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현 HS애드 상무

‘단 한 줄, 단 한 마디’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는 광고. 나이키, 대한항공, LG 등 국내 굴지의 유명 브랜드 광고는 모두 황보현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합 광고대행사 HS애드 (옛 LG애드)의 황보현 상무를 만나 그의 광고 열정을 들었다.

TV 광고를 통해 대중과 만나는 15초의 힘은 대단하다. 하지만 짧은 광고 한 편이 시청자의 시선을 확실하게 끌도록 제작되기까지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광고 제작자의 숨은 노력이 동반된다.

종합 광고대행사 HS애드의 황보현 상무는 1988년 11월부터 2010년 현재까지 22년 넘게 광고 제작의 길을 걸어온, 이른바 ‘광고쟁이’다. 애초에 꿈은 방송국 PD였지만,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광고의 길로 들어섰다.
윈도 체크가 돋보이는 멜란지 그레이 컬러 배경에 심플하고 세련된 느낌의 슈트다. 노턱 팬츠, 캐주얼한 느낌의 옥스퍼드 조직 화이트 버튼다운 셔츠, 핑크 바탕에 사각 도트 문양이 세련된 느낌을 주는 타이로 매치했다. 모두 PAL ZILERI 제품.
윈도 체크가 돋보이는 멜란지 그레이 컬러 배경에 심플하고 세련된 느낌의 슈트다. 노턱 팬츠, 캐주얼한 느낌의 옥스퍼드 조직 화이트 버튼다운 셔츠, 핑크 바탕에 사각 도트 문양이 세련된 느낌을 주는 타이로 매치했다. 모두 PAL ZILERI 제품.
“방송국 PD의 꿈을 품고 연세대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죠. 우리나라에서 서울 올림픽을 개최하게 됐다고 발표하자마자 올림픽을 대비하기 위해 몇 년 전부터 방송국에서 PD를 많이 뽑기 시작하더군요. 덕분에 제가 졸업하던 1988년에는 방송국에 PD가 이미 차고 넘칠 만큼 많아 전혀 뽑지 않더라고요.(웃음)”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이라고, 그는 광고회사에서도 방송국 PD와 비슷한 프로그램 디렉터(Program Director)라는 직업이 있다는 얘길 듣고 무작정 광고회사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광고회사의 프로그램 디렉터는 그가 알던 방송국 프로듀서와는 달랐다.

“광고에서의 프로그램 디렉터는 전파 광고(TV)를 제작하지만, 방송국의 PD처럼 직접 연출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죠. 방송국 PD처럼 연출을 하는 일은 광고계에서 연출 전문 직업인 CF 감독의 일이니까요. 상업 광고 제작의 길로 들어서게 됐지만 결과적으로 제게는 잘 된 일이었어요. 호흡이 긴 방송을 제작하는 일 보다 짧지만 강렬한 광고 제작이 제게 맞았으니까요.”

창조적 아이디어는 ‘절박함’에서 나온다
[Style Interview] 15초의 ‘승부’ , 그 절박한 현장에서
광고계의 판도는 쉽게 변한다. 황 상무가 처음 광고를 만들 때는 제약회사와 제과회사의 광고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면, 지금은 통신사와 가전회사들의 광고가 전체 광고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다.

그는 지난 2007년 국내 첫 광고 방송 시상식인 ‘제1회 한국 방송광고 페스티벌’에서 ‘대한항공 몽골편’으로 대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주 무대는 국내 TV 광고가 아닌 해외로 노출되는 국내 기업 광고다. 그는 해외 유명 광고제인 칸 국제광고제(Cannes Lions Inter national Advertising Festival), 뉴욕페스티벌(New York Festivals) 등 유명 광고상을 휩쓸었다.

“주로 굴지의 한국 기업의 해외 광고를 제작하죠. 수많은 나라를 다녔는데, 최근에는 남아공에 자주 가요. 남아공까지 비행 시간만 24시간이 넘게 걸리는데, 보통 오후에 도착해 밤 촬영을 시작으로 아침까지 10시간 넘게 촬영을 하고 바로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 많아요. 굉장히 빡빡하죠.(웃음)”

그렇다면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한 편의 광고를 만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칠까. 몇 년 전부터 이화여대 겸임교수를 맡아 뉴 미디어 강의를 하고 있는 그는, 최근 강단에서 광고인으로서 가장 필요한 ‘창의력’에 대한 강의를 했다면서 말을 이었다.

