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로의 항해, ‘적을수록 많다’

독일에서 태어나 바우하우스 교장을 역임한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1886~1969)는 20세기를 대표하는 건축가 중 한 명이다. 디자인 역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그가 남긴 ‘적을수록 많다(Less is More)’라는 경구는 20세기 디자인이 추구했던 기계미학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장식이 적을수록 의미는 풍부해진다’, ‘형식을 절제할수록 본질에 가까워진다’, ‘과거의 양식과 결별할수록 새로운 시대를 더 잘 맞이할 수 있다’ 등으로 해석되는 이 말 속에는 서구의 근대화, 산업화 과정에서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미학을 꿈꾸었던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의 꿈과 이상이 반영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아방가르드는 현상보다는 본질을, 결과보다는 원인을, 외면보다는 내면을 중시했던 절제된 형식과 간결한 조형언어가 특징이었다.
[김재규의 앤티크 살롱] 20세기 디자인, 모던 클래식이 되다
스칸디나비아 디자인

노르딕 디자인, 또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으로 불리는 북유럽 디자인은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4개국의 디자인 경향을 일컫는다. 1930년에 열린 스웨덴 스톡홀름 박람회를 통해 그 모습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노르딕 ‘기능주의’는 이후 북유럽 디자인의 핵심 키워드가 된다.

건축물의 아름다움과 실용적 사회정책의 결합을 이루어낸 노르딕 기능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도시계획과 가구, 일상 생활용품 디자인에도 폭넓게 채택되기에 이른다. 그것은 스타일에서 무엇보다 깔끔하고 단순한 선의 형태로 나타났다.

노르딕 디자인의 또 다른 특징은 나무 등의 소재를 자연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고, 자연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얻어낸 영감을 디자인에 반영하는 등 자연 친화성을 들 수 있다. 따라서 북유럽 디자인은 기능성, 단순성, 실용성, 자연 친화성이라는 네 가지의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고 하겠다.

북유럽의 디자이너를 살펴보면, 먼저 후고 알바르 헨리크 알토(Hugo Alvar Henrik Aalto·1898~1976)를 꼽을 수 있을 터다. 핀란드 태생으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는 ‘모더니즘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다.

모든 재료가 ‘구부린 합판’으로 돼 있다. 알바르 알토가 합판을 선택한 이유는 파이미오 요양원을 설계하면서 환자들에게 도금된 금속보다 나무가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건강에도 좋다고 판단해서였다.

또 열전도율이 낮고, 빛을 반사시키지 않아 눈부시지 않으며, 소리를 흡수한다. 게다가 파이미오 의자의 소재로 선택된 자작나무는 핀란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는 나무를 구부리는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해 곡면 합판 기술을 완벽하게 갖추게 된다.

이는 핀란드는 물론 스칸디나비아 4개국이 곡목(bentwood) 의자의 전통을 확립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파이미오는 나무가 모던한 의자로 디자인되고, 또 저렴하게 생산될 수 있음을 보여준 시금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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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은 1928년에 덴마크 코펜하겐 예술아카데미의 건축과를 졸업했으며 르코르뷔지에로 대표되는 국제합리주의 건축을 지향했다. 아마도 야콥센이 없었다면 덴마크 디자인이 지금과 같은 인지도를 넘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바우하우스와 윌리엄 모리스의 철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디테일도 놓치지 않고 완성도를 높였다. 특히 코펜하겐 SAS 로열호텔의 의뢰를 받아 껍질이 잘려나간 달걀과 비슷한 모양의 ‘에그 의자’를 디자인했다.

머리 받침과 등받이, 좌판, 팔걸이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으며, 몸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감싸는 듯한 인상을 주어 앉고 싶다는 충동을 일으킨다. 의자의 표면은 다양한 색상과 무늬의 가죽 또는 천으로 씌워졌다.

특정 호텔을 위한 디자인이었지만, 독특하고 매력적인 모양 덕에 영화나 광고에 빈번히 등장하면서 명성이 높아졌다. 백조 의자와 함께 야콥센의 아기자기한 조형미를 보여준 대표적인 의자다.

