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컬렉터 김수경 우리들그룹 회장 & 레이블 컬렉터 한상돈 소믈리에
김수경 우리들그룹 회장은 프랑스 유학시절 와인의 매력에 빠져 와인을 컬렉션하기 시작했다. 그런 김 회장의 곁에 든든한 조언자 역할을 하는 이가 한상돈 소믈리에다. 와인 레이블을 수집하는 그는 한국에서 유일한 와인 메이커로 그가 만든 와인은 로버트 파커로부터 80점을 받았다. 두 사람의 컬렉션을 소개한다. 김수경 우리들그룹 회장이 와인을 처음 접한 것은 프랑스 유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사람들이 와인을 대하는 생각을 접하면서 어느 사이 김 회장도 와인을 사랑하게 됐고, 와인 컬렉터가 됐다.“시와 문학을 좋아하는 제 감성이 와인에 이끌린 것 같아요. 보들레르는 ‘포도주의 혼’이라는 시에서 ‘와인은 병 속에 갇혀 있지만 응축돼 햇볕을 전달한다’고 노래했어요. 가끔은 와인은 허무한 술이기도 해요.
가격을 떠나서 코르크 마개를 따는 순간에 날아가 버리거든요. 허영이라고 치부될 수도 있지만 그런 감성의 호사를 저는 사랑합니다. 그런 이유로 아주 아껴가며 먹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그 해 나온 와인을 한꺼번에 구입한다. 그걸 잘 보관했다가 아이가 자란 후 성인식이나 결혼식을 기념해 개봉한다. 사람과 와인이 함께 성숙했기에 그 맛에 깊이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서민들에게 와인 창고는 추억의 저장소이기도 하다. 그 과정을 생략하고 그저 오래된 와인만 먹으면 와인의 제 맛을 느낄 수가 없다.
와인이 그저 비싸기만 한 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김 회장도 사람들과 와인에 얽힌 기억들을 쌓기 시작했다. 나아가 그는 더 많은 추억을 위해 와인을 모은다. 시인 서정주가 전복을 소재로 쓴 시에서 ‘제일 좋은 건 님 오시는 날 따다 주려고 물속 바위에 붙은 그대로 남겨둔다’고 했던 것과 같은 이치다. 당장 진주가 아니더라도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
와인은 독특한 스토리, 특별한 이야기가 담겨있을 때 더 마음이 끌린다. 그래서 어떤 이는 와인을 문화적 산물이라고도 한다. 김 회장은 와인을 구입할 때 무조건 최고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현재는 진주가 아니더라도 미래 가치를 보고 판단할 때가 많다. 컬렉션 중에는 김 회장의 추억을 간직한 와인이 많다. 마치 와인의 맛보다 와인을 맛본 날의 기억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 샤토 마고(Chateau Margaux)는 프랑스에서 맞는 어느 해 생일날 처음 만났다. 유달리 춥고 무슨 이유에선지 마음이 아팠는데, 그때의 마음과 대조적으로 온몸에 퍼졌던 샤토 마고의 장미향을 잊을 수가 없다.
샤토 오브리옹(Ch. Haut-Brion)을 마시던 날은 그 와인이 60년 동안 살아있었다는 사실에 큰 감동을 받았다. 여행 중에 샤토 오브리옹을 마셨는데 코르크 마개를 따기 전 ‘과용’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 모금을 마신 후에는 그 생각이 싹 가셨다.
김 회장은 샤토 마고와 샤토 오브리옹처럼 프랑스 그랑 크뤼(Grand-Cru) 와인을 특별히 아낀다. 그는 프랑스 보르도의 복합적이고 깊이 있는 맛을 사랑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진하고 텁텁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숙성될수록 그 매력이 깊어지는 와인이 프랑스 보르도 와인이다.
와인에 대한 개인의 취향도 분명하지만 그는 함께 마시는 상대방에 따라 다른 와인을 고른다. 누구에게나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와인, 그날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와인이 따로 있다. 신기하게도 딱 들어맞고, 모두들 그 와인에 감탄할 때 기쁨을 느낀다.
김 회장은 앞으로 본격적으로 와인을 수집할 계획이다. 이들 와인을 저장하기 위해 제주도 우리들리조트에 2만 병의 와인을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을 계획 중이다. 그는 이곳에 자신의 컬렉션뿐 아니라 회원들의 와인도 보관할 계획이다.
