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청 ㈜쿠드 대표
스물일곱, 얼떨결에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설렁탕 집 주방으로 들어갔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설렁탕 집은 42개로 늘어났고, 아무것도 몰랐던 주방 보조는 5개의 브랜드를 보유한 외식기업의 대표가 됐다.오청 (주)쿠드 대표의 이야기다. TV 드라마 <찬란한 유산> 속에 녹아있는 그의 성공 스토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우리가 그를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채워도 채워도 성에 차지 않는다는, 나눔에 대한 그의 ‘허기’다. 오청 (주)쿠드 대표는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외모의 소유자다. 스스로 “모델 가운데 있어도 튄다”고 말할 정도로 독특한 스타일로 유명하다.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생각 속에 그려지는 최고경영자(CEO)와는 사뭇 다른 헤어스타일과 안경, 패션은 모두 그의 ‘평생의 스타일리스트’인 아내의 개성 넘치는 ‘작품’. 그래서일까. 근엄한 슈트 차림의 CEO였다면 한참이나 걸렸을 ‘아이스 브레이킹’이 순식간에 이뤄졌다.
“구자경 (LG그룹 명예) 회장님은 ‘멜빵’으로 유명하잖아요. CEO로서 기억에 남는 이미지메이킹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10년 전부터 이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는데, 스타일을 바꾸고 나서 직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아졌어요. 요즘은 고객들께서도 알아보시더라고요.(웃음)”
점포 1개로 시작해 20년 만에 외식기업으로 성장
40대 후반의 CEO라기엔 다분히 튀는 오 대표는, 이미지메이킹에서뿐만 아니라 사업적인 면에서도 남다른 역량을 발현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1991년 스물일곱의 나이에 아버지(오억근 회장)가 운영하던 설렁탕 집을 모태로, 현재 직영점 매출만 연 500억 원에 육박하는 기업을 일궜기 때문이다.
쿠드는 현재 주력 프랜차이즈 브랜드인 ‘신선설농탕’을 비롯해 구이전문점 ‘우소보소’, 한정식당 ‘수련’, 인테리어 브랜드 ‘이노데코’ 등 5개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승승장구만 한 것은 아니다. 2003년경 ‘광우병 파동’으로 한 차례 큰 파고를 겪은 뒤 오억근 회장의 물심양면 지원으로 재기에 성공, 보다 큰 미래비전으로 무장한 상태다. 대표 브랜드인 ‘신선설농탕’은 현재 직영점 32개, 가맹점 10개로 대한민국의 ‘국민 설렁탕’을 꿈꾸고 있다.
“아버지께서는 설렁탕 집 이전에 무려 스물다섯 번이나 사업에 실패하셨던 분이세요. 아이스크림, 풀빵 장사에서 탁구장까지 안 해본 게 없으셨죠. 덕분에 저희 집은 늘 시장통에 있었어요. 맹모(孟母)는 시장을 멀리하려고 이사를 다녔다는데 저희 집은 완전히 반대지요.(웃음)
임시직으로 중식당 주방에 일을 하셨던 게 계기가 돼 중국집을 하셨고, 그 이후에 성공하신 것이 30년 전에 개업한 잠원동 설렁탕 집이었죠. 제가 3남 중 차남인데 어머니께서도 그러셨지만 아버지 사업은 절대 물려받지 않겠다고 결심했었기 때문에 공대에 진학했어요. 그런데 스물일곱 되던 해 아버지께서 부르시는 겁니다. 주방에서 그릇 닦고 밥 짓는 것부터 배웠죠.”
쌀을 불렸다 쪄서 밥을 하던 시절. 1m가 넘는 주걱으로 물에 불린 쌀을 젓고, 반 정도 된 쌀을 찜통에 옮겨 담는 데까지 20여 분. 그렇게 한번에 지을 수 있는 밥이 120여 명 분이었는데, 그 밥이 동이 나는 데까진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단다.
