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에 따르면 이러한 기부 선언 활동은 ‘투자의 달인’ 워런 버핏과 그의 ‘나이 어린 친구’ 빌 게이츠가 시작했는데 400대 억만장자 상당수가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자산가들의 기부금을 합치면 약 6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경제규모 세계 17위인 터키의 1년 국내총생산(GDP)과 비슷하다. 기부금의 규모에 놀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개인주의와 배금사상이 판치는 미국 사회에서 어떻게 이러한 기부운동이 탄생할 수 있었는가 의아해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이러한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운동을 주도하는 버핏과 게이츠의 돈과 인생에 대한 생각을 살펴보기로 하자. 상당한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각 분야의 달인답게 두 사람은 여러 분야에서 의사소통이 원활하다. 생각하고 믿는 바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다음에 소개하는 대화는 이 두 사람이 수많은 청중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장면인데 어느 정도 그들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참고로 버핏이 주로 답하고 게이츠가 말을 보태는 정도였고 두 사람의 의견은 대동소이 했다.
청중 : 행복과 성공을 어떻게 정의하나요.
답변 : 원하는 것을 얻으면 성공이고, 얻은 것에 만족하면 행복입니다.
명쾌한 대답이다. 대화를 계속 들어보자.
청중 : 힘들게 모은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왜 사회에 기부하나요.
답변 : 우리에게 큰 혜택을 준 사회에 무엇인가를 되돌려주고 싶고 또 미국 사회가 보다 공정한 경쟁 사회가 되는 데 일조를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약간의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미국은 예나 지금이나 기회의 나라다. 그들의 성공은 미국이라는 국가적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들이 만약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지금과 같이 큰 성공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기회를 준 미국 사회에 늘 감사한다는 의미다.
반면, 그들은 자식들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것에는 무척 완고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유산을 남기는 것은 ‘현 올림픽대표를 30년 전 대표선수들의 자녀들로 구성하는 것’과 유사한 발상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은 공정한 경쟁 사회를 만드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믿고 있다.
이번 기부 선언에 참여하는 재력가들 중 상당수가 이 두 사람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을 법하다. 미국 부자들의 기부 선언을 보며 필자는 더할 수 없는 부러움을 느낀다.
한편에서는 ‘기부란 세금 회피의 한 수단일 뿐’이라며 이번 기부 선언의 의미를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선행을 굳이 백안시할 필요는 없다. 실제 세금을 회피하고자 마음만 먹으면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심화되고 있는 미국 사회의 갈등에는 수많은 원인이 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빈부격차다. 세금이든 기부든 부자들의 재산은 어느 정도 사회에 환원돼야 한다”라고 주장한 저명한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은 이번 기부 선언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다.
이종환
농심캐피탈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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