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주 우리자산운용 주식운용 2본부장

“실망스러운 경기지표와 유동성이 힘을 겨루는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입니다. 둘의 싸움으로 코스피지수는 추세적으로 오르기보다는 박스권을 오가는 양상을 보일 것입니다.” 김학주 우리자산운용 주식운용 2본부장은 코스피지수가 추세적으로 상승하기보다는 현재의 박스권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혼조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코스피지수가 1800선을 돌파한 기세를 타고 상승해 연말까지 2000선 가까이 오를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와는 상반된 분석이다. 김 본부장은 2006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에서 자동차 분야 국내 정상급 애널리스트로 활동해 왔다. 지난 2월부터 펀드매니저로 변신, 우리자산운용의 주식운용 2본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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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문제로 인한 미국의 소비 둔화

김학주 본부장이 코스피지수의 추가 상승여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미국의 소비 둔화와 유럽의 재정적자 문제가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현재의 코스피지수는 국내 기업의 실적과 각국 정부들이 늘린 재정지출을 바탕으로 한 유동성의 힘으로 상승했으나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김 본부장은 “현재의 코스피지수는 유럽의 재정위기 등으로 더블딥에 대한 우려가 컸지만 각국 정부가 이것을 잘 무마시켰고 더 이상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 덕분에 현재 수준까지 올라왔다”며 “하지만 정부의 경기부양책과는 상관없이 디플레이션(경기침체로 인한 물가 하락) 압력이 커지고 있어 유동성과의 힘겨루기를 통한 혼조 양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경기에 대해서는 부동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봤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단인 부실 모기지 문제가 아직까지 잠복해 있다는 것. 미국의 주택 가격이 올라야 거기에 근거해서 소비를 늘리는데 바닥 수준인 주택 가격 때문에 소비를 늘릴 동력이 없다는 의미다.

또 노령화로 인해 은퇴 인구가 늘어나면서 부동산을 은행에 맡기고 여생을 보내는 미국인들이 늘어 주택 매물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점도 부정적인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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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가격이 낮으니까 부실 모기지로 인해 은행이 차입한 주택을 매물로 내놔도 손실을 보게 되는 점도 우려스러운 부분으로 지적했다. 김 본부장은 “미국인들은 저축률이 낮은 데다 실업률도 높아 소비를 늘리기 위해서는 부동산 가격이 올라야 하지만 지금까지는 역부족”이라며 “소비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투자도 줄고 이에 따라 고용이 늘지 않으면서 계속 침체기로 들어가는 것 아니냐 하는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유럽 경제에 대한 전망도 밝지 않았다. 그는 “유럽은 고용을 유발할 수 있는 제조업 기반을 아시아 국가들에 이미 다 내 준 상태”라며 “금융업 등으로 제조업을 대체했지만 생각만큼 부가가치가 크지 않은 데다 씀씀이는 계속 커져 재정적자가 계속 늘어나는 국면이라 디플레이션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상황으로 인해 수출 의존도가 큰 국내 증시의 전망이 밝지 않다는 게 김 본부장의 분석이다.

“한국 증시는 사실 국내 경기보다 세계 경기가 더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수출 의존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국이 구매력을 상실했고 유럽도 예전의 유럽으로 돌아가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 국내 기업들이 물건을 팔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올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국내 기업들이 이런 상황에서도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여갔기 때문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돋보이는 성장을 했지만 앞으로는 어려운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다른 경쟁국이 국내 기업들을 따라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대표적인 예로 반도체 분야를 보면 국내 기업들이 40나노에서 생산하는데, 50나노에서 생산하던 일본과 대만이 이를 따라오고 있습니다.

자동차도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 경쟁력을 높여나갔는데 경쟁사들이 이제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벗어나고 있고 자동차 교체 주기도 길어져 수요가 줄고 있습니다. 또 환율 효과도 연말께에는 사라질 가능성이 높아 박스권을 크게 벗어나 상승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내년 상반기가 최고점

김 본부장은 내년 상반기까지 증시가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등락을 거듭하다가 저점을 높여가는 양상을 보이지만 하반기부터는 상황이 악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각국의 재정정책으로 인한 유동성 과잉으로 인플레이션까지 발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서다.

그는 “현재 주가가 오른 것은 기업 실적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유동성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며 “상당수가 1~2년 뒤 대세상승장이 올 것이라고 얘기하지만 내년 상반기 이후부터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돈을 미처 뺄 겨를도 없이 주식시장이 크게 요동을 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에 한국이 포함된다면 상승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했다. 세계 경기는 안 좋겠지만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은 이를 상쇄할 만한 호재라는 의미다.

김 본부장은 “현재 기관투자자들은 MSCI 이머징마켓에서 중국·동남아 시장을 많이 사고 있는데 한국은 이미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신흥 시장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하지만 한국이 MSCI 선진국 지수에 포함되면 기관투자자들 중 상당수는 일본을 팔고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한국 기업들의 편입 비중을 높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한국이 MSCI 선진국 지수에 포함되면 기관투자자들이 일본 주식을 팔고 한국 주식 비중을 높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본부장은 한국이 MSCI 선진국 지수에 포함되면 기관투자자들이 일본 주식을 팔고 한국 주식 비중을 높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물자산 투자 권할 만

이런 전망을 바탕으로 김 본부장은 실물자산에 대한 투자를 강화할 것으로 조언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금이나 원자재 등이 크게 올라가는 국면이 올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장기적으로 우려를 안심시켜줄 수 있는 믿을 만한 테마를 갖고 거기에 부합하는 종목들을 들고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중국이 자신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위안화를 강화시키면 기축통화에 대한 혼돈의 시기가 올 것이고 금의 의존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원화절상 수혜주도 관심을 가질 분야로 꼽혔다. 올해 말부터 원화절상이 가파르게 이어지면 이들 종목이 한번 크게 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구조조정이 완료되는 산업들도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김 본부장은 “해운이나 조선과 같이 그동안 어려움을 겪다가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회복하고 있는 업종은 눈여겨볼 만하다”며 “각종 인수·합병(M&A)과 구조조정의 전리품을 획득하고 있는 기업들은 상승 폭이 클 것이다”라고 말했다.

요즘 들어 국내 증시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중국 소비 관련주들도 관심의 대상이다. 미국, 유럽 등의 소비가 살아나지 못하면 결국 남은 것은 중국밖에 없으므로 관련 업종들의 상승 폭이 클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 본부장은 “명동에 가면 중국 사람들이 화장품을 보따리째 휩쓸어 가는 등 엄청나게 소비를 하고 있다”며 “직접적인 수혜를 입는 항공, 호텔, 여행사 업종뿐만 아니라 레저 관련 종목들도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사회간접자본(SOC) 및 신성장 동력과 관련한 기업들도 유망할 것으로 전망했다. 각국 정부가 소비를 일으키는 데 어려움을 겪는 과정에서 고용 창출을 위해 SOC 투자를 늘릴 것이라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특히 전기차 보급에 따라 송전망 관련주, 2차 전지 기업, 스마트 그리드 업종의 상승 폭이 클 것으로 봤다. 김 본부장은 “나쁜 기업을 싸게 사는 것보다는 비싸더라도 좋은 기업을 사는 게 맞다”며 “좋은 기업은 비싸도 우리가 몰랐던 긍정적인 부분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은 만큼 가격보다는 기업의 가치에 더 가중치를 부여해서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글 박민제 한국경제신문 기자·사진 이승재 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