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웅래 에코원 선양 회장
대전·충청 지역 소주 업체인 에코원 선양의 조웅래 회장은 마라톤 마니아이자, 맨발 걷기 전도사다. ‘칠공공 오사이오’로 유명한 모바일 콘텐츠 기업 (주)5425의 설립자에서 소주 업체 사장으로, 이제는 ‘황톳길 맨발 걷기’ 가이드로 변신한 그의 활력 인생을 취재했다. 조웅래 에코원 선양 회장을 만나러 가는 날은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늦은 장맛비를 맞으며 찾아간 곳은 대전의 계족산. 산책로 초입에서 직원의 안내를 받고 1분여를 갔을까. 숲속 저편에서 맨발로 걸어오는 조 회장을 만날 수 있었다.울창한 숲길을 내려온 사람답게 얼굴은 약간 홍조를 띠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그는 대뜸 기자에게도 신발과 양말을 벗으라고 권했다. 얼떨결에 맨발이 된 기자를 이끌고 그는 다시 황토가 곱게 깔린 임로로 들어섰다.
“보통은 지금보다 황톳길이 훨씬 부드러운데, 장맛비에 태풍까지 와 황토가 많이 쓸려 내려갔어요. 길도 좀 패였고요. 그래도 걷기에는 괜찮을 겁니다. 좀 익숙해지면 오히려 잔자갈이 깔린 곳도 걷기에 그리 불편하지 않아요.”
우연히 시작된 맨발 걷기로 시작된 황톳길 사업
오락가락하는 빗속을 걸으며 조 회장은 황톳길과의 인연을 조곤조곤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처음 그가 계족산을 찾은 것은 선양을 인수한 이듬해인 2005년이다. 처음 찾은 계족산은 한여름에도 울창한 나무가 해를 가려주고 여자들이 걷기에도 좋아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맨발로 걸은 것은 아니다. 신발과 양말을 벗기까지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다.
그는 골프를 하지 않는다. 대신 사업상 미팅이나 지인들을 만날 일이 있으면 자주 계족산을 찾는다. 그때도 타지에서 몇몇 지인들과 함께 계족산 산책에 나섰다. 그런데 일행 중 한 사람이 굽이 높은 힐을 신고 있었다. 보다 못한 그가 신발을 벗어 그녀에게 주었다. 엉겁결에 맨발로 걷게 된 것이다.
한참을 걷고 나서 신발을 신는데, 느낌이 색달랐다. 발바닥에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했다. 더 큰 변화는 밤에 일어났다.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그는 생전 그렇게 숙면을 취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는 맨발 걷기의 마력에 빠져들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맨발로 걸을 수는 없었다. 일반적으로 맨발로 걷기에는 두 가지 제약이 따랐다. 하나는 타인의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발에 상처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임로를 부드러운 황톳길로 만들면 상처 걱정도 없고, 많은 사람이 함께 걸으면 타인의 시선도 신경 쓸 필요 없겠다 싶었다.
2006년부터 그는 계족산 임로를 황톳길로 바꾸기 시작했다. 비바람에 황토가 유실되면 다시 깔기를 반복했다. 지금까지 황토를 까는 데 들어간 돈만 20여억 원. 그 사이 좋다는 황토는 다 만져봤다. 이제는 만져만 봐도 좋은 황토인지, 나쁜 황토인지 구분이 된다.
“직원들한테 팀별로 황톳길을 가라고 합니다. 한두 시간 함께 길을 걷다 보면 서로 마음을 열게 되거든요. 저는 소통이 정말 중요하다고 봅니다. ‘오사이오’도, 소주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일이거든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소통만큼 중요한 게 또 있겠습니까.” 세상 시름을 한번에 날려주는 황톳길 산책
직원들만 다그치는 게 아니라 그도 자주 산책로를 찾는다. 일주일에 5~6번은 계족산에 오른다. 주로 아침녘에 이곳에 오는데, 가끔은 낮에도 찾는다. 주로 혼자일 때가 많은데, 혼자 산책로를 걷다 보면 세상에서 받은 시름이 한번에 날아간다. 회사 일로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마음이 복잡할 때 숲속 길을 걷다 보면, 거짓말처럼 머리가 맑아진다.
