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시장이 심각한 ‘위기의 수렁’에 빠졌다. 연일 자금이 빠져나가서 언제 되돌아올지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펀드가 우리 국민의 핵심 자산관리 수단으로 자리 잡았지만, 이젠 어느덧 그 자리에서 밀려나 버렸다. 대신 주식 직접투자나 랩어카운트 등이 주요한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펀드 시장이 이처럼 위기에 빠지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보다도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에 보였던 부진한 펀드 성과 때문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투자자와 제대로 소통하지 않은 점이다. 펀드를 팔 때는 많은 이야기를 쏟아 부었다가 예상과 달리 성과가 부진하자 대부분의 판매회사나 자산운용사가 침묵해버린 것이다.

그저 ‘기다려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 하며 투자자와의 소통을 소홀히 한 게 사실이다. 수익률이야 시장 상황에 따라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투자자를 설득했다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기대와 다른 수익률 하락으로 답답한 상황에 빠진 투자자들을 애써 못 본 척 외면한 것은 투자자로 하여금 심한 실망감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이제라도 펀드 시장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통렬한 자기반성과 함께 펀드 투자자와의 적극적인 소통을 위한 구조적인 개혁이 시급하다. 특히 펀드 투자자와 만나는 접점인 판매 구조에 대해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Market Insight] 펀드 위기의 원인은 판매 구조, 직접 판매 활성화해야
펀드에 대한 불신이 자금 유출 불러


금융투자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11일까지 25일째 연속으로 주식형 펀드 자금이 순유출하는 신기록을 달성했다. 이는 2006년 집계 이후 가장 오랜 기간이며 이 기간 동안 빠져나간 자금 규모만도 모두 3조7800억 원에 이른다. 8월 12일 현재 주식형 펀드의 총 수탁고는 111조3887억 원으로 지난해 연말 대비 무려 14조8430억 원(-11.75%)이나 줄었다.

저금리와 부동산 침체 등으로 갈 곳을 찾지 못한 단기부동 자금이 570조 원대에 이르는 데다 주가 상승으로 최근 펀드 성과가 양호하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이 같은 펀드 시장에서의 자금 이탈은 일시적이고 단순한 현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반면 증권사에서 판매하는 랩어카운트는 5월 말 현재 계약금액이 27조6000억 원으로 지난해 연말 대비 무려 7조6000억 원 이상 늘었다.

이 같은 흐름은 투자자 대상 각종 설문조사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한국투자자보호재단이 매년 실시하는 설문조사에서 ‘현재 펀드에 가입하고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 펀드에 가입할 의사가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2007년 77.7%에서 2009년 말 34%로 급감했다.

펀드에 가입하지 않는 이유도 2007년에는 ‘투자할 자금이 부족해서’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지만, 2009년에는 ‘원금 손실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최근 한 취업 포털사이트가 직장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역시 비슷하다. 저축과 보험, 펀드 등 각 부문에 대한 자산관리 비중에서 펀드는 8.3%로 저축(54.2%)과 보험(20.1%) 다음이었다. 2007년 같은 조사보다 펀드는 9% 줄었고 저축은 15.3% 증가했다.

펀드 자금의 유출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전문가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펀드에 대한 투자자들의 싸늘한 시각을 빠른 시일 내에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는 펀드에 대한 실망이 저조한 성과뿐만 아니라 투자자와의 소통 부재에 따른 불투명성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펀드와 달리 실시간으로 거래 내역을 볼 수 있는 랩어카운트가 최근 크게 돌풍을 일으킨 것은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할 수 있다.
[Market Insight] 펀드 위기의 원인은 판매 구조, 직접 판매 활성화해야
펀드 판매 방식의 다변화로 투자자와 소통 필요

수익률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투자자와 원활하게 소통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보다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물론 증권이나 은행 등 펀드 판매사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판매 직원에 대한 교육을 통해 문제를 풀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증권사의 경우 이미 주식 중개 영업에 익숙한 지점 직원들에 대해 펀드를 중심으로 하는 자산관리 영업으로 바꾸는 데 어려움이 있다.

지점망이 방대한 은행은 오히려 더 쉽지 않다. 펀드는 예·적금, 대출, 카드 등 은행에서 다루는 많은 영업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펀드를 다뤄본 경험도 증권사에 비해 훨씬 짧다. 이런 모습이 펀드 판매 시장의 현실이다 보니 아무리 자산운용사가 훌륭한 투자 철학과 명확한 투자전략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투자자에게 정확하게 전달되기 어렵다.

투자자의 성공적인 펀드 투자를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은 바로 ‘장기투자’라고 할 수 있다. 투자 목표를 명확히 하고 그에 따른 투자 기간을 정해 꾸준히 투자하는 것이 성공의 핵심 요인이다. 하지만 장기투자가 말처럼 결코 쉽지 않다.

주식시장이 매일 끊임없이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이런 시장의 변화를 바라다보면 오르면 오르는 대로,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수익을 확보하거나 손실을 줄이고 싶은 것이 투자자의 인간적인 본능이다.

여러 자산으로 분산투자하는 것도 결국은 장기투자를 위한 것이다. 분산투자하면 수익률의 변동이 낮아져 단기로 투자하고 싶은 욕망을 보다 쉽게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와 투자자 간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면 장기투자를 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설사 처음 가입 시 기대했던 것과 달리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자산운용사가 어떤 시각과 전략으로 시장 변화에 대응할 것인지 명확하게 전달된다면 투자자는 답답한 상황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펀드 판매 방식의 다양화가 시급하다. 현재 자산운용사가 운용하는 펀드는 증권사나 은행, 보험사 등을 통해 투자자에게 판매되고 있다. 이를 ‘간접 판매’라고 한다.

이러한 기존의 펀드 판매 방식 이외에 자산운용사가 직접 투자자에게 펀드를 판매하는 ‘직접 판매’가 보다 활성화돼야 할 것이다. 마치 농촌 영농법인 등에서 도시 소비자에게 농수산물을 직접 판매하는 직거래 장터와 같이 말이다.

이렇게 직거래를 하면 보다 저렴하고 믿을 수 있는 품질의 상품을 소비자가 살 수 있게 된다. 펀드 역시 마찬가지다. 직접 판매가 활성화되면 투자자는 자산운용사로부터 직접 펀드 투자 철학과 전략을 설명 받을 수 있어 보다 품질 좋은 펀드 상품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 기존의 간접 펀드 판매 시장에도 새로운 자극이 돼서 전체적인 서비스의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현행법에서도 펀드의 직접 판매가 허용돼 있다. 하지만 여러 세부적인 규제와 시장의 역학관계 때문에 아직은 활성화되기 어려운 실정이다. 위기에 빠진 자산운용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투자자의 신뢰 회복이 시급한 데 이를 위해서는 자산운용사와 투자자 간 직접적인 소통이 반드시 필요하다.

자산운용사가 투자자를 직접 대면하는 직접 판매를 활성화한다면 자산운용산업뿐만 아니라 증권사나 은행 등 자산관리업도 보다 활발하게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민주영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투자지혜연구소장 jymin@asset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