飛上을 향한 꿈의 레이스
‘Flying High.’ 하늘을 높이 난다는 것은 끝없는 자유를 얻는 것과 같다. 인간도 자동차도 신호등도 없는 무한 대지, 순수 자유지대 하늘. 무색, 무취, 무미의 공기를 마시며 허공을 가르는 행위야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넓고 큰 자유가 아닐까 싶다. 비상과 변신을 위한 창공으로의 유영‘Dreaming Escape’는 누구나 한번쯤 품어봤음직한 가슴 저 바닥의 욕망일 수 있다. 그렇다, ‘비상(飛上)과 변신(變身)’은 어쩌면 일상에 찌든 인간들이 꿈꾸는 가장 큰 탈출의 화두가 아닐까.
흔히 신변의 새로운 변화와 탈출을 꿈꿀 때 우리는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생각한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 위에 창공을 두둥실 날아오르는 비상의 짜릿함을 더해보자.
10여 년을 고대하던 꿈의 실현이 눈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사가(Saga)대회에서 파란 창공을 가득 메운 100여 대의 열기구를 처음 보았을 때 가슴 터지는 짜릿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번 미국 대회는 800여 대에 이르는 그야말로 온 천지를 화려하게 수놓고도 남을 열기구 역사상 최대 이벤트였다.
열기구 마니아들의 꿈의 그라운드인 뉴멕시코로 달려가고 있다. 해마다 10월이 되면 미국 뉴멕시코의 앨버커키(Albuquerque)에서는 전 세계에서 모인 기구(Balloon) 파일럿들이 800여 대가 넘는 총천연색의 열기구 풍선들과 함께 창공을 향한 비상을 준비한다.
창공을 유영하는 꿈에 인생을 건 그들은 단지 우승만을 꿈꾸며 비상을 시도하지 않는다. 우승과 상금은 하늘의 몫이다. 다만 그들의 삶을 지탱해온 꿈이 창공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것이었기에 오늘도 비상과 창공에서의 자유로운 유영을 꿈꾸며 열기구의 불꽃에 혼을 실어 그들의 꿈도 타오르게 한다. 앨버커키, 열기구 축제 현장으로
국내 열기구 마니아의 한 사람으로 세계 최대 열기구 대회장으로 향하는 마음은 긴장과 설렘의 연속이었다. 로스앤젤레스(LA)를 출발해 라스베이거스와 솔트레이크시티를 거쳐 덴버에서 남쪽으로 6시간을 더 가면 뉴멕시코의 주도 앨버커키에 이른다. 그야말로 외지인들의 범접을 거부하는 꿈의 구장으로 가는 고단한 여정이다.
도착했을 때 이미 도시는 술렁이고 있었다. 광활한 대지 위에는 꿈결 같은 창공으로의 유영에 몸살이 난 파일럿들과 80만에 이르는 구경꾼들의 애타는 기다림이 찬란한 새벽을 깨웠다. 뉴멕시코의 하늘은 청량감으로 그득했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적절한 바람으로 최적의 열기구 대회를 예감할 수 있었다. ‘The World’s most photographed event’라는 표어대로 지구상에서 사진으로 담아낼 수 있는 가장 화려한 이벤트가 아닐 수 없다. 세상에 수고로움이 따르지 않는 쾌락(快樂)이 있을까. 아직 먼동이 트기 전, 이른 새벽 5시면 파일럿과 대원들은 어김없이 경기장으로 나서야 한다.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뉴멕시코 리오그란데(Rio Grande) 강변의 이른 아침 풍경은 열기구 전사들의 뜨거운 열기로 이미 새벽 공기를 데우고 있다.
