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선 카페 모리(Cafe Mori) 대표

콘셉트 있는 커피숍 오픈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 봤을 만한 드림(dream) 가운데 하나다. 특히 여성 창업 희망자들에게 커피숍 또는 카페가 인기 있는 이유는 단순히 ‘커피’라는 음료를 판매하는 공간의 의미와 함께 자신의 개성과 문화를 만들어가는 자아실현의 공간이 되기 때문. 서울 종로구 사직동 한 오피스텔 내에 위치한 ‘카페 모리’ 역시 그 같은 경우다. 23년간 교직생활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꿈을 이룬 최은선 대표를 만났다.
23년간의 교직생활을 접고 카페 주인장으로 변신한 최은선 대표
23년간의 교직생활을 접고 카페 주인장으로 변신한 최은선 대표
봄볕보다 무섭다는 가을 햇살이 구름에 자리를 내어 주어 스산한 날, 서울 사직동의 한 고급 오피스텔 상가를 찾았다. ‘카페 모리(Cafe Mori)’라는 상호가 쓰인 간판부터 테이블 모두 원목인 것이 마치 일본 어느 거리의 작고 소담한 카페에 들어서는 느낌이다. 작은 카페 안으로 가을을 한껏 받아들이려는 듯 주인장은 정원으로 난 통유리 창을 활짝 열어두고 있었다.

과감한 명예퇴직 결정이 터닝 포인트
1. 원목을 많이 사용해 내추럴하고 편안한 느낌의 인테리어
1. 원목을 많이 사용해 내추럴하고 편안한 느낌의 인테리어
입소문이 나면서 하루 평균 200명 이상의 손님이 찾는다는 카페 모리의 주인은 비즈니스로 잔뼈가 굵은 노련한 사업가가 아니다.

“사실은 23년간 중학교 음악교사로 일했어요. 커피숍 창업은 지난 10여 년간 생각으로만 키워온 꿈이었죠. 애초엔 사람들이 모여서 차도 마시고 책도 읽는 북카페를 생각했었다가 계획이 구체화되면서 홍대 앞 지인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보고 프랜차이즈를 하려고 생각도 했었어요.

이런저런 시장조사를 하던 차에 이곳에 카페를 내놓은 사람이 있다고 해서 한 달여 전에 덜컥 인수를 결정했죠. 시작해 놓고 첫 일주일은 너무 힘들어서 괜히 했다는 생각도 했지만 이제는 운영의 리듬도 알 것 같고, 무엇보다 사람들과 다양한 소통을 할 수 있어서 아주 즐겁습니다.”

10여 년간 상상으로 키워온 꿈을 결국 이뤄낸 최은선 카페 모리 대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선생님’으로 불렸다. 연세대 음대 작곡과 학사, 한국교원대 음악교육학 석사 출신으로 23년간 중학교 음악교사로 몸담았던 것. “더 늦기 전에 다른 삶도 살아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창업을 종용(?)한 남편의 격려도 과감한 명예퇴직을 결정하는 데 한몫했다.

마케팅리서치 전문기업 최고경영자(CEO)인 남편은 창업 이전 상권 조사를 비롯해 현재 운영 중인 카페의 과거 1년간 매출 분석까지 해주며 적극적으로 창업을 지원했다. 덕분에 최 대표 본인은 20년 이상 교단에서만 지냈지만 창업 준비 과정은 누구 못지않게 분석적이고 과학적이었다.

보증금을 제외한 권리금을 포함해 창업비용은 약 1억2000만 원. 원두 로스팅 기계와 에스프레소 머신, 찻잔 등 주로 시설 투자가 대부분이었다. 오픈한 지 2년이 넘은 카페였던 터라 완전히 새로운 콘셉트로 접근하는 것도 위험하다는 판단 하에 최 대표는 식기 등 일체를 고급 브랜드로 바꾸고 기존 고객과 자신의 네트워크로 형성되는 새로운 고객층 관리에 만전을 기했다.

