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鄕의 작가 이동웅 & 민병근 한전아트센터 학예실장

신과 인간이 어울리고 삶과 죽음이 통하는 세계. 이동웅의 작품에는 성과 속, 이승과 저승이 함께 존재한다. 마음의 고향(心鄕)을 찾아 오랜 길을 걸어온 이동웅. 누구보다 그의 작품을 아껴 전시회를 주관했던 민병근 한전아트센터 학예실장이 작업실을 찾았다.

작가 이동웅이 마음속에 그리는 고향의 모습이다. 이 짧은 글귀에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울대 서양학과를 나와 밥벌이를 위해 교편을 잡는 중에도 그의 마음은 늘 그림과 고향에 가 있었다.
이동웅 작가(오른쪽)와 민병근 실장
이동웅 작가(오른쪽)와 민병근 실장
교사로 보낸 반평생, 나머지 인생은 화업에 정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는 그게 안 되더라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화업을 완전히 중단할 수도 없었다.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사는 맛이 나지 않았다. 그에게 그림을 그리는 일은 밥 먹는 일과 매양 한 가지다.

다만, 그림을 그릴 때는 최대한의 집중을 요한다. 집중을 못하면 그림이 안 된다. 그의 작품이 긴 시간을 통해 세상에 나오는 이유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는 연도 표기가 없다.

작품에 따라 길게는 7년에서 10년 동안 작업한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작품 수가 적을 수밖에 없다. 오랜 화업에 비해 전시회 횟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다.

그는 올 초 한전아트센터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졸업 직후의 개인전과 교직에 있을 때 틈틈이 가졌던 네 번의 전시회를 합치면 여섯 번째 전시회다. 이번 전시회는 그의 화업에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정년퇴임을 하고 작정하고 화업에 뛰어든 이후 가진 첫 전시회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회는 몇 해 전 그와 화연을 맺은 한전아트센터갤러리의 민병근 실장이 큰 힘을 보탰다.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다시 작품에 매진하고 있는 작가의 화실을 민 실장이 찾았다.
[Friends] 삶과 죽음, 인간과 자연이 하나된 낙원으로의 초대
민병근(이하 민) : 작업실을 찾은 건 처음이네요. 선생님이 이런 데서 작업을 하시는군요.

이동웅(이하 이) : 작업실치고는 누추하죠.

민 : 집은 좋은데요. 작은 텃밭도 있고, 나무도 울창하고요. 도심에 있는 집 같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에 나오는 집과 비슷한 것 같은데요.

이 : 아파트에 살다가 20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앞뒤로 작은 텃밭도 있고, 감나무도 있고요. 감나무가 익을 때 오시면 감을 대접하죠. 서울에는 이런 집이 흔치 않아요.

민 : 선생님 작품이 여기서 나오는군요. 선생님 작품은 우리 마음속 고향을 떠올리게 하거든요. 저는 작품을 볼 때 그 작품이 탄생하기까지를 작가의 화업에 주목합니다. 작품이 그 정도 수준까지 오게 된 배경은 무얼까, 그런 것을 생각하는 거죠.

이 : 작품 전에 작가를 먼저 볼 필요가 있긴 합니다. 사람에 따라 얼굴도, 마음도 다릅니다. 작가의 소산인 작품이 제각각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죠. 그림은 나와 캔버스 사이의 대화를 통해 나를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전통문화에 경도돼 ‘무속’과 ‘사찰’을 찾아 떠돌던 젊은 시절

[Friends] 삶과 죽음, 인간과 자연이 하나된 낙원으로의 초대
민 :
작가들은 그래서 자기 고민을 많이 해야 합니다.

이 : 저는 서울대 미대시절부터 혼자 지내는 걸 좋아했어요. 책도 좋아했는데 신화나 전설, 민담 등에 관심이 많았어요.

정사인 <삼국사기>보다 민담이 가미된 <삼국유사>의 영향을 더 받았어요. 크리스천이지만 무속도 좋았고요. 굿은 우리나라 문화의 총체거든요.

민 : 선생님 작품에 그런 관심이 그대로 반영돼 있습니다. 사실 젊은 작가들 작품을 보면 인생의 깊이랄까, 고민의 깊이가 부족한 게 사실이에요. 선생님은 그런 면에서 젊은 작가들에게 사표(師表)가 될 수 있겠죠.

선생님 그림은 인생의 깊이가 느껴지니까요. 특히 전통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가 돋보입니다. 그게 없다면 이런 작품이 나올 수가 없겠죠.