설렁탕 집이 문전성시를 이룬 만큼 밥 짓고 김치 담그느라 숨이 턱에 찰 때까지 차던 시절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께서는 이미 아들에게 설렁탕 집을 넘기고 다른 일을 시작하셨던 터라 어머니와 함께 주방을 지키며 크고 작은 갈등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제가 설렁탕 집을 가업으로 물려받기를 원치 않으셨던 터라 더욱 시련을 주셨던 게 아닌가 싶어요.(웃음) 어머니란 원래 힘들면 보듬어 주는 따뜻한 존재가 돼야 하는데, 직장 상사로 모시다 보니까 부딪히는 일만 많았죠.
시스템을 아무리 바꿔놓아도 그 다음날 출근해 보면 원래대로 되돌아가 있기 일쑤였죠. 지나고 보면 어머니께서 저를 성장시키신 셈이죠. 공장과 점포의 주방을 지금처럼 자동화, 현대화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됐으니까요.”
서울 잠원동에 따로 매장을 내며 독립한 뒤 20여 년을 달린 결과, ‘신선설농탕’은 업계에서 ‘최초’라는 기록을 여럿 남겼다. 설렁탕의 포장 판매를 비롯해 공장에서 반조리된 제품을 점포로 공급하는 중앙 컨트롤 주방(Central Kitchen)의 도입, 산삼설농탕과 백세설농탕, 마늘설농탕 등 트렌드에 맞춘 건강 설렁탕 출시 등이 그것이다.
“2003년에 광우병 파동으로 매출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던 적이 있어요. 너무 힘들어서 아버지께 도움을 요청했었는데, 점포와 공장을 돌아보신 아버지께서 공장에 (포장)재고가 많다고 하시며 무조건 그날 만든 건 그날 모두 배송을 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포장 제품은 일주일이 지나고 조리해서 먹어도 맛이 그대로거든요. 아무리 설득을 해도 절대 안 된다고 하시는 바람에 죽는 셈 치고 아버지 방침에 따라 봤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버지 말씀이 맞더라고요. 신선도를 생명으로 그날그날 재고 없이 돌아가면서 회복을 했거든요.”
직원들의 갚진 ‘동참’으로 연 평균 3억~4억 원 기부
반추해 보면 아버지인 오억근 회장은 애초에는 총 하나 쥐어주고 오 대표를 전쟁터로 내보냈다. 설렁탕 국물처럼 진한 ‘경영수업’은 오 대표가 한 차례 큰 ‘풍랑’을 만나고 나서 이뤄진 셈이다. 이후 ‘당일 생산, 당일 배송, 당일 소비’라는 원칙은 오 대표에게도 ‘바이블’의 구절 같은 신념이자 고집이 됐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그렇듯 아버지는 아들을 강하게 키웠다. 하지만 냉정한 비즈니스 세계를 벗어나면 어려운 사람에게 따뜻한 손을 먼저 건네는 또 다른 얼굴이 있었으니, 그 DNA는 아들인 오 대표에게도 고스란히 ‘유전’됐다.
“아버지는 근검절약의 표본이셨어요. 버스 토큰 몇 개로 ‘BMW(버스, 지하철, 도보)’만 애용하셨던 분입니다.(웃음) 수십 번 실패하며 힘들게 돈을 벌면서도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요식업에 종사하시면서도 기부를 많이 하셨어요.
한번은 TV에서 한국과학기술원 MRI 연구팀이 연구비 지원 중단으로 실험을 포기할 위기에 처해있다는 뉴스가 나왔는데, 그때부터 월 400만 원씩 6년간 3억 원가량을 기부하셨죠. 부품 값으로 1억 원을 지원하셨고, 광주과학기술원에도 지원하셨어요. 지금 제가 ‘생애 기부’를 목표로 사는 것도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셈입니다.”