“저도 주말이면 집사람하고 여길 옵니다. 매일 술 먹고 늦는데, 그렇게라도 해야죠. 저는 특히 부부들에게 여기 와서 걸어보라고 해요. 길을 걷다 보면 머리가 비거든요. 그러면 다시 채우기 위해 대화를 많이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멀찍이 떨어져 걷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가까워지고, 나중에는 팔짱을 끼게 된다니까요. 제 경험담이기도 합니다.(웃음)”
혼자 산책로를 걷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의 말대로 중년 부부들이 많았다. 산책로에서는 맨발로 걷는 등산객들도 간혹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만큼은 ‘맨발로 걷기’가 새삼스러울 게 없었다.
조 회장은 황톳길 조성에 이어 ‘에코 힐링 선양 마사이 마라톤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2006년부터 ‘맨발로 숲속 황톳길을 걷고 달린다’는 주제로 시작된 이 대회는 올해로 5회째를 맞는다.
마사이 마라톤대회는 단순히 맨발로 걷거나 달리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역의 문화예술단체가 펼치는 연주와 전시를 즐길 수 있다. 숲속 곳곳에 설치된 130여 개의 스피커에선 아름다운 음악도 흘러나와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준다.
이와 함께 행사장 곳곳에서 페이스페인팅, 대발이를 찾아라, 맨발 비누체험, 풍선아트 등 온 가족이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도 마련된다. 대회는 조 회장 가족의 모임의 장이기도 하다.
아흔셋의 어머니부터 손자들까지 4대가 모이는 집안의 큰 행사가 됐다. 모두가 마라톤대회도 참석하고, 가족 잔치를 벌인다. 마사이 마라톤대회를 열기 전에는 다른 마라톤대회에서 온 가족이 모였다. 마라토너 집안의 엄격하고 독특한 사위 심사
사실 그의 집안은 마라톤 집안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형들은 말할 것도 없고 형수들까지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할 정도다. 그도 집안 분위기에 따라 형들의 영향으로 마라톤을 시작했다. 2001년 경주 벚꽃 마라톤대회 10km에 참가했고, 이듬해 동아 마라톤대회에서 풀코스를 뛰었다. 최근에는 시간을 내지 못해 뛰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완주만 서른여덟 번을 했다.
그중 가장 잊을 수 없는 대회가 2005년 보스톤 마라톤대회다. 당시 40대였던 조 회장과 50대였던 셋째형, 60대의 둘째형이 모두 참석해 같은 시간에 함께 결승선을 통과했다. 40대, 50대, 60대 부문에 각각 출전해 마스터스의 꿈을 실현한 것이다.
“저희 집안은 마라톤과 관련된 재미난 에피소드가 많습니다. 저희 집안에 사위가 되려면 마라톤 하프코스 완주증이 있어야 합니다.”
마라톤 예찬론자인 그는 자주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평균 수명을 80세라고 가정하면, 55세가 인생의 반환점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자아가 갖춰지는 20세까지를 빼면, 그 정도가 반환점이라는 것이다.
“올해 제가 쉰둘인데, 친구들 중에는 벌써 은퇴하고 쉬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그런 친구들한테 나머지 인생을 준비해야 한다고 종종 얘기합니다. 쉰다섯까지 열심히 살았다면 나머지는 제가 가진 걸 나누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려면 건강해야죠.(웃음) 황톳길을 만들고, 마사이 마라톤대회를 하는 게 저로서는 사회공헌인 셈이죠.”
대전=글 신규섭·사진 이승재 기자 wa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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