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8년에 미국에서 100만 달러 이상 투자가 가능한 유동자산을 보유한 백만장자들의 수가 22% 감소했다. 같은 해 크리스마스 대목에 소매 매출은 3.4% 감소했고 2009년에도 소매업체들은 거의 매상을 회복하지 못한 채 쓸쓸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공식적인 경제지표와는 상관없이 주변의 실물경제를 바탕으로 현재 경기 상황을 가늠해 보면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뚜렷한 차이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과거 미국의 경기침체 기간은 평균 10개월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 경기침체는 공식적으로는 2007년 12월부터 2009년 6월까지 18개월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가장 긴 경기침체기로 기록됐다. 게다가 현재 고용 상황은 경기 회복의 시작 시점이라고 볼 수 있는 2009년 6월보다 더 나쁜 형편이다.

1991년과 2001년의 경기침체는 비교적 기간이 짧았기 때문인지 주위에서 경기가 나쁘다거나 장사가 안 된다는 푸념은 많이 들었지만, 절약하는 것 외에 특별한 생활패턴의 변화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경기침체에서는 사업체 폐쇄나 전업, 또는 아예 생활비가 적게 드는 외곽 도시로 이사를 가는 등 여태껏 보지 못했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LA)의 강남’이라고 불리는 ‘웨스트 LA(LA 서부지역)’는 엔터테인먼트, 로펌, 금융업체 등이 위치한 센추리시티를 중심으로 비벌리힐스, 벨 에어, 웨스트우드 등 전문직 종사자와 부유층 지역이 어우러져 있어 경기침체의 영향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곳이다.

LA교육구의 최고 공립 초등학교 세 개가 모두 웨스트 LA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소위 ‘LA의 8학군’으로 통하고 자녀 교육을 위해 일부러 이사까지 오는 동네다. 그래서 중간에 다른 곳으로 전학을 가는 학생이 별로 없다.

그런데 이곳 초등학교도 요즘에는 간혹 전학을 가는 아이들이 있다고 한다. 역시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회복기가 길어지면서 버티지 못하는 가정들이 많아 나타나는 현상인 것 같다.

반면 센추리시티에 있는 쇼핑센터는 상반된 모습으로 특이하기는 마찬가지다. 주중 오후에 들릴 일이 있었는데 지하 주차장 입구부터 빈 주차 공간이 없는 만원 직전의 모습이었다.

자동차들도 고급차가 대부분이어서 벤츠가 ‘국민차’처럼 보이던 2007년 센추리시티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벤틀리나 마저라티 같은 최고급 차도 전보다 더 많이 보이는 것 같았다.

고급 백화점 니먼 마커스(Neiman Marcus)의 크리스마스 쇼핑 카탈로그에는 7만5000달러에 100대 한정으로 나온 시보레 카마로 컨버터블(Chevrolet Camaro Convertible) 자동차가 등장해 3분 만에 매진됐다고 한다. 물론 그런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멋진 차를 바라보는 주위 시선을 의식도 하지 못할 만큼 돈 걱정으로 속이 타 들어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제의 상반된 모습은 서로 다른 가격대의 상품을 판매하는 백화점들의 매출 결과를 봐도 쉽게 비교할 수 있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의 백화점인 제이시 페니(JC Penny)와 콜스(Kohls)는 전년에 비해 10월 매출 감소를 기록했으나, 고급품 백화점인 니먼 마커스와 색스 피프스 애버뉴(Saks Fifth Avenue)는 각각 9.5%, 8.1%의 매출 증가를 기록했다.

높아진 실업률과 떨어진 부동산 가격 등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이사까지 가야 하는 이웃도 있지만 같은 동네에 위치한 쇼핑센터는 주차 공간이 부족할 정도인 모습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다시 기지개를 펴는 듯 보이는 구매 심리와 평균치에 근접하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 올해 크리스마스 소매 매출 가운데 과연 어느 모습이 현실에 더 가까울지 궁금하게 만든다.

경제적으로 아직까지는 혼란스러운 시기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어느 나라나 ‘빈익빈 부익부’현상이 존재하듯 미국에서도 경기침체 시엔 그러한 현상이 더 도드라진다.

[Up-Front in US] 미국 경기침체, 소비자들의 ‘두 얼굴’
김세주

베어스턴스(Bear Stearns) 투자 컨설턴트
찰스슈왑(Charles Schwab) LA 한인타운점 지점장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 투자 컨설턴트
현재 엑셀랑스 애셋 매니지먼트 상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