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람투자자문 박경민 대표

[Hot Trend in Stock Market] “장기투자는 모멘텀투자보다 가치투자가 유리”
투자자문사와 가치투자. 얼핏 보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만큼 가치투자를 하는 자문사는 수익률 경쟁이 치열한 자문 업계에서 흔치 않다. 그러나 한가람투자자문은 2000년 설립 이후 철저하게 저평가된 중소형주에 장기·가치투자 원칙을 지키며 자산운용 규모를 업계 2위인 1조2336억 원(3월 말 현재 기준)으로 키워냈다. 까다롭다는 국민연금 등 기관들을 주요 고객으로 만든 덕분이다.

장기투자 종목을 발굴하는 능력이 한가람의 힘

한가람투자자문이 10년 동안 가치투자의 원칙을 지켜온 데는 박경민 대표의 고집이 컸다. 노무라증권 애널리스트를 시작으로 대우투자자문 펀드매니저, SEI에셋코리아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를 거쳐 자문사 대표에 오르기까지 그는 늘 ‘가치투자’를 내세웠다.

현재는 강방천 에셋플러스자산운용 회장,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 등과 함께 ‘가치투자포럼’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박 대표는 “단기적으로는 모멘텀투자의 수익률이 좋을 수 있지만 장기간 비교해 보면 가치투자가 모멘텀투자를 크게 앞지르기 때문에 더 나은 투자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운용 업계를 떠나 자문 업계에 발을 디딘 것도 자신의 원칙에 맞는 투자로 고객의 자산을 운용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2000년 정보기술(IT) 버블 당시 운용사 펀드매니저들이 이미 밸류에이션이 치솟은 통신주를 앞 다퉈 사들이는 모습을 보면서 운용 업계에 회의를 느꼈던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는 “당시 통신주를 단 한 주도 사지 않았지만 내 철학에 맞는 독자적인 운용 조직을 갖자는 결심을 했고, 고객들이 먼저 30억 원의 회사 자본금을 모아줘 자문사를 열 수 있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한가람이 빠르게 업계에 뿌리내릴 수 있는 비결로 장기투자를 할 종목을 발굴해 내는 탁월한 능력을 꼽았다. 실제 그는 20년여 전 초보 펀드매니저일 당시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던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직접 탐방해 투자 가능성을 발견하고 주식을 사들였다. 지금도 그는 증권사들의 애널리스트들이 담당하지 않는 종목들의 직접 찾아다니며 기업의 가치를 판단하고 있다.

그는 “상장사 1000개 중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커버하는 종목들은 100~200개에 불과한데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종목들은 대부분 나머지 종목들”이라며 “기업들을 직접 찾아다니고 가치를 분석하다 보니 한가람의 펀드매니저 대부분이 애널리스트 출신들”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최고경영자(CEO)의 능력’을 유망한 기업을 가리는 척도로 삼는다고 했다. 갈수록 업종의 경기 사이클이 짧아지고 있는 만큼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을 찾아내는 CEO의 역량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박 대표는 “CEO가 5, 10년 후의 미래를 어떻게 구상하는지, 또 그 목표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한편 그의 과거 의사 결정과 재무제표를 보고 CEO의 능력을 판단한다”며 “락앤락이 중국에 진출하면서 생산은 아웃소싱을 하고 지금은 마케팅 디자인 회사로 완전히 탈바꿈한 것처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고 이를 실행할 능력이 있는 회사를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하반기엔 주식보다 원자재 투자가 매력적
[Hot Trend in Stock Market] “장기투자는 모멘텀투자보다 가치투자가 유리”
박 대표에게는 철저한 리스크관리도 가치투자 못지않은 중요한 투자 원칙이다. 그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직후 주가가 폭락하면서 펀드들이 반 토막이 날 당시 오히려 플러스 수익을 낸 펀드매니저로서 아직도 업계에서 기억되고 있다.

그는 “IMF 직전에 금융위기를 예상하고 보유하고 있던 주식들을 처분해 큰 손실을 면한 덕분에 고객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며 “가치투자를 하다 보면 주가가 고평가 또는 저평가됐다는 느낌이 오기 때문에 선제적 리스크관리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하반기 증시에 대해서는 다소 어두운 견해를 내놨다. 지난달 코스피지수가 전고점을 회복하며 박스권을 탈출한 상승 탄력을 잃고 하반기는 쉬어가는 장이 될 거란 전망이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의 경기부양책이 IT·자동차 업계에 집중된 데다 정부가 수출기업을 위해 고환율 정책을 쓴 덕분에 국내 IT·자동차 업체들이 ‘깜짝 실적’을 거두며 증시 상승을 이끌었다”며 “경기부양책은 올해로 마무리되고 환율에 대한 정부의 태도도 시장에 맡겨 두는 쪽으로 바뀌면서 기업들의 실적이 2분기 또는 3분기 고점을 찍고, 이후 증시가 강하게 상승하기는 어렵다”고 내다봤다.

그는 개인투자자들에게 하반기에는 원자재 쪽에 투자할 것을 권했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현실화하면 실물자산에 대한 투자 수요가 늘어나게 마련인데 과거에는 실물자산 하면 부동산이었지만 앞으로는 원자재가 될 것”이라며 “특히 소재·에너지 관련 주식이나 원자재 펀드에 대한 투자 비중을 확대하는 게 유리하다”고 권유했다.

중국 관련주도 주목할 만한 업종으로 꼽았다. 그는 “앞으로 수출기업보다 내수기업이 상대적으로 두각을 나타낼 가능성이 높지만 국내 내수경기는 생각보다 좋지 않을 것”이라며 “아모레퍼시픽, CJ오쇼핑처럼 중국 내수시장에서 돈을 버는 기업들의 주가가 좋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당분간 중소형주 투자에는 신중할 것을 당부했다. 박 대표는 “국내 휴대전화·가전·자동차 대기업들이 원화 강세로 마진이 떨어지면 협력업체들에 나눠줄 ‘파이’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영업이익률과 시장점유율이 높고 특정 대기업이 아닌 여러 기업에 납품하는 기업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서보미 한국경제신문 기자 bm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