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에서 베네치아는 물고기 모양을 하고 있다. 석호에 세워진 도시 베네치아가 물고기 모양이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베네치아 제국을 건설해 아드리아해를 평정한 베네치아인들은 물고기처럼 바다가 고향인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자동차 없이 산다. 운전면허증이 전혀 필요 없다. 뱃사공으로, 어부로, 관광가이드로, 소믈리에로 살아가는 베네치아인들은 늘 봉골레나 맛조개 파스타를 먹고, 계절에 따라 어죽 같은 생선 리조토에 새우나 게 튀김을 즐겨 먹는다. 이들의 일상을 살피는 일은 오직 배를 타고만 가능하다. 베네치아 여행 또한 배를 타면서 시작된다. 보통 베네치아 주변 도시에 여장을 풀고, 이른 아침에 간편한 차림으로 반나절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렇게 해서는 베네치아인들의 일상을 엿볼 수 없다.
진정한 여행의 멋은 여행지의 토박이처럼 먹고 자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베네치아역에는 미리 예약해 둔 수상택시 기사가 피켓을 들고 서 있어 쉽게 그를 따라 여행을 시작했다.
2월의 날씨는 고만고만한데, 필자가 머문 사흘간은 기가 막히게 좋았다. 12월에 왔다면 불어난 수면으로 장화를 준비하든지 관광을 포기해야 하겠지만, 2월은 활기찬 걸음으로 거리를 누빌 수 있다.
계절적으로 물이 불어나기 때문에 베네치아는 항상 건물이 가라앉는 효과에 떨고 지낸다. 그러니 물가의 건물 1층은 그냥 1층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다 3층에 있는데, 사람들도 주로 거기서 지낸다. 물위에 세워진 석조 건물과 운하를 부유하는 곤돌라
바다와 강, 거기에 운하까지 촘촘하게 조성된 베네치아의 집은 모두 석조 건물이다. 베네치아 가옥들은 나무 기둥 위에 건설됐다. 물속에서는 산소가 없어 나무가 부패되지 않는다. 특히 광물질 작용으로 나무에 경화현상이 일어나 나무가 바위처럼 굳어지는데, 베네치아 도시의 지하층은 모두 이런 작용의 영향을 받는다.
대들보 같은 나무들을 일정 간격으로 땅 속에 박고, 그 사이에 다시 잔 나무 기둥들을 박아 단단한 지대를 형성한 후에 석조 건물을 올리는 방식이다. 베네치아를 정복하러 온 나폴레옹이 멋지다고 찬사를 보냈던 살루테 성당은 무려 100만 개의 나무 기둥이 지지하고 있다.
모래 위에 세운 집은 무너져도, 물위에 세운 집은 수백 년 간다는 말을 베네치아가 증명한다. 시간이 갈수록 튼튼해지는 집, 이것이 베네치아의 건물이다. 건물의 하중을 줄이기 위해 창문을 많이 두는 것도 특징이다. 베네치아의 나무는 곤돌라에서 정점을 이룬다. 다정하게 앉은 연인들 뒤로 둥근 모자를 쓴 뱃사공과 좁은 운하를 유유히 지나는 곤돌라는 한 폭의 수채화이며 베네치아를 관광 명소로 만드는 힘이다.
간혹 뚱뚱한 뱃사공도 있지만, 뱃사공 대부분이 훤칠한 키에 선글라스를 껴 이탈리아의 남성미도 물씬 풍긴다. 그들이 소리쳐 부르는 산타 루치아 노래에 낭만이 깊어진다.
사실 곤돌라 주인들은 뭔가를 아는 사람이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손님이 기뻐하는지 잘 안다. 융단을 깔고, 금장을 해 푹신한 좌석을 마련한 후 손님을 맞는다. 영화제의 레드카펫을 깔고 앉은 느낌의 곤돌라는 발을 디딜 때부터 이미 ‘웰컴’이란 양탄자가 승선자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이러니 연인의 사랑이 무르익는 데에도, 비즈니스 계약을 성사시키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또한 곤돌라는 고급스러움을 강조하기 위해 모두 검게 칠해져 있다. 블랙카드 회원들이 보면 전용이라 여길지 모르겠다.
곤돌라를 타고 리알토 다리 아래를 지날 때에는 좀 유의할 게 있다. 수백 대의 카메라가 사방에서 당신을 노릴 것이다. 거리도 있고, 풍경도 멋있어 인상적인 기념사진을 얻기 위해 많은 셔터가 쉴 새 없이 눌려지니 양지하시길 빈다.
16세기에 지어진 리알토 다리는 피렌체의 폰테베키오 축소판 같다. 다리 위에는 여러 상점들이 있고, 다리를 건너면 시장으로 이어진다. 미켈란젤로는 리알토 다리의 설계 공모에 응했지만, 베네치아의 실력자를 알지 못해 당선되진 못했다.
