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투자자문 박건영 대표
“촌놈이 뭐 잃을 것이 있었겠습니까.” 박건영 브레인투자자문 대표는 자신을 ‘대구 촌놈’이라고 스스럼없이 부른다. 1992년 첫 직장인 한국산업리스(현 산은캐피탈)에 입사하기 전까지 대구에서 초·중·고교와 대학교(경북대 경제학과)를 나왔기 때문이다. 인터뷰 내내 그는 “잃을 것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가진 것이 많고 쌓아 놓은 것이 많았다면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현재의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미다. 그는 “산업리스는 안정된 수입이 보장된 좋은 직장이었지만 주식 투자에 대한 꿈을 버릴 수가 없었다”며 “미래가 불투명했던 펀드매니저로 변신해 현재의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은 ‘촌놈’ 정신 덕분이었다”고 돌아봤다.
맡은 펀드마다 최고 수익률로 보답한 펀드매니저
박 대표가 주식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2002년의 일이다. 한국산업리스에서 기업심사 업무를 하다 밸런스투자자문으로 옮기면서 자산운용 업계에 발을 디뎠다. 새로운 길이었지만 믿는 구석은 있었다.
10여 년간 기업심사 업무를 했던 만큼 국내 주식시장의 수많은 기업들 중 옥석을 가리는 일만큼은 자신 있었던 것. 기관자금을 주로 운용했던 밸런스투자자문에서 탄탄하게 기본기를 배워나갔지만 시장은 그를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무명의 펀드매니저에 불과했던 그가 화려한 ‘스타’로 부상하게 된 것은 2004년 7월 미래에셋자산운용으로 옮기면서부터였다. 당시 국내에 적립식 펀드 붐을 일으키면서 성장하고 있던 미래에셋자산운용에 스카우트 된 것. 그는 대표 펀드였던 ‘인디펜던스 펀드’와 ‘디스커버리 펀드’의 운용을 맡게 되면서 ‘물 만난 고기’처럼 제 실력을 발휘했다.
그 기간 두 펀드 모두 100%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하며 국내 대표 펀드로 성장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나 경쟁 펀드의 수익률이 80% 선에 그친 것과 비교해보면 탁월한 성과였다. 높은 수익률 덕분에 미래에셋의 펀드는 시중자금을 빨아들였고 수천억 원대에 불과했던 펀드 규모는 각각 1조 원을 넘긴 ‘공룡 펀드’로 몸집을 불렸다.
이후 박 대표는 2007년에 트러스톤자산운용(옛 IMM투자자문)으로 옮겼고 2년간 일하면서 이 회사의 대표 펀드였던 ‘칭기스칸 펀드’를 업계 최고의 수익률을 기록하는 펀드로 이끌었다.
“많이 배웠던 시기였어요. 정말 국내에서 최고로 불리는 선배 펀드매니저들과 함께 일하면서 제가 몰랐던 부분을 채워갈 수 있었던 시간이었죠. 당시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대한민국 자산운용 업계를 축소해서 옮겨 놓았다고 해도 될 만큼 한 시대를 풍미한 펀드매니저들이 모여 있었어요.
우리가 치열하게 토론해서 내린 결론이 시장의 정답이 될 정도였죠. 펀드매니저로서 제가 갖추고 있던 능력들을 모든 면에서 한 단계 성장시킬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호경기엔 이익 낼 기업투자, 불경기엔 현금 보유 펀드매니저로서 최고의 성공시대를 구가하고 있던 박 대표는 지난해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자신의 투자 철학을 온전히 반영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자문사’ 창업에 나섰던 것.
지난해 2월 브레인투자자문을 설립한 그는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9월 5000억 원대에 머물렀던 브레인의 계약고는 1년 남짓한 기간에 세 배 넘게 급성장을 하며 8월 초 현재 1조8500억 원에 달한다.
전체 운용자금 가운데 증권사를 통한 자문형 랩 규모만 9000억 원 수준이다. 웬만한 중소형 자산운용사의 주식형 펀드 수탁고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그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금융위기가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각국 정부의 금융지원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자문사를 창업하면 무리 없이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며 “가장 좋아하는 일인 주식운용을 평생 하기 위해서는 내 회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의 투자 철학은 의외로 간단하다. 경기가 좋아질 때면 이익이 좋아질 것 같은 기업의 주식을 사고 경기가 나빠질 것이라고 보이면 주식을 팔아서 현금을 보유하는 것. 현 시점에서는 중국 경기가 바닥에서 다시 상승하는 국면인 만큼 중국 소비와 관련된 자동차, 정보기술(IT), 의류, 음식, 유통 관련 기업들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그는 “개별 기업의 주가는 그 기업이 벌어들이는 이익에 의해 결정된다는 투자 철학을 꾸준하게 고수하고 있다”며 “앞으로 이익을 많이 낼 기업을 골라내는 노하우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자문형 랩이 과열 양상을 보임에 따라 금융당국에서 규제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적극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자문형 랩의 특성상 투자자가 어떤 종목에 투자했는지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어 추종 매매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만큼 포트폴리오 공개를 일정 시간 제한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그는 “가입자를 보호하고 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포트폴리오 공개 제한은 필요한 규제”라고 강조했다.
이미 상당부분을 이뤘지만 그의 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브레인을 대한민국 자산운용 업계에서 가장 투자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자문사로 만드는 것. 높은 수익률을 꾸준히 올려서 투자자들의 돈을 제대로 운용하겠다는 의지다. 이를 위해 브레인의 리서치 및 운용 인력을 현재 14명에서 20명 수준으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변방 중 변방인 제2금융권에서 10년간 일한 끝에 펀드매니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남들에 비해 참 많이 돌아서 온 길이었죠. 자산운용 업계의 소수자에 불과했던 제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저를 믿고 돈을 맡겨주신 투자자들 덕분입니다.
꿈이랄 게 별거 있나요. 믿고 맡겨주신 분들의 귀중한 돈을 끝까지 책임지고 운용해 높은 수익률로 보답하는 일이겠지요. 두고 보십시오. ‘촌놈’이 어디까지 성과를 낼 수 있을지요.”
박민제 한국경제신문 기자 pmj5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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