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시계 컬렉터 김문정 용정컬렉션 대표

서울 인사동 용정컬렉션은 명품 시계 마니아들의 아지트다. 김문정 용정컬렉션 대표는 부친의 뒤를 이어 이곳을 지키며 2대째 앤티크 시계를 수집하고 있다. 패션디자이너의 꿈을 접고 신비로운 시계의 매력에 빠진 그의 컬렉션을 소개한다.
[The Collector] 아버지에게서 대물림한 앤티크 시계 사랑
용정컬렉션은 1965년 문을 연 앤티크 시계 전문점이다. 김문정 대표는 고미술협회 외국유물감정위원장을 지낸 1대 사장, 고(故) 김희웅 씨의 장녀다.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던 그가 아버지의 대를 이어 용정컬렉션을 지키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저희가 삼형제예요. 그중 유독 저만 아버지를 따라 골동품 가게를 잘 다녔어요. 장난감 가게도 아니고 어린아이에게 골동품 가게가 뭐가 그리 재밌겠어요. 그런데도 지루해하지 않고 이것저것 묻기도 하면서 잘 따라다녔어요. 그러다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The Collector] 아버지에게서 대물림한 앤티크 시계 사랑
무브먼트만 봐도 진품과 가품 확연히 구분

김 대표가 아버지를 대신해 가게를 맡은 게 1997년, 그의 나이 스물일곱 살 때였다. 유학 중 아버지의 병세가 위독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귀국해 아예 눌러 앉았다. 어머니를 비롯해 주변에서는 패션디자인 공부를 계속하라고 했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어릴 때부터 시계와 골동품에 묻혀 살았던 터라 아버지의 가업을 잇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겼다.

김 대표가 가게를 맡으면서 용정컬렉션은 적지 않은 변화를 겪었다. 그가 경영을 맡기 전까지 용정컬렉션은 시계뿐 아니라 중국 도자기 등 다양한 앤티크 제품을 취급했다. 그가 대표를 맡은 후에는 시계라는 단일 품목만 다루었다.

그 역시 처음에는 중국 도자기도 취급했다. 그런데 중국 도자기는 공부를 할수록 어려웠다. 끝이 없는 듯했다. 시계도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초기에는 시행착오도 겪었다. 하지만 공부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자 감정이 가능했다.

그런 이유로 15년 전부터는 시계만 취급하고 있다. 인터뷰를 하며 능숙하게 배터리를 교체하던 그는 “시계를 다루다 보니까 별 일을 다 하게 되더라”며 미소를 지었다.

“시계는 진짜와 가짜 무브먼트가 완전히 다르거든요. 무브먼트만 봐도 진품인지, 가품인지 금방 알 수 있어요. 가끔 배터리를 교체하러 오는 손님들 중에 가품을 진품인 줄 알고 오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 분들에게 ‘가품인 건 아시죠’라고 물으면 쉽사리 인정을 안 하세요. 하지만 전문가가 보면 금방 티가 나거든요.”
[The Collector] 아버지에게서 대물림한 앤티크 시계 사랑
여성용보단 남성용이, 전자식보단 기계식이 가치 높아

용정컬렉션에는 신제품도 있지만 대부분이 앤티크 시계들이다. 종류도 탁자용 시계에서 회중시계까지 다양하다. 물론 가장 많은 건 손목시계다. 그는 일본의 앤티크점이나 소더비 등 경매를 통해 시계를 수집한다. 때로는 부모님이 물려준 시계를 가져오는 이들도 있다.

앤티크 수준의 시계는 수집 기준이 비교적 단순하다. 일단 여자 시계보다는 남자 시계가 가치가 높다. 보석으로 치장이 많은 여성용 시계는 화려하기는 하지만 무브먼트가 단순하고 유행에 민감해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진다.

다이아몬드가 박힌 고급 시계가 유행이 지나면 3분의 1 가격에 거래되는 경우도 흔하다. 남성용 시계 중에서는 전자식보다 기계식이 가치가 높다. 기계식 중에서도 크로노그래프, 문페이즈 등 기능성을 갖춘 시계가 더 고가에 거래되는데, 이런 시계는 일반적인 시계에 비해 부품이 두 배 이상 많다.

환금성도 컬렉션의 중요한 척도가 된다. 외국의 시계 컬렉터들 중에는 환금성을 보고 투자하는 이들이 많다. 크리스티 등 경매회사에서는 시계만 전문으로 하는 경매가 1년에 4~5차례 열리는데, 90% 가까운 낙찰률을 기록한다. 경매에서 인기가 높은 브랜드는 롤렉스와 파텍 필립 등이다. 이들 브랜드는 환금성이 높기 때문에 컬렉터들이 가장 선호한다.