“주변에 언론사가 많아서 그런지 기자들이 자주 오세요. 은행 PB, 리서치회사 연구원, 앵커, 연예인 등 주로 화이트칼라 고객이 많습니다. 카페를 인수하고 며칠 안됐을 즈음 모 언론사 기자가 오셨는데, 이름만 아는 남편 후배라 가는 길에 쫓아가 인사를 했더니 진심어린 지적을 몇 가지 해주시더라고요. 고객 수준을 생각해서 찻잔을 고급으로 바꾸고 테이블에 작은 화분을 둬서 전체적인 콘셉트를 맞추라는 얘기였어요. 그때 ‘아차’ 싶었죠.”

하이 프로파일 고객 입맛 고려해 찻잔 하나까지 업그레이드
2. 카페 모리는 하이 프로파일 고객 입맛을 고려해 그날 그날 원두를 볶아 신선한 커피를 제공한다.
2. 카페 모리는 하이 프로파일 고객 입맛을 고려해 그날 그날 원두를 볶아 신선한 커피를 제공한다.
주인장이 바뀌었으니 카페의 변화도 불가피했다. 하이 프로파일 고객 입맛에 맞춰 원두 선별에 더욱 신경을 썼음은 물론이다. 커피, 허브티 등을 담아내는 잔 또한 고급 브랜드로 바꾸고 쿠키와 케이크도 유기농만 고집했다.

“하루 11시간의 근무가 거의 노동에 가깝더라고요.(웃음) 물론 계약한 뒤 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커피 공부도 하며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막상 오픈 초기엔 몸은 몸대로 힘들고 직원 관리도 익숙지 않아 너무 힘들었어요. 지금은 운영에 대한 리듬감을 익힌 상태라 처음보다는 수월하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과 즐거운 소통을 할 수 있어 재미있어요.

한번은 시누이가 찾아왔는데 그날따라 제 헤어스타일이 조금 부스스했나 봐요. 시어머님께 제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손님들한테 너무 굽실거리는 것 같아 불쌍하다고 전화를 넣었지 뭡니까. 안정된 직장을 포기하고 카페 한다고 안 그래도 시어머님 반대가 엄청났었던 터라 시누이 전화가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죠.(웃음)”

대화를 이어가던 중에 최 대표가 자그마한 카페 브로슈어를 내밀었다. 커피, 허브티, 생과일주스, 샌드위치와 토스트 등의 메뉴와 함께 CEO로서의 ‘카페 모리’ 운영 철학이 담긴 책자였다. 그저 단골 많은 가게 자리 하나 나서 덜컥 시작한 사업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커피숍이나 카페 운영에 가장 중요한 것은 커피 맛이겠죠. 그 다음은 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 직원들에게 손님이 오시면 무조건 눈을 맞추면서 인사를 하라고 강조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세 번째는 쾌적한 공간 제공인 것 같아요. 차를 마시면서 편히 쉬었다 갈 수 있는 곳이 돼야 하지 않을까요.”

시계가 12시를 조금 넘기자 최 대표의 말대로 정말로 손님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소형차보다 조금 작은 로스팅 기계는 연신 원두를 볶느라 바빴고, 주인장은 카페 안팎을 뛰어다니며 손님맞이로 갑자기 분주해졌다.

“창업은 철저한 계획과 시장조사도 필요하지만 운도 따라야 하는 일 같습니다. 벌써부터 2호점, 3호점 낼 생각이 없느냐고 하는 분도 있고 얼마 전엔 손님 한 분께서 보증금 줄 테니 카페를 팔라고도 하는데 이제 시작인걸요.(웃음) 이 일은 하고 싶은 꿈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돈을 많이 벌려고 벌인 일이에요.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를 맡고 있는데 학생들 가운데 형편이 어려워 뜻은 있으나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그런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게 또 다른 꿈이에요.”

글 장헌주·사진 이승재 기자 c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