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 연세대학교 의료원장

연세대학교 의료원(이하 연세의료원)은 12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 최초의 현대적 의료기관이다. 의과대학·치과대학 등 교육기관, 세브란스병원 등 진료기관, 8개의 전문 병원을 산하에 둔 연세의료원은 직원 수만 8500여 명에 이른다. 지난해 8월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에 취임한 이철 원장을 만나 의료산업의 나아갈 방향을 들었다.
[CEO Interview] “숙련된 의료진을 중심으로 의료 세계화에 앞장 서겠다”
늦었지만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취임한 지 6개월입니다. 그동안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셨을 텐데, 제일 먼저 챙기신 일은 무엇입니까.

“의료원도 일반 직장처럼 의사를 포함한 직원들이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휴먼웨어(humanware)를 중시합니다. 연세대 경영대학원과 연계해 미니 MBA(Mini-MBA) 과정을 열었습니다. 현재 1기를 배출했는데, 호응이 좋습니다.

미니 MBA 과정은 의사 출신의 경영진들이 보다 확실한 경영 마인드를 갖도록 하기 위해 개설됐습니다. 지난해 개설 이후 10주간의 교육과정 동안 참석률이 90%를 넘을 정도로 열의가 높았습니다.

올해부터는 보다 체계적이고 다양한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며, 수료하는 모든 교직원들이 그간 현장에서 체득한 노하우와 교육과정 동안 습득한 경영지식과의 시너지를 통해 의료원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장기 마스트플랜을 수립하는 것도 선결 과제입니다. 이를 위해 장기적인 교육 목표를 세우고, 진료와 연구의 방향 설정을 세워야겠죠. 무엇보다 기독교 병원으로 어떻게 소명을 다할지도 고민해야 하고요. 현재 어젠다 별 위원회를 가동해 플랜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CEO Interview] “숙련된 의료진을 중심으로 의료 세계화에 앞장 서겠다”
2011년 신년사를 보면 현안이 정말 많은 듯합니다. 그중에서도 연세대 국제캠퍼스의 역할을 강조하셨습니다. 연세대 국제캠퍼스의 현황과 비전을 말씀해주십시오.

“국제캠퍼스는 국제적인 의사를 양성하는 터전이 될 것입니다. 현재 연세대 국제캠퍼스는 1단계 공사가 완료돼 14만4793㎡의 건물이 완공됐고 2011년 3월 신학기부터는 약학대, 의예과, 치의예과, 언더우드 국제대학, 자유전공 신입생들이 영어몰입 교육과 기숙형 교육방식을 통해 국제적인 인재로 양성됩니다.

특히 의예, 치의예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한·중·일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시행할 예정입니다.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의 다양한 프리미엄 교육은 학문적으로 국제적 감각을 지닌 인재를 육성함과 동시에 국제캠퍼스 내에 신설될 중개연구시설(TRI), 세브란스국제병원 등 연세의료원의 차세대 전략 거점 시설에서 실무경험을 쌓게 될 것입니다.

종국에는 의료와 정보기술(IT)의 융합, 국제적인 의사 육성 등을 통해 연세대 국제캠퍼스를 국제적인 의료 클러스터의 중심에 세울 생각입니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메디컬 투어리즘이 적용될 것입니다.”

많은 의료기관에서 메디컬투어에 기대를 거는 듯합니다. 그럼에도 진척은 더딘 듯한데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저희는 20여 년 전 인요한 교수를 국제진료센터장으로 모시면서 메디컬투어를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의료 상황에서는 메디컬투어의 활성화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만큼 대학병원의 문턱이 낮고, 진료시간이 짧은 곳도 없습니다. 우리는 평균 진료시간이 3분이에요. 그렇게 해서는 해외 환자 유치가 불가능합니다. 메디컬투어에 부적합한 정부 규제도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아직은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연세의료원은 한국 의료산업의 선구자 역할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의료산업 자체가 경쟁이 심화되면서 연세의료원도 변화를 추구해야 할 듯합니다. 궁극적으로 어떤 비전을 갖고 계십니까.

