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에 상장된 외국 기업들이 내국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는 근본적인 이유는 기업과 투자자 간의 ‘의사소통’ 부족이다.

“못 믿는 게 아니라 안 믿는 거잖아요.”

인기 그룹 에픽하이의 가수 타블로(본명 이선웅·30)가 학력 위조 논란에 휩싸였을 때 “아무리 증거 자료를 보여줘도 사람들이 믿으려 하지 않으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며 했던 하소연이다.

비슷한 말을 하는 회사들이 국내 증시에도 있다. 중국 기업을 중심으로 한 국내 상장 외국 기업들이다. 투자자들이 회사의 실체를 직접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저평가 상태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아무리 호재가 있어도 ‘그 말을 어떻게 믿느냐’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어 주가도 오르기 어려운 반면 조금만 악재가 불거지면 더 크게 타격을 입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국 기업을 못 믿겠다고 말하는 투자자들도 많다. 자본시장의 수준이나 기업 문화의 차이가 커서 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건지 한 번 더 의심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불거진 중국원양자원의 유상증자 번복 사태는 해외 기업들의 신뢰도 논란을 크게 가중시켰다. 이 회사는 2010년 11월 5일 장 마감 후 유상증자 결정을 공시했다. 중국 기업들에 대한 재평가가 진행되는 와중에 나온 갑작스런 결정이었던 데다 공시에 유상증자 사실 외에 규모나 예정일, 주당 발행가도 없어 주가가 충격을 받았다. 이후 공시 정정을 통해 규모 등을 설명했지만 주가는 3일 연속 급락했다.
[MARKET ISSUE KOSDAQ] 국내 상장 외국 기업들 ‘원거리 리스크’로 고전
중국원양자원을 추천했던 증권사들도 당황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송광수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고려할 때 여전히 투자할 만한 대상”이라면서도 “향후 투자와 자금 조달 관련 사항에 대해서는 시장과의 소통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와중에 일부 언론에서 최대주주인 추재신 씨의 지분이 장화리 중국원양자원 대표이사가 명의신탁한 것이라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나서 악재가 겹쳤다.

결국 중국원양자원은 유상증자를 취소했고, 앞으로 자금 조달과 같은 중요한 결정은 시장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최대주주도 장 대표이사로 변경됐다고 공시했다. 하지만 주가는 유상증자 충격에 1만 원 아래로 내려간 이후 아직까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 회사가 유상증자 결정을 발표하며 구체적 계획을 기재하지 않은 것은 주요 사항을 이사회에서 결정하는 한국과 달리 중국은 주주총회에서 결정하기 때문이었다. 규정이 달라 오해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더 엄격하게 증자 세부사항을 결정할 수 있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지분 명의신탁 역시 해외 증시 상장을 제한하는 중국 정부의 규제를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해명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국내 규정을 회사 측에서 잘 몰랐던 점도 있었고 국내 투자자들이 정확한 전후 사정을 잘 몰랐던 점도 있었다”며 “결국 서로의 이해 부족이 ‘원거리 리스크’를 낳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원거리 리스크’는 최근 일이 아니다. 외국 기업의 국내 증시 상장이 시작된 2007년 이후 외국 기업의 저평가는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좋은 회사도 있고 성장성이 다소 떨어지는 회사들도 있지만 증시에선 ‘중국 기업’이라는 이유로 비슷한 대우를 받는 것이다. 일부 ‘억울한’ 업체는 적극적으로 주주들과의 소통에 나서기도 한다.

류즈슝(劉志雄) 3노드디지탈 회장은 지난 3월 기자간담회를 열고 “3노드디지탈의 시가총액은 중국에 상장된 동종 업체의 10분의 1 수준”이라며 “기업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면 어떤 외국 기업이 한국 증시를 찾겠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3노드디지탈은 2007년 8월 17일 코스닥시장에 입성한 한국 증시상장 1호 외국 기업으로서, 스피커 등 음향기기와 컴퓨터 주변기기 등을 만들고 있다. 애플 ‘아이폰’의 부대기기도 공급하고 있어 스마트폰 테마주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 회사의 공모가는 2500원이었지만 상장 이후 중국 시장 성장성에 대한 기대에 첫 외국 기업이라는 프리미엄까지 더해지며 11일 연속 상승, 9590원까지 올랐었다. 하지만 곧 약세로 전환, 2007년 11월 9일 3000원 선이 깨진 후 아직 한 번도 3000원을 못 넘고 있다.

2010년 10월 중국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2855원의 단기 고점을 찍기도 했지만 이내 다시 힘을 잃으며 2010년 12월 10일 주가는 1795원에 그치고 있다.

2009년 매출 2억 달러(약 2200억 원)에 최근 6년간 매출이 연 평균 62.8%씩 늘어났고, 2009년 실적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은 12배 수준이다. 류 회장은 “2007년 한국 증시 상장을 고려하면서 11개 기업이 한국에 왔었는데, 이 중 중국에 상장한 5개 기업의 시가총액이 3노드디지탈의 10배에 이른다”며 “중국 증시에 상장한 동종기업 에드파이어와 광주국장은 매출이 3노드디지탈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데 시가총액은 10배가 넘는다”고 강조했다.

중국 시장의 성장성을 고려하면 PER이 지금의 두 배 이상은 돼도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 투자자들에게 섭섭함을 표시하던 그는 “2011년 3노드디지탈의 자회사를 중국에 상장, 제대로 가치를 평가받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라며 “하지만 한국에서도 앞으로 더 자주 회사를 알리는 기회를 갖겠다”고 말했다.

아예 상장 과정에서부터 ‘국내 투자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고 나선 회사도 있다. 2010년 11월 말 유가 증권시장에 상장한 라오스의 교포 자동차기업 코라오홀딩스다. 오세영 코라오그룹 회장은 “최소한 1년에 한 번은 한국에 와서 주주들과 직접 만나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솔직하게 설명하고 냉정하게 평가받겠다”며 “주주들을 라오스 현지 사업장으로 초청해 코라오의 현황을 직접 소개하는 자리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코라오홀딩스는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공모 청약에 참여한 주주 10여 명을 추첨을 통해 선발, 2011년 1분기 중 라오스에 초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시장과의 소통이 쉽지 않은 것은 여전하다. 2010년 12월 8일 코라오홀딩스는 자회사 코라오디벨로핑이 263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한다고 공시했고, 주가는 ‘유증’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3% 이상 하락했다.

코라오홀딩스는 한국 증시 상장을 위해 설립한 지주회사로, 사업자회사인 코라오디벨로핑을 100% 보유 중이다. 이번 코라오디벨로핑의 유증은 상장을 통해 모은 자금을 사업자회사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국내에 상장한 해외 기업의 주가가 부진한 것은 투자자들이 직접 회사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워 ‘믿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해외 기업들이 세련되지 못한 의사소통으로 투자자들을 ‘믿지 못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다”고 지적했다.

가치투자자의 대표 격인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은 “역시 ‘신뢰’가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아직 국내 상장 외국 기업들에는 신뢰를 쌓을 만한 충분한 시간이 부족했다”며 “2~3년 정도 서로 믿음이 쌓이면 ‘원거리 리스크’는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