아버지야 무학의 아쉬움을 달래려 대학과 연구기관 등에 기부를 했다지만, 오 대표는 그런 것만도 아니다. 그저 아버지로터 물려받은 ‘나눔 DNA’가 심하게 발현한 경우랄까. 2008년부터 시작된 그의 사회환원 활동은 그 분야도, 빈도도, 금액도 점차 증대되고 있다.
“2007년 말이었어요. 직원을 대상으로 다음해 새로운 업종에 관한 질문을 했는데, 절반 이상이 사회사업을 꼽았어요. 깜짝 놀랐죠. 직원 가운데 이혼해서 혼자되신 분, 사별하신 아주머니 등 사회적 약자가 많은데, 그분들이 회사가 사회에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곳이기를 바라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2008년부터 ‘사랑의 밥차’를 비롯해 다양한 나눔 활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저 어려운 이웃들과 따뜻한 설렁탕 한 그릇 나누려 했던 마음이 점점 더 풍요로워지고 있어요.”
3년째라지만, 쿠드의 연 기부액은 3억~4억 원에 달한다. 올 초 오 대표가 1억 원 이상 기부자 클럽인 ‘아너스 클럽’의 열일곱 번째 회원이 된 데 이어 직원들도 매월 월급에서 일정 금액을 떼어 기부금에 보탠다.
한 구좌에 1004원 씩, 원하는 구좌만큼 기부를 하는 기업문화 가운데 하나. 한 구좌부터 50구좌까지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모은 금액에 오 대표의 ‘쌈짓돈’을 더하면 한 해 6000만 원에 달하는 직원들의 정성은 백혈병과 소아암 어린이 돕기에 쓰인다. 이 밖에도 쿠드가 벌이는 나눔 활동은 10여 가지에 이른다.
“사랑의 밥차는 이틀에 한 번 꼴로, 연간 150회 정도 출동해요. 점포가 새로 오픈할 때 첫날 매출 전액을 기부하는 ‘오픈 매출 기부’는 사실 제가 생각해도 ‘정신 나간 사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통 큰 기부죠.(웃음) 근데 사실 그 아이디어는 직원이 제안한 거예요. 매번 하면서도 대단하다 싶은데. 이러면 너무 자기도취인가요. 하하하.” 진정한 ‘국민설렁탕’을 목표로
오 대표의 경영철학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배움, 나눔, 그리고 행복’이다. 배움 경영의 일환으로 그는 매월 중간 관리자들에게 좋은 책을 선물로 보낸다. 책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향후에 펼칠 비즈니스 플랜에 대한 방향을 미리 알리는 의미로 편지를 서문처럼 써서 책 맨 앞장에 붙여서 보낸다.
그의 집무실 책장에는 파란 딱지가 붙은 책이 줄을 서 있었는데, 파란 딱지는 오 대표가 정독했음을 의미한다. 전 직원들에게는 1년에 두 번 책을 사서 보낸다. 대표이사의 따뜻한 격려와 부탁을 바라는 마음을 담은 편지가 함께 가는 것은 물론이다.
“끊임 없이 배우고 나누고, 그래서 직원들이 행복한 기업이 목표입니다. 이직율이 높은 외식 업종이니만큼 직원들이 만족도를 높여 인간적인 직장, 오래 근무하고 싶은 직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사업적인 비전이라면 한국 음식의 세계화를 선도하고 싶다는 겁니다. 매출액이나 점포 수로 보여지는 외형적인 것보다 국민에게 진정으로 사랑받는 ‘국민설렁탕’ 기업을 만드는 것이죠. 3년간 연구해 온 고품격 한정식 브랜드로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최고 점수를 받고 싶기도 하고요.”
그는 6000원짜리 설렁탕처럼 ‘따뜻한’ 나눔을 계속할 것이라 약속했다. 생을 마무리하기 전에 거액을 한꺼번에 내놓는 ‘통 큰’ 기부보다는 생활 속에서 그때그때 실천하는 나눔, 그것이 오 대표의 스타일이다.
글 장헌주·사진 이승재 기자 c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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