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전략 _ 사모펀드Ⅱ
2007년 펀드 열풍 이후 공모펀드에 실망한 투자자들이 저금리 시대를 돌파할 대안으로 사모펀드를 선택하고 있다. 코스피지수가 2010년 12월 14일 역사적인 2000포인트 고지를 돌파했지만 개인투자자들의 표정은 썩 밝지 않다.‘적립식 펀드’ 열풍이 절정기에 달했던 2007년의 경우 개인투자자들은 ‘코스피지수 2000 시대’를 맞아 짭짤한 재미를 봤지만, 2010년 들어선 펀드 가입자 대부분이 ‘원금 회복’에 만족하며 펀드를 환매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공모펀드 시장 역시 2010년 내내 침체기에 빠져있었다.
그러나 사모펀드는 호황을 누렸다. 공모펀드에 실망한 고액자산가들이 보다 특별한 투자 기회를 찾아서 사모펀드 시장으로 눈을 돌린 까닭이다. 사모펀드란 가입자가 49인 이하인 펀드로 공모펀드와 달리 투자 대상인 자산이나 투자 비중 등에 제한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돈 몰리는 사모펀드, 돈 빠지는 공모펀드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10년 초부터 12월 말까지 사모펀드에는 6조4729억 원의 자금이 순유입됐다. 이에 따라 2009년 말 약 108조 원이던 사모펀드의 순자산총액은 2010년 12월 말 약 120조 원으로 불어났다.
사모펀드 순자산총액은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직후인 2008년 말에 122조 원을 기록한 뒤 2010년 1월 104조 원까지 줄었지만 하반기 들어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2010년 들어 공모펀드에서 15조6354억 원의 돈이 빠져나간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기업에 일정 지분 이상을 투자하거나 경영권을 인수한 뒤 되팔아 차익을 남기는 사모투자펀드(PEF)도 2010년 들어 급성장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9년 말 16조8200억 원이던 국내 PEF의 총약정액은 2010년 들어 4조3300억 원 늘어나 10월 말에는 21조1500억 원을 기록했다.
약정액이란 PEF 투자자들이 운용사에 투자하기로 약속한 금액을 뜻한다. 증권업계 전문가들은 일반 사모펀드와 PEF, 그리고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한 사적인 투자 모임까지 합치면 국내 사모펀드 시장규모는 150조 원 정도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2010년 들어 사모펀드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2009년 말 5005개였던 사모펀드는 최근 5526개(2010년 11월 말 현재)로 늘었다. 하루에 1.5개 꼴로 사모펀드가 새로 생겨난 것이다. 이렇다 보니 최근에는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사모펀드까지 생겨나고 있다.
문용훈 우리투자증권 강남센터 부장은 “사모펀드에 가입하는 부자들은 기본적으로 공모 형태로는 투자하기 힘든 대상을 찾기 때문에 최근 일부 증권사를 중심으로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사모펀드 결성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해지는 사모펀드 투자
사모펀드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투자 대상도 해외 채권, 글로벌 기업공개(IPO) 시장, 해외 헤지펀드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투자금액 30억 원 이상의 초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하는 삼성증권 SNI강남파이낸스센터에 최근 한 고객이 방문했다.
앞으로 국제 원유 가격이 급등할 것 같아 해외 유전 지분에 직접투자를 하고 싶다는 게 고객의 요구였다. 삼성증권은 자산운용사와 협의를 거쳐 이 고객을 위한 사모펀드를 만들었다. 강영창 삼성증권 SNI강남파이낸스센터 PB팀장은 “고객들의 요구가 워낙 다변화되다 보니 간혹 단 한 명의 초고액자산가를 위한 사모펀드가 결성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우리투자증권 프리미어블루 강남센터는 2010년 12월 18일 헤지펀드 투자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약 100명가량의 강남 지역 고액자산가들이 참석했다. 세미나가 끝난 뒤 이들은 PB들과의 개별 상담을 통해 해외 헤지펀드에 투자하는 사모펀드를 만들기로 했다.
하나은행 PB센터가 고객들의 자금을 모아 2010년 초 만든 사모펀드도 비슷한 경우다. 당시 삼성SDS가 상장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면서 장외 시장에서 삼성SDS 주식을 사려는 투자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팔려는 사람이 없어 투자가 힘들었다.
때마침 골드만삭스 홍콩법인이 보유 중이던 삼성SDS 지분을 처분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하나은행은 곧바로 150억 원 규모의 사모펀드를 출시했는데, 이틀 만에 동이 났다. 이제환 하나은행 방배PB센터장은 “삼성SDS 같은 비상장 주식에 대한 투자는 공모펀드가 거의 불가능하다”며 “이런 점 때문에 사모펀드로 돈이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모펀드는 투자 대상 측면에서 공모펀드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공모펀드는 전체 자산의 48%가 주식에 투자돼 있고, 단기금융상품(36%), 채권(9%) 등이 뒤를 잇고 있다.
반면 사모펀드는 주식(11%)보다는 채권(48%)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고 파생상품(10%), 부동산(10%), 기타 특별자산(10%) 등에도 고르게 투자하고 있다. 강영창 PB팀장은 “사모펀드에 투자하는 고객들은 기본적으로 자산이 많아 연 10∼15% 정도의 수익을 안정적으로 내기를 원하기 때문에 주식 이외의 다양한 투자처에도 관심이 많다”고 설명했다.
인플레 대비 사모펀드 관심 높아
사모펀드 규모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지만 투자자들의 성향은 과거와 확연하게 달라졌다는 지적이다. 김경일 삼성자산운용 상품개발팀 과장은 “금융위기 이전에 투자자들은 ‘사우디 펀드’나 ‘카자흐스탄 펀드’처럼 본인이 처음 보는 특이한 상품을 찾는 고객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잘 모르는 시장에는 투자를 안 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또 김 과장은 다소 생소한 분야에 투자하는 사모펀드에 가입하는 고객들은 투자자산에 대한 상세한 리스크 분석 보고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최근 강남 부자들은 2011년을 내다보고 투자 계획을 짜고 있다. 2011년의 경우 글로벌 경제 상황이 2010년과 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관심을 가지는 투자처 역시 2010년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강남권 PB들은 전한다. 투자자들이 가장 관심을 보이는 분야는 인플레이션에 대비할 수 있는 상품이다.
국제 원유를 비롯해 상품에 투자하는 사모펀드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많다는 것이다. 아울러 2010년 상대적으로 주가가 덜 오른 중·소형주나 가치주, 이머징마켓 중 증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아직 회복하지 못한 중국, 베트남 역시 관심이 많다고 PB들은 전한다.
윤영국 유진자산운용 마케팅팀장은 “2007년 펀드 열풍 이후 공모펀드에 실망한 투자자들이 저금리 시대를 돌파할 대안으로 사모펀드를 선택하고 있다”며 “강남권 고액자산가뿐 아니라 연기금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자산을 운용하려는 수요가 많아 사모펀드 시장은 당분간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사모펀드에 가입하려면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운영하는 PB센터를 찾으면 된다. 단 투자 금액은 경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통 투자자 1인당 최소 1억 원 선이다. 전문가들은 사모펀드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지만 ‘묻지마 투자’는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강영창 PB팀장은 “투자 자산의 리스크가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리스크를 본인이 감내할 수 있는지 여부를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며 “경우에 따라서 일정 기간 동안 투자자금을 환매할 수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본인의 자금 수요도 체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동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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