붉은 태양이 동녘 하늘을 밀쳐내고 하늘로 차고 오른다. 회의장을 빠져 나온 파일럿과 대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풍향을 체크하거나 경기를 어떻게 풀어갈지 의견들을 나눈다. 드디어 전 대원 출동이다. 경기 차량을 타고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대원들의 행렬에는 창공을 향한 설렘과 승리를 향한 힘찬 맥박을 느낄 수 있다. 숨 쉬는 생명체는 걸리버가 돼 하늘을 수놓다
행사 첫날인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오프닝 행사 이외에 축제 분위기를 돋우는 대규모 비행인 매스 어센션(mass ascension)으로 장엄한 대회의 서막을 알린다. 축제 분위기로 대회장을 달구고 나면 월요일에는 파일럿들의 경쟁심을 유발하는 첫 경기가 시작된다.
송풍기로 구피에 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한다. 크고 위험해 보이는 강력한 불꽃을 조작해 구피를 몇 배로 부풀려 ‘숨 쉬는 생명체’로 키우는 공기 주입의 쾌감은 수백 번을 반복해도 흥분되는 작업임엔 틀림없다.
드러누웠던 거대한 체구의 구피가 잠자던 걸리버처럼 스르륵 일어선다. 긴장감이 감돈다. 대원들의 행동이 민첩해지고 구체는 유유히 하늘 유영을 위해 대지를 박차고 일어선다. 버너에 점화된 불꽃은 힘을 더하고 불꽃을 쏘아주던 손길이 바빠지면서 기구는 땅을 박차고 하늘로 떠오른다.
불꽃의 양을 조절해가면서 유영이 시작된다. 기구에 탑승한 파일럿과 무전으로 교신하며 차량의 추적이 시작되고 기구 탑승팀과 차량 추적팀으로 양분돼 기구의 안전한 비행과 최적의 경기를 위한 합동작전이 펼쳐진다.
하나 둘, 파란 하늘을 가르며 두둥실 떠오르던 열기구들이 뉴멕시코 앨버커키의 하늘을 온통 총천연색으로 수놓기 시작한다. 뭉게구름과 어우러진 기구의 상하수직 하강과 바람에 밀려 움직이는 열기구들의 자연스런 조화는 하늘을 가득 메운 아름다운 꽃송이들 같다. 바람이 표현하는 열기구들의 군무(群舞)
드디어 본 앨버커키 열기구 행사 최대의 하이라이트, 다양한 색상과 형태의 열기구들이 동시에 대회의 본부장에 떠오르는 스페셜 셰이프 매스 어센션(Special Shape Mass Ascension).
다채로운 색상으로 장식된 둥근 풍선의 다이내믹한 비상도 온 가슴을 쥐어짜는 감동으로 다가서는데 축구공, 용 모양, 운동화, 오토바이, 콜라병 등 상상을 초월하는 특이한 형태를 한 기구들의 유영은 이곳 앨버커키의 하늘을 또 다른 별천지로 장식하며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리오그란데 강변에 자리한 메인 행사장에서 화려한 비상은 시작된다. 100여 대가 넘는 가지각색의 열기구들이 파란 불꽃을 내뿜으며 하늘로 향한다. 취재 열기 또한 대단한 볼거리 중 하나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미디어팀과 사진작가들의 촬영 열기가 더욱 뜨거운 대회를 예고한다. 대회에 참가한 거대한 기구의 몸체들이 하나 둘 땅을 박차고 오르면서 파란 하늘은 거대한 캔버스로 재탄생되고, 바람을 이용한 신(神)의 손길은 지상에서 가장 화려한 색상의 꽃들을 하늘 위로 흩뿌려 놓는다.
두둥실 두둥실. 바람이 선사하는 꽃들의 군무(群舞), 이 순간을 무어라 형용할 수 있을까. 비상을 향한 인간의 꿈은 하늘을 날고, 바람은 하늘에 무지개 꽃 낭만과 희망의 속삭임을 전하고 있다.
어둠이 내리고 축제 현장의 열기는 스러져간다. 하지만 꿈을 실현한 파일럿들의 뜨거운 하늘 사랑과 창공을 수놓던 기구들의 화려한 유영이 이곳 뉴멕시코 앨버커키 열기구 축제의 꿈과 희망이 돼 가을 하늘을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수놓을 것이다. 글·사진 함길수 자동차 탐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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