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2010년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12월이 씁쓸한 것도 마지막이라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12월이 되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그 가운데 직장인 또는 최고경영자(CEO)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스케줄이 ‘송년회’가 아닐까 싶다.

나이 오십에 파티플래너로 변신해 크고 작은 CEO 파티를 여러 차례 기획하고 진행했다. 남성들의 ‘밤 문화’, 다시 말해 ‘노는 문화’에 회의를 느낀 것이 계기였다.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최고의 오피니언 리더들도 ‘밤 문화’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였다. 멀쩡한 모습으로 만나 행사를 치른 뒤, 돌아갈 때 모습은 항상 술에 취해 있기가 일쑤였다.

건강한 와인과 우아한 와인 잔을 기울이며 시작된 자리가 끝에 가서는 2차, 3차 술자리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올해도 열심히 산 한해를 마감하는 자리가 아름다운 ‘송년회’가 아닌 ‘망(亡)년회’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창조경영, 상상경영, 마음경영, 문화경영, 건강경영 등 그들이 고민하고 대안을 찾기 위한 건강한 대화의 끝을 장식하는 ‘술에 찌든 밤’은 너무나 무색하고도 어패가 있는 듯 보였다.

제대로 된 건강한 밤 문화를 위해 그동안 나름대로 창조적인 CEO 파티를 기획했다. 파티문화가 아직은 낯선 40대 이상 CEO들을 어떻게 집중시키고 모을지 파티 전에는 항상 긴장이 됐다.

하지만 시쳇말로 ‘뚜껑을 열어 보니’그들이 오히려 파티플래너인 나보다 더 건강한 밤 문화에 목말라하고 있었다. 어색하지만 드레스코드에 최대한 충실하려 한 흔적이 보이는 복장, 서툴지만 취미생활로 갈고 닦은 색소폰 연주 실력을 무대 위에서 멋지게 소개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작은 감동을 받는다.

시인이었던 선친의 영향 때문인지 파티에 어떤 식으로든 시 낭송을 포함시키는데, 뻣뻣할 것 같은 중년의 CEO들은 예상을 깨고 시의 감동에 기꺼이 함께 빠져 준다. 실내악이나 뮤지컬의 일부를 공연하는 파격적인 프로그램도 환호를 불러일으키는 코너다.

때론 1970년대 포크송을 기타 반주에 맞춰 다같이 부르는 ‘싱어롱’코너도 마련하는데 이 역시 참여도가 높다. 나눠준 악보를 들고 한 소절 한 소절 따라 부르는 중년의 CEO들을 보면 잔잔한 감동이 일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할지라도 참여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먼저 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어깨 견장을 떼고 과감하게 넥타이를 풀고 서로 허물없이 사람을 만나는 준비가 된 사람들이 파티에서도 훨씬 ‘적응’을 잘 한다.

파티 초청장을 보낼 때마다 많은 CEO들이 묻는 질문이 있다. “파티에서 뭘 해야 합니까”다. 파티는 초청받은 사람이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초대하는 호스트가 준비하는 것이다.

다만 초청받은 사람이 준비할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열린 마음’이다. 호스트가 보다 색다른 파티를 위해 드레스코드를 지정한다든지 이벤트를 마련한다면 기꺼이 따라주고 즐겨주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접하면서 마음속에 높디높은 벽이 있다면 그 어떤 사람과 좋은 콘텐츠라도 무용지물이다. 파티는 개인의 준비에 따라 0%에서 200%까지 만족도 차이가 날 수 있는 이벤트다.

중요한 것은 자신감이다. 누군가가 다가와 먼저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기 전에 먼저 다가가 눈을 맞추는 것, 그것은 자신감이기 이전에 배려라고도 할 수 있다.

CEO들이여, 당신들은 회사에서 최고 대우를 받는 주인공들이다. 하지만, 파티에서는 초대받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다. CEO들의 파티에 적응하게 된다면 일터로 돌아가서도 작은 변화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부하 직원에게 먼저 다가가서 말 걸기, 매너와 배려, CEO 파티는 분명 ‘노는 밤’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관계를 배우는 장이기도 하다. 잘 노는 것은, 이 시대 CEO의 경쟁력이다.

안시영 하트뷰 엔터테인먼트 대표
안시영 하트뷰 엔터테인먼트 대표
안시영

하트뷰 엔터테인먼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