이 : 한때 전통문화에 깊이 경도된 게 사실입니다. 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특히 굿에 빠졌어요. 굿에는 부채춤, 칼춤, 제의 등 우리의 모든 문화가 녹아있습니다. 거기에 도취돼 전국을 돌아다니며 굿을 연구한 적도 있습니다.

한때는 탈춤에 빠져 직접 배우기도 했고요. 한때는 사찰의 아름다움에 빠져서, 전국을 떠돌기도 했습니다. 주위 풍수와 어울리게 잘 지어진 사찰은 그 자체가 기가 막히게 아름답죠. 저는 그런 모두를 일종의 풍류, 한국적인 풍류라고 봅니다.

민 : 역학에도 조예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이 : 젊어서 호기심이 많았어요. 무속을 연구하고 사찰을 보러 다니면서 자연히 역학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어떻게 인연이 닿아 문화센터에서 10년째 역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림의 구도에 그게 어느 정도 반영되는 듯해요. 제 그림을 자세히 보면 강과 산, 사람 등이 풍수지리에 입각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작업실이 있는 자택은 작가의 그림처럼 자연과 어우러져 푸근한 느낌을 준다. 텃밭과 나무가 가득한 이곳이 작가의 고향인 셈이다.
작업실이 있는 자택은 작가의 그림처럼 자연과 어우러져 푸근한 느낌을 준다. 텃밭과 나무가 가득한 이곳이 작가의 고향인 셈이다.
마을이라는 소우주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표현

민 : 그게 선생님 작품을 특별하게 만드는 듯합니다. 한전 학예실장으로 얼마나 많은 작품을 봤겠습니까. 그렇게 많은 작품 중에 눈에 띄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작품은 달랐어요. 작품을 보고 ‘한국에도 이런 작가가 있구나’ 하고 놀랐습니다.

이전 작품을 찾아서 봤는데, 모두가 한국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더라고요. 전통문화의 핵심은 마을에서 비롯됩니다. 마을이라는 전통사회가 일종의 소우주인 셈인 거죠.

선생님 작품에는 생업과 놀이, 장례 등 사람의 모든 삶이 들어 있어요. 한 폭의 그림에 죽음까지 담아내기란 쉬운 일은 아니죠. 그런데 근작들을 보면 표현이 더 단순해지는 듯합니다.

이 : 벼도 익으면 고개를 숙이잖아요. 그림도 그런 것 같아요. 나이가 들수록 모든 것을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는 듯해요. 색도 이전보다 덜 쓰게 되고요. 본질이라는 게 복잡함 속에서 단순함을 뽑아내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민 : 그림도 그런 것 같아요. 스스로 개념이 정립되지 않을 때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 하는 것 같습니다. 깊이 있는 고민을 하는 작가들은 핵심적인 것은 살리고 주변적인 것은 과감하게 버릴 줄 알거든요.

이 : 살이도 마찬가집니다. 삶을 보람되게 하는 것, 그것에만 충실해야지 너무 많은 것에 중요한 것을 내줘서는 안 되죠. 작가로서 저는 제 삶의 방향이 곧 그림의 방향입니다.

민 : 선생님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마을은 일종의 유토피아가 아닐까 하는데요.

이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머릿속에서 항상 새로운 마을이 만들어지니까요. 그걸 위해 지금도 민속박물관이나 사찰, 전통이 남아 있는 마을 등을 찾아다닙니다.

민 : 선생님 그림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게 상여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세밀하게 상여를 복원할 수 있습니까.

이 : 상여를 많이 보기도 했지만, 상여의 의미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죠. 상여란 게 일종의 극락세계거든요. 상여 안이 바로 천국인 거죠. 죽어 화려한 곳(상여)에 누워 좋은 음악 들으니 그게 바로 천국이잖아요.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림이 나오더군요.

민 : 그런 걸 보면 선생님 그림이 인간과 공간, 시간의 삼위일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인간과 자연, 삶과 죽음이 한 데 어우러진 유토피아가 선생님이 추구하는 그림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선생님의 그림은 재조명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민 실장의 말처럼 이 작가의 그림은 ‘유니크’한 면이 있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따라하지 못한다. 그런 점이 부각돼 그의 그림은 최근 컬렉터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작가는 “그런 것과 상관없이 나는 내 작품을 할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글 신규섭·사진 이승재 기자 wawoo@hankyung.com