펠의 브랜드 매니저로 일하다가 지사장 타이틀을 달게 됐고요.

MD와 영업 모두 제겐 도전적인 분야였어요. 패션은 변화가 많고 역동적인 분야랄 수 있는데, 주얼리도 생각보다 잔잔하지만 그 속에 다양한 마케팅 활동이 있더라고요.”

명품 브랜드들이긴 했지만 패션으로 ‘잔뼈’가 굵었던 그에게 하이주얼리는 사실 ‘도전’ 그 자체였다. 설상가상으로 때마침 반클리프 아펠에 합류한 2005년은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명품 브랜드들이 고전을 겪을 때였다. 하지만 지사장으로 부임하자마자 맞닥뜨린 역경은 되레 도전을 부추기는 자양분이 돼 주었다. 한국인 특유의 은근과 끈기가 보기 좋게 ‘안타’를 쳤다고 할까.

“경기가 어려워지면 VIP 고객들은 어디론가 숨어버리시더라고요.(웃음) 그럴 땐 고객을 직접 찾아나서는 것밖엔 별다른 방법이 없죠. 본사 사람들이 코리안 우먼들은 무섭다고 합니다.

한국 여성들은 겉으로 보기엔 차분하고 조용한 것 같은데, 일할 때는 도전적이고 진취적이라면서요.(웃음) 본사에서도 그런 점을 높이 평가해서 저를 지사장으로 발령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 역시 창의적인 것을 좋아해서 브랜드랑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솔직히 아직은 주얼리 마켓에서 지사장으로서 경력이 부족해 해야 할 숙제도 많습니다. 더 열심히 뛰어서 반클리프 아펠을 국내 시장에서 최고의 브랜드로 만드는 것이 목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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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의 또 다른 조건 ‘기다림’

한국 명품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과 더불어 VIP 고객들의 취향 역시 고급스러워졌다. 고객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입맛 역시 시쳇말로 까다로워진 것이다. 지사장이라고 팔짱 낀 채 책상 앞에 앉아있을 수 없는 시대.

경제 한파만 몰아치면 어디론가 꽁꽁 숨어버리는 ‘VIP 고객’과의 유연한 관계 구축은 능력 있는 지사장의 필요충분조건이다. 김 지사장은 이야기가 한 시간을 훌쩍 넘어가도록 대화를 이어가는 데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던 드문 상대이기도 했다. 하이주얼리 이야기에서 자녀 교육, 취미 등 어떤 주제에도 막힘이 없다.

“처음엔 필요에 의해서 고객을 만났는데, 만나다 보니 제 적성에 맞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어요. 고객과의 관계는 항상 어려운데, 친분이 생기다 보면 개인적인 릴레이션십으로까지 발전하게 된 경우도 있죠.

하지만, 고객에 대한 충분한 파악은 하되, 지나치게 가까워지는 것도 조심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여성 고객들이 많아 대화를 풀어가는 데 크게 어려움은 없지만, 여성분의 선물을 고르는 남성 고객도 꽤 많습니다.”

고객과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과 교류를 위해 지난 6년간 그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가운데 효과 면에서 가장 톡톡한 역할을 했던 것은 2008년 신세계 백화점 본점에서 마련한 반클리프 아펠 ‘영원의 보석전’이다.

브랜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제시한 전시회는 이후 고객과의 풍성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화두가 됐다. 반클리프 아펠을 대표할 수 있는 엔트리 레벨 컬렉션인 ‘알함브라 컬렉션’을 확실히 알리고 매년 꾸준한 매출을 거둘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신문, 잡지뿐만 아니라 인터넷, 페이스북, 트위터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브랜드를 알리고 있어요. 명품이라고 해서 대중적인 미디어 노출을 꺼릴 필요는 없다고 봐요. 브랜드가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 어떤 장인정신을 고수하는지 등 대중이 알고 있어야 브랜드가 왜 특별한지 알게 되니까요.

특정 소수만 알고 있는 것이 명품이라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반클리프 아펠의 경우 태생부터 하이주얼리 브랜드로 인식돼 있어 오히려 마케팅에 장애가 되기도 했어요. 실제 반클리프 아펠에는 접근하기 힘든 가격대의 제품만 있는 건 아니에요.

‘페를리 컬렉션’ 밴드 링의 경우 70만 원대부터 시작해 펜던트는 200만~300만 원대도 있어요. 캐주얼하게 착용해도 되지만, 요즘은 심플한 웨딩반지를 선호하는 고객들에게도 반응이 좋아요.

시계의 경우도 400만 원대부터 시작하고, 파인 주얼리가 사용된 제품은 2000만 원 선, 컬렉터들이 선호하는 스페셜 아이템은 8000만 원대까지, 다이아몬드를 많이 사용한 경우 억대를 호가합니다.”

대중과의 꾸준한 커뮤니케이션 결과, 엔트리 레벨 제품들이 많이 알려졌다. 미래의 고객이 될 젊은 네티즌들도 간과할 수 없어 최근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홍보도 꾸준히 하고 있다.

현재 반클리프 아펠 코리아의 매출은 하이주얼리가 80%, 나머지 20%는 시계부문이 차지한다. 예전 다이아몬드의 크기와 커팅에 집착했던 고객들이 지금은 다이아몬드의 색깔과 클래러티(clarity), 디자인에 선택의 무게중심을 두게 됐다.

과거의 보석 트렌드였던 ‘심플함’ 역시 ‘독창성’에 자리를 내줬다. 브랜드의 스토리텔링과 독창적 디자인에 높은 점수를 주는 고객이 늘어난다는 사실은 반클리프 아펠에는 더 없이 좋은 기회랄 수 있다. 이는 백화점 VIP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프라이빗 프레젠테이션을 게을리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클리프 아펠을 한 번 구입한 고객들은 브랜드의 가치를 즐기면서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특성이 있어요. 명품의 조건은 시간과 연관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품이 갖는 영원성과 함께 ‘기다림’이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그것을 갖기까지 기다림과 설렘이 없다면 손에 넣었을 때 기쁨도 없겠죠. 마침내 손에 넣은 명품은 영원성이 있어야겠죠. 반드시 값비싼 것이 명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가 써 갈 반클리프 아펠 코리아의 역사, 다음 챕터가 벌써 궁금해진다.

김소현

반클리프 아펠 코리아 지사장
이화여대 의류직물학과
프라다 코리아 MD팀장
페라가모 코리아 MD팀장


글 장헌주·사진 이승재 기자 c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