“제가 20년 전인 1993년 신생아 호흡부전개량 신약을 개발한, 국내 신약개발 1세대입니다. 그런 만큼 연구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의료수가 상승을 크게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의료원의 수익성 향상을 위해서도 연구중심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의료기관들의 수익구조는 어떻습니까. 연세의료원을 기준으로 말씀해주십시오.

“의료수가가 워낙 낮아서 진료만으로는 수익에 한계가 있습니다. 병상에서는 적자를 보고, 외래에서 조금 이익을 내는 수준입니다. 가장 큰 수익은 임대 매장이나 주차장 등에서 나오는 수입입니다. 세브란스병원이 그 정도 수준이고 정신병원이나 어린이병원 등은 적자입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번 돈으로 지방 병원들을 꾸려나가는 거죠. 연 300억 원가량 의과대학에도 지원해야 하고요.”

[CEO Interview] “숙련된 의료진을 중심으로 의료 세계화에 앞장 서겠다”
외국 병원들도 그 정도로 상황이 나쁜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동병원이나 재활병원, 정신병원 같은 데가 대표적인 적자 병원이거든요. 선진국에서 정부에서 이런 병원들을 운영합니다. 한국은 국공립으로 운영하는 병상이 전체의 10% 정도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90%를 민간병원이 어려운 환경에서 커버를 하는 겁니다. 저희만 해도 아동병원, 재활병원, 정신병원이 다 있거든요. 의료 선교기관이기에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봉사를 하는 거죠.”
연구중심 병원으로 가겠다는 건 수익다변화 차원도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선진국은 기부문화가 발달해서 상황이 낫습니다. 하버드나 MD앤더슨 같은 곳은 기부가 전체 예산의 20~30%를 차지하거든요.

연세의료원은 다른 곳에 비해 동창생 등의 기부가 많은 편이지만, 외국 병원에는 훨씬 못 미칩니다. 특허나 기술이전 등으로 수익원을 다변화할 수밖에 없는 거죠. 다행히 저희는 오랜 노하우와 숙련된 의료기술을 가진 고급 인재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의 경험과 의료기술을 바탕으로 수익원을 창출하자는 거죠. 앞으로 재원을 마련해 연구 인력을 추가로 뽑을 계획입니다.”

삼성그룹이 신성장 동력으로 의료산업을 지목하는 등 의료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 의료산업의 수준은 어느 정도이며, 한국 의료산업의 강점이라면 어떤 것들을 들 수 있을까요.

“한국의 의료 기술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위암이나 자궁암 등의 치료성공률은 세계적인 암병원인 MD앤더슨보다 높습니다. 이처럼 높은 의료 수준에도 불구하고 의료산업의 경쟁력은 선진국에 다소 뒤처집니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연세의료원을 비롯한 국내 대표 사립 의료기관들은 의료산업화 모델 개발, JCI 인증과 같은 다양한 노력을 통해 선진국과의 경쟁력 격차를 줄여 왔습니다.”

의료산업에서 한국의 가장 큰 강점은 아무래도 의료진이겠죠.

“물론입니다.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입니다. 이들 기업이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1960, 70년대 우수한 인재들이 공대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이후에는 많은 우수한 인재들이 의대에 진학했어요. 이런 우수한 인재들을 근간으로 의료산업이 향후 대한민국을 이끌어야 합니다.

사실 이미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 의사들의 높은 의료수준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5월에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우리 병원에 입원을 했어요. 토요일 오전에 입원했는데 1시간 만에 3개과 의사가 모여서 치료를 해줬습니다.

퇴원을 하면서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미국에서도 이런 진료 시스템을 본 적이 없다며 무척 만족해하셨습니다. 저희 병원 간호사를 개인 간호사로 쓰고 싶다는 말까지 하셨어요.”

그 연장선에서 블라디보스토크에 U헬스케어센터를 여셨습니다. U헬스케어센터는 어떻게 열게 됐습니까.