“희소성도 중요한 기준이 되죠. 파텍 필립 같은 제품은 한 모델을 1000~2000개 정도밖에 만들지 않기 때문에 희소성이 있죠. 고객 중에 우리 가게에서 까르띠에 앤티크를 구입한 분이 계셨어요.

이분이 프랑스에 갔다 까르띠에 매장을 들렀는데, 매장 주인이 손목에 찬 시계와 매장에 있는 시계를 바꾸자고 제안했대요. 마음에 드는 거 아무거나 가져가도 된다면서요. 신이 나서 바꿨는데, 나중에 무척 후회를 하더라고요. 벗어준 게 무척 귀한 거였거든요.”

이밖에 개인의 기호에 따라 다양한 컬렉터들이 있다. 까르띠에, 론진 등 브랜드별로 모으기도 하고, 연도별로 컬렉션을 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스포츠 시계만 모으기도 한다.
[The Collector] 아버지에게서 대물림한 앤티크 시계 사랑
롤렉스부터 파텍 회중시계까지 100여 점 개인 소장

한 번 눈높이가 올라가면 욕심이 더 생기는 게 시계다. 시계에 묻혀 사는 김 대표라고 예외는 아니다. 실제 그는 매장에 내놓기 아까운 제품을 따로 컬렉션한다. 현재 그는 100여 개의 앤티크 시계를 보유하고 있다.
[The Collector] 아버지에게서 대물림한 앤티크 시계 사랑
김 대표의 컬렉션 중 가장 아끼는 것은, 스무 살을 기념하며 아버지가 선물한 롤렉스 시계다. 지금이야 롤렉스가 흔하지만 당시만 해도 롤렉스가 귀하디귀한 시절이었다. 걱정 많은 어머니가 “괜히 비싼 시계 차고 다니다 손목 잘린다”고 걱정할 정도로 고가의 제품이었다.

다음으로 아끼는 컬렉션은 1910년대 제작된 파텍사의 손목시계다. 파텍과 필립, 두 가문이 동업하기 이전에 만든 제품으로, 30년 전 그의 아버지가 일본의 한 숍에서 200만 엔이라는 거금을 들여 구입한 것이다.

일명 CEO 시계라고 불리는 ‘파텍 필립 칼라트라바 3919’도 애장품 중 하나다. 1950년대부터 나온 이 모델은 어떤 슈트에도 잘 어울려 CEO들이 가장 선호한다. ‘CEO 시계’라는 닉네임이 붙은 것도 그런 이유다.

회중시계도 중요한 컬렉션 대상이다. 금장 회중시계라고 해도 요즘 제품은 200만 원 정도면 살 수 있지만, 예전에 만들어진 회중시계는 귀족들이 장인에게 특별 주문해 몇 달이 걸려 만들어졌다.

“제가 가진 것 중에 1907년에 만든 파텍 회중시계가 있어요. 저한테는 아주 특별한 시계예요. 소더비나 크리스티 경매에 가끔 당시 만들어진 회중시계가 나오기는 하지만 본체만 있는 게 대부분이거든요. 제가 가진 건 본체와 체인이 있을 뿐 아니라 보증서와 영수증까지 온전하게 있거든요. 5년 전 일본 컬렉터에게서 두 개를 구입해 한 개는 팔고 나머지는 제가 컬렉션하고 있어요.”

이야기를 마친 그는 “잠시만요” 하며 매장 뒤쪽으로 갔다. 잠시 후 나타난 그의 손에는 시계 케이스가 들려있었다. 뚜껑을 열자 그가 말한 파텍 회중시계가 귀한 모습을 드러냈다.

“기품이 느껴지죠. 매장에 있는 시계들도 다 제 나름대로 매력이 있어요. 매장을 본 친구가 ‘이거 다 팔면 얼마야’라고 놀란 적이 있는데, 사실 전 창피해요. 제 성엔 안 차거든요. 스위스에 있는 파텍 전시장을 보고 나서 어찌나 욕심이 나던지…. 요즘도 예쁜 시계 있으면 이것저것 안 재고 사 버려요. 전 시계 컬렉션이 너무 재밌어요. 다시 태어나도 이 일을 하고 싶을 정도로요. 5년 전에 아들, 딸 쌍둥이를 낳았는데 가능하면 애들한테도 물려주고 싶어요.”

글 신규섭·사진 이승재 기자 wa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