연인과 둘만의 멋진 사진을 찍으려면 스플렌디드 호텔 근처의 다리로 가라. 거리가 적당해 아웃 포커스가 잘 되기에 원근감이 느껴지는 작품이 만들어진다. 곤돌라에서 만날 수 있는 이국적인 베네치아 전경
리알토 다리 위에서 지나가는 곤돌라를 촬영하면 가끔 우스꽝스런 배들을 볼 수 있다. 자동차 하나 없이 지나는 것이라곤 모두 배인데, 그 배들이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쓰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대부분이 사람을 수송하는 바포레토, 트라게토 수상택시들이지만, 가끔은 택배용 배, 채소 및 고기 배달용 배, 쓰레기 분리수거용 배 등도 지나간다.
‘젤라토’라 불리는 이탈리아 아이스크림을 배달하는 배는 멀리서 봐도 아이스크림같이 보인다. 형형색색의 빛깔을 띤 박스 속으로 사람들이 허리를 구부리고 종이박스를 여러 개 건넨다.
그 상자들을 이동 냉장고에 집어넣고 드르륵 드르륵 발통 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며 골목으로 사라지는 사람은 레스토랑 주인이다. 이런 배들은 도로에서 풀 오버하는 것처럼 물가에 움푹 들어간 곳에 배를 정차해 일을 본다. 바포레토 1번을 타고 리알토 다리 다음 역에 내리면 거기가 수산물 시장인데, 오후 늦게 시장이 파할 무렵에는 쓰레기 분리수거용 배가 긴 집게 다리를 이용해 정확하게 분리수거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베네치아 운하 중에 가장 폭이 넓은 대운하를 건너려면 물론 걸어서 리알토 다리 등을 건너면 된다. 배를 타고 건널 수도 있는데, 바포레토 1번을 타면 탄다. 이 노선은 정말 알차다. 대운하의 작은 역들에 모두 정차하므로 구경하기에도 좋고, 사진 촬영하기에도 좋다.
특히 지그재그로 운하의 왼편과 오른편에 정차하므로 수시로 왔다갔다하며 관광할 수 있다. 또한 트라게토를 타도 건널 수 있다. 그걸 타면 진짜 베네치아인이 되는 거다. 요금도 0.5유로로 싸다. 그걸 타고 서서 가면 베네치아인, 앉아서 가면 관광객이다.
베네치아에서 와인을 만든다는 정보를 듣고, 그 양조가를 찾아 헤매던 중 그의 포도밭은 베네치아 타운이 아닌 한 작은 섬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 수소문하던 베니스대 출신의 와인 상인 잔루카 비솔(Gianluca Bisol)이 주민 500명 정도의 마초르보 섬에 있다는 소식이었다.
필자는 곧장 바포레토 선착장 폰타멘타 누오베로 달려갔다. 바포레토 노선 LN을 타면 마초르보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베네치아 사람들이 마셨던 와인을 복원하고 있다는 비솔의 이야기는 다음 호로 이어진다.
[베네치아에서 꼭 한번 해봐야 할 것]
산마르코 광장 카페에서 카푸치노 마시기
신약성서 마가복음의 저자 마가를 기념하는 산마르코 성당은 듀칼레 궁전과 그랜드 커낼(대운하)과 함께 베네치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명소로, 베네치아를 관광하는 사람들에겐 최종 목적지나 다름없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산마르코 광장에 당도하면 ‘드디어 베네치아에 왔구나’ 하며 만족해한다.
한편 베네치아 시장은 일부 관광객들이 당일치기로 산마르코 광장만을 보고 돌아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관광세를 거두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한다. 산마르코 광장에는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특히 비둘기 모이를 사서 주변에 비둘기 떼를 두고 사진을 찍는 관광객을 쉽게 볼 수 있으며, 각종 가면을 늘어놓고 팔려는 행상인들도 많다. 카니발 기간 중에는 수도꼭지를 틀면 와인이 나오는 이른바 ‘와인 분수’가 설치되는 관계로 광장이 좁아 보이기도 하지만, 카니발이 끝나면 광장이 다시 확 트인다.
산마르코 광장의 노천카페는 노란 의자와 빨간 의자 등으로 업체를 구분하는데, 성당에서 가까운 노란 의자 쪽이 손님이 많다. 빈 의자에 몸을 내려놓고 지친 다리 근육을 어루만지면서 카푸치노 한 잔과 스파클링 워터 한 모금을 주문하며 지중해의 태양을 바라보는 것이 베네치아 여행의 묘미다.
카니발 즐기기 www.carnevale.venezia.it
카니발은 기독교 사순절이 이르기 전에 성대하게 여흥을 즐기기 위해 생겨난 절기로, 규모나 내용 면에서 베네치아의 카니발이 가장 유명하고 화려하다. 카니발의 최고조는 가면무도회다. 귀족들이 신분을 숨긴 채 파티를 즐기기 위해 가면을 쓰기 시작한 것이 그 유래라고 알려져 있다. 카니발의 시작은 교회력에 따라 달라지는데, 올해는 2월 26일에 시작해 3월 8일에 끝났다.
글·사진 조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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