“크리에이티브를 끌어올리기 위한 세 가지 단계가 있어요.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절박함’이에요. 파울로 코엘료가 쓴 소설 <연금술사>에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는 말이 나오죠.

정말 간절히 원하는 절박함은 창조의 단계에서 필요한 가장 기본 수단이죠. 절박한 단계를 넘어서면, 바로 몰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해요. 창의성에 대한 생각과 고민 끝에 몰입의 단계가 이뤄지죠. 제 생각으로 몰입은 ‘선잠(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잠을 자는 상태도 아닌)’이에요.

실제로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목욕을 하거나 잠, 산책, 심지어 술을 마시는 과정에서 떠올라요. 부력의 원리를 발견한 아르키메데스의 말처럼 ‘유레카!’를 외치는 순간 말입니다.”

실제로 그는 광고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몰입을 즐긴다. 회사 책상 위에 느긋하게 다리를 올리고, 의자에 몸을 맡긴 채 자는 것도 자지 않는 것도 아닌 선잠의 상태에 빠진 채 떠오른 쾌거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광고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창의력을 끌어내기 위한 마지막 단계는 바로 뇌를 한계 상황으로 몰아넣는 거예요. ‘진정한 창조는 아이디어들이 섹스를 하는 환경에서 생긴다’고 표현하고 싶네요. 주류 문화와 서브 문화가 부딪히는 환경에서 이질적이어서 함께 있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되는 것들을 합친 퓨전을 통해 완성된 아이디어들이 주목받기 마련이거든요.”

그의 이런 노력 끝에 완성된 대표적인 TV 광고로 ‘대한항공 아프리카 편’을 꼽을 수 있다. 푸른 상공과 널찍한 아프리카의 전경이 펼쳐지는 가운데 손을 흔드는 아프리카 흑인의 모습, 그리고 딱 한 줄의 카피 ‘비행 비행 비행 특별한 비행’에서 오는 임팩트. 어찌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결합이지만, 이런 퓨전을 통해 완성된 그의 광고들은 늘 주목을 받는다.
왼쪽부터 2010 대한항공 글로벌 캠페인, 2010 대한항공 뉴질랜드 캠페인, 2010 대한항공 중국 캠페인
왼쪽부터 2010 대한항공 글로벌 캠페인, 2010 대한항공 뉴질랜드 캠페인, 2010 대한항공 중국 캠페인
“나는 100m 단거리 주자다”

“공자가 이런 말을 했죠. ‘머리 좋은 놈이 열심히 하는 놈을 이길 수 없고, 열심히 하는 놈이 즐기는 놈을 이길 수 없다’라고요. 전 처음부터 무작정 광고 제작의 재미에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반대로 생각해 보면 광고 제작은 너무 집중하는 탓에 다른 주변 일에는 소홀해진다는 단점이 있어요.”

그런 이유로 그는 결혼도 늦게 했다. 6년간 사귀었다 헤어짐을 반복하던 여자친구와 37세의 나이에 결혼, 현재 슬하에 11살 난 아이가 있다.

‘광고쟁이’는 하루 24시간, 일주일, 심지어 1년 내내 개인 시간 없이 살 때도 있다. 때문에 그는 단거리를 즐겁게 뛸 수 있는 사람만이 광고계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만 좇아 광고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가 금세 후회하고 다른 길을 찾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뉴 미디어(소셜 네트워크)인 모바일과 웹이 주목받는 시대가 왔어요. 아직 한국에서 시도하지 않은 크로스 미디어 캠페인(Cross-Media Campaign)을 만들고 싶어요. 다양한 미디어를 창의적이고 마케팅 지향적인 판매 패키지로 묶어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크로스 미디어의 핵심인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다면, 성공한 크로스 미디어 캠페인이 탄생하게 될 테니까요.”

그만의 열정 넘치는 광고 제작 외길 이야기를 들으며, 만약 그가 방송국 PD가 됐다면 어떤 작품들을 만들어 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는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마라톤을 할 생각을 하니 벌써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데요. 전 100m 달리기가 좋아요.(웃음)”

총성이 울리는 순간부터 결승선에 다다를 때까지의 짧지만 긴장감 넘치는 찰나를 즐기는 그는 100m 단거리 주자다. 목적은 인터뷰였지만, 그에게 글을 쓸 때 필요한 ‘몰입’의 노하우를 한 수 배웠다. 유레카!


황보현

현 HS애드 상무 겸 CD본부장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사진 김유철(FIESTA Studio)·메이크업 이소연
글 김가희 기자 hol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