또 한 명 베르너 팬턴(Verner Panton)은 덴마크 태생의 디자이너로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조형적 엄격함에 화려한 색을 덧입힌 작업으로 명성을 얻었다. 수공을 기준으로 디자인 프로세스를 진행하는 기존 덴마크 디자인의 생산 방식에서 과감히 탈피해 플라스틱과 같은 대량 생산을 염두에 둔 디자인을 선도했으며, 엄격한 품질과 조형적인 완성도를 더해 큰 신뢰를 얻었다.

비더마이어 스타일에서 온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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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1825~35년 나폴레옹의 전화(戰禍)로 인해 경제 상황이 몹시 어려웠다. 이즈음에 나타난 소시민들, 즉 비더마이어라는 중산층의 오락거리였던 풍자 만화 ‘파파 비더마이어’로부터 하나의 양식이 탄생한다.

비더마이어 스타일(Biedermeier Style)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북 유럽 국가들과 이탈리아 북부의 부르주아 계급에 통용된 신고전주의와 로맨티시즘 사이 전환기의 전통 예술양식으로 볼 수 있다. 촌스럽고 우직하게 기이한 형태를 가진 졸작도 있는 반면 종종 눈에 띌 정도로 간소하고 세련되며 기능적인 것도 있다.

양식 면에서 비더마이어 가구는 앙피르시대 양식의 딱딱함을 완화시키고 디렉투아르 양식에 무게를 더해 고상한 앙피르 양식의 가구를 현실적인 가구로, 섬세한 디렉투아르 양식의 가구를 튼튼한 가구로 바꾸어놓았다는 평이다.

비더마이어 가구는 가벼운 목재를 사용했고 금속장식을 피했다. 표면은 본래의 나뭇결이나 목재의 옹이구멍 등을 잘 살리고 흑색이 돋보이도록 칠했다. 작은 규모의 상감도 때때로 쓰였다. 특징은 극도로 절제된 기하학적 외양인데, 후에 아르누보와 북유럽 현대가구 디자인에 영향을 미쳤다.

점차 이 스타일은 로맨티시즘화해 직선은 곡선과 구불구불한 선으로 되고, 단순한 표면은 천연재료 이상의 것으로 더욱더 장식됐으며 인문주의적인 형태는 좀 더 환상적인 형태로 변했고 구조도 실험적인 것으로 됐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에 부활돼 최초에 중점을 두었던 가벼움과 실용주의 및 개성을 되찾게 된다. 이것이 즉 모던 디자인에 지대한 영향으로 나타난다.

미국, 임스 양식 시대(Eames Era)의 개막

독일 나치의 압제를 피해 신세계로 이주해온 일군의 예술가들인, 바우하우스 멤버들에 의해 미국은 활력을 얻는다. 그리고 찰스 임스(Charles Eames·1907~78)가 그 정신의 적자로서 큰 활동을 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전 유럽이 전쟁을 겪는 동안 미국의 가구 디자인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심에 임스가 있다. 임스는 1941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개최한 ‘가정용 가구를 위한 유기적 디자인’이라는 공모전에서 에로 사리넨과 함께 디자인해 출품한 의자가 최고 상을 받는다. 이후 이 의자를 대량 생산에 적합하도록 더욱 발전시킨 의자 시리즈들을 연달아 발표한다.

LCW(Lounge Chair Wood)는 그 첫 신호탄으로서 대량 생산과 저렴한 가격대를 위해 합판을 소재로 사용했으며 알토가 연구했던 곡목 기술을 적용시켰다. 등받이와 좌판, 다리, 그리고 중심 틀을 따로 제작해 탄성고무로 이들을 연결시켜 하나의 의자로 완성했다.

유기적이고 인체공학적으로 편안한 이 의자는 대중적 인기를 누린 임스의 첫 작품이자 그의 시대를 여는 기호가 됐다. 그리고 DAR(Dinning Armchair Rod)는 임스와 그의 아내인 레이 임스가 함께 디자인한 가구 시리즈 중 두 번째로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이다.

이 의자는 20세기 중반 가장 혁신적인 의자로 손꼽힌다. 무엇보다 좌판과 등받이, 팔걸이가 별개로 떨어져 있다가 결합돼 기존 의자와 확연히 구분된다. 이 세 요소가 유기적으로 하나의 조형 속에 녹아 있다는 점은 당시 관점으로 혁명적이었다.
[김재규의 앤티크 살롱] 20세기 디자인, 모던 클래식이 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