좋은 와인을 개인이 최적의 공간에서 오랫동안 보관하고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김 회장은 회원들의 그러한 고민을 덜어주는 동시에 와인 보관소를 또 하나의 문화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김 회장은 우리들그룹을 이끌면서 와인 컬렉션을 병행하기 쉽지 않아 얼마 전 마음에 맞는 파트너도 만났다. 그가 한상돈 소믈리에다. 한 소믈리에는 조선호텔에 근무하다 와인에 빠져 소믈리에가 됐다.
1996년 제1회 한국 우수 소믈리에 대회에서 2위에 입상했고, 2000년에는 제10회 세계 소믈리에 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한 한국을 대표하는 소믈리에다.
김 회장과 한 소믈리에의 만남은 그가 일하던 나오스노바에서 이루어졌다. 평소 한 소믈리에의 실력을 눈여겨본 김 회장이 자신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오룸다이닝에 그를 스카우트한 것이다. 김 회장의 제안에 한 소믈리에는 두 가지 조건을 달았다.
하나는 순수 한국 와인을 한국에서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사단법인 한국소믈리에협회에 대한 지원이었다. 김 회장이 그가 제시한 조건을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두 사람의 파트너 관계가 이루어진 것이다. “와인 2만 병을 컬렉션하라는데, 저로선 좋은 기회죠. 사실 5대 그랑 크뤼 와인과 페트뤼스(Petrus)나 샤토 디켐(Ch. d’Yquem) 같은 걸로 채우면 금방 채우죠.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소믈리에라면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가격에 비해 품질이 월등한 그런 와인을 찾아야죠.”
와인 2만 병을 채울, 행복한 고민에 빠진 그에게 지금까지 마신 와인 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꼽으라고 요청했더니 10여 개의 와인 이름이 멈추지 않고 나왔다. 오푸스 원, 샤토 오브리옹, 샤토 탈보, 갈로 에스테이트, 하이츠 셀라 마르타스빈야드 1974년, 샤토 무통 로트칠드 1945년 등의 이름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각각의 와인에 담긴 추억과 평도 이어졌다. 오푸스 원은 1989년 조선호텔 나인스게이트에 발령 받고 맛본 와인이다.
당시는 소믈리에가 되기 전이었는데 그때 맛본 최고의 와인이다. 샤토 오브리옹 1967년 빈티지는 나인스게이트에 근무할 때 단골 외국손님이 그의 서비스에 답례로 선물한 와인이었다.
그걸 보관했다 1997년과 2003년에 마셨는데 아마 샤토 오브리옹 중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이츠 셀라 마르타스빈야드 1974는 나파밸리에서 테이스팅한 와인 중 가장 인상적인 와인이었다. 1세기에 나오는 10대 와인 중 하나로 손꼽히는 것으로 마셔본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최고의 와인이다. 지금도 와인 경매 시장에 가끔 등장하는 고가의 와인이다.
그 이름만으로도 유명한 샤토 무통 로트칠드 1945년 빈티지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최고의 해라는 1945년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완벽한 와인이다. 그는 이 와인을 “행운과 행복을 주는 신의 물방울”이라고 극찬했다.
그렇게 와인을 좋아하는 한 소믈리에이지만, 정작 와인 컬렉션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는 워낙 와인을 좋아해 마시기 바빴노라고 했다. 대신 마셔본 좋은 와인을 기억하기 위해 와인 병에 붙은 레이블을 컬렉션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모은 레이블이 앨범 몇 개를 채우고도 남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레이블 두 개를 꼽으라면 로버트 몬다비 나파밸리 와인 과 샤토 무통 바론 필립의 레이블이다.
“처음 레이블 수집을 할 때는 레이블을 떼는 게 제일 힘들었습니다. 물에 불려서 뗀 레이블을 다시 다리미로 다려야 했거든요. 한창 일이 바쁠 때 그러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누가 좋아하겠어요. 그때 눈치를 봐 가며 뗀 게 로버트 몬다비 나파밸리 와인의 레이블이었습니다.”
샤토 무통 바론 필립의 레이블은 관광공사가 마지막으로 수입한 와인이다. 그 뒤 이 와인의 레이블은 샤토 다메이약으로 바뀌었다. 호텔에 근무할 때 오너의 친구들이 어린 소믈리에인 그에게 이 와인으로 골탕을 먹여서 기억에 남는다.
글 신규섭·사진 이승재 기자, 오룸다이닝 wa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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