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발간된 미국 예일대의 온라인 저널 ‘예일 글로벌’에 따르면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의 5개 ‘빅 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 2600여 명 가운데 3분의 1에 육박하는 800여 명이 외국 출신이다. 이처럼 유럽 프로 리그에 최고의 선수들이 많은 이유는 돈과 깊은 관련이 있다. 정상급 선수들을 많이 확보할수록 리그는 스폰서 영입, 관중 동원 등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가 최근에 발표한 유럽 5대 빅 리그의 수입을 보면 이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인기가 높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2008~2009 시즌 총 수입은 27억3000만 달러(약 3조2400억 원)로 나타났다.
이어 독일 분데스리가가 전년 대비 10% 증가한 19억1000만 달러(약 2조2670억 원)의 수입으로 2위를 달렸다. 스페인 ‘라 리가’와 이탈리아 세리에A는 17억9000만 달러(약 2조1247억 원)로 공동 3위, 프랑스 ‘리그 1’이 11억9000만 달러(약 1조4125억 원)로 5위를 기록했다. 5대 리그의 총 수입은 94억 달러(약 11조1500억 원)다. 유럽 5개국이 오로지 축구만으로 100억 달러에 가까운 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얘기다. 리그 수입은 전년도에 비해 프리미어 리그만 5% 감소했을 뿐 분데스리가는 10%, 라 리가는 4%, 세리에A는 5%, 리그 1은 6%가 증가해 평균 3% 성장을 했다.
프리미어 리그의 수입 감소도 파운드화의 가치 하락 탓이지 실질적인 리그 수입은 증가했다고 한다. 유럽 축구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방송 중계권과 입장권·기념품 판매 등이 수입 증가의 가장 큰 요인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프리미어 리그는 수익 면에서도 독보적이다. 프리미어 리그는 2008~2009 시즌에 2억6680만 달러(약 3167억 원)의 이익을 냈는데 이는 전년도의 1억1390만 달러(약 1352억 원)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프리미어 리그는 지난 1992년 영국 프로 축구 챔피언십 리그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탄생했다. 현재 총 20개 클럽이 있으며 시즌이 끝나면 프리미어 리그 하위 3개 팀과 챔피언십(2부 리그) 상위 3개 팀이 자리를 바꿔 다음 시즌을 맞는다.
프리미어 리그는 총 20개 클럽이 공동으로 마케팅을 펼쳐 수익을 나눠 갖는 일종의 주식회사와 같다.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각 클럽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공동으로 스폰서를 찾는다.
프리미어 리그의 스폰서십은 3단계로 나눠져 있다. 최상위 단계는 타이틀 스폰서다. 현재 영국계 은행인 바클레이스가 이를 따냈다. 바클레이스는 리그 앞에 이름을 붙이는 대가로 지난 2006년부터 3년간 총 6580만 파운드(약 1222억 원)를 지불했다.
2단계 스폰서는 ‘공식 파트너’로 불리며 4개 분야에서 선정돼 있다. 나이키는 공식 볼 파트너이고 맥주는 버드와이저, 스포츠 음료는 루코자드, 껌은 위글리 등이다. 3단계는 공식 라이선싱 스폰서로 스티커 및 카드 제조 회사인 톱스 메를린(Topps Merlin)과 게임 회사인 EA스포츠 등이 있다. 리그가 선정한 1∼3단계 분야의 경쟁 회사를 제외하고 각 클럽들은 다양한 기업들과 재량껏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리그가 우선적으로 계약한 회사라도 종류가 다르면 다시 계약해도 상관없다.
껌 공식 파트너 위글리는 무려 11개 클럽과 계약하고 있다. 이 회사는 프리미어 리그를 후원하면서 ‘엑스트라 90+(Extra 90+)’라는 껌 브랜드를 발매해 톡톡한 효과를 누렸다. 라이선싱 스폰서인 EA스포츠는 아스널, 첼시 등과 계약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웨인 루니를 광고에 활용할 수 있는 계약을 하기도 했다.
프리미어 리그에 등장하는 기업들의 로고는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글로벌 기업들의 홍보 마케팅 자금이 프리미어 리그로 쏠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영국 등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 등 전 세계 기업들의 돈이 흘러들고 있다.
유럽에 비해 축구 인기가 높지 않은 미국 기업들도 프리미어 리그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구단들의 수입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유니폼 스폰서(shirt sponsor)’를 보면 맨유와 리버풀이 연간 환산액으로 각각 3117만 달러(약 370억 원)를 기록해 수위에 올랐다. 리버풀은 영국계 은행인 스탠다드차타드은행과 맨유는 미국 회사인 ‘에이온(Aon)’과 각각 계약을 맺었다.
이어 첼시가 삼성으로부터 2150만 달러(약 255억 원), 토트넘 핫스퍼가 ‘오토노미(Autonomy)’로부터 1558만 달러(약 185억 원), 맨체스터시티가 ‘에티하드항공(Etihad Airlines)’으로부터 1169만 달러(약 139억 원), 아스날은 에미레이트항공으로부터 857만 달러(약 101억 원)를 각각 받았다.
프리미어 리그 20개 구단의 평균 가치는 6억3200만 달러(약 7500억 원)다. 지난해에는 평균 6억9100만 달러였다. 맨유, 첼시 등 상위 5개 구단의 수입은 5억5600만 달러(약 6600억 원)로 이 가운데 순이익이 24%에 달한다.
프리미어 리그의 최고 인기 구단인 맨유는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평가한 자산가치 부문에서 7년 연속 1위를 달리고 있다. 총 18억4000만 달러(약 2조1850억 원)로 세계 최고 구단으로 평가됐다.
맨유는 지난해 운영 수입이 1억5000만 달러(약 1780억 원), 중계권 수입으로 1억6400만 달러(약 1947억 원)를 벌어들였다. 맨유의 가장 큰 스폰서는 에이온과 나이키다. 나이키와는 2002년 3억3000만 파운드(약 6129억 원)에 13년간 용품 계약을 체결했다.
맨유나 첼시 등 인기 구단은 시즌 마감 뒤에는 아시아 등을 돌면서 후원사를 찾고 부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맨유는 지난해 10여 일 남짓 아시아를 돌면서 최소한 600만 파운드(약 111억 원)를 벌어들였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프리미어 리그 20개 클럽들은 유럽과 미국의 기업들로부터 돈을 끌어들이는 데 한계에 도달하자 새로운 ‘돈줄’로 아시아 시장을 선택했다. 세계로 진출하려는 아시아 기업들의 이해관계와 맞아 떨어진 것.
맨유는 2009∼2010 시즌에 스폰서들로부터 끌어 모을 후원금만 8000만 파운드(약 1500억 원)인데 이 가운데 아시아 기업들로부터 수금한 금액이 2350만 파운드(약 436억 원)였다.
과거 식민지를 찾아 나섰던 것처럼 유럽 프로 축구팀들은 자국 리그를 떠나 세계 시장을 누비며 기업들의 천문학적인 후원금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뉴욕=한은구 한국경제신문 기자 tohan@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