“그동안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경쟁력 있는 국제 원격화상진료시스템 구축과 해외 한국의료관광허브 육성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지속적인 협업을 해왔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12월 한국관광공사와 해외 U헬스케어센터 운영을 위한 업무 협약(MOU)을 체결했고, 올해 2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U헬스케어센터 개소에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U헬스케어센터는 한국 의료기관과 해외 환자 간의 물리적 거리를 줄이는 효과와 함께 연세의료원으로 대변되는 한국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장벽을 낮추는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입니다. 향후 U헬스케어센터는 연세의료원의 해외 홍보 마케팅의 거점으로 활용될 것이며, 의료원 브랜드 제고와 해외 환자 유치 활성화 등의 기대 효과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한국 의료산업의 핵심 경쟁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우수 의료진이다. 연세의료원은 이들을 바탕으로 국제적인 의료기관으로 성장할 것이다.”
“한국 의료산업의 핵심 경쟁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우수 의료진이다. 연세의료원은 이들을 바탕으로 국제적인 의료기관으로 성장할 것이다.”
의료원장은 의학자로서의 역할보다 경영자로서의 역할이 더 클 듯합니다. 의료원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항상 섬기는 리더십을 강조합니다. 지시하거나 통제하지 말라는 거죠. 미국 격주간지 포춘(Fortune)이 선정한 ‘일하기에 가장 훌륭한 100개 기업’ 리포트에도 이런 말이 나오더군요. 저희 직원이 의사와 일반 직원들을 합해 8500여 명입니다. 특히 저는 행정이나 지원조직에게 내부 고객을 감동시키라고 강조합니다.

범위를 확장하면 아무래도 저희가 의료 선교기관이다 보니 하나님을 섬기는 게 중요하죠. 세상 만물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저희는 단지 청지기로 그 소명을 다할 뿐이죠. 사실 인센티브 등 현대 경영기법은 주인의식을 고양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그런 면에서 믿음에서 출발한 저희는 기본적인 주인의식을 갖고 있는 거죠.”

연세의료원은 세브란스에 갤러리가 있고, 원장님도 미술품 컬렉션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연세의료원의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갤러리를 운영하고 음악회 등을 엽니다. 병원이 문화적인 공간의 역할도 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런 취지에서 상설 갤러리를 운영하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미술작품을 거는 것입니다.

찬찬히 둘러보면 아시겠지만 김창렬 선생의 물방울 그림에서 폭포를 형상화한 설치미술 등 전체적인 콘셉트는 ‘물’입니다. 물은 곧 생명이거든요. 의료원의 이미지와도 잘 어울리죠.”

미술품 수집 외에 다른 취미는 없습니까.

“학생 때부터 사진 찍는 걸 즐겼어요. 지난해에는 상명대 평생교육원에서 사진 강좌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냥 아마추어 수준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의료기관의 수장으로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시는지요.

“딱히 건강관리법이라고 내세울 만한 게 없습니다. 몇 년 전 시작한 수영과 소식(小食)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적게 먹으려고 꽤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현대인들은 영양분이 부족해서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라 넘쳐서 생깁니다. 먹고 빼는 것에 앞서 덜 먹는 게 중요한 거죠. 숙면도 건강에 중요합니다. 다행히 잠을 잘 자는 편입니다.”

마지막으로 2011년 소망이 있다면 들려주십시오.

“건강을 유지했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고 하잖습니까. 의료인으로서는 대한민국이 의료인들의 헌신과 봉사를 인정해주었으면 합니다. 의료보험이 시작된 후 의료인들은 적은 보험료에도 최상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선진국 의사들더러 한국에서 진료를 보라고 하면 사흘도 못 견디고 돌아갈 겁니다. 그런 어려운 환경에도 의료 활동을 하는 의사들의 희생과 기여를 인정해주면 좋겠습니다.”

이철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의료산업경쟁력포럼 공동대표
연세대 의학과 졸업
연세대 대학원 의학과 석·박사
횃불트리니티대학원 대학교 목회학 석사
대한병원협회 학술위원장
연세사회복지재단 이사
연세대학교 의료원 기획조정실장


글 신규섭·사진 이승재 기자 wa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